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디산에서 하룻밤 야영

[10000duki]

걸음아 나 살려라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기어이

나도 정상에

난 찍지 말라니까

눈이 오면 사고가 잘 나는 볼디볼

밤에 짖어주는 삽살개가 얼마나 반갑던지

백팩을 점검하는 모녀

산 아래 먼 발치의 도시의 야경

올라오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외로운 달

일출

정상을 찍고

집에서 출발

텅빈 정상의 야영장

텐트부터 쳐놓고

트레일 표시판

                                              볼디산에서 하룻밤 야영

     높은 산 정상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이라도 지샌다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혹시 곰이 아닐까 소름 끼칠 정도의 짜릿한 두려움이 온 몸을 덮쳐도 좋고, 깨알같이 별이 박힌 밤하늘에 여기저기서 미끄러져 내리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그 행복을 되씹어보는 순간도 한 없이 감미롭다.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신의 거룩함을 감탄해 보고 싶기도 하다. 원래가 산행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 동안 수도 없이 산에도 많히 다녔고 캠프장 야영도 많이 해봤지만 정작 산 정상에서 자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아서 마음만 먹고 있다가 아내와 함께 올해가 다 가기전에 볼디산 정상에서 한번 자고 내려오자고 약속을 했던 게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지금까지 늦추고 늦추고 했는데 더 이상 늦췄다간 그 높은 산에 눈이 곧 내리기 시작하면 낭패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결심을 하고 나선 것이 이글거리는 무더위가 끝자락에 와 있는 9월 초 5일이었다. 마침 딸아이가 시간이 된다고 엄마가 지는 짐을 자기가 덜어서 지어다 주고 자기는 먼저 내려오겠다고 어서 갔다오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선뜻 길을 나섰던 것인데 반길을 넘어서부터는 아빠 짐도 통째로 딸애가 지어다주는 수모(?)도 겪었다. 역시 세월엔 장사가 없다더니…    

     볼디산은 LA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10,064 피트(3,067 미터)로 올라가면 누구나 고소증이 올 만큼 높다. 정상은 마치 외계의 어디에나 온 것처럼 나무 하나 없이 형형색색의 잔 돌들이 사방에 깔려 있으며 360도 파노라믹 시야는 보는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겨울철이면 눈에 덮혀 꼭 한두 사람이 죽는 위험한 산행코스이기도 하다. 아내는 어디서 들었는지 그 산에 그래서 귀신이 많다고 들었다고 겁먹은 표정을 짖곤 한다. 올라가는 코스가 동서남북으로 몇 군데 되지만 좀 험하긴 해도 최단 거리인 스키헛을 통해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기분이라 속으로는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역시 오르는 길이 호락호락 하지가 않았다. 맨커플렛에 차를 세워두고 올라가는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랴 하는 생각도 들어 자책도 했다.  산에 올라갔더니 웬일인지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야영객은 고사하고 등산객도 없었다. 제일 좋은 가운데 자리에 텐트를 치고 들어누워 있는데 아무래도 너무 외롭고 적막하다.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텐트를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도 오금이 시린다. 거의 잠이 들려고 할 무렵 10시 반이나 됐을까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개도 짖고, 얼마나 반가운지 이럴 땐 동무할 사람이 없어도 개만 짖어줘도 반갑다. 그 사람들도 우리 옆에 텐트를 치는 모양이다. 내다보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인가 서로 주고 받으면서 우리를 동무해 준다. 밤새 광풍은 휘몰아치지 별빛은 아름답지만 나와서 감상할 기분이 안 난다. 멀리 내려다 본 도시의 풍경이 전깃불에 명멸한다. 달도 7할 정도만 구색을 갖춘 하현달이 제법 밝게 산속을 비춘다. 흔치 않은 기회라 생각하고 카메라 샤타만은 열심히 눌러댔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깨었다. 일부러 일출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어서였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방향을 잡는데 이웃집 남자도 일찍 깨었는지 다가 오더니 아침 인사를 한다. 오늘은 산타기 경주가 있는 날이라고 곧 120명 가량의 산꾼들이 몰려올 거라고 좀 불편하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기네는 선발대로 어제 밤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윽고 아침이 되니까 수도 없이 건각들이 몰려온다. 다 젊은이들인데 스스로 대견한지 소리도 지르고 사진도 돌아가면서 찍고는 도로 내려간다. 무슨 모임이냐고 했더니 ‘8000 미터 도전(8000 Meter Challenge)’이란다. 만 피트가 넘는 남가주의 3대 산, 볼디, 골고니오, 샌하신토를 모두 오르내리는 대회란다. 셋 중에 가장 낮은 이 산을 올라오는데도 나는 끙끙 대면서 올라 왔는데 그 산 셋을 연거퍼 다 오른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24 시간 이내에! 매해 이 맘 때면 이 행사를 한다는데 참 보기가 좋아 보였다. 이 사람들이 내려가는 것까지 모두 보고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천천히 우리도 하산했다. 재수가 좋은 날인지 내려오다가 흔치 않은 희귀동물인 산양을 또 목격했다. 처음 해본 볼디산 정상에서의 캠핑은 이렇게 희한한 추억들을 남기면서 막을 내렸다.   

[김시화]

아름답고 힘있는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

[10000duki]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박서영]

정말 좋은 취미를 가지셨지요. 등산 야영 다 즐기시고 정말 멋지십니다. ^^

[10000duki]

에구, 감사합니다. 한국 가면 산에나 한번 같이 갑시다. 답글 | 수정 | 삭제 | 신고

[발레리노]

실감나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언제나 산소같은....

[10000duki]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