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 될지라. 창12:1-5, 행20:33-35 구약 본문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하셨는데, 여기 ‘큰 민족’이란 단순히 숫자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 위대한 민족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가 처한 현실은 아직 자녀 하나 없는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따를 때 주시는 비전이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에 믿기만 하면 모든 여건과 제약을 넘어 새로워 질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 민족이 되리라는 약속과 함께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열국의 아비’, ‘하나님의 방백’, ‘여호와의 종’, ‘복의 근원’, ‘하나님의 벗’, ‘믿음의 조상’ 등의 명칭을 받았고, 그는 실재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너는 복이 될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복이 되는 원리가 무엇인지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복이 되려면, 1.복의 근원이신 성삼위 하나님 안에 거해야합니다.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대체로 3가지로 표현됩니다. 첫째로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구약은 율법적 관계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종으로 비유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는 다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종과 주인은 율법으로 맺어진 언약의 관계로, 법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어느 한 편에서 파기하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고 쫓겨납니다. 둘째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부자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한 집에 살고, 식탁에서 함께 먹고,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습니다. 셋째로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가장 깊은 관계로 성령으로 하나 되는 은밀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가장 깊고 신비한 관계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초월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넘어서고,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성삼위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성도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시련을 당하든지 복의 근원이신 주님 안에 거하여 살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시련도 이기고 처해진 환경에서 복이 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 한 예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릴 적부터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형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다 미움을 받고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그런 중에도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머무는 집을 그로 인해 형통케 하셨습니다. 그는 여주인의 간계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할 때도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살았고, 간수의 신임을 받는 자가 되어 옥에 있는 자들을 돌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죄수들을 돌보다가 두 사람이 꾼 꿈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꿈을 해몽했는데, 그의 말대로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을 통해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 왕의 신임을 받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총리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준 지혜로 7년 풍년의 때에 다가 올 7년간의 흉년을 잘 대비하여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하는 복의 근원이 되었고, 자기 동족까지 기근의 어려움에서 건져내는 복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을 아버지 야곱은 자녀들을 위해 한 사람씩 축복하는 기도를 할 때 ‘요셉은 샘 곁에 심긴 무성한 나무가 담을 넘었다.’(창49:22)고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보듯 사람은 누구나 일생 동안 아무런 풍파 없이 승승장구할 수는 없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이 승승장구하다가 부도가 나 알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알거지로 출발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언제 어떤 복병을 만나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질지 모르며, 또 언제 어떤 행운을 만나 잘 될지 모릅니다. 해바라기가 항상 해를 바라보듯이 언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서 새 힘을 공급 받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그 처한 자리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복을 받고, 또 나누는 자로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듯이 오늘 우리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여 복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삽니다. 구약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듣고 아브라함은 4절의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라는 말씀처럼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은혜의 자리에 머물면서 죄악의 자리는 과감히 떠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과거에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 행했던 악한 행위나 세상의 나쁜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는 내 마음대로 행했던 것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면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되어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쉬운 일도 아니고,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께서 말씀 하신 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협착한 길을 걷는 것과 같고, 사도 바울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따라야 하기에 아픔도 있고,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를 살리고 복되게 하기에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에덴에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가 있듯이, 성도들 앞에 있는 것 중에는 피하고,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에 순종하여 지켜 행할 때 성결한 모습과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을 지닐 수가 있으며, 진정한 행복과 자유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런 자에게 참 평강과 영생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어 시험에 들게 했느냐며,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피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때 진정한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대표하는 십계명에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서 지켜야 복이 되기 때문에 재한을 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을 방문했을 때 그를 영접한 롯의 가족에게 그 곳을 떠나라고 한 것은 너무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것을 알고 급히 그 곳을 떠나라 한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선지자 발람에게 발락 왕에게 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길의 결국은 선지자의 본분을 잃게 하고, 파멸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다 아시기에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가려고 고집을 피우니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그가 발락에게로 향하여 가는 길을 막고,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 책망까지 하셨는데도 고집을 피우고 가서 결국 자기도 망하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해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사실 처음에는 그 명령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본토는 떠났지만 조카인 롯을 데리고 떠났고, 아버지 데라와 함께 떠났으며, 처음부터 하나님이 지시한 가나안 땅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하란 땅으로 갔습니다. 창15:6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여김을 받은 때는 75세에 하란을 떠날 때보다 10여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다가 사라의 제안을 받아드려 인간적 방법으로 사라의 몸 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오랜 기간 침묵 하시다가 그에게 나타나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책망조로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대 순종의 믿음으로 인정받은 받은 때는 창22장에서 자기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로, 다시 약 30년 이상 지난 때였습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이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도 순종해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부족한 면이 있지만 아브라함처럼 점차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 복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복이 되는 자는 나누고 베풀며 삽니다. 신약 본문 행20:35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했습니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은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받는 것 보다 더 좋은 복은 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당부 하면서 인용한 본문의 말씀은 복음서에는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값없이 거저 받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3:16) 거저 받았기에 거저 주어야 마땅합니다. 마10:8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했습니다. 요일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도, 죄 사함도, 의롭다 하심도, 은혜도, 구원도 믿음 안에서 거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사55:1)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고 했습니다. 주고 베푸는 자가 되면 여러 면으로 복을 받습니다. 어느 날 교목에게 한 학생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목사님, 저는 도벽이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안 하려고 해도 자꾸 하게 되요.”라고 울며 고백했습니다. 목사님은 한참 생각한 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도적질을 안 하려고 하지 말고 이제부터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일을 시작해 보게나. 학비가 모자라거나 학용품이 부족한 가난한 친구들이 있으면 그 친구에게 자네 것을 주는 생활을 해보게.”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학생, 우리의 결심만 가지고는 그 일을 할 수 없어.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있지.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네.” 학생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의 도우심을 의지해 상습적인 도벽이 아닌 주는 생활을 결심하고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 그 학생은 교목을 찾아갔는데 아주 환희에 찬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반에서 제일 가난한 학생에게 자기 용돈을 모아 그것을 그에게 모두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 제 평생에 이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에요. 제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니요. 목사님! 전 달라질 수 있어요.”라고 확신에 차 말했습니다. 주고 베풀면 결국 더 좋은 것들이 자기에게 돌아오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나누고 베풀 때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때 사람들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갈라놓으시고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도 복의 근원이 되어 나누고 베푸는 자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너는 복이 될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복이 되려면, ◆.복의 근원이신 성삼위 하나님 안에 거해야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삽니다. ◆.복이 되는 자는 나누고 베풀며 삽니다. 아멘. <2024. 01. 18. 호현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