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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님(이룻)의 자전 소설(自傳小說) '노을을 품고 흐르는 강'
제11편 1장 '나의 첫 아이 은학 '
봄눈이 많이 내리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해 3월 10일,
허성재와 이설아는 설아가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의 주례로 화촉을 밝혔다.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사랑하며,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도 사랑한다는 서약은 그만큼 엄숙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기꺼이 서약을 했다.
“하늘이 짝지은 것을 사람이 가르지 못할지니라.”
주례는 성경을 빌어 두 사람의 결혼을 승인하고, 마지막에 가서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도를 하는 것으로 예식은 끝났다.
설아가 스물여섯, 허성재는 서른 살이었다.
양가의 가족이
가득 모인 가운데 모두가 축복해 주었다.
신혼여행은 두 사람만의 특별한 시간을 위해서
서해바다가 있는 만리포로 택했다.
결혼이 그간의 각기 나누어져 있던 삶을 하나로 모아주는 것에
참 의미가 있다면,
신혼여행은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면에 싱그러운 공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각자의 머리에 소중히 간직할 낭만과
추억을 한 폭의 그림으로 간직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즐겁게 다녀왔다.
설아는 그런 축복 속에서도 삶의 방식이 다르고
유전인자가 다른 사람들과의 삶을 앞으로 어떻게 조화롭게
화합해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설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항시 잊지 않고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 다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다만 어디에서고 꼭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우선은 남편에게 꼭 필요한 아내가 되어야 했다.
그러자 그간 직장생활을 핑계로 신부수업은
별로 하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설아는 평소 자신이 허성재에게 지혜로운 반려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왔었다.
설아는 전문기관에서 결혼에 관한 젊은 어머니들의 의식세계를
조사한 리포트를 구하여 읽었다.
그 내용은 참으로 다양했고, 초보 신부에게는 매우 유익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은
첫 번째가 현실 도피의 한 방법으로 결혼한다고 했다.
그 다음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리고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뛰어든다고도 했다.
그 보고서에 응답한 내용은 모두가 여성 본위 일색이었다.
이 중에서도 두 번째 유형인 막연한 기대감으로
결혼에 뛰어드는 여성은 어떤 계기에 상황이 변하면
남편을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하다가
결국은 가정을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 여자들은 남편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라고 했다.
남자는 대개가 그런 여자를 경멸한다.
처음에는 애정이라는 신기루에 가려 여자의 단점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남자는 곧 그런 여성의 심리를 파악하게 된다.
결국은 남자는 여자를 무시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칫 폭군으로까지 변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려면
스스로 자아개발에 소홀히 하면 아니 된다고 했다.
그때 비로소 남편은 아내를 삶의 동반자로 인식하며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한다는 것이었다.
설아는 그 리포트 중에서 막연한 기대감으로 결혼한다는 항목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무책임을 절감했다.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었다.
그런 말은 탈속한 성자가 아니 면
천지분간 못하는 바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삶의 의욕이나 인생을 개척하려는 의지는 찾아볼 길 없고,
그저 남이 하니까 나도 해보는 것이 결혼이라는 식인데
그런 사람은 어떤 일에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도 안 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면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보면 까닭 없이 따라 죽을 것인가.
병들어 죽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몸에 병이 들게 할 것인가.
주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아내가 되어,
아니 어머니가 되어
앞날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11편 1장 '나의 첫 아이 은학 '끝
제11편 2장 '나의 첫 아이 은학 '
설아가 생각하기에 결혼은 분명
행복을 전제로 행해지는 엄숙한 사회제도이다.
그 제도는 사회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하며
철학적이며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적인 충족이 우선하는 단순한 행복만이
결혼생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을 얻어내기 위한 의무와 노력이 함께 요구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 의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아를 개발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여성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설아가 처음으로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
이필주는 딸이 잘 자라준 데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교사가 된 딸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설아를 불러 물은 적이 있다. 겸손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설아가 아버지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쉬우면서 어려운 문제다.
겸손이란 무작정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이유 없이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만은 아니다.
겸손이란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는 몸과 마음에 지혜를 담아서
그것을 익혀내는 수양이다.
대개들 남에게 덕을 베푼다고 하지.
덕이란 물론 남을 이롭게 하려는 의도로 행하는 것이지만
덕을 베푸는 데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인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자한 마음가짐이 없이 베풀어지는 덕은
자칫 위선이기 쉬우니까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겸손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를 익혀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든 후
알게 모르게 남에게 나눠주는 것이 겸손의 참뜻이니라.”
옳은 말이었다.
이필주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간 남에게 무엇을 베풀었음이 분명했다.
말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어 안타까웠지만
생각의 뼈대도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보다는
우월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설아는 새신부가 되어 넉넉하지 못한 시댁 형편일망정
내핍생활을 통해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책임을 다하리라고 자세를 새롭게 다졌다.
신혼살림은 친정집에 차렸다.
허성재는 대전에 있는 한일은행으로 출근을 했고,
설아는 대덕군으로 출근을 했다.
허성재는 조용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아내의 출근길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다.
밑으로 다섯 동생을 거느린 맏이로서 쌓아온 인생 경력이
결혼생활에까지 이어져 포용력 있게 아내를 감싸주었다.
그런 남편 곁에서 설아는 늘 포근하고 감미로운 분위기에 잠겨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부에게 이런 저런 도움
얘기를 해주기도 하면서 깨를 몇 말이나 털었느냐며 놀려댔다.
동료 교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중에 특히 배울 점이 많았다.
설아는 한동안 결혼한 선배 교사들의 경험담을
열심히 듣는 것으로 신부수업을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 설아는 첫아이를 임신하였다.
가족계획을 잠시 떠올려 보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을 인간이 임의로 변경시킨다는
불손한 행동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찌 감히 생명의 출생과 사망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설아는 아들을 염원하는 생각에 젖어
무리하게 입양까지 한 아버지를 떠올려보았다.
설아는 지레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수술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못을 박았다.
허성재는 아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이의를 달아서 괴롭게
만드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강요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아내의 뜻을 존중했다.
설아는 시간이 가면서 차츰 배가 불러왔다.
그럴수록 학교 일에도 최선을 다했고,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엄마의 또 다른 지극정성을 받으며
한편으론 그 방면의 책을 구해 읽으며 태교에도 신경을 썼다.
병원에서는 태아의 영양 상태는 물론 발육이 좋으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안심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산달이 가까워 마지막 체크를 할 단계에 이르러서야
의사는 태아가 거꾸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리면서도 의사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을 했다.
설아로서도 첫 임신이었으므로 태아가 거꾸로
들어서 있다는 데 대한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출산일이 되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남편과 엄마를 상대로
무슨 상의를 하는 것 같았지만 설아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설아는 남편과 엄마가 곁에 있고, 더구나 의사가 있는데
크게 신경 쓸 일이 무엇이냐 싶어 마음은 태평이었다.
출산은 참으로 난산이었다. 심한 산고 끝에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엉덩이를 때리고 한참 동안 애를 쓴 뒤에야
아이는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지 첫 울음을 가늘게 터뜨렸다.
설아는 출산하느라고 너무나 애를 쓴 나머지 기진하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를 낳고 나면 그 지독한 산통이 오간 데 없어지고
미역국 맛은 그렇게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설아는 몸을 쉽게 추스르지 못했다.
맘대로 앉을 수도 없어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밥을 먹고 대소변도 봐야 했다.
거꾸로 들어선 아이를 물리적인 힘을 가해
출산시킨 병원의 의료행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임신 초기부터 검진을 해온 의사가 태아가 거꾸로 앉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할 뿐이었다.
출산을 위한 휴가가 다하기 전에 몸을 추슬러야 했다.
이제는 아이를 길러야 하는 엄마가 되었으니 먹기 싫어도
국물을 입에 떠 넣어야 했다.
설아는 아들을 보았다는 기쁨보다는
초조와 긴장이 앞서고 있었다.
아이는 외관상으론 멀쩡했다.
그러나 젖을 잘 빨지도 않고
어디가 불편한지 잠을 자지도 않은 채 울고 보챘다.
신생아인데도 이목구비는 분명했다.
하지만 얼마나 울고 보채는지
얼마 후부터는 자식이 예쁘다는 생각이 사라질 정도였다.
퇴원 후 한 달쯤 지나 아이를 목욕시키는데
머리에 솟아 있는 물혹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시 병원에 달려가니 의사는 출산 때
머리를 다쳐 나쁜 피가 몰려서 그렇다고 했다.
주사기로 뽑아내면 되니
걱정 말라며 태연히 말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평온을 찾지 못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주야로 울고 보채니
아이는 물론 그 곁의 돌봐주는 어른들도 편할 리 없었다.
겨우 잠을 재워놓으면 쥐꼬리만큼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 다시 보채며 울었다.
저 조그만 것의 어디에 저만큼이나 울 기력이 남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설아는 지쳐갔다.
몸과 마음이 물 먹은 솜이었다. 출산 휴가는 끝나가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이필주는 아무래도
집과 아이가 맞지 않는 모양이라며 역학으로 짚어나갔다.
그 무렵 이필주의 역학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깊이에 도달해 있었다.
성경을 스무 번에 가깝게 읽었다는 아버지가
철저히 변한 모습이 놀랍지만 달리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다.
이필주는 새로 지은 집을 전세로 얻어주면서
외할아버지와 손주 사이에 살(煞)이 끼어서 그렇다고 했다.
아이가 성하면 아버지에게 화가 닥치고,
아이가 약하면 아버지가 편안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내 아이가 내 부모에게 불효를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친정집을 나와 새 거처로 이사했는데 아이는 거짓말처럼 잠을 잘 잤다.
신기한 일이었다.
역학이라는 것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닌 듯싶었다.
때론 설아의 형제들이 어려서 병이 났을 때나
특히 승우 오빠가 좋은 세상에서 살라며 해마다 진혼굿을 해줄 때
곧잘 푸닥거리를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아는 비로소 자식 키우기가 얼마나
어렵고 애간장 녹이는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잘 자라주어 설아 부부는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이필주는 외손자의 이름을 '은학'이라고 지어주었다.
그 무렵 설아는 마침 대전시내의 문창국민학교로 전근이 되었다.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워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달려와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다.
제 11편 2장 '나의 첫 아이 은학 '끝
제11편 3장 '나의 첫 아이 은학 '
정오가 되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신호탄으로
하여 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집으로 달려갔다.
젖을 물린 채 점심을 한 술 뚝딱 뜨고 학교로 되돌아왔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음이 행복했다.
설아의 삶은 촌각을 아끼며 쪼개어 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즈음 기봉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게 하려고 대전으로 이사를 나온 것인데
누군가가 기봉이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된 기봉이는 며칠 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가출을 한 것이다
이 일로 설아의 친정은 편안하지 못했다.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도 집을 나가면 찾는다는데
사랑을 주어 듬뿍 주면서 기른 자식임에야.
언제나 말이 없는 엄마를 향하여 이필주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아이를 찾아오라고 종주목을 대지만
엄마는 막상 아이를 찾을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기봉이는 제발로 들어왔다.
이필주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아이의 약속을 받고서야 용서해 주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데서 또 터졌다.
기봉이의 가출사건이 조용해질 무렵이었다.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어이없게도 기봉이는 순수한 업둥이가 아니라
이필주가 외도하여 낳은 아이를 들여온 것이라는 알림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터트렸는지 짐작이 어려웠다.
이필주는 아니라고 잡아떼었지만 누가 그 말을 믿으랴.
얼마든지 사실일 수 있었다.
이 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였다.
그리고 다음으론 설아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간의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지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설아는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내색할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서로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필주는 그 가족의 주변을 맴도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기봉이의 생모 아니면 생모의 일가붙이일 수도 있었다.
무엇을 바라고자 하는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아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라고 어머니를 위로할 뿐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언제는 뭐라고 하든?”
오죽하면 말을 할 수 없으랴.
억장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말을 내뱉지 않는 법이다.
그 깊은 침묵 앞에서 설아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 집을 마련하여 이사한 후부터
허성재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어느 날인가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설아가 물었다.
“아무래도 당신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요. 털어놓으세요.”
“이 집이 우리 살기엔 너무 크지 않은가?”
“어머나, 집이 크면 좋지 뭐가 어째서.
방 한 개는 세를 놓아서 방이 두개일 뿐인데.”
설아가 대꾸하자 허성재는 이내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창문 밖에 시선을 던지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편이 신경 쓸 만한 몇 가지를 순서대로 짚어갔다.
시골에 있는 그의 가족이 떠올랐다. 설아는 혀를 찼다.
내가 이렇게 우둔하다니……. 눈치 빠른 듯이 입을 열었다.
“여보, 집이 이렇게 널찍하니 시동생들을 데려옵시다.”
그제서야 허성재는 얼굴이 환하게 폈다.
시동생 둘을 데려와 대전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먼 친척뻘 되는 아이도 공부는 잘하는데
형편이 어려우니 데려오자고 하여 졸지에 식구가 세 명이나 불었다.
허성재 자신도 처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지만
설아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가 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대로 다 견딜 만하게 넘어가고 있는데
유독 은학이만은 아니었다. 돌이 지났는데도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에 싸인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위로하면서 말했다.
“어멈아, 걱정하지 마라.
아범도 돌이 훨씬 지나서야 걸음마를 시작 했단다.
안 걷는다고 빗자루로 때려주었더니 그때서야 걷더구나.”
제 11편 3장 '나의 첫 아이 은학 '끝
제 11편 4장 '나의 첫 아이 은학 '
그러면서 늦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안심을 시키자고 하는 말인지, 사실인지 의문인 채 난산으로 고생한 점과
아이의 머리에 나 있던 물혹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설아의 몸에 다시 태기가 있었다.
첫 아이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시동생들 뒷바라지도 하여야 하고 아픈 큰 아들 곁에서 보살펴야 하고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설아로써는 고민이 되었다.
시골에 계신 시모님이 오셔서 도와주시면 좋겠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시동생 셋에 내아이 둘을 내가 감당 할 것을 생각하니
설아는 앞일이 막막했다.
그러나 하느님 내게 주신 선물이니 내가 힘들다고 거절하는 것은
인륜을 거스리는 일이기에 낳기로 결심을 했다
두 번째는 딸이었다.
산달이 와 낳은 아이는 다행히 건강했다.
걸어야 할 첫 아이를 업고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허나 그것은 지엽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분신이 태어난다는 사실은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다만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한 일이 신통치가 않은 결과라
이번에는 산파에 의존하여 낳았다.
첫 아이 은학은 난산이어서 신생아를 못 보았는데
두 번째는 볼 수 있었다.
신생아를 처음 보는 순간 설아는 깜짝 놀랐다.
산파는 왜 또 불러서 이 모양인가.
혼자 낳아도 이보다 나을 것을.
아이의 머리통이 삐죽한 것이 꼭 조선무를 뽑아놓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하고 놀라고 있으려니
산파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살살 메주 다루듯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의 머리가 이내 동그래지면서 예쁜 모습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아이는 순했다.
제 오빠가 엄마를 고생시키고 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이
젖을 달라고 보채는 일도 없었다.
잠을 안 자고 칭얼대는 법도 없었다.
때가 되어 배고프겠다 싶어 젖을 물리면 순순히 젖을 빨고
혼자서 놀다가 잠이 들었다.
이필주는 외손녀 이름을 '아미'라고 지어주었다.
아미가 자라서 방안을 기어 다닐 즈음에도
승학은 걸음마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날짜를 일부러 내어서
설아는 아이를 업고 서울로 달려갔다.
큰 병원에 가서 알아볼 생각에서였다.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다.
대학 부속병원인 세브란스는 시설부터가 지방 병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면밀한 검사를 마친 의사는 아이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을 보였느냐고 물어왔다.
설아는 우선 그 ‘증상’이라는 말에 놀랐다.
증상이라면 병을 말하는 게 아닌가.
설아는 의사에 게 되물었다.
“증상이라니요? 아이는 단지 걷지만 않을 뿐인데요?”
의사의 표정이 잠시지만 심각하게 변했다.
“이 아이는 출산할 때나 아니면 그 후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발육이 지적인 면에서는 지장이 없겠지만
자라면서 수족이 뒤틀리게 될 겁니다. 직립 보행은 어려울 듯싶군요.
일종의 뇌성마비입니다.”
설아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맑은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단지 아이가 늦되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인데
뇌성마비라니…… 이럴 수가!
설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아니 내 아이가 뇌성마비라니……
그것도 배 속에서 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받은 충격으로 병이 되었다니…….”
설아는 너무 분했다. 억울했다.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의사를 붙들고 애원조로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선생님…….“
“글쎄요. 나중에 아이가 좀 자란 뒤
수족을 수술해주면 어떨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새하얀 가운만큼이나 차디찬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은 설아에게는 죄인에게 종신형을 내리는
법관의 추상 같은 선고와 같았다.
의사는 덧붙였다.
“수족이 뒤틀리지 않도록 수술을 할 때까지는
꾸준히 물리치료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설아는 넋을 놓고 한참을 의자에 앉았다가 아이를 들쳐 업었다.
어떡하든 일어서야 했다.
서울을 벗어나기만 하면 아이는 영 불구가 되고 말 듯싶어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11편 4장 '나의 첫 아이 은학 '끝
제 11편 5장 '나의 첫 아이 은학 '
일단 대전으로 내려가 생각을 정리하기로 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아이는 엄마 등에서 즐겁기만 하다.
무거운 아이를 등에 업고 서울역까지 오는길은 왜 그리도 멀던가?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아이가 거꾸로 선 것이 임산부의 신체적 결함이라면
둘째아이는 왜 바로 들어섰을까.
그렇다면 설아 자신에게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왜일까? 실력 없는 의사의 잘못인가? 그럴 확률은 많았다.
어떻게 아이가 거꾸로 들어선 것을 막 달에 이르도록 모를 수 있나.
어떻게 거의 폭력적으로 물리적 힘을 가해
아이를 낳게 하느라고 산모를 초죽음 시킬 수 있느냐 말이다.
제왕절개 수술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하느님의 뜻일까? 무슨 죄값일까.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처녀에게도 수태를 시키시고,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훈련 시키시고.
아브라함에게는 외아들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하기도 하셨지.
애굽 상인에게 요셉을 팔려가게도 한 분도 모두 하느님의 뜻임을 알기에.
지금의 설아로서는 은학의 일에 대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답답함과 암담함을 끌어안고 있어 보았자 시원한 구석이 없으니
알든 모르든 하느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대전 집으로 돌아온 설아는 물리치료 시설이 있는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웬만큼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곳을 이용하기로 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이미 시작된 시련이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고뇌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차마 그렇게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를 불구로 만든
어미로서 자식에게 죄를 지은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남들을 향해서는 너무 부끄러웠으며 같이 낳은 아이라고는 해도
남편에게조차 공연히 미안스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따랐다.
두 사람이 번다고는 하지만 남편의 수입은
시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로 거의 나갔다.
설아의 월급은 승학이의 물리치료비에 거의 다 들어갔다.
가정부의 손길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 부분도 부담이었다.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성재는 직장 일에만 열중하였다.
하기야 남편이 안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련만
아이의 아픈 것에는 거의 무신경 상태였다.
그 중에도 위안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
친정엄마가 자주 드나들며 딸을 위로해 주었다.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렸지만
머리카락도 세신다는 하느님은 응답이 없었다.
결국 모든 일 앞에서 혼자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인간은
그래서 외로운 존재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설아는 깊은 절망과
고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제 11편 끝---
곧 이어 제 12편 '영전과 한여름 설운 꽃은 지고'가
연재되오니 많은 구독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이정님(이룻)님 작가
2018년2월18일(월)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청송(靑松) 카페지기 베드로 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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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9월6일(월)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청송(靑松)카페지기
베드로 문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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