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독소전쟁 제2기(1942년 11월~1943년 12월)
부제:시궁창에서 벗어나다
독소전쟁이 제2기로 접어들고 소련의 군수품 생산 능력과 미국의 랜드리스가 합쳐지며 막대한 양의 항공기 생산이 시작됨에 따라 소련 공군의 지상 지원 체계도 상당한 발전과 개선을 이루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각 전선군마다 1개 항공군이 편제에 배정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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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도 소련 항공군의 편제
1942년 11월에 소련 공군은 '항공 공세'란 새로운 개념에 적응했는데 소련군은 항공 공세를 "항공 작전을 위한 목표와 과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소련 공군은 항공 공세에 초점을 맞춰야 한 다는 것을 깨닫자, 막대한 양의 무전기를 지상군과 공군에 공급했고 레이더를 갖춘 관제소들을 배치하며 정교한 항공 관제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L. 미크리우코프와 G. 브리우홉스키의 <적 방어 돌파 동안의 항공기 역할에 대한 경험>에 의하면 항공 사단, 항공 연대급 항공 관제소는 최전방 전선에 설치되어서 지상군 부대와 밀접한 지휘-통제-통신 체계를 유지하며 공지 합동 전술의 기초적인 수단으로 거듭났습니다. 항공군 수준의 항공 관제소는 전선군 사령부 근처에 배치되어 최전선으로부터 7~8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면서 지상군 전선군 사령부와 공지 합동 지휘-통제-통신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전투기 항공 군단과 지상 공격 항공 군단급 관제소는 야전군 사령부 근처에 설치되어 전선에서 2~3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야전군 사령부와 지휘-통제-통신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ZiL-157 트럭이 대게 이동 지휘소나 관제소로 변신했습니다.
소련 공군은 모든 소총병 군단이나 전차 군단에 공군 통신 장교나 무기 통제 장교, 최소한 옵저버 자격을 가진 장교들을 보내 공지 합동 작전을 지상군 지휘관, 참모들과 의논, 토론하고 작전 진행 동안에 항공기 운용을 지상군과 공조하며 조정했습니다. 주공 축선에 있는 소총병 사단 사령부에도 항공기를 지휘, 조정할 공군 통신 장교들이 배치되었습니다. 항공 관제소의 공군 지휘관들은 아군의 정확한 위치를 조종사들에게 전달해 오인공격을 막고 지상군의 항공 지원 요청이 오면 조종사들에게 지원 요청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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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정비사, 지상 요원 장교들
이런 체계가 만들어졌지만 N. 오스트로우모프의 <지상군과 공군의 피아식별 발전>에 따르면 피아식별과 타격 목표 지정 방법에 대한 발전 속도가 느리자 총참모부는 1943년과 1944년에 계속해서 공군 장교들에게 피아식별에 대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특히 항공기와 포병, 전차 , 기계화 보병의 상호 조정은 피아식별과 적과 아군의 경계선을 구분하는데 겪는 어려움 때문에 느린 속도로 개선되었습니다. 결국 항공 부대는 로켓, 탑 형태의 구조물, 그리고 무전을 통해 피아식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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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도 적군이 아닌 우리 해병대를 잡기도 하지만 그런건 아무레도 상관 없어~
1943년 초에 전차 대대와 소총병 대대는 통신 훈련을 받고 통신 장비를 장비한 소부대를 창설해 최전선에서 적과 접촉하며 공군의 지원과 폭격을 유도한는 역할을 맏겼습니다. 거기에 통신 부대는 무전기와 로켓을 이용해 적과 아군의 경계선을 공군에 알리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전선 항공 부대는 출격 전에 조종사들에게 작전 지역 지도를 숙달하게 했습니다.
이토록 소련 공군의 지상 지원은 1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첫댓글 하 빨리 올려영
일류신을 던져봐라 노비코프. 우와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