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세월을 겪은 앙코르의 후예, 캄보디아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3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원래 하나의 왕국이었으나 서구세력의 침범으로 식민지생활을 하다가 독립을 한 나라들이다. 독립과정에서 각각 분리되어 3개국으로 나누어 졌다.
캄보디아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두 나라와는 달리 일찌기 앙코르왕국때부터 인도의 문화를 많이 받아 인도문화의 색체가 짙은 나라이다.
캄보디아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는 앙코르(크메르)제국의 앙코르 왓트는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공산주의 세력의 퍙창으로 1970년대 중반에 캄보디아를 장악한 크메르군대의 잔혹한 횡포로 국가인구의 25%가 몰살을 당한 믿지 못할 비극을 경험한 나라이다.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국민들은 그것이 왜, 중요한지 모른다. 그저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사상이 뭐 그리 대단하기에 ...극민들은 사상보다는 안락한 삶을 원하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오손도손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괴물같은 정치인들의 생각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불행과 눈물을 만들고 있다.
캄보디아(Cambodia)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부에 있는 나라이다.
정식명칭은 캄보디아왕국(The Kingdom of Cambodia)으로 국명은 프랑스어인 'Cambodge'를 영어로 음역(音譯)한 것으로, 고대의 깜부자(Kambuja 앙코르) 왕국에서 유래했다. 입헌군주국가이다.
캄보디아에는 1세기부터 6세기경까지 메콩 델타유역을 중심으로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후난(Funan) 왕조와 첸라(Chenla) 왕조가 존재하였다. 802년 자야바르만(Jayavarman) 2세가 스스로를 신왕(神王)으로 칭하고 앙코르 왕조를 건설하였다. 앙코르 왕조는 크메르 민족의 전성기(고대 크메르왕국 시대)를 구가하다가, 1431년 샴(현재의 타이)의 침략을 받고 쇠퇴하였다. 1431년 샴의 침략 후, 샴과 베트남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왕국의 명맥만 유지하다가 19세기 중반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 1863년에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에 일본에 점령되었고 일본 패전 후 1947년 5월 프랑스연합 내의 한 왕국으로 독립을 획득하였으며, 1953년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1975년에 폴포트(Pol Pot)가 이끈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 시절에 잔인하고 무자비한 반대파 학살이 이루어져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사이에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대규모 학살은 이른바 ‘킬링필드(Killing Fields)’라는 말로 알려져 있다.
영화,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좌파 크메르루주정권이 통치기간 동안 벌인 만행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영상화한 작품이다.
1985년 제작된 영국영화로, 데이비드 퍼트넘(David Puttnam)이 제작하였으며, 롤랑 조페(Roland Joffe)가 감독하였다. 샘 워터스톤(Sam Waterston), 행 응고르(Haing Ngor),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줄리안 샌즈(Julian Sands) 등이 출연하였고, 브루스 로빈슨(Bruce Robinson)이 각본을 썼으며, 상영시간은 159분이다.
줄거리를 보면, 《뉴욕타임스》지 특파원인 시드니는 1972년 당시 정부군과 반군과의 전투 때 미국 공군이 잘못 행한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1973년 8월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지의 현지 통역관인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과 함께 어렵게 현지에 가서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두 사람은 캄보디아가 좌파무장단체인 크메르루주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에 위기를 느끼고 가족을 미국으로 탈출시키지만, 자신들은 남아서 계속 취재를 한다. 수도 프놈펜이 함락된 후 시드니와 프란은 프랑스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프랑스대사관은 프란이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다. 프란은 크메르루주군에게 붙잡히고 각고의 노력으로 탈출을 하여 킬링필드를 지나 타이의 난민촌으로 탈출한다.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 프란의 가족을 보살피면서 프란을 구해보려 노력하던 시드니와, 프란은 1979년 10월 9일 극적으로 재회한다.
198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드니 션버그(Sydney Schanberg) 기자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 사: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캄보디아내란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와 현지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론놀의 우익(右翼)정권이 군사쿠데타로 전복되고 1975년 정권장악에 성공한 크메르루주가 4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저지른 극도의 비인간적 야만과 살상을 다루고 있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쿠메르루주 정권 때 대학살로 인해 생긴 집단 무덤을 말한다.
1985년 아카데미상에서 편집, 촬영 부문 등 3개부문 후보로 올라 행 응고르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주연배우였음에도 조연상을 수상하여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을 일으킨 행 응고르는 1996년 2월 25일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크메르루주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영화에서 미국 영사역을 연기했던 조연배우 스팰딩 그레이(Spalding Gray)는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경험을 1인극 형식의 각본으로 썼고 1987년 조너선 드미(Janathan Demme)가 《킬링필드의 독백》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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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남동부 캄보디아평원을 차지하며 메콩강(江)이 중앙을 관류하는 평원국가이다.
남쪽을 제외한 3방향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의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전개되어 있어 마치 얕은 대접 모양의 지형을 이룬다. 주위의 산지는 가장 높은 남서부의 카르다몸(크라반)산맥도 해발고도 1,000∼1,500m에 불과하다. 이들 산지는 중앙부를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 서부에서 가장 움푹 팬 부분이 톤레사프(‘큰 호수’라는 뜻)이다. 중앙의 캄보디아평원은 해발고도 20m부터 수백m에 이르는 작은 구릉(프놈)이 산재하여 단조로운 평야의 경관을 깨뜨린다.
북부, 서부, 남서부의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은 모두 톤레사프호(湖)로 유입하며 호수의 동쪽 끝에서 톤레사프강이 되어 남동쪽으로 향한다. 동부 구릉의 가장자리로는 메콩강이 흐르며 북동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유입된다. 갈수기에는 톤레사프호의 물이 톤레사프강으로 흘러 프놈펜 부근에서 메콩강에 합류하고 여름의 용수기에는 프놈펜으로부터 물이 역류하여 호수로 들어가 유량 조절지의 역할을 한다.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진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 야생 물소, 호랑이, 퓨마, 표범, 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 왕코브라, 줄무늬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 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독립 직후부터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무상으로 거액의 경제 원조를 받았다. 국민들의 생산의욕이 저하되고, 관료들은 부패해지자 시아누크는 1963년부터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고 중국식 자력갱생의 경제발전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내전과 전후 복구 사업으로 경제 재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1년부터 정국이 안정되자 캄보디아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경제체제를 전환하고, 1995년까지 사회경제부흥계획(SERP)을 수립하였다. 1996년 2월 제1차 사회경제개발계획(SEDP)을 수립하여 빈곤 퇴치와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설정하였다. 1998년 훈 센이 단독으로 총리에 집권한 후 2001~2005년까지 평화 구축과 안정,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적 지위 복고, 행정 및 재정 개혁을 목표로 2차 사회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8년 경제 성장률이 3.7%로 둔화되었다가 1999년 11%에 육박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자 2000년 이후 연 5~6% 정도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의 75~80%가 농민으로 농업이 국가 산업의 근간이고, 경작 가능면적이 경지면작의 65%에 달한다고 한다.
취약한 인프라와 원조의존형의 경제 구조로 인해 캄보디아의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관광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물소가 농가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가난한 농가
식수를 나르는 아이들. 수도시설이 없는 농촌에서 식수공급이 중요한 문제이다.
캄보디아의 철도는 전체길이가 약 603km로 프놈펜에서 바탐방을 지나 국경을 넘어 타이에 이르는 노선과 프놈펜∼캄퐁참 노선이 있으나 모두 단선(單線)이다. 도로는 1997년 현재 전체길이 3만 5769km로 이 가운데 4,165km만이 포장되어 있으며, 베트남 호찌민(사이공)∼프놈펜∼바탐방 간, 프놈펜∼씨엠립 간 등의 국도가 있다. 수로(水路)는 모두 3,700km로 90%가 메콩, 톤레사프수로이며 중요 무역항으로는 하항인 프놈펜과 유일한 해항인 캄퐁참 외에 캄포트, 크롱카오콩이 있다. 1982년 9월부터 프놈펜∼호찌민의 항공로를 개설, 운항하고 있다.
국도. 도로포장율이 아주 낮다.
시내도로. 횡단로 표시가 거의 되어 있지 않고,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한다.
차도를 거니는 사람들. 자동차도 사람도 무법천지이다.
트럭이 중요한 이동수단 중의 하나이다
택시, 톡톡이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내전으로 인한 대량학살 등으로 인해 캄보디아에는 장년층을 찾아 보기 힘들다.
캄보디아는 다종족 사회이기는 하나 인구의 90%이상이 크메르인(캄보디아인)이고 그밖에 중국인, 베트남인(人), 참족(族), 고산족 등이 있다.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중국계는 5.1%를 차지하는데, 출신지는 차오저우(潮州), 광둥(廣東), 푸젠(福建), 하이난(海南) 등이다. 베트남인은 1977년까지 4.5%를 차지하여 어업 외에 목수, 미장이, 이발, 기계수리 등의 기술적 직업에 종사하였으나, 1977년부터 베트남-캄보디아 분쟁으로 대부분 베트남으로 도피하였다.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을 멸시하여 '노예'라는 의미로 유온(Yuon)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무슬림인 소수의 참(Cham)족이 있고, 크메르루(상부크메르)로 총칭되는 쿠이족, 스첸족, 프놈족, 자라이족 등 소수민족이 화전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언어는 크메르족의 공용어인 크메르어(語)가 국어이며 중국계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나 중국인들간의 공통어로는 광둥어가 우세하다.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장년층은 프랑스어가 통용 가능하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영어 교육이 시작된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종교는 예로부터 불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크메르 루즈에 의하여 철회되었다가 1993년 현재의 입헌군주제가 부활되면서 다시 국교로 채택되었다. 현재 전 국민의 90%가 소승불교를 신봉하고 그외에 이슬람교(참인), 그리스도교(베트남인), 힌두교 등을 신봉한다. 네악타(精靈)의 신앙, 인도에서 전래된 바라문교가 남긴 주술에 관한 민간신앙도 많이 남아 있으며, 안전을 목적으로 한 부적, 문신(文身)도 행해지고 있다.
불교는 캄보디아의 국교이고, 국민 대다수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삶을 영위한다. 불교사원은 예배, 교육 및 사회활동의 장소이고, 승려는 사회에서 존경 받는 계층이다. 특히 캄보디아인들은 13세기에 건축된 앙코르 유적지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크메르족의 영화가 재건될 것이라고 믿는다. 캄보디아의 국기에 앙코르 와트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승려들
불교 사원
http://blog.naver.com/aeraik/110145009688
캄보디아에서는 10~3월에 활동하기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여행하기 좋은 시기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여행하기에 안전한 편이나 절도 행위는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일몰 후에 절도 빈도수가 높다. 밤에 인적이 드문 거리를 다니는 것은 삼가해야한다. 시내에는 과속 차량이 많으니 길을 건널 때 주의한다. 시내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이용해야 할 경우 큰 건물 앞 등 일정한 장소에서 대기 중인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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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Phnom Penh)은 메콩강(江)과 톤레사프강(江)의 합류점에 있는 캄보디아의 수도이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캄보디아 최대의 도시이다. '프놈 펜'이라는 명칭은 이 거리의 언덕에 세워져 있는 사원인 왓프놈(Wat Phnom)에서 유래한다. 프놈 펜은 '펜의 언덕'이라는 의미로, 펜 부인은 믿음이 깊은 여성으로, 강을 따라 흘러 온 불상을 극진하게 모셔서, 그 사원을 왓 프놈이라고 불렀고 그 언덕을 프 놈펜이라 불렀다.
앙코르와트의 유적이 있는 크메르 민족의 왕조는 현재의 씨엠립 지역에 있었는데 15세기에 서쪽 이웃인 타이의 공격을 피하여 처음으로 프놈펜에 왕도를 정했다. 프놈펜은 동쪽의 베트남에게도 시달렸으므로 역대의 왕은 우동을 왕도로 삼고 있었다. 프랑스와의 보호조약으로 타이·베트남으로부터의 위협이 해소되었으며, 1867년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로부터 캄보디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크메르인, 프랑스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 많이 살며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외항선이 메콩강을 소항(遡航)하며, 1959년 콤퐁솜(시아누크빌)에 항구가 개발되기까지 캄보디아 유일의 외국무역항이었다.
시내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아름다운 거리풍경이 남아 있다. 시 중심부에 프놈펜이라는 명칭이 유래한 펜의 언덕이 있고 그 남쪽의 독립기념관까지 노로돔 거리가 뻗어 있다. 남동부에는 톤레사프강에 면하여 아름다운 왕궁과 박물관·사원 등이 있어 크메르 문화의 유품들을 보존한다. 왕궁에는 캄보디아 국왕이 살고 있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루즈에 의해 함락당하면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시 외곽에는 폴 포트 정권 시대에, 대량 학살의 장소, 킬링필드가 있다.
주요 명소로 프놈펜 왕궁, 뚜얼슬랭 박물관, 캄보디아 국립박물관, 실버 파고다, 왓프놈, 킬링필드, 프놈펜 독립 기념탑 등이 있다.
상설시장.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백화점
술집의 야경. 분위기가 있다.
https://brunch.co.kr/@chuch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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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왕궁(Royal Palace, Phnom Penh)
메르 전통 양식으로 건축된 궁전으로 금빛으로 빛나는 삼각 지붕이 특징이다. 프놈펜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로, 우동(Udon)에서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긴 후 노로돔 왕의 명으로 1866년에 시축하였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도 국왕이 머무르는 궁전이다. 크메르 루주 집권 당시에도 캄보디아 문화의 우수성을 자랑하기 위해 파괴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시한 문화유산이다.
동쪽 출입문은 왕과 왕비만 출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국빈 방문 시에만 개방한다. 관람객은 별도의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부터 돌면 효율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왕궁의 중앙 건물은 국왕의 즉위식이 열리던 곳으로 삼각 지붕 중앙에 앙코르 유적의 바이욘 사원을 본뜬 탑이 솟아 있다. 본전 건물 앞에는 천도 후 왕궁을 건립한 노로돔 왕의 기마상이 서 있다.
왕궁의 하이라이트는 실버 파고다(Silver Pagoda)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프랑스식 건물도 볼만하다. 이 건물은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왕실에 기증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만든 후 배로 운반해 이곳에서 조립했다. 시아누크 왕이 지은 영화관도 있다. 시아누크 왕은 직접 영화배우와 감독을 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왕궁을 관람하려면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한다.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은 환영받지 못하므로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매표소 앞에서 대여료를 내고 옷을 빌려야 한다.
http://cafe.daum.net/vvietnam/Gbfe/7?q=%C7%C1%B3%F0%C6%E6%20%BF%D5%B1%C3&re=1
실버 파고다(Silver Pagoda)
왕궁 내 전용 사원이다. 은으로 만든 타일을 바닥에 깔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왕궁과 실버 파고다 중간에 위치한 입구로 들어가 왕궁을 거쳐 실버 파고다로 나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계단은 이탈리아 대리석이며 안에는 황금 불상과 스리랑카에서 들여온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다. 사원 안쪽 벽에 그려진 600m의 벽화에는 '라마야나'의 전설이 묘사되어 있다. 중앙 사원의 바닥은 은으로 된 타일 5,000여 개로 덮여 있다. 9,584개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황금 불상이 있는데,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25캐럿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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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얼슬랭 박물관(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 Tuol Sleng Genocide Museum)
캄보디아의 잔혹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본래 고등학교(Tuol Svay Prey High School)였으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집권하면서 수장인 폴 포트(Pol Pot)의 지시로 제21 보안대 본부인 S-21(Security Prison 21)로 사용되었다. 크메르 루주의 통치 기간은 4년이 채 안 되었으나 보기 드문 잔악한 정치는 어떤 정권보다 많은 희생자의 피를 요구했다. 이 시기 캄보디아 전역에서 약 17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적게 잡아도 전 인구의 25%에 달하는 엄청난 대학살이었다.
제21 보안대 본부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고등학교를 전 정권의 관리나 지식인들을 심문하고 고문하는 끔찍한 감옥으로 철저히 탈바꿈시켰는데, 이곳에서만 2,00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와 고통을 받았다. 고문 끝에 자백한 사람들은 근처의 쯔응아익 킬링필드에서 처형당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몰락했을 때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쯔응아익 킬링필드(Cheung Ek Killing Field)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유리로 된 위령탑이 세워졌는데 그 안에는 희생자들의 유골이 쌓여 있다.
수감되어 고문당했던 사람들의 사진과 자백서 등 제21 보안대 본부가 남긴 기록의 상당수가 남아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건물은 모두 4개 동이다. 내부에는 이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에 사용했던 각종 고문 기구를 그대로 전시해 인간의 잔악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경계석으로 삼고 있다. 건물 앞뜰에는 마지막 희생자 14명을 기리는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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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립박물관
크메르 전통 양식의 붉은색 외관이 무척 아름다운 건물이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앙코르 유적을 비롯해 푸난과 첸라 왕조의 유적 등 5,000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 앙코르 시대의 조각품은 물론 앙코르톰과 바이욘에서 가져온 조각상이 보관되어 있다.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영어 또는 프랑스어 가이드를 고용할 수 있다.
왓프놈(Wat Phnom)
프놈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언덕 위에 자리한다. 사원 내부에는 작은 불상이 곳곳에 있으며, 현지인이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본전 뒤에는 거대한 불탑이 솟아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7개 작은 탑이 둘러싸고 있다. 본전 앞마당에는 커다란 꽃시계가 조성되어 있다. 사원 주변은 공원처럼 잘 꾸며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 좋다. 외국인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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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필드(Killing Fields) 위령탑
프놈펜 부근에 있으며 크메르 루주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고 아무렇게나 매장된 이들에게 바쳐진 추모비이다.
예전에는 과수원이었던 청 아익에, 매년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찾는 킬링 필드 위령탑이 있다.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 하나를 보고, 크메르 루주의 잔혹한 정권 아래에서 죽어간 이들에게 추모의 뜻을 표하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찾아온다.
캄보디아의 미래에 대해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새로운 비전을 지녔던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인 크메르 루주는 1975년 정권을 잡았다. 이때부터 베트남에 패하게 되는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는 약 1백 7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폴 포트라는 이름을 몰랐다. 그들의 박해자는 '앙카', 즉 '조직'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었다.
킬링 필드는 크메르 루주 정권이 희생자들을 죽이고 묻었던 장소였다. 청 아익에서는 약 1만 7천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프놈펜을 벗어나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길을 가다 보면 3층 높이의 위령탑과 마주하게 된다. 내부에는 8천 개 이상의 두개골이 연령과 성별로 나뉘어 쌓여 있다. 희생자들은 '투올 슬렝'이라 알려진 '재교육 캠프'에서 심문을 당한 후 청 아익으로 끌려와 살해당했다.
위령탑 뒤에는 집단 무덤(?)위에 쌓인 흙과 풀로 뒤범벅이 된 뼈 구덩이들이 있다. 주변은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화롭고 조용하지만, 나치 강제수용소처럼 한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였다.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시된 두개골들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육신이 소각되지 않으면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는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에 박물관은 계속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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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독립 기념탑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앙코르와트의 중앙 탑을 본떠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저녁에는 조명을 밝혀 더욱 운치 있는 모습을 뽐낸다. 해마다 독립 기념일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주변에는 잔디밭이 깔린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현지인의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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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SiemReap)은 프놈펜 북서쪽 약 300km 떨어진 씨엠립강의 우안에 위치하는 씨엠립 주의 주도이다. 씨엠립은 17세기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관련이 있다. 캄보디아어로 ‘패배한 타이’를 뜻한다.
9∼15세기에는 크메르 왕국의 중심지로 번영을 이루었다. 앙코르 시대에 축조된 제방 도로상에 도시가 있으며, 크메르 왕국 멸망 후에는 타이령(領)이 되었으나, 프랑스령시대에 타이로부터 할양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앙코르 와트, 바이욘 등이 있는 앙코르 유적군 관광의 거점이 되는 도시이다. 앙코르와트에서 4km쯤 떨어져 있어 앙코르와트의 현관구실을 하므로 인기있는 관광 도시이며 수많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현지 거주민들은 옛 시장 지역에 있고, 값비싼 호텔은 주로 씨엠립 국제공항과 6번 국도를 따라서 있다.
주요 명소로 지뢰 박물관, 반띠아이쓰레이, 쁘레룹, 프놈바켕, 따프롬, 바이욘, 앙코르와트, 앙코르톰, 코끼리 테라스, 톤레사프 호와 수상 마을, 캄보디아 민속촌 등이 있다.
아담한 시엠립공항. 세계적인 앙코르 왓트롤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곳이다.
한글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북한의 달러벌이를 하는 평양냉면집. 캄보디아는 북한과 수교가 되어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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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박물관
캄보디아 내전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까지 곳곳에 깔려 있는 지뢰 때문에 캄보디아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지뢰 박물관은 지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립된 사설 박물관이다. 여러 종류의 지뢰와 불발탄이 전시되어 있으며, 지뢰에 대한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입장료는 $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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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쓰레이(Banteay Srei)
10세기 후반 앙코르 왕조 시기 브라만 고승 야즈나바라하에 의해 건립된 힌두 사원이다. 캄보디아는 중국보다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앙코르 왕조로 인해 인도의 힌두문화 흔적을 지닌 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반띠아이쓰레이는 ‘여인의 성채’라는 뜻이며 앙코르톰에서 북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앙코르의 성지인 프놈쿨렌의 산기슭을 지나는 씨엡립 강이 주변으로 흐른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인 반띠아이쓰레이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많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창건 당시의 본모습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부조 장식의 훌륭함은 손에 꼽을 정도이므로 방문할 가치가 높다.
‘앙코르의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힌두 신화를 표현한 부조 장식은 크메르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중앙 사당의 데바타 여신상이 특히 아름다운데 반띠아이쓰레이라는 사원의 이름도 여신상의 아름다움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사원을 발견한 서양인들도 일찍이 ‘동양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붙이며 여신상의 예술성을 칭송했다. 여신상은 프랑스의 대문호인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가 발표한 소설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 1930)>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 졌다. 말로는 이 소설에서 자신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1923년, 앙코르 유적을 방문했을 당시 데바타 여신상에 매료되어 프랑스로 가지고 가려했던 일화를 밝히고 있다.
건축에 붉은색 사암이 많이 사용되어 세밀하고 정교한 부조 기법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석양이 질 때면 사원 전체가 장밋빛으로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장관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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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레룹(Pre Rup)
붉은색 벽돌과 라테라이트로 되어 있어 일몰이나 일출쯤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사원이다. 사원 이름은 '육신의 그림자'라는 의미다. 죽은 자를 화장하던 석관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과거 장례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원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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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바켕(Phnom Bakeng)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사이에 있는 바켕산에 위치한 힌두사원이다.
프놈바켕은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 야소바르만 1세 때 세웠다. 앙코르 유적 중에 최초로 층으로 쌓은 사원인데, 마지막 층에는 5개 신전이 있다. 산이라고 하지만 67m 높이로,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이곳에 오르면 앙코르 유적지 주변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일몰 때는 저녁노을과 앙코르와트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프놈바켕으로 오를 때나 일몰 감상 후 내려올 때 코끼리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프놈바켕에서 바라다 본 앙코르 왓트
일몰을 보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과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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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프롬(Ta Prohm)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만들기 전에 모친을 위해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따프롬은 ‘브라마의 조상’이라는 의미다. 영화 <툼레이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따프롬은 동서 1km, 남북 600m의 주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감싸고 있는데, 이는 폐허가 된 사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풍경이다. 사원 내부로 들어갈수록 나무로 인해 붕괴된 곳이 많아 통행이 불가능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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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Bayon)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의 중심에 세운 거대한 바위산 모양의 불교사원으로 앙코르와트와 함께 가장 많이 찾는 사원으로 꼽힌다.
동서 160m, 남북 140m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자애로운 미소와 신비로운 형태로 유명한 54체 관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제1회랑과 제2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에는 높이 42m의 본전이 솟아 있으며, 앙코르 유적 중 유일하게 우물을 갖추고 있다. 외부 회랑에는 당시 생활을 기록한 벽화가 새겨 있다.
http://simjuliana.tistory.com/985
앙코르와트(Angkor Wat)
앙코르 유적지는 9~15세기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3만여 명의 장인들이 30년에 걸쳐 완성시켰다는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의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된 걸작으로 꼽힌다. 이 건축물은 12세기에 앙코르 왕조의 수리야바르만 2세 때 조성된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주위를 넓은 해자가 감싸고 있다. 이것은 신들의 세계를 나타내는 앙코르 유적의 특징으로, 외곽을 둘러싼 해자는 바다를, 성벽은 히말라야 산맥을, 그리고 높이 솟은 사원은 수미산을 상징한다.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신의 조각상이 맞이하는 입구를 통과해 540m의 참배 도로를 지나면 제1회랑의 입구인 서탑문에 다다른다. 회랑에 묘사된 부조는 앙코르 예술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서면에는 인도 힌두교의 서사시가 조각되어 있는데 북쪽에는 캄보디아 인들이 사랑하는 <라마야나>의 내용이, 남쪽에는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남면의 서쪽에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군대가 행군하는 모습과 시종들에 둘러싸여 있는 수리야바르만 2세, 승려와 악사, 곡예사 등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역사 회랑'이라고도 불린다.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남면의 동쪽에는 힌두 신화의 천국과 지옥이 묘사되어 있다. 동면의 남쪽에는 비슈누 신이 등장하는 천지창조 신화인 <유해교반>의 최종장이 묘사되어 있다.
제2회랑은 16세기 이후에 들여온 불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으며 회랑 안쪽에는 다양한 표정과 장신구를 한 테바다 여신의 모습들이 묘사되어 있다. 사원 안에는 1,500개가 넘는 여신상이 있는데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제3회랑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신들이 산다고 하는 중앙 사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수리야바르만 2세의 유골이 안치되었다고 한다. 지상에서 65m 높이의 중앙 사당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특히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맞춰 앙코르와트를 찾는다면 더욱 신비롭고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일출시의 앙코르 왓트
http://mee0102.blog.me/6020859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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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톰(Angkor Thom)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앙코르와트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운 것으로 앙코르 유적 중 유일한 불교 건축물이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km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높이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톰을 둘러싼 4면의 성곽은 히말라야 산맥(우주를 둘러싼 벽)을 의미하며, 해자는 대해(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건립 당시에는 목조 건물도 있었으나 지금은 석조 건물만 남아 있다.
다른 유적과 달리 성곽 안에 여러 유적이 모여 있는 단지를 형성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동서남북 4개 대문과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승리의 문' 등 모두 5개 성문이 있는데, 현재 여행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성문은 남대문뿐이다. 남대문을 따라 숲이 무성한 길을 들어서면 바이욘 사원과 바푸온 사원, 왕궁 터, 피미야나까스, 코끼리 테라스, 라이 왕의 테라스 등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바이욘 사원은 중앙에 자리한 42m의 본전을 두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고 동쪽에는 참배 도로가 있다. 사원 안 곳곳에는 49체의 사면체 관음보살상이 미소를 짓고 있다.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온화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제1회랑의 벽화에는 일부지만 밥을 짓는 여인이나 투견과 투계에 빠진 남자 등 서민의 모습도 묘사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2회랑의 벽화는 <라이 왕의 전설> 등 신화와 전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회랑을 지나 나오는 중앙 본전은 16개의 예배당으로 나뉘어 있으며 16체의 사면체 보살상이 있다.
앙코르톰이 들어서기 전에 지어진 바푸온 사원의 참배 도로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방식은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의 참배 도로와 해자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바푸온의 북쪽에는 왕궁 터가 있는데, 목조 건축물은 소실되고 밀림 사이로 왕궁의 중심 사원이었던 피미야나까스와 라이 왕의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등의 석조 건축물만 남아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 부조들에서 장인의 솜씨를 느낄 수 있다.
http://simjuliana.tistory.com/983
http://boskim.tistory.com/1411
코끼리 테라스(Terrace of the Elephants)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를 위해 만든 대규모 테라스이다.
길이가 약 300m에 달한다. 맞은편에 광장이 있다. 왕의 대규모 행사나 군인 열병식을 치르던 장소다. 중앙 부분은 국왕 전용 테라스며, 이곳에서 동쪽 '승리의 문'을 향해 군대 행군용 도로가 뻗어 있다. 코끼리 테라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벽면에는 코끼리 부조가 빼곡히 새겨 있고, 곳곳에 3개 머리를 가진 코끼리 신 ‘에라완’이 조각되어 있다.
http://simjuliana.tistory.com/994
톤레사프 호(Tonle Sap Lake)와 수상마을
캄보디아 중앙에 위치한 톤레사프 호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젖줄과 같은 호수다.
길이 160km, 너비 36km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우기에는 메콩강에서 역류한 물이 흘러들어 호수의 수량이 건기에 비해 3배 정도 늘어나 풍부한 어업 자원을 제공한다. 메콩강의 황토가 같이 실려와 물색이 탁한 황토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해질 무렵 호수가 황금색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보트를 빌려 호수를 둘러볼 수 있다.
톤레사프 호수 근처 야트막한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수상 마을이 있다. 평지가 대부분인 캄보디아에서는 꽤 높은 산으로 꼽힌다. 우기가 되면 톤레사프의 물이 늘어나 산 중턱까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이곳에 수상가옥을 지었다. 건기 때는 농사를 짓고 우기 때에는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한다. 이 때문에 수상가옥은 상황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형태로 지었다.
수상 음식 및 찻집
장마당
학교와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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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민속촌
캄보디아 건축물의 미니어처와 다양한 민족의 풍습과 관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넓은 부지에 수상부락 등 11개 문화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각 마을에서는 소수민족의 춤이나 전통혼례, 놀이문화 등 다채로운 전통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그 밖에 앙코르와트 전시관을 비롯해 유물과 주요 인물의 밀랍인형을 갖추어 놓은 박물관이 있다. 영어표지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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