천추태후 여걸론자들이 성종을 공격하는 단골소재는 황제국 체제를 제후국 체제로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황제가 내리는
'조서'를 제후국의 왕이 내리는 '교서'로 변경한 점이다. 천만다행히도 여걸 천추태후가 등장하였고, 그 후 몇 대 왕을 거치면서
고려는 황제국 체제를 회복하였다, 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주말 방영을 시작한 사(기)극 '천추태후'는 성종은 '전하'로
불리지만, 경종은 '폐하'로 불린다. '천추태후'보다 먼저 제작됐지만 후대의 이야기인 '무인시대'는 다시 '폐하'다.
성종이 조서를 교서로 고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황실용어를 포기했다는 증거일까?
보
다 후대인 인종 때의 기록을 보면, 여전히 왕은 '조서'가 아닌 '교서'를 내리고 있다. 묘청이 서경천도를 주장하면서 내세운 게
'칭제건원'이니 독자적인 연호도 없고, 황제를 자처하지 않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제후국'인 이 나라에서, '친중국
사대주의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월'에서 그는 인종을 '성상폐하(聖上陛下)'라고 부르고 있다. 왕의 어머니는
'태후'이며 왕의 후계자는 '태자'이다. 이런 용어들이 모두 제후국 용오로 격하되는 건 원 간섭기에 접어들면서다.
이
런 점을 살펴본다면 성종에게는 태자가 될 아들도 없dj서 눈에 띄지 않은 거지, 그 역시도 조서를 교서로 바꾸었어도 '폐하'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교서'라는 말과 '폐하'라는 말이 공존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도
선의태후(宣義太后)가 됐다.
그러면 천추태후 여걸론자들은 이걸 무시하거나 혹여나 받아들여도 "오, 위대한 고려.
황제국을 포기하지 않았어. 과연 고구려의 후예인 대제국이야."라는 쪽으로 갈까 겁나서 덧붙이건데, 그래봐야 고려 내부에서만 그럴
뿐이고, 대외적으로는 초기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고 책봉을 받는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
이렇게 예를 들어 볼까? 동아시아에는 중국이나 고려 말고도 황제국 체제를 갖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고려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아니 과거형을 쓰면 안 된다. 그 나라는 지금도 독자적인 연호를 쓴다. 심지어 국가원수도 그냥 황제가 아니라
천황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아직도 독자적으로 연호를 쓰는 나라, 진정 대제국이지 않은가? 바로 일본 말이다.
....
라고 말하면 수명을 100년은 연장시킬 수 있을 거다. 그저 자기들끼리 그렇게 한 거 가지고 오버한다고 하며 욕할 거다. 그런데
고려는 뭐가 다르겠는가? 대내적으로 황제국 체제를 가졌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 '중국에 맞서는 자주성을
가진 대제국의 상징'으로 격상시키면 오버가 된다. 그리고 추해 보인다.
정리하자면 누군가를 평가하자면 달랑 문구 하나만 보지 말고, 앞뒤의 사료를 잘 살펴서 제대로 평가를 하고, 오버는 하지 말자.
첫댓글 500년 고려사라는 책을 보니 고려가 대내적이나마 황제국이라함은 삼한을 통합함과 동시에 여진의 추장이나 탐라의 왕, 왜의 왕에게 관작을 내렸다는 것을 근거로하던데 그럼 여기서 왜의 왕과 일본과는 상관이 없는건가요?
관직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조선왕이 여진 추장에게 관직과 봉급을 주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