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記(檀弓)의 “先 君子”는 이런 것입니다.
諸賢께 “先 君子”에 대한 소견을 드립니다.
단궁의 기록은 子思의 부인(아들 白의 母)의 상에, 제자들의 물음에 (자사가) 대답을 하는 대목입니다.
아래 원문은 예기(단궁)의 ‘先君子’ 부분입니다.
[子上之母死而不喪。門人問諸子思曰。昔者。子之先君子喪出母乎。曰然。子之不使白也喪之。何也。子思曰。昔者。吾先君子無所失道。
道隆則從而隆。道汚則從而汚。伋則安能。爲伋也妻者是白也母。不爲伋也妻者。是不爲白也母。故孔氏之不喪出母。自子思始也。]
子上(자사의 아들 白, 공자의 증손)의 母가 죽었는데 상을 입지 않았다. 문인들이 子思(공자의 손자 伋, 白의 父)에게 묻기를 “옛날 선군자(공자의 아들 伯魚)께서는 出母의 상을 입었습니까?” 하니 “그렇다.”고 하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白(자사의 아들)으로 하여금 상을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자사가 말하기를 “옛날 우리 선군자께서는 失道하는 일이 없었다. 도에 비추어서 높여야할 것이면 따라서 높이고 도에 비추어서 강쇄할 것이면 강쇄하였다. 그러나 나(伋; 子思)야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아내가 되는 자는 白의 母가 된다. 나의 아내가 되지 않는 자는 白의 母도 될 수 없다.” 했다. 그러므로 孔씨가 출모의 상을 입지 않은 것은 자사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註]; ①孔子(丘, 仲尼), ②공자의 아들; 鯉(伯魚), ③공자의 손자; 伋(子思), ④공자의 증손; 白(子上)
◈ 본문에서의 ‘先君子’는 子思의 父(伯魚)로서, 孔子는 본처(伯魚의 母)와 헤어졌다는 기록(出妻)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出母’는 伯魚의 母입니다.[이것이 史實(子思曰 昔者 吾先君子無所失道)입니다.]
위의 사실을 모인이 (저에게) “禮記集說大全이나 禮記註疏(鄭註 孔頴達疏)는 고사하고 禮記大文도 만져보지도 못한 결과”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만져보고도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위인이어야 합니까?[한마디로 ‘草某’는 사실을 왜곡하는 斯文亂賊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의 말처럼 “오류에 현혹되거나 착각하시는 일이 없도록 (정말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본지에 대한 반론에 대하여]-----
諸賢께, 추가로 덧붙여 드리는 글입니다.
禮에 出母를 위해서는 齊衰杖朞의 상복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자는복을 입지 않고 마음으로 3년 동안 상을 지킵니다. 자사의 아버지 ‘伯魚’나 아들 ‘子上’은 모두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사람이므로 예에 따라 당연히 복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백어는 그의 출모를 위해 朞年의 복을 입고 곡도 하였습니다. 이를 공자가 듣고 지나치다고 하니 그제야 그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사가 아들 백에게는 출모의 상을 입지 못하게 한 것은 예의 바른 도리를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로는 孔씨가문에서는 출모를 위하여 복상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내용입니다.
◈ 참고로 여기서의 논점은
①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사람은 복을 입지 않아야 하는데 ‘伯魚(공자의 큰 아들)’은 기년복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子上(자사의 큰아들)’은 예법대로 입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② 또한 “先 君子”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인데, 제자들이 자사에게 물었고, 자사가 분명히 “吾先君子”라고 답하였습니다.
③ 저에게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말하기를, 공자는 (부친 叔梁紇의 초취) 施씨의 복상을 예로 드나, 공자의 字가 ‘仲尼’이듯이 아버지를 잇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그러므로 공자는 服을 입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