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표 사진 2장
▽ 견득사의(見得思義) :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
호조,이조,형조, 병조판서 등 4부 판서를 지낸 이이는 죽었을 때 장례식을 치를 돈이 없어 주위에서 십시일반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이를 존경하는가 보다.
▽ 관동팔경 경포대
제일 관동팔경이라 불리는 경포대. 팔작지붕에 정면 6칸, 측면 5칸의 당당한 규모이며, 봄이면 누대 주위로 벚꽃이 화사하게 핀다.
경포호와 해수욕장 및 주변 소나무 숲 지대를 일컬어 흔히 '경포대'라 한다. 많은 사람이 철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명소이지만 정작 그 이름의 원조격인 '경포대'에 올라본 사람은 많지 않다. 바다의 유혹이 너무 짙기 때문이다.
2. 후기
1) 일자 : 20.9.17(목)
2) 관광지 : 강릉 오죽헌, 경포대
3) 누구랑 : 홀로
4) 후기
오죽헌과 경포대는 1977년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들렸다. 그후에도 경포호수는 몇 번 와 봤지만, 오죽헌은 처음이다. 우리가 통상 경포대라고 하면 경포호수만을 생각하지만 관동팔경 경포대라는 누각이 있다. 선비들은 거기에서 차와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
다음날 땅통 백두대간 삽당령-고루포기산-대관령(27.5km) 산행을 위해 광주에서 오전 9시 5분 버스로 출발한다. 오늘 광주-강릉 프리미엄 버스 탑승객은 딱 2명이다.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을 테이크백해서 운전기사한테 드렸더니 "고맙습니다" 한다. 산행때 먹으려고 임실치즈와 호두과자도 샀다. 버스엔 비행기처럼 좌석마다 TV가 달려 있어 비치된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려가며 볼 수 있어 지루함이 덜하다. 핸드폰충전기도 있다.
강릉에 도착하여 오죽헌을 간다. 30분마다 해설사가 안내해주고 있다. 김수태 해설사로 부터 설명을 들으니 집에서 공부한 내용과 어울려 머리에 속속 들어온다. 이이가 49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 치를 돈도 없었다고 한다. 호조.이조.형조.병조판서를 거쳤는데도 말이다. 견득사의(見得思義)라는 말을 실천한 사람이다.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어, 택시를 타고 경포대로 간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보이지 않아 혼자 관람했는데, 경포대 높은 누각에서 바라 본 경포 호수가 멋졌다. 경포대는 관동팔경 중 하나다. 이후 강릉터미널 인근에 가서 갈비탕으로 저녁을 먹고 모텔을 짐을 놓고, 강릉시청 앞을 산책한다. '2018년 빙상경기 개최 강릉'이라는 현수막이 눈길을 끝다. 아내, 딸과 체코 대 캐나다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해서 9시부터 잠자리에 든다.
땅통종주 산행계획서에 오죽헌과 경포대가 포함되어 있다. 계획을 세우면, 내실있는 여행이 되고, 어긋났을 때 빨리 수습할 수 있다. 여럿이서 여행하면, 맛집 등도 미리 알아 볼 수 있어, 동행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3. 오죽헌 사진
광주종합버스터미널..흔히 유스퀘어라고 한다.
9시 05분 버스를 탄다. 5시간 25분 걸려 14:30에 도착 예정이다.
프리미엄 버스라 그런지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TV를 골라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핸드폰 거치대에 놓으면 바로 충전된다.
횡성휴게소에 내려 호두과자를 5천원어치를 산다. 내일 산행에서도 먹을려고..호두과자를 산행 때 먹으면 달아서 애호하는 편이다.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고속버스터미널도 바로 붙어 있다.
택시를 타고 오죽헌으로 간다. 가까운 거리다. 계획서에 의하면 터미널 건너편에서 오죽헌 가는 버스가 202번 등 몇 대가 있었지만, 정류장 전광판을 보니, 30분 이내에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택시요금은 기본 요금 조금 넘었다. 버스편은 계획서를 참조하면 된다.
오천원권과 오만원권의 모자...신사임당과 이이
신사임당은 이름이 아니고 호이다. 성은 신(申)씨이고, 호는 사임당이다. 이름은 확인불가라고 한다. 조선시대 호적에 이름이 빠져서인 것 같다.
오죽헌(烏竹軒)은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다. 최응현은 이 집을 둘째 사위 이사온에게, 이사온은 외동딸 용인 이씨에게 물려 주었다. 용인 이씨는 서울 사람 신명화와 혼인하였지만 어머니(강릉 최씨)의 병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렀는데 그때 사임당을 낳았다. 사임당 역시 서울 사람 이원수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용인 이씨)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율곡을 낳았다. 외할머니 용인 이씨로부터 상속받은 집 주위에 검은 대마무가 많은 것을 보고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었는데, 그것이 집 이름이 되었다. 출처 : 오죽헌/시립박물과 홍보팜플렛 |
입장료는 3천원
15시 해설을 듣는다. 30분마다 해설이 있다.
김수태 문화관광해설사..견득사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見得思義是謂九思 (견득사의시위구사)
이득(利得)을 보면 반드시 의를 생각해야 하니, 이것을 구사(九思)라 함(출전 : 소학)
경내에는 오죽헌, 어제각, 율곡기념관, 안채, 사랑채가 있으며, 그 옆에 시립박물관이 있다.
강릉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이다.
율곡 이이가 출생한 곳으로 우리 나라 주거 건축으로는 가장 오래 된 건물에 속한다. 오른쪽 몽룡실에서 태어났다.
뒷뜰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몽룡실과 문성사 주변에는 줄기가 검은 오죽이 자라고 있다.
들여다본 문성사..문성사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문성(文成)은 1624년 인조대왕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다.
오죽은 60년을 살고 꽃이 피면 죽는다고 한다.
왜 굴뚝이 낮을까? 하고 설명하는 해설사님...낮은 굴뚝은 날파리를 소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억에 남는 해설 내용)1) 오죽헌 대나무도 첨엔 파랗다가 검어지고 말년에는 하얀색으로 변한다.2) 문은 오른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온다. 가운데 문은 임금만 드나든다.3) 조선 초기만 해도 장가 간다는 것은 처갓집에 가서 사는 것이고, 시집 간다는 것은 여자가 시댁에 가서 사는 것이다. 사임당이 재능을 발휘한 것도 결혼 18년 동안 친정어머니랑 편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강릉 출신 허난설현은 시어머니랑 살아 단명했다고 한다. |
안채
인상에 남은 문구는 어머니 신사임당을 열 여섯 살에 떠나 보내자..삼년 상을 치른 후, 19세 때 1년간 금강산에 가서 스님이 되었다는 문구다. 충격이 컸나 보다.
빨간 배롱나무 꽃이 핀 오죽헌
조선 전기의 서화가(1504~1551), 사임당은 호,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자수와 서화에 능하였으며,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숭앙받았다.
[ 이이와 신사임당에 대해 사전 읽은 특이사항 메모 ]
1) 호가 울곡인 이이의 본가는 파주 율곡리임. 늦게 벼슬길에 오른 아버지가 강릉에 사는 신사임당과 결혼하여 처기집에 눌러 앉음.
2) 신사임당의 성은 신씨이고 사임은 호임. 이름은 모름. 옛날에 여자는 족보에 실지 않았기 때문임.
3) 율곡이 강릉에거 대관령을 넘어 파주로 간 것은 6살때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넘었다고 함.
4) 파주 본가로 떠나면서 홀로 계신 친정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가 대관령을 넘으며임. 친정 어머니는 사임당 보다 더 오래 살았음.
5) 16세 때 어머니를 히늘나라로 떠나 보낸 율곡은 3년상을 치르고 19세 때 금강산에서 중이 되었으나 1년만에 속세로 돌아 옴
6) 이이는 48세에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야지지 않았고, 이듬해인 1584년 세상을 떠남. 8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남.
4. 경포대 사진
오죽헌을 관람 후, 원래 계획은 걸어서 선교장, 해운정, 김시습기념관을 구경하며, 관동팔경 경포대에 갈 계획이었으나, 1시간 동안 오죽헌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은 관계로, 택시로 이동한다. 요금은 기본요금
오죽헌에서 경포대까지 가는데...주요관광지이다..책자 지도를 카메라로 찍음.
경포대 입구
광동팔경 하면 조선시대 정철만 생각하는데...고려시대 때 건설되었다.
경포 호수가 보인다.
경포호'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에는 달이 네 개 뜬다는 풍류가 있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도 똑 같은 달이 하나 뜬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기게 한 가지를 덧붙인다. 하늘,바다,호수,술잔 그리고 그대의 눈동자에.... |
경포호 끝의 소나무숲을 지나면 동해바다이다.
경포호는 파도나 해류의 작용으로 모래나 자갈이 쌓여서 만 입구가 막혀 형성된 호수이다. 본래 그 둘레가 12에 달하는 넓은 호수였다고 하나, 지금은 약 4km 정도에 불과하다.
경포대 현판은 조선 후기 서예가 유한지가 썼다. 누대 곳곳에는 옛 시인묵객들이 남긴 글귀가 남아 있다.
제일강산 현판..한달 전 들린 삼척의 관동팔경 죽서루에도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규모이다..'한 칸'은 기둥 하나 사이를 말한다. '칸'이란 한자어 '간'에서 나온 말이다.
경포대는 원래 고려 충숙왕 13년(1326) 강원도의 한 관리였던 박숙정이 신라 4선(仙)이 놀던 인월사 옛터(현재의 방해정 뒷산)에 세웠는데, 조선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현급이 현 위치로 옮겨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중수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포대
언덕 위의 경포대..아름드리 소나무와 벚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5. 기타
택시를 타고 강릉시외버스 터미널 인근으로 이동하여, 이른 저녁을 먹고, 모텔에 무거운 배낭을 놓고, 산책을 나선다.
강릉시청이 보인다.
2018 빙상경기 개최 도시 강릉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2018년 2월달에 아내, 딸과 함께 체코 대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 아래 사진 몇 장은 가족과 함께 2018년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한 사진 및 후기
체코 대 캐나다 경기
아내 딸과 함께
기념사진
다음블로그에 올렸던 후기..2020.6월에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오고 나서..43년에 들린 오죽헌과 경포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미리 공부하고 오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혼자라 좀 쓸쓸하긴 했지만....
끝까지 읽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벌써 멀리 갔구먼
오늘의 화두는 "견득사의"
잘 보고 가네...
형님 좋은하루 되세요
오죽헌과 경포대
제 개인적으로 신혼여행을 동해안으로 갔었기에 다시금 잠시나마 그때를 회상케 합니다.
암튼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감사합니다..저도 10대 때 수학여행으로 갔는데 10대 때와 지금은 보는 시각이 달리 보이더군요..즐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