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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억새길 간략안내]
밀양시와 울산시가 협의하여 영남알프스의 해발1000m대의
5개 산(재약산, 천황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연결하는 억새능선에
하늘억새길 이란 이름을 붙여 걷기 길을 조성하였습니다.
신불평원과 사자평원의 억새군락을 관통하는 이 길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을산행지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산행지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하늘억새길의 출발점인 간월재는 언제나 주말이면 사람으로 붐빈다. 짧게는 간월산장에서, 조금 멀게는 영축산이나 배내고개에서 오른 사람들이다.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의 고개이다. 원래의 간월재는 내리정에서 간월굿당으로 연결된 고개인 선짐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왕방재는 간월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잇는 하늘길의 열린 관문이다. 한 때 배내 사람들이 언양장으로 갔던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이제 그 길을 등산객들이 걷는다. 간월재 10만 여평에 억새꽃이 만발하는 가을이면 산상음악회, 패러글라이딩 및 산악자전거 대회 등이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제 간월재는 영남알프스의 길목이자 상징이다.
간월재에서 신불산 가는 길은 나무테크로 하늘을 오르는 계단길이다. 신불산(1,159m)은 신(神)과 불(佛)이 함께하는 산이다. 이 신불산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한다. 자연과 인간에게 과연 꼭 필요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불산 정상에서 언양방향으로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험하고 멋진 신불공룡능선, 칼바위 능선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에 속살인 바위를 드러낸 험한 지형이지만 봄이면 진달래 피는 길이다. 하지만 긴장하고 가끔 네 발로 걷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다. 정상에 서면 언양과 울산, 동해가 한눈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독수리가 마치 날개를 활짝 펴고 나르는 형상을 하고 그 머리가 영축산임을 알 수 있는 영남알프스의 망루이다. 그 날개 편 곳이 바로 신불산상벌 60만 평이다. 더는 눈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오로지 하늘만 있을 뿐인 하늘길이다. 그 길에 바람은 휘휘 불고, 억새는 하늘거린다. 하늘거리며 햇살 눈부신 산상벌을 걷는 것은 행운이다. 햇살에 따라 은빛, 황금빛, 갈색빛으로 바뀌는 억새밭에서 눈감고 있으면 마치 바람이 억새를 스치고 갈 때 바다인지 산인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신불재에도 역시 넓은 휴식공간이 있다. 신불재는 배내 백련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가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가천 사람들은 신불산에 나는 산나물을 뜯으며 생활했다. 산은 보물덩어리를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억새가 불타면 산이 마치 화산처럼 타올랐다. 그 불은 사람에게 푸짐한 밥상 가득한 산나물을 남겼고 가천사람들은 그것을 언양, 신평장에 팔아 생활을 했다. 신불재에서 가천으로 길게 난 능선은 열두쪽배기등이다. 그 아래 마을에 구한말 고종의 비서실장이자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관을 했던 송태관의 재실이 있다. 그는 엄청난 땅 부자였다. 그의 아들 송석하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속을 연구한 학자로, 1947년 조선산악회를 조직하여 독도 조사를 처음 했던 사람이다.
영남알프스의 지형은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완만하다. 그래서 동쪽을 바라보면 항상 위태하다. 이제 길은 단조봉을 지난다. 단조봉 아래는 금강골이다.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있어 금강산을 연상케 한다. 그 바위를 타고 오르는 위험천만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금강골은 가천에서 보면 마치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험준하다.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 골짜기에 폭포가 있다. 폭포는 겨울철 용이 승천하다 얼어있는 모습을 35번 국도를 가는 사람에게 가끔 보여준다. 멀리 삼성 SDI 공장이 보인다. 한때 사자벌이라 불리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하던 곳이고.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대포를 쏘던 곳이다. 그 대포 맞은 바위가 배내골에 남아있다. 지금도 사격장이 있고, 산에는 불발탄이 발견되기도 한다.
영축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단조성이 이어져 있다. 동쪽은 금강골로 암벽이고, 남은 높고, 북은 낮고, 서는 평탄한 지형이다. 폭이 동서로는 짧고 남북으로는 길어서 항아리(단지)같이 생긴 신불평원은 곧 단조(단지)성터이자, 고산습지인 단조늪이기도 하다. 그리고 억새밭인 백발등이기도 하다. 그곳에 1980년대에 개설된 방화선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이 일대는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다. 불은 그냥 타는 것이 아니다. 춤을 춘다. 자세를 낮추고 있다, 한번 바람이 불면 수십 미터 허공을 치솟아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생각이 짧은 행정가들 때문에 습지는 황폐해지고 있다. 애기황새풀, 꼬마잠자리, 개불알난 같은 멸종 위기 식물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 습지는 단조성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곳은 헬기장이었고, 소풍놀이터 있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단조성이야말로 만 명의 적을 당해 낼 수 있는 철옹성”이라 하였다. 단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지켰던 곳이다. 언양성과 시루성이 함락 당했을 때 신광윤 장군과 그 아들 신전과 뜻을 같이한 45명의 의병들이 단조성에 모였다. 1천 미터 산에 있는 단조성은 난공불락이었다. 의병들은 담을 쌓고 구덩이를 파며 복병을 매복하고, 또 수십 군데에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고 무더기마다 큰 깃발을 세우고 풀을 묶어서 적을 속이는 허수아비 병정을 만들어 세워 크게 세력을 떨치니 의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러한 작전으로 적을 맞아 싸우며 적의 목을 베고, 무기 등을 노획하였다. 금강골 아래 사자벌에서 왜군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진을 치고 있었지만, 이 성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축산 지형이 앞은 사자요, 뒤는 돌아누운 황소’라는 떡 파는 할매의 말을 들은 왜군은 원동으로 진입하여 배내골로 들어와서 기습하니 뒤쪽을 당한 의병은 함락 당한다. 퇴각한 의병들은 최후의 항전을 벌이면서 왜군을 향해 화살을 많이 쏘았던 곳을 지금은 시살등이라 부르고 있다. 늪지는 의병들의 피가 가득하여 피못이라 불리기도 한다. 백발등에 가을이면 지천으로 피는 하늘억새는 어쩌면 의병의 넋인지 모른다. 신광윤 장군과 그 아들은 언양 작청정 하천의 <선무원종공신마애석각>에 이름을 새겨 기리고 있다. 그런데 영축산과 단조성터는 행정은 경남 양산 땅이고, 역사는 울산이다. 그래서 이곳은 행정적, 역사적으로 모호한 지대이다. 그것은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조성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영축산(1,081m)이다. 바람은 모질다. 그 바람 속에 야생화는 꿋꿋하게 피어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처음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시살등이나 신불산에서 보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언양 고헌산 자락에서 바라보면 영축산은 사람의 발 모양을 하고 있고, 조금 가까운 곳에서 보면 마치 코끼리 머리 같기도 하다. 보는 각도와 지점에 따라 각기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산이다. 이 영축산 아래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가 있다.
산도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친근하다고 여기지만, 막상 그러하지 않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산보다 멀리 있는 산을 더 오르는 것과 같다. 영남알프스 역시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더 낯설게 있는 산이다. 이제 가까운 것부터 더 친해야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시대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의 역사가 우리 삶을 좌우할 정도로 밀접하다. 가까운 것을 멀리하면 안된다. 진정 가까운 곳, 사람,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겨울이다. 가까이 하기 어려운 시절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애정을 가져야 한다.
[하늘억새길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