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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 雲 文 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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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스크랩 임보 시집 <운주천불>에서 1
최재경 추천 0 조회 48 15.11.04 08: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임보 시집    <운주천불>   

 

책 머리에 

 

산문과는 달리 시의 시다운 특징의 하나는 그 짧음이다.

가능한 한 줄여서 압축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한시漢詩의 절구絶句나 일본의 하이구俳句 그리고

우리의 평시조같은 것들은 간결을 지향하는 대표적

정형시들이다.

나는 우리의 현대시 가운데 10행 미만의 짧은 시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단시들 가운데는 4행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4행 이하의 시들도 그 의미 구조가 네 단계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의 이 네 마디 구조는 멀리는 황조가黃鳥歌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구지가龜旨歌 등 우리의 고대시가와 사구체

향가鄕歌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절구 역시 기승전결의 네 마디 구조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장르다. 시에서 네 마디가 이렇게 선호된 것은 수만 년

동안 사계四季배경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 네 마디는 우리의 성정에 잘 맞는 시형식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네 마디의 짧은 노래를 수년 전부터

시도해 오고 있다.

이상적인 짧은 길이는 한 마디가 2음보 내외 그러니까

작품 전체가 8음보 내외로 이루어진 간결한 형식이다.

나는 이 형식을 준정형시의 새로운 한 장르로 설정하고

사단시四短詩로 명명한 바 있다.

이 사단시는 시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큰 부담없이

함께 짓고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장차 국민문학의 한 장르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작품집은 전 6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사물시, 서정시, 관조시, 설화시,

기행시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시풍詩風들을 시험보고자

시도한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의 끝에

짧은 해설을 달았다. 이런 글이 불필요한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사족蛇足될지도 모르겠다.

굳이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2000년 2월 22일

운수재韻壽齋에서 林 步

 

 

 

 

 

청개구리 / 임보

 

 

잎 위에 떠 있는

초록의 고요 한 점

 

* 한여름의 신선한 아침나절 세상은 온통 초록이다.

   물가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면

   나도 한 마리의 청개구리가 된다.

 

 

 

 

나비 / 임보

 

 

우화등선羽化登仙,

천국에의

눈부신

예감

 

* 나비의 전신前身은 온 몸으로 지상을 기던 천박한 벌레였다.

  그것이 어떻게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나는 우화등선의 변신을 하는가?

  우리에게도 이 지상의 고달픈 삶을 넘어 어딘가

  평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아침 / 임보

 

 

이슬 속에 반짝이는

영롱한 산천

산천을 몰아 삼킨

풀무치 한 놈

 

* 한 마리의 곤충도 신비로운 육신을 다 갖추고 있고.

  하나의 원자도 태양계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 방울의 이슬 속에 어찌 천지가 담겨 있지 않으리.

  작은 것들의 오묘한 세계여!

 

 

 

 

불 / 임보

 

 

환원還元의 독재적 폭력

거신巨神의 뜨거운 혀

 

* 물은 생성生成의 모체母體라면 불은 소멸消滅의 매체媒體다.

  불은 일차적으로 사물의 형상을 무너뜨린다. 

  이는 그 사물을   이루었던 모든 요소들을 애초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생성만 있고 소멸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비좁고

  답답할 것인가. 물과 불은 세상을 조화롭게 움직이는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다.

 

 

 

 

사계四季임보

 

 

 

          

 

                     

 

           

 

 

* 백화난만百花爛漫의 봄은 붉은 빛

  녹음방초綠陰芳草의 여름은 초록 빛

  만산황엽滿山黃葉의 가을은 노란 빛

  설원만리雪原萬里의 겨울은 흰 빛

 

 

 

 

산 / 임보

 

 

대지大地의 등뼈

강들의 자궁子宮

 

* 산은 아직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대지의 단단한 뼈다.

   천만의 강물들은 다 그 산자락에서 비롯된다.

 

 

 

 

몸 / 임보

 

 

우주를 담은 그릇

세상의 한 중심

 

* 생명체의 생명작용 곧 ‘삶’을 나는 세계의 자아화 自我化

  혹은 객체의 주체화主體化라고 정의한다.

  즉 산다는 것은 생명체 밖에 존재하는 사물들(객체, 세계)

  을 생명체(주체, 자아) 속으로 끊임없이 끌어 들이는 행위다.

  말하자면 세계성의 축적을 의미한다.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이며 매 순간 쉬지 않고 계속하는

  호흡 등이 그 대표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얼 마나 많은 것들의

  집합에 의해서인가? 

  실로 전 우 주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몸’은 ‘모으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죽음은 무엇인가?

  그 ‘모으는’ 행위의 중단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형성했던 우주적 요소(세계성) 들이

  다시 그것이 왔었던 애초의 장소로 되 돌아가는 작용이다. 

  몸을 이루었던 물과 공기와 빛과 그 밖의 수많은 요소들이

  우주 공간 속으로 흩어져 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우주적 요소들이 잠시 모였다가 

  다시 떠나가는 하나의 교차점이다. 

  그래서 세계의 중심이 된다.

 

 

 

 

오랑캐꽃 / 임보

 

 

저 번득이는 울림

이른 봄 아침

바위틈에 꽂힌

한 떨기 푸른 나팔

 

아직도 쌀쌀한 이른 봄 양지쪽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난다.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외롭게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가는 은방울 소리를 뿜어내는 것도 같고, 

   또 어떤 것은 작은 나팔을 열심히 불어대고 있는 

   것도 같다.

 

 

 

 

동자승童子僧 / 임보

 

 

참, 환하기도 해라

연꽃보다 고운 웃음

평생의 염불로도 못 닿을

저 해맑은 천진天眞

 

* 이제 막 피어나는 어린 생명들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가운데서도 어린아이의 고움은 신묘하기 까지 하다.

  누가 저 해맑은 어린 몸에 벌써 가사袈 裟를 입혔단 말인가?

 

 

배꼽 / 임보

 

 

패쇄된 문

고향으로의 통로는 막혔다

탄생은 모체의 상실

그래서 삶은 외롭다

 

* 탯줄이 잘리면서 우리는 완전히 모체로부터 고립된다.

   배꼽은 폐쇄된 문, 어머니에로의 단절을 상징한다.

 

 

 

 

옹아리 임보

 

 

만유萬有 절대의

순수 언어

세상을 향해

처음 열리는

 

* 아가가 엄마의 얼굴을 보고 방긋거리며 하는 옹아리처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것은 사악한 욕망이 담기기 이전의 순수 언어다.

   그 속에는 우주가 실려 있다.

 

 

 

 

/ 임보

 

대감 집 뜰에도

하인 집 울에도

나란히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 

 

* 봄은 세상 가득 함께 밀려온다.

   기와집이라고 해서 일찍 찾아오고

  초가집이라고 해서 늦게 찾아오는 법이 없다.

  천지자연은 만물에 항상 공평무사하다

 

 

 

 

헌화가獻花歌 / 임보

 

저 초록의 가는 줄기가

저토록 붉고 맑은 꽃을

온 몸으로 밀어 등불로 켜듯

그대도 세상의 타는 꽃이로세.

 

* 신비롭게 피어난 한 송이 장미처럼 그대도

   이 풍진 세상에 피어나 이승을 태우는,

   아니 내 마음을 애타게 하는 한 송이 꽃이로구나!

 

 

 

 

궁합宮合 / 임보

 

차가운 내 이마

따스한 그대의 손

 

* 조화로움은 동류同類의 것들의 결합에서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 곧 상호 보완에서 성취된다.

   이지적인 남성에게는 감성적인 여성이 잘 어울린다.

 

 

 

 

이순耳順 / 임보

 

머나 먼 돌길에

발바닥 다 부르트고

쓸데없는 염불로

두 입술 다 헐었네.    

 

* 내 나이 벌써 이순耳順에 접어들었으니 꽤 걸어온 셈이다.

   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내 인생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게다가 시라는 것에 매달려 지내는 동안 어느덧

   내 육신은 소진消盡되어 제 몰골이 아니다

 

 

 

 

와 시인詩人 / 임보

 

 

시는 많아도

시인은 없고

시인은 많아도

시는 없네.

 

* 시인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을 모두 다 시인이라 이를 수는 없다. 

   나는 시인을 수도자修道者의 반열에 올려놓고자 한다. 

   세상에는 몇 편의 시만 가지고도 훌륭한 시인으로 떠받들리기도 하고, 

   수백 편의 시를 만들고도 아직 시인으로 불리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숫버마제비의 노래 / 임보

 

벼락에 무너질 때

아픔을 벗듯

그대의 이빨 속으로 스며드는

산화散華도 황홀할 뿐

 

* 버마제비는 교미가 끝난 다음 암놈에게 먹힌다고 한다.

  이 지상에서 이처럼 철저한 순애는 없다.

  그에게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황홀이리라.

 

 

 

 

염불念佛 / 임보

 

그대 치마폭에 스며들고 싶네

그대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들어앉은 뭇 사내놈들 다 몰아내고

그대 코도 한 입 베어 물고 싶네   

 

*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한편 사랑스런 것일수록 혼자만 독점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즐거움을 왜 여럿이 함께 누리지 못하는가.

  참 괴로운 일이다.

 

 

 

 

노방화路傍花 / 임보 

 

 

경허鏡虛는 문둥이년을

그의 팔뚝에 재웠거늘

만신창이滿身瘡痍 저년 아직

핥아 줌직도 하다.  

  

* 경허는 조선조말의 걸승傑僧이다. 그는 신화적인

   일화를 많이 남기도 있다. 

   떠돌던 문둥이년을 데려다 그의 팔뚝에 누여 며칠

   재웠다는 얘기도 있다. 

   실로 그의 도력道力에 기가 꺾인다. 

   나는 마음뿐이지 아직 아무런 보살행도 한 바 없다. 

   노방화는 길가에 피어 뭇 사람들의 발에 밟힌 꽃이다.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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