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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תולדת 톨도트" : 11월 셋째 주 in 5784
창25:19-28:9(To), 말1:1-2:7(Haft), 롬9:1-31(Brit), 요7:1-11:57(신약), 대상26:1-29:30(Ke), 삼하1:1-7:29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살인의 추억 >
요새 안에 우리 안의 남과 여, 하늘과 땅, 모순된 것들이 공존하는 것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이 제목이야말로 그 공존의 묘미가 들어있는 것 같다. 살인을 추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좋은 기억에 추억을 쓰는데, 살인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번 주 목장 샤밭이 작은 톨도트들끼리 만나서 따듯한 빛을 나누는 것인데, 벌써 창25장이 되었다.
창25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나오고, 리브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주에는 특별히 야곱과 에서가 나오고 있다. 야곱을 축복하고, 에서가 열받는 그런 시간들이 톨도트에 담겨져있다. 그리고 다음주는 바예쩨 주간이다. 드디어 야곱이 그 비전을 보게되는 놀라운 시간들이 이제 다가오고 있다.
요8: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을 것이다. 이 말은 너희는 내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스스로 톨도트를 만들지 않았다. 스스로 이삭의 위치에 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때의 특징이 돈과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강력히 대적한다. 스스로가 보내심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단독자의 극치가 이 마지막 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톨도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버지와 아들이다.
여러분은 어떤 톨도트를 가지고 계신가? 톨도트가 무슨 톨도트냐에 따라서, 호랑이면 호랑이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우주로부터 서포트된다. 내가 쥐인데 고양이 톨도트로 살 수 없는 것처럼, 톨도트에서는 우리의 존재,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은 누구인지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줘서 톨도트를 바꿔주어라. 육신이 진짜인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의 톨도트로 초청하고 계신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주님은 여러분을 당신의 계보 안으로, 내 가족되라고 하신다. 그래서 도 사모님이 표현하시길, 우리 하나님은 가족주이라고 하셨다. 결국 당신의 가족을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창25: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 마태복음 말씀과 대응되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다. 이삭의 족보가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삭의 족보에 들어왔다. 이쯔학은 놀다는 말이다. 이 마지막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잘 노는 인간이라고 했다. 웃는 것, 잘 노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최근에 정말 웃은적이 있는가? 재밌게 노신 기억이 언제 계신가? 우리에게 좋은 일이 오면 좋은 것이 이쯔학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한 것이다. 바로 웃음 자체이다. 웃음 itself이다. 여러분은 사랑 자체라고 했다. 그래서 100%,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을 더 해야하는 것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자체가 그냥 사랑이시다. 그래서 받을 필요도 없고, 애써서 줄 필요도 없는 사랑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는 그런 이삭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랑의 에너지, 웃음의 파워를 가진 이삭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이삭이 출현하면 주님의 톨도트가 세워지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리브가가 얻어진다
רבק 리브카 : 번성을 소망하는 상태
라브는 번성인데, 번성을 소망하고 꿈꾸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 아닐까? 내 삶이 팍팍한 것이 아니라, 온갖 열매와 다양한 사랑들로 가득한 상태를 꿈꾸게 되는 것은 이삭의 출현이 있어야 한다
창26: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יצחק מצחק 이쯔하크 메짜헤크 : 이삭이 리브가를 이삭했다
리브가를 웃고 즐거워했다. 이삭이 출현하자, 목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mating, 짝짓기가 일어났다. 우주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저의 소원은 이 땅의 모든 젓가락과 양말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우리 집은 4차원인지 그렇게 양말 한짝들이 돌아다닌다. 그나마 하영이 하늘이가 집을 떠나면서 조금 안정이 되었는데, 그전에는 짝잃은 양말이 얼마나 집에 많았는지 모른다. 양말도 힘든데 하나님은 저 하늘에서 우리가 서로의 짝꿍인 것을 mating하시기 얼마나 쉽지 않을까?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mating의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이삭의 톨도트로 태어났다. 이것이 키슬레브월의 풍요로움과 번성이다. 키슬레브월이 이제 시작되었다. 이 키슬레브월이 시작되면서 우주의 흐름이 많이 변하고 있다. 여러분이 헤쉬반월의 잔혹함 속에서 신뢰가 바닥을 쳤다면, 이제 키슬레브월, 베냐민 지파의 달에는 신뢰가 풍요로움이 되고, 그것을 마음껏 누려도되는 시간들이 오고 있다.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면, 그 빈약함이 풍성함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כס לו 키스 레브 : 36(에덴의 빛)의 빛이 숨겨졌다.
키스는 카싸, 덮다는 뜻이 있다. 덮어주다. 숨겨주다. 레브는 숫자값이 36인데, 36이 숨겨졌다고 유대 지혜자들은 이야기한다. 36이란 것은 에덴의 빛이라고 한다. 원래 있었던 빛이다. 우리가 시시분별을 가리기 전에 에덴에서 원초적으로 둘러싸여져있는 분이 36인데, 완벽하게 선하고 하나였던 상태의 빛이다. 선악의 지식나무를 먹고 분별을 가지기 전의 빛이다.
이때 간 에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36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샤밭의 24시간과 샤밭을 기다리는 금요일의 12시간을 합한 36시간을 보내면서 완전한 충만 안에 있었다. 이들은 이 세상의 끝에서 저 세상의 끝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빛 가운데 거했다. 그러나 샤밭이 끝나고 36의 빛이 사라지며, 선악의 지식나무를 먹게되면서 시시분별의 빛, 어둠의 빛이 우리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키슬레브월에 우리는 이 빛에 다시 접속하는 힘을 얻는다. 이삭, 리브가의 힘으로 원초적인 빛에 접속하는 힘을 갖게된다고 한다.
그래서 베냐민은 벤 야민, 이 우측의 빛에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지파이다. 이 한 달은 베냐민 지파와 친하게 지내길 축복한다. 에덴 동산은 결합의 동산이다. 36의 빛으로 가득했던 곳이다. 이 36시간 동안 인류가 살았던 그때의 완벽한 하나됨의 시간을 우리 영혼은 기억하고 있을 기억이다. 우리 나온 그곳, 돌아가야 할 그곳, 그 빛의 번성을 기뻐하고 이쯔학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이삭이 언제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는가? 사라의 태에서 났을 때가 아니라, 이때 바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mating의 숫자 222가 나오고 있다.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케이다의 순간, 이때 이삭은 아브라함의 톨도트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가 되었다.
העלהו שׁם לעלה 하알레후 샴 레올라 :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올라를 올라해라
올라가 두번 반복되어있다. 올라를 올라하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그 아들을 올려라, 어디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게하지 말고, 그 아들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라. 이때 이삭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톨도트, 하나님, 영의 차원의 톨도트로 올라갔다. 그 아들을 올려라. 하나님이 드디어 이삭의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그런데 이삭의 톨도트가 완성되고 창조되고 생산되기 전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것이 오늘의 주제인데 그것을 보도록 하자. 톨도트 전의 포션이 하예이 사라였는데, 그 끝에 이 구절이 나온다.
창25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족보가 이삭의 족보보다 먼저 나오고 있다. 참 놀랍다. 톨도트 시작 전에 하예이 사라의 끝에 이스마엘의 족보를 먼저 말씀하셨다. 이스마엘은 좌측의 세상을 담당한다. 인간적인 사역이다. 인간적이고 육적이고, 여러분의 육신, 육의 관념들이 먼저 생겼다. 그 족보가 이러하다고 한다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이스마엘도 열두 지도자들을 낳았다. 열두살까지 우리의 육이 형성되는 것을 이스마엘의 족보가 담당하고 있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아갈 때, 이스마엘의 족보의 장자의 이름의 원리대로 살아간다. 그 열두개를 다 볼 순 없고 장자만 보도록 하자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נבית 느비요트 : 집에 수동적인 자
여러분이 육신대로 살아갈 때 여러분의 원리를 처음으로 표현한 자이다. 집에 수동적인 자이다.
특히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듣도보다못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다. 그래서 영의 토라까지 오셨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사연의 강자가 된 이유는 집, 가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놈의 집구석이 왜 그런지, 나는 왜 이런 톨도트,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런지, 우리 집은 가난한지, 왜 우리 아빠는 돌아가셨는지, 여러가지 family 안에서 일어난 것이 상처와 트라우마가 되어서 느바욧에 문제가 생겨서 살아왔다. 그래서 아빠, 엄마처럼 되지 않을거라고 맹세하면서 지금까지 많이 살아오셨다. 이 이스마엘의 족보의 장자는 느바욧, 집에 수동적인 자이다
영의 톨도트로 넘어오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해야하는 중요한 작업이 느바욧이다. 아버지 때문에, 가난 때문에, 가족 때문에, 우리 가문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그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이 집에 수동적으로 되는 느바욧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가해, 피해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느바욧의 원리를 살아가는 것이다
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 부모님이 굉장히 형제의 학업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한다. 돈도 좀 있으셔서 집에 숙박하는 가정 교사를 둔 것이다. 때려서라도 좋으니까 아들 성적을 올려라. 그런데 제대로 만난 것이다. 맞아가면서 공부를 했는데, 문제는 성적이 떨어지면 받는 모욕감과 쌍욕, 쓰레기라는 말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는데, 더 힘들었던 것은 거기에 대해서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너무 속상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보호받지 못한 아픔이 극에 달한 어느날 이 형제는 가출을 하고 말았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고 소년원에 가게되고, 어느날은 폭력배와 싸우다가 온 몸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는데, 이 형제가 어딜 갔을까? 병원을 가야하는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 이런 모습을 나의 부모에게 보여줘야겠다고, 10시간을 걸어서 집에 간 것이다. 식구들이 난리가 났다. 엄마는 쓰러졌다. 복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형제는 누구한테 복수한 것일까?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 형제는 진정한 피해자였다. 자기를 가해해서 부모에게 복수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가장 복수한 존재는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에고는 칼이다. 이 형제가 온 몸에 맞은 칼처럼 여러분의 에고 자체는 칼이고 아픔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아픔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칼로 자신을 가해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가해하고 있지만, 가해 자체를 모른다. 내가 그만큼 아프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 에고에서는 살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 제목을 살인의 추억이라고 했는데, 우리 에고가 추억하는 것은 살기와 살인이다. 벌거벗고 피투성이가 된 자기 자신을 감싸주지 않고, 다 드러내서 온 세상에 자신이 피해받았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가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느바욧이 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내가 탤어난 육신에 대해서 우리는 수동적이어야만 그 다음 스텝을 걸어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고, 여기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영의 톨도트로 들어오는데 가장 큰 관문이고 가장 어려운 문이다. 신기한 것이, 인카운터 때 첫 문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면 신기하게도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저도 영의 톨도트로 들어오는데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이, 제가 최 장로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최 장로님이 제가 서울대에 못 가서 식탁 유리를 60만 조각으로 쪼개셨는데, 그게 저의 트라우마가 되어서 제 인생에서 아버지를 잘라버리고, 느바욧을 포기해버렸는데,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깨닫자, 60만개로 쪼개진 아버지의 마음이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더 영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영의 톨도트로 들어오기 위해서 육신을 먼저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 바란다. 그것이 느바욧을 사랑하는 길이고, 느바욧으로 살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모두 이스마엘로 먼저 태어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낳았고, 이삭도 낳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삭의 톨도트로 다시 태어남이 또한 필요하다. 나의 정체성이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들어오는 영의 세상의 특징은 항상 즐거워하고 노는 것이다. 사랑 자체인 것이다. 여기서 이스마엘로서 느바욧이 되지 못한 상태로 살아왔던 많은 인생을 바울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느바욧을 수용한 자, 되기로 결정한 자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빌1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주님의 선한 일, 이스마엘을 먼저 태어나게하신 일이 끝까지 이삭의 톨도트로 될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36의 빛처럼 처음부터 끝까지의 빛을 보고 있다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여러분이 받은 모든 상처, 형제가 맞은 칼의 모든 것들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여러분의 모든 사연에 상관없이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이로서 나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되어있다. 우리 삶에 살인과 추억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칼과 꽃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칼을 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 꽃을 주고 싶다. 꽃을 주고 싶은데, 왜 내 행동에서는 칼이 나올까? 꽃을 주고 싶을 때 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영의 톨도트인데, 우리는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꽃을 주고 싶은데 칼을 주게되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남과 여의 화해, 모순의 화해, 이 복음이 들려질 때 우리는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다.
36의 이 에덴의 빛이 사라지고, 인간에게 선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들이 생겼는데, 크게 유대인들은 인류가 세 가지 죄를 지었다고 하고 있다
(1) 우상숭배
(2) 살인
첫 번째는 우상숭배의 죄이고, 두 번째는 살인의 죄이다. 우리는 지금도 살인으로 점철된 세상에 살고 있고, 여전히 이스라엘은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살인의 죄를 매일매일 짓고 있다. 단 한 명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만히 안 두겠다. 부숴버리고 싶다. 이 모든 것 중에 가장 우리가 잘 하는 행동이 있다. 도망가고 회피해버리는 것, 이것도 다 살인의 일종이다. 다 먹어치우는 상태이다
이번 주 주인공 중 하나가 에서이다. 에서는 살인자였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 다 먹어치우는 자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우는 자를 살인, 사냥이라고 한다.
(3) 믿음 없음
세 번째 죄인 믿음 없음, 불신앙이다. 이 세 가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이 의인으로 오셨다. 이 세 가지 죄를 해결 좀 해보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미션을 주셨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 미션을 수행하실 예정이신가?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다 때려잡고, 살인자들을 감옥에 쳐넣는 것이 이스마엘의 후예인 우리가 하는 해결방법이겠지만, 우리 주님은 달랐다. 우리 주님은 의인이셨다.
צ 짜딕이라는 것은 사람이 걸어가는데, 등 위에 짐을 지고 가는 모양이다. 주님은 이 세 가지 죄의 해결을 때려잡고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고 죽으셨다. 의인이신 주님은 이 세 가지 죄를 자기 삶에 공존하게 두셨다. 수치, 가난, 아픔, 절망도 그 삶에 그냥 두신 것이다. 그냥 그분이 지고 가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자보, 사랑이 이기리라. 이 사랑은 자기가 다 껴안고 죽는 사랑이었다. 아브라함은 이 의인의 기도를 했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한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아브라함이 죽고나서 하나님은 이삭을 직접 축복하신다. 아브라함은 왜 이삭을 축복하지 않았을까?
창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얼마나 우리가 이스마엘의 정신으로 이것을 번역하는지 모른다. 아브라함이 냉소적으로 기도한 것 같다. 그게 아니다.
לו ישׁמעל יחיה לפניך 로 이쉬마엘 이흐예 레파네이카 : 이쉬마엘이 당신 앞에서 하야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스마엘이나 살려주세요라는 체념의 기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죄를 지고 의인의 기도를 한 것이다. 이스마엘의 죄를 회개케하려는 데스티니를 가지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축복하지 않고, 이스마엘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것이 아브라함, 의인의 기도였다. 인류에게 앞으로 있게 될 이스마엘의 저주를 위해서 기도했다. 지금 이스마엘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계속 전쟁하고 있고, 살인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죄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지금도 이스마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했다. 영의 톨도트를 조롱했다. 토라 한다고 돈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네가 품는다고 돈이 되는가? 성공이 되는가?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잘 하는 짓이 있다. 잔인하게 죽이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철저하게 너는 육신이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꺼이 이스마엘을 위한 축복을 받아낸다. 이스마엘이 하예이, 주님 앞에서 살게하여 주소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이스마엘이 회개케될 것을 믿는다. 이 기도에 비밀이 있다. 세상, 육체를 사랑하는 이스마엘이 회개케되는 것이 의인의 기도이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בכר 바카르 : 장자권, 네 안에 둘 수 있는 영
이번 주에 야곱이 리브가의 주도 아래 에서에게 있었던 장자권을 빼앗아온다. 장자권이란 베카, 너 안에 둘 수 있는 영이란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장자권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스마엘과 이삭이 화해하는, 음양이 조화를 이뤄 살인이 추억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쓰여질 것이다
빌1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여러분의 매임이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면 우리는 이쯔학 할 수 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생명과 죽음이 함께 공존해도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 주님은 이삭과 이스마엘 둘 다를 취하실 것이다. 아픔을 버리지 않고, 이스마엘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둘 다 취하실 그 놀라우신 주님. 의인되신 주님을 찬양하기 원한다.
제가 빌립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찬양이 생각났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어디에 매여계신가? 여러분의 분노, 살기에 매인바된 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나의 매임 조차도 그리스도를 기뻐할 수 있는데 사용되게 하소서.
==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
우리의 매임이 소망이 되고, 간증이 되고, 스토리가 되는 그 날까지 온 몸에 칼을 맞았을지라도, 그것을 통해 느바욧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수동적인 우리가 되어서 영의 톨도트까지 넘어오는 수순을 밟기 바란다. 내 영혼이 즐거이 주님을 따르렵니다. 이것이 이쯔학이다. 이쯔학의 반댓말이 뭘까? 살인이고 살기이다. 여러분이 가장 잘 쓰는 마음들이다. 그런데 이삭은 이 살기를 먼저 통과했다.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기 결정된 말씀에, 그를 태워서 죽이라고, 이삭은 이 살기를 그 삶 안에, 인생 스토리 안에 둔 자였다. 재미난 것이 이슬람 경전 코란에도 이스마엘 자손들이 만든 경전에도 이 스토리가 나오는데, 이삭 대신에 이스마엘이 바쳐졌다고 나오고 있다. 코란에는 이삭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본처 사라와 그녀의 소생 이삭에게 밀렸다. 이게 코란에 나온 내용이고, 메카 근처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자주 찾아왔고, 꿈 속에서 알라가 나타나서 이스마엘을 바치라고 했고, 여기서 내용이 변질되는데, 이스마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스마엘이 알라의 뜻이라면 참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잘 묶어주시고, 단칼에 죽여주십시요, 그러면 너의 고통이 조금 덜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내려치는 순간 알라의 천사가 칼날을 뒤로 제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내 뜻대로 행했으니 선으로 여기노라.
토라와 코란의 차이를 알겠는가? 토라는 우측의 이야기이다. 설명을 하지 않고 별로 디테일이 없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에세이를 훈련시키는데, 요새는 에세이가 아니라 시를 써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많은 설명, 이스마엘이 아버지에게 했던,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에게 구구절절히 알라의 명령을 설명했던 것은 더 이상 우측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이스마엘이 저의 고통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서 칼을 날카롭게 갈아서 정확하게 조준해달라고 했는데,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제가 목숨을 바치겠다고 할 때, 꼭 뒤에 하는 말이 제발 썰어죽이지 마시고 한방에 죽여달라고 했다. 이 고통이 너무 아프고, 이 고통을 내 삶에 두기 아프기에 사족을 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라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논리가 없는 것이 우측의 세상이다. 그럼에도 수용하고 삶에 둘 줄 알았던 것이 이삭이었다
이스마엘은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를 지었다. 이삭을 조롱했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우상숭배, 살인, 불신앙은 연결되어있다. 코란이 그냥 끝나지 않고, 이스마엘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계속 찾아오고 며느리도 구해줬다고 한다. 어느날 또다시 알라로부터 아들 집에 신전을 세워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은 신전을 짓고, 그 높은 신전의 담을 쌓기 위해서 큰 돌, black stone을 가져와서 신전을 완성했다고 하고, 지금까지 이들이 전쟁과 살인을 계속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충돌의 지속력을 주는 힘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톨도트에서 해결을 하신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이스마엘을 위한 기도였고, 두 번째는 이것이다
창27: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여기에 보면 이삭이 나오는데,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서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하라. 아칼하게하라. 에서는 이스마엘의 후예이다. 그런데, 에서가 잘하는 것이 사냥이었다. 사냥은 먹어치우는 것이고 죽이고 살기를 쓰는 것이다. 선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어서 나에게 좋은 것은 가져오고, 나에게 해가 될 것은 계산해서 멀리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삭 안에는 살기가 있었다. 이삭은 살기를 통과한 자였다. 그런데 이 살기를 해결하고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분이 수치를 끌어안으라,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수치를 충분히 느끼고, 아픔을 느끼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드리니까 제발 빨리 느껴서 빨리 치워줬다는 심정으로 수치를 끌어안으시는 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계속 그 살기 안에 머문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 살기 안에 머물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삭의 톨도트들은 지금도 인간의 세 가지 죄를 위해서 그 살기 가운데, 살인의 불꽃 가운데 거하고 있다.
עשה לי מטעמיםׁ 아싸 리 마타아밈 : 내가 즐기는 별미를 가지고와라
마타아밈, 두 가지 음식이다. 선과 악 두 가지를 다 가져와라. 선만 가져오고 악을 치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다 가져와라. 내가 그것을 다 교정하겠다. 다 먹겠다. 네게 있는 살인의 추억을 가져와라. 내가 너를 교정하고 축복해주겠다
야곱이었지만, 이삭은 에서를 축복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고 얻었다. 에서에게 있는 이 살인의 죄를 교정해주려고 했다. 이 미움과 살기, 우리가 그본께 가지고 나아가야 할 살기가 있는가?
누군가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다면, 살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 살려주려는 마음이 당연히 있다. 우리 안에는 정말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정말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세가 눈에 가득한 살기로 다 죽여버릴거야, 칼로 다 그어버릴거야. 이런 말을 한다. 모세 안에 그 살기가 있는데, 또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모세는 살기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눈에 하트 뿅뿅으로 저를 사랑해준다. 굉장히 그 에덴의 빛에 가까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 시시분별함이 별로 없는 상태, 아이의 상태이다.
그런데 살기,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 뒤에 숨겨져있는 너무나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동시에 발현되면서 혼동 가운데 살고 있고, 여전히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 살기 가운데 있다. 일상에서 이 살기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절대로 이해해주지 않을거야"라는 마음으로 이 살기를 사용한다. 절대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정치, 경제, 교육, 모든 분야에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살기가 가득하다. 저쪽을 없애버리고 싶은 것이다. 어둠, 악이라고 생각되는 저 원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뒤꿈치를 보고, 뒤꿈치가 달걀같아서 너무 밉다고 한다. 그냥 무조건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 바늘끝도 들어가지 않은 마음으로 살기를 뿜으며 살고 있다. 이 고집스런 우리의 에고를 마주하길 기도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여러분의 고집스런 이스마엘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여러분이 이곳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 타아밈, 별미를 나에게 가져와라. 내가 그것을 교정해주겠다고 한다.
아까 꽃과 칼 이야기를 했는데, 살기를 잘 써야한다. 이 살기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칼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그 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끊어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제가 결혼하고 바로 다음날 이스라엘로 갔다. 시어머니께서 독일에서 사오신 쌍둥이칼을 세트로 제게 선물해주셨다. 이스라엘에 갔더니, 그때는 저는 밥도 안 지어본 사람이고, 칼로 뭔가를 썰어본 사람이 아닌데, 모세만한 아이에게 칼을 쥐어쥔 것 같은 형국인 것이다. 너무 잘 드니까 무서운 것이다. 그 귀한 칼을 사용하지 않고, 그때 살던 신혼집 뒤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는데, 그 칼로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원예에 쓴 슬픈 일이 있었다.
칼을 사용한다는 것은 성숙한 자의 이야기이고, 너무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아픔이 심할수록, 우리는 이 칼을 사용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 칼을 우리는 반드시 사용할 때가 온다. 아픔이 심할 수록 칼을 사용하지 못한다. 제가 손에 한포진이라는 병에 걸린적이 있다. 거의 문둥병 수준으로 손이 간지러웠다. 너무 간지러운 날은 칼로 그어버리고 싶은 정도로 살기가 나온다. 너무 아프면 말이다. 여러분의 상처가 너무 아프면 칼로 다 베어버리고 싶은 살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뭘까? 수치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그 상처에 칼을 대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밴드로 막아주고, 연고를 발라주고, 그 아픔을 수용하고 내 삶에 둘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가해하는 나를 노출시켜서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그것을 부인하기도 한다. 내가 확 죽어버려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고 싶은 살기를 쓴다. 내가 아니라 오빠만 예뻐하는, 남자만 예뻐하는 집안에 태어난 딸들은 언젠간 내가 확 죽어버리면 부모님이 나를 기억해주겠지. 이런 살인의 추억들이 우리에게 녹아져있다. 우리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버리기 좋아한다. 우리는 절대로 이해해주고 싶지 않고,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을 우리에게 두셨는지, 아버지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창4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너를 원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카인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카인이 하나님께 이렇게 분노할 필요는 없었다. 자기가 드린 제사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다시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고집스런 에고가 살기를 쓰기 시작한다. 자신을 교정하는 대신 하나님을 절대로 이해해주기 싫은 마음으로 분을 내고 안색이 변한다. 하나님, 당신을 절대 이해해드리기 싫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내가 제사를 받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렴. 분한 마음은 죄가 너를 원하는 것이다.
죄가 짐승처럼 너에게 달려들어서 너가 딸려가버리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죄가 너를 원하지만, 죄를 다스려보렴. 살기의 칼자루를 쥐렴. 칼이 춤추게하지 말고, 칼자루를 쥐고, 그것을 사용해보렴. 저 처럼 그 좋은 칼을 버리지 말고 한번 사용해보렴. 이렇게 도전하신다
여러분들은 죄를 가지고 놀 수 있는가? 미움을 가지고 놀 수 있는가? 여러분은 별미를 나에게 가져오라. 죄, 악, 선 모두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가? 살인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가? 그러나 카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살인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몸에 쌓여있다. 육의 톨도트 가운데 세대를 거쳐 쌓여있다. 톨도트의 특징은 영속한다. 카인, 이스마엘, 에서도 우리의 육신에 다 녹아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그것을 우리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자매들이 착할수록 인정을 안 하더라. 자꾸 외부의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내 안에 이렇게 미움과 살기가 있는데, 그것을 치워버리고, 쌍둥이 칼을 버려버리고 외부의 관계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시고, 가나안 땅을 멸하라고 한다. 진멸, 죽이는 것을 너무 좋아하신다. 하나님에게 그 쌍둥이 칼을 쥐어드리면 너무나 맛있는 요리를 하신다는 것이다. 핀하스 주간에 우리는 이 말씀을 읽었다.
민25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IS 저리가라이다. 하나님의 살기는 얼마나 센지, 여호와 앞에서 수령들을 다 잡아서 목매어 달라. 그러면 내가 화를 그치겠다고 하신다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이 하나님의 마음을 행하기 위해서 모세의 대리인 핀하스가 온다. 엄청난 살기의 칼을 핀하스가 들었다. 여기 보면 핀하스가 보고라고 되어있는데, 뭘 봤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는다. 핀하스는 계속 보려고 했다. 찾았다. 추구했다. 하나님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절대로 이해해주기 싫어하는 카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미움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노는 자를 보고 있다. 바이카흐 로마흐 베야도, 손에 칼을 잡았다고 한다.
여기서 살기를 느끼시는가? 그동안 살기, 미움은 안 느끼셨을텐데, 이 히브리 원어의 사진을 통해서 살기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바브가 잘린 상태이다. 요드와 바브가 잘려있다. 그의 손에 창, 칼을 들었다.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해드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해서 살기를 사용한 자, 자신의 생명까지도 던져버린 핀하스의 열정이 우리에게 임하길 기도한다
이 핀하스가 칼을 사용하자 하나님은 화를 그치셨고, 인류의 이 세 가지 죄를 속죄해주셨다. 하나님의 살기는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의 살기는 아픔이다. 그 아픔이 사랑이 되게하는 것이 아브라함이 했던 기도였고, 이삭이 나에게 별미를 가져와다오. 내가 그것을 먹음으로 너를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아픔이 사랑이 될 때까지, 아름다움이 될 때까지, 약함이 자랑이 될 때까지, 실패가 간증이 될 때까지, 우리의 가난함이 수치가 아닌 자랑이 될 때까지 이 모순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왜 여러분이 살기를 아픔으로밖에 쓸 수가 없을까? 살기를 쓰고 아파하는 이유는 빼앗겼다고 생각해서이다. 이 마음이 살기를 낳는다. 버림받았고, 수치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치를 준 사람, 배신한 사람을 떠올릴 때 죽이고 싶다. 상대만 죽이고 싶으면 다행인데, 그 마음은 나 스스로를 가장 공격하고, 나를 병들게하고, 그 독소는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죽인다. 죽이고 싶은 마음 뒤에는 가장 살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해있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였는가? 아버지 아닌가? 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바로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을 가장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는가? 너무나 사랑하고 싶어서 꽃을 주고 싶었는데, 나에게서는 칼 밖에 나오지 않은 이스마엘의 톨도트의 삶이, 이제 이삭의 톨도트로 올리기 원하시는 그분의 손에 들려지길 원한다
진짜 죽이고 싶은 것은 진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진짜 사랑하는 자는 팔레스타인 아니겠는가? 아랍이 진짜 사랑하는 자는 이스라엘이 아니겠는가? 죽도록 사랑할 때 죽도록 미워한다. 이것들을 진짜 삶에 둘 줄 아는 이삭, 야곱이 되기 원한다. 이 모든 것을 리브가가 주도한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기 위해서, 야곱이 모든 것을 공존시키는 티프에레트의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설정하고 계획했다. 이 리브가가 번성을 소망한다고 되어있었고, 간 에덴, 에덴의 36개의 감춰진 빛이 계속 드러나는 것을 소망한다고 했는데, 이 빛에서 감추어진 자를 하나 보도록 하겠다
왕상2: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איב 요압은 아버지 안에 자신의 손을 넣은 사람이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인데, 요압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왜냐? 요압은 두 사람을 죽였는데,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다.
마싸는 짐을 지다는 것이다. 짜딕을 설명했는데, 짐을 지고 가는 자, 아마사를 요압이 죽였다. 하나님은 아마사의 죽음을 통해서 요압을 드러내신다.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다. 다윗의 아들인데, 반역을 한 압살롬을 다윗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절대로 내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렸을 때 모든 신하들은 다윗의 사랑을 이해해드리고 싶어서 손을 대지 않았는데, 요압은 상관이 없었다. 다윗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요압에게 다윗의 마음은 상관이 없었고, 가서 찔러 죽였다. 이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이다.
삼하17: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대상2:17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
아마사, 의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이스마엘 사람 예테르의 후손이라고 되어있다. 예테르는 이트로이다. 이스마엘이 어떻게 회개하고 돌이키냐면, 자신의 예테르, 유익을 내려놓을 때, 계산기를 부숴버릴 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기도했던, 이스마엘이 당신 앞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를 위해 살아왔는데, 아마사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계산기를 부숴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아마사를 군대 장관에 다시 앉힌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원수의 군대장관을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앉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아마사, 의인의 기도를 한 자를 다윗은 알아보고 자신의 톨도트로 들인다
이렇게 우리가 요압처럼 살았지만, 아마사처럼 이제 계산기를 부숴버리고, 죄를 가지고, 죄를 갖고 놀고 다스리고, 미움, 살기, 칼을 휘두를 줄 아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윗,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너를 나의 군대 장관으로 세우리라. 이 아마사는 요압이 죽인다. 칼을 떨어뜨린척하다가, 찔러 죽인다. 아마사가 의인인지, 다윗의 군대 장관인지, 요압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윗에게 충성하고,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명을 드리며 사랑하는 것은 요압에게는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다윗에게 가 있는가? favorite one.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마음 뒤에 쫓아가겠습니다. 이런 아마사의 마음이 있으신가? 아니면 요압처럼 그런거 상관없이, 그냥 나의 톨도트를 세우고 싶지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죄가 너를 원하나 딸려가지 말아라. 죄를 다스려라. 핀하스처럼 칼을 사용하여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행하라. 목숨바쳐 사랑하기 위해서 그 칼을 한번 사용해보아라.
어떤 한 자매가 할머니가 아들만 예뻐해서 너무 할머니를 죽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 사랑 못 받는 아픔과 살기를 그 삶에 그냥 두어야 하는데 버려버렸다. 그때 생겨나는 것이 절대로 할머니를 이해해주기 싫은 고집인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문제는 할머니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듣지 않게 되어버렸다. 평생 남편의 말고, 자녀들의 말도, 어떤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고집 자체가 되어버렸다. 요압의 고집처럼, 이스마엘의 고집처럼, 카인의 고집처럼, 살기 자체가 되어버렸다.
청개구리 이야기를 다들 아실 것이다. 엄마, 아빠를 절대 이해해드리기 싫어서, 엄마, 아빠의 말을 항상 반대로 했던 청개구리가 엄마, 아빠가 돌아가실 때 우리 아들이 이것도 거꾸로하겠지 하면서 무덤을 물가에 해라고 하면 산에 묻어줄 줄 알았다가 청개구리가 회개하면서 엄마, 아빠 무덤을 물가에 해놔서 지금도 울고 있다고 한다. 혹시 청개구리처럼 고집 자체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죄가 여러분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죄를 가지고 노실 수 있겠는가? 너무 늦게 회개하지 말고, 오늘 이 하욤의 시간에, 절대 이해해주기 싫어서 쓰는 살기의 칼을 내려놓기 원한다. 요압처럼 권력, 자신의 톨도트를 위해서 아버지가 되어 부당한 힘을 사용하지 말기 바란다.
전 세계는 부당한 힘의 출현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삭의 톨도트로 거듭난 한 사람이 출현하면 세상은 변하게 되어있다. 이제 여러분의 아픔을 인정하고 표현할 줄 알고, 수용하고 공존하게해서 살인의 추억을 해결하기 원한다. 모두 주님 앞에 가져가서 해결하기 원하시는 주님께 나아가기 원한다
유대인들은 36개의 빛, 에덴의 빛이 도대체 왜 숨겨져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으로 그 빛은 미래의 의인들을 위해서 주님이 숨겨놓으셨다고 한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에덴의 빛이 감춰져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혜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토라 안에 숨겨놓았다. 그래서 토라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이 빛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가 토라 안에서, 더 깊이 연구하고, 더 사랑할수록 우리는 그 빛을 드러낼 수 있다고 되어있다. 토라를 더 깊이 사랑하시고, 헌신하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에덴에서 감춰진 그 빛이 번성하게 될 것이고, 그 빛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여러분의 간증이 될 때까지, 이 아픔이 아름다움이 될 때까지 함께 걸어가도록 하겠다.
== 나의 아픔은 나의 자랑이요 ==
이 모순의 찬양을 드리면서, 이스마엘을 위해서 기도했던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나아가도록 하겠다.
* 기도
우리는 너무나 고집스러웠고, 너무나 이해해주기 싫어서 온 몸에 칼을 맞고 열 시간을 걸어서 내가 피해받았다고 온 가족을 가해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살인의 추억, 살기가 이제 간증과 자랑, 영광이 되는 그 부르심을 따라서 우리가 이스마엘과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이삭의 톨도트로 상승시키시는 주님, 우리 안에 가난함이 있어도, 쓰러짐, 미련함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이것을 다 끌어안을 수 있는 칼을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하고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안에 있는 살인의 추억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갑니다. 36개의 에덴의 빛은 미래의 의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토라 안에 숨겨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땅끝까지 가서 당신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당신처럼 당신의 짐을 지고가는 의인이 되기 위해 더 토라에 헌신하고, 더욱 더 아들이 되고 제자가 되겠습니다. 그럴 떄 숨겨진 빛이 드러나며 우리가 그 빛과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그 빛으로 이삭의 톨도트로 가족삼을 수 있도록, 아들의 증거자로 다시 태어나기 원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우리는 그동안 칼, 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그 칼을 버려버리고, 아픔을 버려버렸습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를 원하지만, 우리가 죄를 가지고 놀며 사용할 줄 아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이스마엘과 에서를 교정하며 살기 원합니다. 기꺼이 나의 목숨을 끊어서라도, 다윗, 예슈아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사랑하기 위해서 걸어가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를 교정하시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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