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의 야경
흑산도(黑山島)
백두정기가 힘차게 남으로 뻗어 내려와 한반도의 최 서남단인
신안 바다 밑으로 솟구치며 만든 다도해의 829개의 섬으로
(유인도79개 무인도 750개) 구성된 신안군은 동쪽으로
목포의 유달산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황해를 건너
멀리 중국대륙을 마주하고 있어 고대 해상무역의 중심지
이기도 하였던 곳이다.
목포-흑산,홍도를 오가는 쾌속선
목포에서 뱃길로 약 108km (약 2시간소요) 쯤 가면 수많은
섬들을 뒤로하고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홀연히 떠오르는 섬이
바로 흑산도이다.
흑진주처럼 검게 빛나는 섬,
아침햇살이 보석위에 영롱하게 부서지기도 하고
석양 노을빛이 감돌 때면 섬은 신이 빚은 천상의 조각품인양
그 황홀경을 더하기도 한다.
흑산도 예리항
수천년 삶의 흔적을 바다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섬 곳곳에 훼손되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유적지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눈길 머무는 곳 그 어디에나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태고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람의 존재를 잠시 잊게해 주는 신비의 섬이기도 하다.
아침햇살이 비취면 일곱가지 색의 무지개 빛이 나며
돌 빛갈도 일곱색으로 변한다고 하는 칠성굴이 있고
다촌리 북쪽방향으로 푸른 바다위에 솟아있는 돛대바위는
높이 40~50m를 헤아리는 흰색갈의 거대한 바위인데
그 모양이 돛을 단 배가 항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안개가 낀 흐린 날이면 풍선(風船)과 분간하기 어려운
기암괴석으로 바위밑에 커다란 굴이 뚤려 있어 더욱 신비롭다.
그 옛날 청해진의 장보고가 당나라와 교역을 할때 이 바위가 등대
구실을 해주었다고 한다. 대문바위는 흑산도 동쪽의 영산도 서단에
있는 바위로써 풍화작용에 의해 구멍이 크게 뚤려 있어 암벽과 기둥
사이는 약 20m, 허공에 가로걸친 바위기둥과 바다사이는 약30m로서
웬만한 크기의 배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학바위, 겹거북바위, 칠형제바위, 스님바위, 촛대바위,
고래바위등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같이 빼어난 풍광너머엔 찬란했던 옛 해상유물과
함께 우리 선인들의 자취가 곳곳에 베어있어 발길이 멈추지 않는다.
상라봉 정상부근에는 고려때 것으로 추정되는 반월성과 봉화대가
있고 지석묘 군락지, 삼층석등, 석탑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상라봉 정상
예리항 반대편에 사리(砂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일명 모래미마을)
이곳에서 손암 정약전(巽庵 丁若銓 1760-1816) 선생이 15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 이다. 유배생활도중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문헌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집필하여 오늘날 수산업분야 발전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기도하다. [* 자산어보 별도설명]
한편 모래미 마을에서 흑산도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소사리라는
작은 모래미 마을이있고 그곳에서 고개를 넘으면 천촌리 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조선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자
지사(志士)였던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선생이
이곳에서 3년동안 (1876-1879) 유배생활을 했던 곳 이기도 하다.
면암선생의 유적지
대원군의 독재정치에 의연히 맞섰던 면암 선생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왜적을 내치지 않을 것이면 신의 목을 베소서!]
하고 상소를 올렸다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태인과 순창 등지에서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대항해 싸우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마도 감옥에서 적(敵)이주는 밥은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하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하는 면암 선생의 대쪽같고 서릿발 같은 기개가
숙연함을 더해 비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흑산도에서 마지막 빼놓을수 없는 먹거리중의 하나가
홍탁삼합(洪濁三合)이 있는데 이는 돼지삼겹살과 배추김치,
그리고 알맞게 썩힌 흑산홍어에 곁들인 막걸리 한 순배의 맛은
가히 이태백이 아니더라도 달(月)을 찾아 바다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정취를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홍도 (紅島)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섬, 홍도.
해가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하여 홍도라 했다던가?
칼로 베어낸 듯 오밀조밀한 화강암에 깎아 세운 듯 한 해안절벽 곳곳에
숨어있는 해식동굴, 그 이름 만큼 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섬 홍도는
절묘한 비경으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단연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얼굴을 이루고 있다.
홍도의 멋은 수 천만년의 세월을 태고의 신비로 빚어낸 파도의 조화에서
시작된다. 도미처럼 생긴 돔바위, 거북모양의 거북바위, 원숭이바위, 군함
바위, 주전자바위, 남문바위, 탈바위 등등,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해안선을
따라 자주빛과 흰빛이 어우러져 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런 기암괴석을 삶의 터 로 삼아 대엽풍란, 후박나무, 동백, 잣나무등 진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특히 동백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당산림은 홍도의 경관중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이 당산림에는 서낭당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용왕님에게 풍랑의 고요함을 빌었을 원시 신앙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섬 전체에 온갖 희귀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는가 하면 바다물속으로
비취는 주홍빛, 보라빛의 해면과 숲을 이루는 바닷말, 꽃이 만발한 것
처럼 보이는 분홍빛, 황록빛의 말미잘들, 그외 각종 조개류, 그 틈사이로
담치, 보라성게 등이 어우러져있는 모습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해상수족관 이라할 정도이다.
홍도관광은 아무렇게 해도 좋다.
배를 타고 섬주변의 풍취를 찾아나서도 좋고
산에 올라 진귀한 식물을 벗 삼아도 좋고
유리알 같은 맑은 햇살과 더불어 바다속 거대한
수족관 풍경을 감상하든지 그 어느것을 만나더라도
감동은 그때 그때 다른 빛갈로
추억을 가득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丁若銓 과 玆山魚譜"
손암 정약전 (1760 -1816)은 조선후기 南人系의 학자로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이다. 벼슬은 1797년 병조좌랑을 지냈으며 일찍이 西學에 뜻을
두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천주교 선교활동에 힘쓰다가 1801년 신유사옥
(순조 1년)때 형제가 함께 유배길에 올라 동생인 다산은 강진으로
형인 손암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15년 동안 (1801년-1816년)
지내다가 1816년 육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웠던 우이도라는 섬에서
돌아가셨다.
유배생활을 하는동안 흑산도 인근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과
어패류등 227종에 대한 생태계를 집중 연구하여 한권의 책으로
완성시켰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最古의 魚類學書인 "자산어보"이다
- 자산어보에 쓰인 정약전 선생의 머리말-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 사람들의 편지에도 흑산을 번번히 자산이라 썼다.
자(玆)는 흑(黑)자와 같다. 자산(흑산)의 해중어족(海中魚族)은 매우 풍부하지만 그 이름이 알려진것은 적다. 마땅히 박물학자들은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 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魚譜)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 ]
권1에는 인류(鱗類: 비늘이 있는 고기류)- 70종
권2에는 무린류(無鱗類): 비늘이 없는 고기류)-42종
권3에는 잡류(雜類): 조개, 어패류-60종. 기타 해조류-46종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학문화 되어있지 않는 것을 정립 하기위해 학명을 정립하였고
어패류의 생태계와 이동경로, 습성및 방언, 약효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후세 학문연구와 수산업 발전분야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신안군 에서는 19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자산어보에 대한 번역과 해설을
곁들인 원색도감, 그리고 정약전 선생의 일대기와 다산 정약용 선생과의 유배생활도중
오고간 서신을 곁들여 새로이 발간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