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모든 얼굴들의 뒤편에서 고요를 만나는 순간을 담다
서안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가 출간되었다.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부터 세 번째 시집 『립스틱 발달사』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는 ‘의미의 난개발’을 막고 거기에 ‘사랑’이라는 천막을 지은 채 유목하는 아토포스적 미학을 보여주었다. 문명의 잔혹함 앞에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떨림의 시를 보여준 그녀에 대해 이재복 평론가는 “세계 내에 자리한 문장을 발견해 내는 고도의 시적 성찰로서의 사랑”을 시인이 보여주었다고 평했으며, 임지연 평론가는 “당신이라는 영원한 타인에게 보내는 비범한 사랑을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단독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문명이라는 허구의 풍경 너머에 있는 ‘당신’을 끊임없이 호명해온 시인은 이번에 펴낸 네 번째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를 통해 그동안 마주쳐온 비문명의 이미지들을 ‘고요’라는 그릇에 담는 과정을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내가 만난 수많은 사물들의 얼굴과 그 얼굴 뒤편에 있는 고요를 만나기도 한다. 그 고요의 내부에 불타는 눈동자를 만나기도 한다”고 시인은 시집 출간에 앞서 한 매체에서 밝힌 적 있다. 그녀가 사랑해온 타자는 문명과 자연을 화해시키는 게 아니라 서로 대립시킨다. 하지만 반문명의 에너지를 지닌 듯한 그 ‘불타는 눈동자’는 궁극적으로는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는 세계의 숨겨진 얼굴을 들추어 내는’ 힘을 담고 있다. 즉 문명이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거짓 풍경을 지워내고 그 위에 진실한 생명의 씨앗을 뿌리려는 내적 열망으로서의 ‘결기’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소멸’이 아니라 ‘창조’를 꿈꾸는 그러한 열정을 시인은 타자에 대한 새로운 사랑의 질감으로서 이번 시집에서 표현해낸다. 『새를 심었습니다』에서 시인이 보여준 결기를 통해 독자들은 시인이 발견한 또다른 사랑 안에 머물며 우리 모두가 그리워해왔던 근원적인 ‘당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영혼이 태어나고, 버려지고, 돌아오는 장소로서의 시를 복원하다
손톱은 내가 처음 버린 영혼
손톱은 영혼이
타원형이다
손톱은
죽어서 산다
끊임없이 나를 밀어낸다
손톱을 오래 들여다보면
나무뿌리가 뻗어 나오고
진흙으로 두 눈을 바른 아이가
더러운 귀를 씻고 있다
손톱을 깎으면
죽은 기차들이 나를 통과해 가고
늙은 쥐가 손톱을 먹고 있다
늘 바깥인
손톱의 밤은
얼마나 캄캄한가
사랑은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다
멀리 날아간 손톱은
가끔 얼굴이 되기도 한다
- 「손톱의 서정」 전문(본문 15~16쪽)
‘손톱’은 나로부터 자라나는 육체이다. 손톱은 이미 죽은 세포이지만, 식물과 같이 끊임없이 자라나 나의 말단이 되고, 결국엔 잘려 나의 바깥이 된다. 끊임없이 자라나고, 끊임없이 버려진다. 손톱을 들여다보며, 손톱을 깎으며 내게 찾아오는 몇 이미지들을 지나, 시인은 이 손톱의 영혼을, 나의 바깥의 영혼에 찾아오는 밤을 떠올리게 된다. 죽은 채로 자라나고, 결국 버려짐으로 나의 바깥이 되는 ‘영혼의 세계’와 육체적인 고통 없이 영혼이 잘려 나가는 ‘비실감의 세계’는 분리된다. ‘손톱의 서정’이라는 시의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서정’은 세계의 자아화라는 오랜 명제에 기인했기보다는, 오히려 이 서정을 다시 명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멀리 날아간 손톱”이 얼굴이 되는 이 비현실적 상황에 빠져 있는(없는) “개연성”을 이어주는 “사랑”이 곧 서정이 되는 것이다. 어째서 “멀리 날아간 손톱”은 “가끔 얼굴이 되”어 시에 현현하는가? 단지 손톱의 영혼이 타원형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손톱이라는 기표가 얼굴이라는 기표로 대체되는 과정일까? 시라는 공간에서 기표(손톱)가 됨으로 영혼을 획득한 육체가 다른 기표(얼굴)로 자리바꿈함으로 화자에게 의미화되는 과정인가? 이런 손톱이 만들어내는 시적 장소 앞에서 독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출 수도 있겠다. 해석이 잠시 멈추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흐릿한 공간에 몸을 밀어 넣고 어둠을 체험하는 일이 한 권의 시집을 읽어가는 일이고 한 명의 시인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개연성이 필요 없는 이 필연의 세계에 서안나의 서정이 있다. 나로부터 “끊임없이 나를 밀어”내는 척력과 “멀리 날아”가 얼굴이라는 이미지로 내게 돌아오는 인력. 그곳에 서안나의 ‘서정적 필연’이 있다. 이 필연이 “죽어서 산다는” 역설, 육체의 비실감과 영혼의 실감이라는 역설을 가능하게 한다. 밀물과 썰물의 세계가 있고, 애월 바다가 있다. 끊임없이 몸을 바꾸며 “생각하는 사물들”(「생각하는 사물들」)과, 세계와 자아의 경계면에서 “채집되지 않”(「방 탈출」)는 미성년 화자들이 있다.
개의 목줄을 놓아버리면 개는 새가 될까
여름에는 멍청한 벌레를 그릴 거야
- 「명랑 용어 사전」 부분(본문 20~21쪽)
취한 손으로 천 마리 새를 쓰다듬었다
새를 만지면 온몸이 가려웠다
- 「소년들의 세계사 2」 부분(본문 40~41쪽)
갓 배달된 1년생 새를 심었어요. 무채색의 새는 눈이 어둡습니다. 검은 것들은 어둠을 치는 기분입니다. 새는 나쁜 계절 쪽으로 한 뼘씩 자라고. 종이 인형처럼 잘 찢어집니다.
- 「새를 심었습니다」 부분(본문 22~23쪽)
젖은 침대 속으로 뱀들이 지나간다
생레미 정원의 해바라기가
개처럼 짖는다, 새가 외국어로
울고 간다
- 「반 고흐」 부분(본문 44~45쪽)
새는 내 눈에만 보이는 통증
누가 죽은 새를 내 머리 속에 넣었나
나는 늘 길을 잃었다
- 「새라는 통증」 부분(본문 102~103쪽)
이 새들은 무엇인가? 각각의 시에서 등장하는 새들은 같은 새인가? 날개가 있을까? 각각의 울음소리는 어떨까? 이 새를 ‘이미지’라고, 시의 ‘질료’라고, ‘시어’, ‘대상’, ‘주체’라고 말해보아도 충분치 않다. ‘감각’, ‘관념’, 혹은 ‘실체’, ‘실체화된 관념’, ‘관념화된 감각’이라고 말해보아도 역시 충분치 않다. ‘보조 관념’이나 ‘상징’이라고 말한다면 오답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 같다. 이것이 ‘새’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새는 때론 쓰다듬을 수 있는 대상(「소년들의 세계사 2」)이기도 하고, 뿌리와 씨앗을 가진 식물(「새를 심었습니다」)이 되어 자라나기도 한다. “내게만 보이는 통증”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착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새는 시적 화자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새라는 통증」) 죽은 채로 내 머릿속에 있기도 하고(「새라는 통증」), 기침을 하면 내게서 튀어나오기도 한다.(「새를 깨닫다 2」) 각각의 시편에서조차, 행간에서조차 직전의 새가 지닌 속성과 의미를 벗어난다. 앞서 멀리 날아간 손톱이 얼굴이 되었듯 그 형태와 존재 방식을 바꾼다. 그러나 “새가 아니라고 말해도 새”가 되고 마는 이 새는 모양과 속성을 떠나 결국 새이다. 이 새는 어떤 시에서는 “비정규직” “감정노동자”의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새를 심었습니다」) 읽을 수도, 미성년 화자들의 혼돈이나 쓰는 존재로서의 시인의 혼란의 표상이라고도 읽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이 새는 벗어남 그 자체, 날아가고 미끄러짐 자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존재로부터 낯설게 되기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는, 그럼으로 새가 되는 존재이다. 이 새를 자아가 외부를 낯설게 포착하여 얻어낸 것이라거나, 낯설지 않은 것을 낯설게 한 것이라는 기성의 시론을 대입해서는 충분치 않다. 스스로 스스로에게서부터 낯설어지는 어떤 동력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새로부터 벗어날 때 새는 새로 회귀한다는 역설이 여러 시편을 통해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리하여 “새의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부서진 새”는 세상의 모서리를 흩어지게 하는 동력이 된다. 분류와 배제의 논리를 통해 무언가를 규정함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모서리, 즉 경계는 세상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주체와 대상 (때론 시인과 언어… 언어와 시인인가?) 사이에는 위계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계에 포착되지 않는 새는 이 모서리를 교란하는 존재이다. “구겨져도 펼쳐지는 새는” 세계의 모서리를 교란하며 깨어지고, 화살에 맞기도 한다. 구겨지고 깨어짐으로 언어를 회복한다. 이 새를 시인이라고 말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도착하지 못하는 여행인” “앨리스의 사물”이나, ‘쓰기’ 혹은 ‘기도’라고 말해보아도 될 것이다. 때론 거짓말 같은 세계의 미달태인 “종이 인형”, “종이 꽃”, “종이 코끼리”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새가 마침내 이 종이마저 벗어나 이 시집을 읽은 당신에게 도달할지도. 도달하기를. 미달태로 도달하기를.
이처럼 언어의 제약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는 위에서와 같이 바깥으로 벗어남의 방향(척력)으로 뿐만 아니라, 동일성 속으로 재귀하는 방향(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과에서 사과를 빼앗고
빨강에서 빨강을 빼앗고
사과는 쉽게 죽지 않으며
흙과 물의 계절로 돌아간다
- 「사과」 부분(본문 70~71쪽)
분홍 속엔 분홍이 없다
- 「분홍의 서사」 부분(본문 17쪽)
고통이 고통을 구원할 것이다
- 「아를에서의 일기」 부분(본문 96~97쪽)
나는
나에게 운반되는 중이다
- 「먼지 인간」 부분(본문 56~57쪽)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사라지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 「백 톤의 질문」 부분(본문 50~51쪽)
당신이 가장 아름다울 때
달이 뜬다, 애월에선
물이 깊어 떠난 마음을 잡아당길 수도 있겠다
- 「애월 24」 부분(본문 66~67쪽)
물양귀비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새 피가 돈다
한밤에 천리를 가는 등대 불빛은 고요에 가깝다
검은 먹으로 둥글게 휘어지는
애월이라는 필체
저 파도 속을 달려가는
만 마리의 말들은 언제 다 썩을 것인가
무량한 달빛은 언제 사람으로 우뚝 일어서는가
절벽에서 창백한 손과 발바닥으로
일어서는 진흙 사람들
터진 눈으로 고요에서 얼마나 달아났느냐
- 「애월 29」 부분(본문 68~69쪽)
흙에 물을 개면 불타는 진흙 얼굴이 떠올랐다 얼굴은 여러 번 읽어도 낡지 않는다 황금빛 밤의 끝에서 멈춘다 뒤돌아보면 나를 따라온 병든 사내가 이끼처럼 물가에 앉아 있다
- 「애월 34」 부분(본문 76쪽)
죽간을 쓰고 진흙으로 봉하는 밤이면
애월로 애월로 돌아오는 파도들
- 「애월 29」 부분(본문 68~69쪽)
“새 피가” 도는 애월의 세계에선 등대 불빛의 고요와, “파도 속을 달려가는 만 마리의 말”의 혼돈이 공존하는 세계. 이곳에서 “진흙 사람들”이 태어난다. 이 진흙의 인형들은 어떠한가? 이 진흙은 사물과 새의 중간 물성을 가진 존재로 보인다. 물과 돌의 중간인 이 진흙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비를 맞으면/내 몸에서/무너진 풍경이 다시 무너지지 않”(「진흙 연습」)는 물성을 지녔다. 이 진흙은 “나를 따라온 병든 사내”이거나, 나의 아픔이 호출해낸 타인의 모습으로 시에 등장하기도 한다.(「진흙 연습」) 그리하여 이 진흙이 무엇인지, (시집의) 첫 시였던 「손톱의 서정」의 “진흙으로 두 눈을 바른 아이가” 무엇이고, 시인의 어떤 무의식이 발현한 것인지에 대해 섣부른 의미화나 해설은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손을 대면 지문이 묻어나고, 눈을 감아도 한 사람의 영혼과도 마주치지 않는, “진흙 피가 쏟 아지지 않고”, “진흙 심장이 금이 가지 않 ”(「진흙 연습」)는 이 진흙 인간을 시 안에서 만져보고 말 걸어보고, 껴안아 본다면 어떨까? 육체의 실감과 비실감이, 영혼의 실감과 비실감이 바라보는 자의 마음에 따라 순간순간 교차하는 이 진흙 인형의 얼굴을 거울 속 시인의 얼굴로 생각해본다. 언젠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서 서안나의 「애월
혹은」을 통해 처음 그의 시를 만났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애월 혹은’. 이 ‘혹은’ 뒤의 공백에 여러 말을 넣어보며 열차를 기다리곤 했다. 스크린 도어의 시를 읽으며 재미있는 것은 시를 읽는 나의 표정이 스크린 도어에 실시간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그 공백에 공백을 넣어보는 얼굴의 시간에서부터 이 글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월 혹은. 나는 이제 이 ‘혹은’ 뒤에 잠겨 있는 침묵의 공간에 진흙 얼굴을 한 당신을 넣어본다.
목차
시인의 말·5
1부
손톱의 서정·15
분홍의 서사·17
진폐(塵肺)·18
명랑 용어 사전·20
새를 심었습니다·22
모래의 시간·24
보라에 대하여·26
저녁의 양치식물·28
오늘의 사과·30
소년들의 세계사·32
나비의 밀도·34
첫사랑 1·35
동백 전언·36
소년들·38
소년들의 세계사 2·40
소년들의 세계사 3·42
반 고흐·44
2부
첫사랑 2·49
백 톤의 질문·50
파(波)·52
앨리스의 사물들·54
먼지 인간·56
피아노·58
도서관 활용법·60
애월 1·62
애월 2·64
애월 24·66
애월 29·68
사과·70
애월 30·72
애월 32·73
깊어지는 사과·74
애월 34·76
3부
슬픔의 좌표·79
웃는 돼지·80
침대 시위 - Bed-in For Peace·82
오후의 사물 연습·84
통조림·88
새벽 4시까지 나는·90
궁민교육헌장·92
생각하는 사물들·94
아를에서의 일기·96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98
진흙 연습·100
새라는 통증·102
프라하, 스타일·104
4부
불량사막·109
독쇼(Dog Show)·110
마스크·112
아침의 방향·114
미란다 원칙 - 와병의 계절·116
진흙 나무·118
사월의 질문법·120
그늘의 질량·122
효자동, 국경·123
새를 깨닫다 2·124
소년 A·126
소년 B·127
청소년·128
방 탈출·130
해설 | 육호수(시인·문학평론가)
육체의 비실감과 영혼의 실감·133
작가 소개
서안나
1990년 《문학과 비평》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 『정의홍 선집 2』 『전숙희 수필선집』,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이 있음. 〈불교문예 작품상〉 수상. 〈서쪽〉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