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4] 대한민국의 의로운 검사, 이성윤의 책
지난 11월 23일 2쇄를 인쇄한 이성윤 검사의 『꽃은 무죄다』(아마존의나비 펴냄, 268쪽, 19800원)라는,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책을 숨쉴 새 없이 읽었다. 27일 새벽 <OhmyTV>를 보고 책 펴낸 사실을 알았기에, 그를 응원하는 건 그의 책 한 권 사주는 것밖에 없다는 무력감을 안고 곧장 전주 홍지서점으로 달려갔다. 이름 석 자, 이성윤만 겨우 알뿐(윤석열 전 검사와 날이 서있어 불이익을 넘치게 받고 있다는 정도), 아는 게 없었는데, 오연호 대표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그의 눈길에 한 치의 거짓이 없게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후 그를 알만한 이들에게 물어 가외의 사실 몇 개를 알게 됐다. 1962년생, 고창 출신 전주고 58회, 경희대 졸업.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은 쉽고도 어려운 말인가? 그는 그 과정에서 광주 어느 조폭의 칼에 맞기까지 했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신념으로, ‘심어진 곳에서 꽃 피우라(Blossom where you are planted)’는 좌우명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검사생활이 수 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김학의차관 출국금지 조치 등)로 ‘유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이 책이 <대한검(檢)국>의 실상을 폭로하는 시평이 아니고, 야생화野生花 이야기여서 더욱 놀라웠다. ‘꽃개’(야생화의 향을 좇아 귀신같이 소중한 야생화를 찾아냄)라는 별명의 남편과 그 꽃들의 세밀화를 그리는 어느 아내의 부부사랑 이야기여서 신선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검사의 눈’을 잃어버린 채 ‘야생화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해도, 무엇이 두렵고 겁이 나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가? 행간行間은 물론이거니와 불쑥 튀어나오는 한 문장 한 문장에서 그의 결연한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현자賢者의 어록語錄인 듯하다. 그의 어록 몇 토막을 보자. 복수초福壽草 단상이다. “불과 한두 해 만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되는 무뢰한 자들의 무도한 행태를 보며 불현듯 복수復讐를 떠올리게 되지만, 나는 얼음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의 강인함에서 절제와 인내를 배워가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복수福壽를 꿈꾼다.” “타심통他心通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는 능력이라는데 닻꽃 덕분에 그 말을 알게 되었다.”“내 동생 멕시코소철이는 세상에서 일컫는 반려식물을 넘어 나와 나와 ‘함께하는 삶’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는, 대한민국 검사인 그는, 뿌리, 잎, 꽃 세 부위가 모두 하얗다는 삼백초三白草를 보며 나태주 시인의 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중략)/내가 좋아하는 사람은/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그저 보통의 사람>을 떠올린다. “입만 열면 ‘공정’과 ‘상식’을 외쳐대면서도 대중들의 ‘상식’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일진대 하물며…”
단단한 대추나무씨의 둔감력으로 검사생활을 한 그를 모신문 인터뷰이(조선 최보식 기자)는 이렇게 썼다한다. “그는 윤석열 총장과 대비해 정권의 충견, 검사답지 않은 검사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이제 후흑厚黑의 이미지까지 덧붙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을 했거나 가까이했던 검사 출신 선배들이 그에 대한 인물평이 나쁘지 않다. 그에 대해 ‘선비같다’ ‘기본 품성이 착하다’ ‘사람에 대해 예의 바르다’고들 말한다. ” 최기자 평이 같잖고 아이로니컬하다. 그는 독초 박새의 별칭이 ‘동운초東雲草’라며 “권력에 취한 자의 무도함과 그 하수인의 성정을 하나로 뭉쳐 놓은 듯한 독초를 바라보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42개의 식물(양지꽃 개망초 금강초롱꽃 큰구슬붕이 강아지풀 꽃마리 병아리풀 가을벚꽃 민들레 담쟁이 인동덩굴꽃 구절초 물봉선 엘레지 영춘화 낙우송 히어리 풍년화 미선나무 금꿩의 다리 미국실새삼 변산바람꽃 노루귀 처녀치마 석산 달맞이꽃 납매 금잔옥대 등) 중 서너 개만 알 뿐이지만, 어느 해 산에 오르며 ‘노랑망태버섯’을 보고 경이로웠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요상한 버섯이 있단 말인가? 그는 이 버섯을 보고 이렇게 썼다. “겉은 화려하지만 어떤 것도 포용할 수 없고, 내용물도 없으며 세상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 품을 수 없는 그 텅 빈 화려함에 그저 쓴 웃음이 나올 뿐이다. 오만불손한 권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스펙트럼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해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실은 없어 일시에 쓰러져 녹아내리는 그런…,”
어느 소설가의 “야생화는 진실하다. 나는 다시 피어난 시대정신의 향기를 이 책에서 맡았다. 눈 밝은 자들은 들꽃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낼 것이다. 더불어 따뜻한 인간애와 정의의 색깔도 함께 즐기기 바란다”는 짤막한 추천사로도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아주 빼어난 좋은 책이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모두모두 너무 깔끔하디. 준수하다. 미물인 꽃 한 송이로도 세상은 충분히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나무 구멍 하나로도 세상을 본다고 했다.
닭의장풀을 보며 하늘의 별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는, 팽나무를 바라보며 팽목항의 비극과 악몽이 떠올라 그 가지 가지마다 주렁주렁 걸린 아픔에 짓눌린다는, 더러운 진흙에서 고운 존재로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상징인 연꽃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 남자는 수줍고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4부로 구성된 챕터 제목을 보라. 1부 <화和> 2부 <통通> 3부 <순順>에 이어 4부 < 그리고 희망 望>이다. 느낌이 화악 오지 않은가. 들꽃은 역천逆天의 무도함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敵도 두지 않으므로, 꽃은 평화이고, 소통이며 순리이자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꽃은 언제까지나 무죄無罪(innocent)라고 조용조용하게 얘기하고 있다. 세상이 내일 망한다해도 ‘꽃개 남편’과 '세밀화 화가' 부부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늘 또다른 "화花 봤다"를 외치며 착하게 살고 기죽지 말기 바란다.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짧은 주례사는 “너를 보니 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잘 살아라.”였다고 한다. 문득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살아보라!”고 했다는 그의 한결같은 주례사와 임은정 검사가 펴낸 책이 생각나는 11월말의 아침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31/아! 임은정검사 『계속 가보겠습니다』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