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서 누린 불교의 향취
무척이나 변덕스러웠던 어느 여름날 제천에 있는 불교문화재를 돌아봤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곳도 있고, 이번에 처음 만난 곳도 있다. 그 시작은 덕산면에 있는 제천신륵사(堤川神勒寺)였다. 신륵사라면 대부분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변에 있는 그 신륵사를 떠올리겠지만 제천신륵사에도 보물로 지정된 석탑과 아름다운 벽화를 품고 있는 법당이 있다.
신륵사는 10여 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당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없었고, 여기에서 비롯되어 차분히 배관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에 갔더니 외부촬영에는 문제가 없어 다행스러웠다.
보물 제1296호인 제천신륵사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총 높이 5m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단정한 탑이다. 상하층 모두 하나의 탱주를 갖춘 석탑인데, 하층기단은 중석과 갑석 모두 새로 대체하거나 보수한 부재가 많다. 상층기단 중석은 감입식으로 짰다. 갑석은 매우 얇은데 부연조차 표현하지 않았다.
탑신부는 각 층의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했다. 옥개석은 비교적 얇은 것으로 느껴지고, 층급받침의 각이 그리 날카롭지 못해 시원스러운 맛은 덜하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노반-복발-앙화-3개의 보륜- 보개가 정연하게 쌓여있다. 물론 이 부재들이 모두 첫 건립 당시의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탑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고 모래 성분이 많이 포함된 재질의 돌을 사용한 것 같다.
신륵사의 중심법당인 극락전은 충북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내·외부 천장과 벽에 빼곡하게 그려 넣은 많은 그림들이 유명한 법당이다. 이번에 외부의 벽화들은 담을 수 있었으며, 내부는 촬영하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의 글을 읽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불단에는 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2구의 불·보살상을 포함한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외벽의 벽화 중에서 좌우 벽면에 있는 2점을 보인다. 먼저 향 좌측 벽면에 있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외벽에 그린 반야용선도로는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 유명하다. 신륵사 외벽에도 반야용선도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그림과 반대쪽 같은 자리에 그려진 그림은 사명대사행일본지도(四溟大師行日本之圖)라는 이름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박락이 심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그림들은 전각과는 별도의 유형문화재(제301호 제천 신륵사 극락전 벽화 및 단청)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 앞에는 1조(組)의 괘불지주(괘불대)가 남아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162.7cm라고 한다. 1주(柱)는 간공이 관통되어 있고, 다른 1주는 안쪽만 파두었다. 다른 한 조는 없어졌다. 신륵사에는 부도도 한 기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신륵사에서 2km 쯤 떨어진 곳이라니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제천 고산사(堤川 高山寺)는 이번에 처음 가보았다. 급경사와 급커브가 반복되는 시멘트 포장 외길을 따라 1km 정도 올라가야 한다. 다녀온 뒤 확인해 보니 해발고도 400m에도 채 이르지 못한 곳인데도 꽤 높이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보살상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 응진전 앞에서 본 경관은 시원스러웠다.
절집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곳은 스님들의 생활공간 등이고, 여기서 우측으로 올라가야 불전이 나온다. 불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네 조각으로 깨진 제법 큰 규모의 석등 하대석이 놓여 있다.
각각 충북 유형문화재 제194호와 195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산사석조관음보살좌상과 석조나한상 6구는 모두 응전전 불단에 모셔져 있다. 이 보살좌상과 나한상들은 모두 호분을 칠하고 채색한 모습이다. 모두 조선 중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는 50cm 안팎이다.
나한상들은 관음보살좌상 좌우에 각각 3구씩 모셨다.
응진전에서 열린 문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마침 그 자리에 서있는 구부러진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여유 없어 돌아다니는 답사일정에 약간의 휴식을 던져준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 한수면 송계리로 향한다. 마을 표지석을 보니 송계리는 양파를 특산물로 밀고 있나 보다. 덕주사로 가는 지방도는 동달천을 따라가는데 매우 많은 피서객들이 북적거렸다. 덕주사도 역시 10여 년 전에 한 번 가본 것이 전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마애여래입상을 향해 출발한다. 예전 기록에 20분 정도 소요되었다고 적어두었지만 실제로는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대략 25~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절에서부터 1.6km 거리다. 가는 길은 나무 계단을 곳곳에 설치하는 등 많이 정비되었다.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성벽과 문터가 나온다. 제천 덕주산성(堤川 德周山城)은 둘레가 32670척(9800m)에 이르렀으나 성벽은 거의 무너졌고,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동문·북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덕주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이 있는데 이 성벽은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보물 제406호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堤川 德周寺 磨崖如來立像)은 높이가 13m에 이르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절벽에 조각된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이뤄진 아름다운 마애불이다.
머리 부분은 약간 돋을새김으로 조성하였지만 불신은 대체로 선각으로 새겼다.
연화대좌는 워낙 낮게 조성한 데다 풀이 자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두 발은 양쪽으로 벌려 발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이 있는 작은 절집은 상덕주사라고 부르는데 중심법당인 극락전 앞과 마애불상 위에 각각 한 기의 승탑(부도)이 있다. 두 부도는 거의 비슷한 모습이며, 특히 옥개석의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이 부도들의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보는 이들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편이다.
마애불 위 부도는 기단의 하대석과 중대석은 부도를 복원하면서 새로 다듬었다. 극락전 앞의 부도와 양식적으로 동일한 형태이나 크기가 더 크고 치석 기법도 정교한 편이다. 이 부도까지 올라간 분도 계시나 본데 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개 올라갈 때보다 내려오는 시간이 덜 걸리는 편인데 덕주사 마애불 가는 길은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운 여름날 올라가는데 힘을 너무 많이 뺐기 때문인지 내려오는 데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하)덕주사로 돌아온 뒤 먼저 부도전으로 향했다.
덕주사는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길게 이뤄진 평탄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웅전을 지나면 승방과 약사전이 있는데, 부도전은 약사전과 이어 나오는 관음전 등을 지나면 왼쪽 약간 높은 곳에 보인다. 사역(寺域)이 끝나는 부분이다. 이곳에는 4기의 조선시대 부도와 4기의 현대부도 등 8기의 부도가 있다. 4기의 조선시대 부도는 옥개석 등의 모습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모두 석종형이다. 네 부도에는 모두 당호가 새겨져 있어 주인공을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보이는 부도의 주인공은 환적당(幻寂堂)이다. 조선후기에 활동한 스님으로 모두 8곳에 분사리하여 부도를 모셨다고 한다. 이 부도들은 조사하여 올린 일이 있는데 그 이후에 해인사 홍제암을 다시 다녀왔고, 의성 대곡사도 다녀왔다. 부도는 연화문을 새긴 넓고 낮은 지대석 위에 8각의 높은 대석, 위아래를 자른 석종형의 탑신, 박공과 내림마루 등을 표현하는 등 비교적 정성이 담긴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호는 대석의 한 면에 세로로 새겼다.
그 옆에 있는 부유당(浮游堂) 부도는 4단으로 조성한 넓은 지대석 위에 석종형의 탑신, 별석의 옥개석(보주 포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상하의 너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원통형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위와 아래 마무리 부분은 안쪽으로 둥글게 깎았다. 탑신 중 약간 아래쪽에 당호를 새겼다. 옥개석은 환적당 부도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조각수법은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용곡당(龍谷堂) 부도는 4기의 부도 중 유일하게 옥개석이 없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 넓고 낮은 지대석(자연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에 보주를 일석으로 새긴 석종형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 전면 전체에 걸쳐 당호를 새겼다. 용곡당 아래 법명(?)이 더 있고, 왼쪽에는 조성시기도 새겼다.
마지막으로 제일 왼쪽에 서있는 홍파당(洪波堂) 부도는 가장 투박하고 솜씨가 떨어져 보인다. 6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석종형 탑신을 놓고 옥개석과 보주를 각각 별석으로 조성하여 얹었다. 상덕주사에 있는 부도들만큼은 아니지만 옥개석 밑면의 외반(外反)이 상당히 심하다.
현대부도는 팔각원당형의 창해당월남지탑(滄海堂月南之塔), 별석의 옥개석을 갖춘 석종형의 지암당 정철지탑(智庵堂 正澈之塔), 약식의 팔각원당형인 부도(당호가 흐릿해져 잘 읽을 수 없었다.), 다시 팔각원당형을 모본으로 한 성천화상지탑(性泉和尙之塔) 등이다.
부도전에서 조금 내려오니 유형문화재 제196호인 제천 덕주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모시고 있는 약사전이 보인다. 약사전은 전각이 아니고 전면을 틔워놓고 나머지 삼면은 벽으로 막은 보호각이다. 이 불상은 한수면 정금사 절터로 알려진 곳에 오랫동안 묻혀 있다 발견된 것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은 매우 투박한 것으로 느껴진다. 손에 올린 지물을 약그릇으로 보고 약사여래로 이름을 붙였지만 워낙 투박하여 약그릇이 맞을지 잘 모르겠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불상의 뒤쪽을 보니 사각형의 석재가 하나 보인다. 얼핏 보면 석탑의 탑신석 부재처럼 보이지만 우주가 새겨져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대웅보전 앞마당 끝부분에는 입석처럼 세워둔 큰 돌, 새로 조성한 아기불상(?) 등과 함께 맷돌, 주초, 석탑 옥개석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석탑 옥개석은 파손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상당히 규모가 큰 부재이다. 밑면에는 5단의 층급받침이 있으며, 낙수면 경사는 급한 편이고, 윗면 중앙에는 2단의 받침이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며, 규모는 높이 74.5, 너비 204.2*206.5cm 정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범자비(梵字碑)를 향해 내려간다. 비각 옆에는 남근석이 있다. 그런데 3기의 남근석 중 앞에 있는 작은 것의 받침돌은 분명 부도나 석등의 하대석으로 보이고, 그 위에 올려놓은 부재도 어쩌면 부도의 탑신석일지도 모르겠다.
유형문화재 제231호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大佛頂呪梵字碑)는 1988년 송계계곡 하천 정비 중에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덕주사의 지정문화재들은 마애불을 제외하곤 모두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들인 셈이다. 비석의 이름은 첫줄에 있는 한자로 쓴 ‘대불정주(大佛頂呪)’에서 따온 것이며, 나머지 105자는 능엄경에 있는 능엄주를 인도의 옛 문자인 범자로 새겼다. 육안으로도 大佛頂呪 정도는 식별할 수 있다.
네 마리의 사자로 상층기단을 대신한 석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곳 덕주사 인근에 있다. 보물 제94호인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堤川 獅子頻迅寺址 四獅子 九層石塔)이 그것이다. 이 탑은 상층기단을 사자로 대체한 것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에 인물상이 좌정하고 있다는 점, 하층기단 중석에 조성문을 새겼다는 점 등 독특한 점이 많다.
탑신부는 현재 4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조성문에 구층석탑이라고 밝혀져 있어 공식 명칭도 이에 따랐다.
이렇게 특이하긴 하지만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탑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것 같다. 하층기단 중석이나 탑신부 옥신석의 우주 표현이 매우 흐릿하고, 층급받침은 3단에 그치고 있으며, 비례에서도 시원한 맛이 보이지 않아 나로서는 조형미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상당한 부재가 남아있다는 월광사지(한수면 송계리 산 9-3)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고 보덕암과 교리방단형석조물을 본 뒤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보덕암은 고산사에서 덕주사로 가는 중간에 있으므로 앞서 들렀어야 했지만 사정도 있었고, 청풍면 교리에 가려면 다시 이 길로 가야 하므로 순서를 바꿨었다. 결국 보덕암은 이날 마지막 답사지가 되었으며, 어쩌면 이곳에 가지 말고 사자빈신사지에서 귀가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보덕암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지방도 같은 36번 국도에서 빠져나가 다리 건너 진입한 수산1리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꽤 가파른 길이 나오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비낄 공간이 없다. 결국 올라갈 때도 한 번, 내려올 때도 한 번씩 차를 만나 후진하여 겨우 비끼는 고생을 했다. 게다가 보덕암으로 가는 중 흐리고 맑기를 반복하던 하늘이 갑자기 소나기를 쏟아낸다.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는 곳에 화장실을 갖춘 주차공간이 보여 차를 세운다. 차는 무척 많았는데 알고 보니 월악산 등산객들이 세워둔 것이다. 돌아온 뒤 지도로 확인해 보니 오늘 첫 목적지인 신륵사, 세 번째 목적지인 덕주사, 그리고 이곳이 월악산 주 등산로의 출발점 들이다. 결국 월악산을 가운데 두고 그 주변을 빙빙 돈 것이다. 지도로 보니 계곡 사이로 가는 다른 등산로와 달리 보덕암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상당 구간이 능선을 따라 진행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더 힘이 들더라도 조망이 좋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을 만하겠다. 그 때문에 우리야 상당히 고생했지만.
주차장 위쪽으로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있었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우산을 받고 걸어서 올라갔다. 오르다 보니 주차장들은 더 있지만 길은 상당히 가팔라 차로 더 오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 같다. 주차장에서 조금 오르니 왼쪽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보덕암까지는 100m 남짓이었지만 경사는 꽤 심하니 조금 힘들었다.
보덕암에는 전탑이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갈무리해둔 자료에는 ‘제천 보덕암 육층전탑(普德庵 六層塼塔)’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는 삼층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애초에는 절 뒤쪽 바위 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며, 2011년 답사기(우리 카페, 선과님)를 보면 대웅전 축대 바로 앞으로 옮겨 세워놓았는데, 지금은 다시 중정으로 옮겨 세웠다. 이러저러한 석재들을 모아 기단부도 만들어 놓았다. 선과님 답사기를 보면 대좌 및 광배가 있지만 보덕암에 도착한 뒤에도 비가 쏟아지고 있어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탑은 원형을 잃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원형 자체도 알 수 없을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라도 원형대로 복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저 옛 전탑의 부재들이 남아있고, 그 부재를 쌓아 탑의 형태를 갖췄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보덕사에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해 귀가하는데 충주휴게소를 지나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진다. 여러 해 전 대구답사를 마치고 고속도로에 접어들자마자 맞았던 폭우가 떠올랐다. 워낙 많은 비가 내려 중간에 다시 휴게소에 들어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출발할 정도였다. 내려올 때 차가 적어 귀갓길을 걱정하지 않았는데, 올라갈 때는 만만치 않다. 3시간 반 이상 걸려 귀가했다.
[2020년 8월]
첫댓글 보덕암 전탑
2.011년 스님 말씀에 의하면 안동에서 옮겨왔다고 하셨습니다.
안동에서 옮겨온 것이라고요?
선과님 답사기에 그런 말은 쓰시지 않으셨는데요...
그리고 부재를 안동에서 제천으로 옮겨왔다는 것은 쉬 믿긴 어렵네요.
뭐 물론 저야 알 수 없지만.
@시니브로 그 내용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선과 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참 뭐라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나마 보존하는 것이 잘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자리에 두었어야 하는지...
저도 제천여행을 해야 하는데 너무 게으름을 피우네요
푸른바다님이 보실 제천의 속살이 궁금합니다~~
신륵사 스님 까칠하셨던 기억이 ㅎㅎ
음...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듯합니다 ㅎ
덕주사 마애불 사진이 아주 선명합니다.
멀리 나들이 하셨네요.
장마로 차길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월악산 오르면서 제천 신륵사를 들렀는데 몰라서 벽화를 놓친 게 아쉽 ...
사처포님이 칭찬해 주시니 땀 흘린 보람이 있네요^^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는데 사자빈신사지에서부터 빗방울이 보이더니 나중에 폭우로 변하는 바람에 조금 놀랐습니다 ㅎㅎ
지난 겨울 보덕사에 승용차로 올라갔다가 오도가도 못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타이어 타는 냄새가 아직도 나는 듯 하네요..
역시 노마드님답게 마지막 시멘트포장 구간까지 차로 오르셨군요.
지난번 파주답사 때 뒷자리여서 그런지 범륜사 올라가는 길도 좀 무섭더군요~~
신륵사는 보살님과 멍멍이가 세트로 무서웠어요ㅋ
사실 그래서 이번에도 큰 기대하지 않고, 안 되면 눈으로만 보고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첫 답사 때 두 멍멍이 중 작은 녀석이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정신이 없었고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었거든요.
이번에는 다행히 멍멍이도 없고, 스님이나 절집 사람이 전혀 나와보지 않아 넉넉한 시간을 들여 배관할 수 있었답니다.
고생하신 덕분에 편안히 답사기 감상합니다.
격려의 말씀 건네주시니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일 같으면 함께할수도 있는데요.
그 마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애불은 종종 뵈었지만
신륵사는 한 번 가보고 절 옆으로 등산 시작했지요.....
능선에서 조금 더 오른 뒤 후퇴 ㅋㅋ
님과의 통화가 압권 ㅋㅋㅋ
무심천님 고향에서 머지 않으니 이런저런 추억들이 깃들어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사진과 설명으로 다시 보니 좋습니다.
고산사는 아직 가보지 못했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