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의 여섯 왕비
1. 아라곤의 캐서린 아라곤왕(에스파냐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의 딸입니다. 영국 왕 헨리 7세의 결혼정책에 의하여 처음에는 그의 맏아들 아서와 결혼했으나, 5개월만에 그가 죽자 동생인 헨리 8세워 재혼을 합니다. 몇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딸 메리(후의 메리1세)를 제외하고 모두 요절하였구요. 매우 헌신적인 여성이었다고 하나, 남편인 헨리 8세의 여성편력으로 별거당하게 되지요. 후에 헨리 8세가 교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게 된 후에도 여러 차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합법적인 왕비임을 주장하였다고 하네요. (헨리가 근친상간의 이유(형의 아내)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결혼이 무효임을 선언 해버려 메리는 사생아가 되어버립니다.) ★ 영국 종교개혁의 계기 : 원래 영국은 구교를 신봉하는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을 하고 앤 불린과 결혼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윤리는 결혼생활에 대해 매우 엄격하여 1부 1처제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그것은 왕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이혼도 쉽게 할 수가 없었지요. 헨리 8세의 이혼을 교황이 반대하자 그는 이혼을 단행하기 위해 기존 카톨릭과 루터 파의 교리를 섞은 성공회를 국교로 정하고, 카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해 버립니다.(성공회는 프로테스탄티즘 교파의 하나이구요.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의 교리와는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황당하지만 영국 종교개혁의 원인이죠^^;
2. 앤 불린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입니다. 헨리 8세가 종교까지 바꾸어가며 결혼을 단행한걸 보면 굉장한 미인일거라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앤 불린은 미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빛나는 검은 눈동자와 도도한 성격이 왕의 마음을 끌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왕궁에서 마녀라고 일컬어졌다고 하는데요. 메리를 그녀의 부모와 만나지 못하게 하였으며, 명칭도 프린세스 오브 웨일즈 - 즉, 프린세스나 마담이라는 공주의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게하고 당시 궁중의 시녀들이 썼던 레이디 메리로 불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에게 어린 엘리자베스의 시녀처럼 행동하게 하였는데, 기저귀를 가는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딸인 엘리자베스를 낳고 그 후에 낳은 아이들이 사산아로 나오자 결국 그녀의 오빠들이 간통하였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하게 됩니다. 그녀가 왕비의 위치에 있었던 기간이 1000여일이었기 때문에 천일의 앤이라고도 부른답니다.
3. 제인 시모어 헨리 8세의 세 번째 비로 그의 여섯 아내중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준 왕비입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겨우 17개월 뿐이었고,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렸지요. 그녀의 장례식은 화려하게 치루어졌는데, 2천발의 축포가 쏘아 올려졌다고 합니다.
4. 클레브스의 앤 도이칠란드의 클레브즈 공작 요한3세의 딸입니다. 제인 시모어의 사후 헨리는 3년간 그녀를 이을 여자를 구하는 일로 보냈습니다. 선택된 신부는 클레브스 공작의 딸인 앤이였지요. 그녀는 프랑스로부터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당시 정계의 유력자였던 크롬웰에 의해 고안된 유럽 북방동맹을 위한 인질이였습니다. 헨리 8세는 처음에 초상화속의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 하였으나, 그녀의 실제 모습(말같이 생겼다고 하네요)을 보고는 질려버려 즉시 벗어나기를 원했고, 신속한 이혼이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게 만들었습니다.
5. 캐서린 하워드 헨리 8세가 49세였을 당시 캐서린 하워드는 18세였습니다. 그녀와 결혼하면서 헨리 8세는 안정을 찾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캐서린 하워드는 시종이나 악사 등 여러 남자와 불륜을 멈추지 못했고, 결혼 전부터의 문란한 과거가 드러나 결국 유폐되고 앤 불린에 이어 런던탑의 단두대서 목이 잘리는 운명을 맞고 맙니다.
6. 캐서린 파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된 후 헨리 8세가 맞은 그의 마지막 왕비입니다. 그녀는 매우 순종적이고 여성스러운 휴식처 같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사생아가 된 메리와 엘리자베스(앤 불린의 사후에 엘리자베스 또한 메리와 마찬가지로 사생아가 되었습니다.)를 불러들여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후에 헨리 8세 사후에는 그의 3번째 비였던 제인 시모어의 동생인 토머스 시모어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24년)를 제외한 다른 부인들은 거의 2~3년정도밖에 그 세력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제인 시모어는 17개월이고 클레브스의 앤은 신방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ㅁ=) 음.. 헨리 8세 이렇게 보면 참 문제가 많은 왕 같죠^^ㅋ. 하지만 성공회를 영국 국교회로 지정하면서 기존 카톨릭 교회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왕의 소유로 만듬으로서 왕권을 강화시킨면도 있구요. 그가 그토록 아들을 원한 이유(부인을 바꾸기 위한 핑계일수도 있지만요.)도 다르게 생각해보면 영국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구요. 헨리 8세 이전에 영국에 한명의 여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왕 시절엔 많은 사건들로 인해 국가질서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해요. 또다시 그런 일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을 원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의 여성편력은 그의 정신병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말년이 될 수록 헨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 다나요..(정확한 내용은 기억아 안나는;;) 그래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부인을 갈아치운 듯...
출처 내용은직접작성이구요사진은네이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