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장씨 전국 청장년회 회장 이취임식이 있는 날로 장세완 회장님이 임기 2년을 마치고 이임을 하시고 신임 장택현 회장, 장진 수석 부회장이 취임을 하셨다.
인동장씨 전국 청장년회는 전국에 산재한 인동장씨 소문중을 대표하는 분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현재 회원 150여명이 참여 하고 있다
회의 진행은 종중 모임 답게 시조공 사당이 있는 옥산사에서 개최 하였으며 회의 시작전 알묘례를 행한 후 본 회의를 개최 하였으며 그외 회의 진행은 다른 모임의 회의와 별반 다름 없이 진행이 되었다.
장소는 구미 옥산사로 옥산과 인동은 공히 구미의 옛 지명 이기도 하며 한때는 인동 도호부 였기도 했지만 나라님의 미움을 받아 인동 현으로 강등 되기도 했고 인동 면으로 강등되었다가 지금은 구미시의 작은 동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 인동 장씨는 알아도 인동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명도 바뀌고 하니 인동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 인동장씨와 옥산이라는 지명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으로 한때는 인동장씨를 사용하기 이전에 옥산 장씨로 사용을 하기도 했는데
옥산 역시 인동 이전에 사용한 지명 이고 구미시 인의동 인동중학교 앞에 있던 뽕긋하게 솟은 야산이 옥산 었는데 이곳이 천하 명산으로 알려져 임란때 중국의 장수 리여송이 이곳의 풍수적 명당의 기운이 넘쳐 나는 곳이라 감탄을 할 만큼 명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이 인동 장씨의 관향산인 옥산 이었다.
無常老病(무상노병) 무상한 세월에 늙고 병드는 일은 不與人期(불여인기) 사람과 기약을 하지 않는다. 朝存夕亡(조존석망)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없어져서 刹那異世(찰나이세) 찰나 사이에 다른 세상이 된다. - 發心修行章 -
그리고 구미시의 도시 계획으로 인동장씨 시조공을 모시는 사당인 옥산사가 도시 계획으로 이전이 불가피 하게 되어 현재의 옥산사로 이건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옥산으로 이 야산에 터를 딲고 초석을 다져서 현재의 옥산사를 건립 하게 되었다.
유학산에서 발원한 지맥이 천생산을 거쳐 울통불퉁 꺽이고 틀어지고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을 하며 한마리의 용이 승천을 준비하고 기다리듯 해서 지맥이 굽이쳐 흘러 내려와 그 한 점을 찍은 곳이 옥산이고
좌측으로는 봉두암산이 인동 지역을 휘감아 내려와 낙동강 물을 마주하고 머물렀으니 좌청룡이 옥산을 감싸고 있는 지세요
오른쪽 역시 팔봉산 까지 지맥이 흘러 내려가 부지암에서 낙동강 울을 만나 머무르니 우백호의 지세에 앞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있고 멀리 안산으로는 금오산이 한눈에 들어 오니 옥산이 능히 오산낙수를 가슴에 품은 천하 길지라 하는 이유이다.
朝行過洛水(조행과락수) 아침에 걸어서 낙동강을 지나니 洛水何漫漫(낙수하만만) 강물은 어찌 그리도 유유히 흐르는가. 午憩望鰲山(오게망오산) 낮에 쉬어가며 금오산 바라보니 鰲山鬱盤盤(오산울반반) 금오산은 울창하게 서리어 있어라. 淸流徹厚坤(청류철후곤) 맑은 물은 땅 속 깊이 스미고 峭壁凌高寒(초벽능고한) 깎은 듯한 절벽은 높이 솟아 차가워라. (중략) - 過吉先生閭 중 / 李滉-
그래서 인동 일원은 수않은 명공거경(名公巨卿)과 홍유석학(鴻儒碩學)을 배출한 유방백세(流芳百世) 땅이자 인문학을 꽃피운 도학군자(道學君子)와 선비의 땅 이라고들 한다
인동은 구미시의 낙동강 동쪽 지역을 일러 인동 이라 하는데 인동의 지명은 도덕 군자의 지향점인 인의(仁義)로 인의는 인간이 지닌 본성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인(仁)과의(義)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결국 인동은 곧 인의 이며 인의가 실현 되려면 예(禮)와 지(智)가 따라야 하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道德)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인동은 곧 인의를 실현하는 선비의 땅이자 도덕군자의 꿈과 이상을 펼치는 이상향의 땅인 것이다.
다시 인동장씨 전극 청장년회 회의가 끝이 난 후 이아기다.
역시 어느 모임이든 비슷한 나이 또래가 모이면 의기 투합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와 동갑이 되는 회원 넷이 1박을 하고 가기로 사전에 의논이 모아져 옥산사에서 1박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추가로 5분이 가담을 하여 9명이 같이 1박을 하게 되었는데 남으신 분 면면을 보니 지난 가을 설악산 흘림골 산행에 참여 하셨던 분들이다
사람이 여럿이니 그런지 역시 저녁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양양에서 오신 석일 감사께서 우연히 TV시청증 구미에 있는 김해뒷고기 집이 맛집으로 소개 되었다는데 그걸 오기전에 보았다며 먹으러 가잔다.
검색을 해보니 생각 보다 김해뒷고기 집이 여러 집이라 우리는 옥산사에서 가까이 있는 집을 선택 해서 가게 되었는데 불황에도 아랑곳 없이 맛집은 역시 손님으로 넘쳐난다.
뒷고기는 고기의 부위별로 해체 작업을 한 후 뼈다귀 등에 남아 있는 고기를 분리 작업을 한 고기를 뒷고기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고기가 맛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밥값은 청주에서 농업용 자동화 기계 제조업을 하고 있는 장자동화 대표 재수 부회장께서 손자 자랑을 한 것을 핑계 삼아 계산을 하시겠다 해서 말리지 않았다.
식후 일부 알딸딸한 기분에 일잔의 유혹이 더 있었지만 사당에서 잠을 자야 하고 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정갈함과 경건함이 있어야 히니 깔끔하게 양주 한병으로 교통 정리가 되었다
숙소로 이동을 해서 양주 한병을 9명이 나누니 간에 기별도 안가는 모양 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래서 모두들 밤 11시도 되지 않은 시간 빠른 잠을 강요 받게 되었다.
樓外碧梧樹(누외벽오수) 누각옆에 벽오동 鳳兮何不來(봉혜하불래) 봉황은 오지않고 無心一片月(무심일편월) 무심한 달 한조각 中夜獨徘徊(중야독배회) 한밤중 홀로 배회하네. - 樓外碧梧樹 / 鄭澈 -
수천평의 옥산사 경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 하는 한옥의 옥산사 강당 그리고 옥계서원과 동,서재에 더넓은 정원과 강당.
어둠이 드리워진 옥산사 경내에 조명이 들어 오고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의 끝선,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한옥의 아름다움이 또 있었을까?
감동이다. 시조공을 모시는 옥산사 사당과 불사이군 충절을 자랑하는 충정공 송은 선조님을 모시고 배향하는 옥계서원이 있는 곳 유서깊은 천년의 고향 옥산사에서의 1박은 내 정체성에 대한 진한 감동이고 가슴 벅참이다
수맥이 없는 명당이라 그럴까 밤 11시가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순간의 뒤척임도 없이 편온한 숙면을 이루었다.
휴일 아침이라 바쁜 일들이 있는지 다들 갈길이 바쁘다니 부랴부랴 아침이 되는 식당을 검색하고 찾아 보니 옥산사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이 양평 해장국이란다.
쌀쌀해진 아침 기온에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해장국 한 그릇 모두들 입맛에 잘 맞는 모양인데 밥값은 교장으로 정년을 마친후 귀촌을 하여 거창에 거주하고 계신 재철 부회장 께서 하시겠다는데 연금에 학교 안전 지킴이 수당까지 더하니 돈 쓸 곳이 없으시단다.
여운이야 남지만 다들 갈길이 바쁘시다니 커피한잔 나눌 여유도 없이 움직임이 바빠진다
바닥에 콩 한줌을 뿌려 놓은 듯 양양으로 원주로 서울로 청주로 거창으로 창원으로 대구로.. 점점이 흩어진다.
첫댓글 후손들의 유숙을 시조할아버님과 옛 조상님들의 보살핌이 계셨는지 숙취느낌마져 말끔하게 해소 된 참으로 안온한 잠을 잤습니다.
생생한 행사기 올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먼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가셨지요.
함께해주신 덕분에 즐거운 행사 였습니다
스타카토!
김사힙니다
@장병덕(중리,34) 내용이 너무 방대합니다. 요점만!
@張眞植 중리파(종파)33 적당히 알아서 골라 보이소
이글 다른 곳에 올리는 글인데 ...
기왕에 쓴 글이니 올리는 것입니더
일일이 입맛에 다 못 맞춥니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