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3. 공감5시
제목: 하동, 용골
1. 오늘은 하동과 용골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 주신다고요. 하동과 용골은 어디에 있는 곳인가요?
하동과 용골은 우리 귀에 참 익숙한 마을이름입니다. 전국에 걸쳐서 그 이름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드릴 마을은 정선군 임계면에 있는 문래리와 용산리의 일부에 해당하는 마을입니다. 문래리는 1,2,3리로 되어 있는 데요. 1리는 양지말, 3리는 음달 또는 응달말, 2리는 하동으로 부릅니다. 마을 끝에 있다고 해서 하동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용산리는 1리 월탄과 2리 용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래리 하동과 용산리 용골은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역이고 골지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생활문화권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생활문화권이 같은 두 개 마을, 상당히 낭만적인 것 같은데요. 먼저 그 형상이 궁금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하동이든, 용골이든 어느 쪽으로 들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정선은 어디를 가나 넓은 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간마을에 비탈 밭이 대부분입니다. 천 길 낭떠러지가 높은 산만큼이나 뼝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 정선이지요. 그런데 이 지역은 나름대로 꽤나 넓은 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개의 넓은 들 사이로 길게 늘어진 태극문양을 이루고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이 일품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와!’라는 감탄사를 발하게 되지요.
3. 그럼 넓은 들이 있다면 정선의 다른 지역처럼 높은 산은 없나요?
정선에서 산이 없는 곳을 찾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겠지요. 높은 산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역시 이곳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산도 역시 두 마을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이름 있는 산은 문래산(文來山)입니다. 이름이 참 좋지요. 글이 오는 산, 문명을 데려 오는 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발 1080m의 높은 산인데, 이 산 역시 두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터전입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길게 능선을 이루어 가도 가도 산길이 이어집니다. 아래에 펼쳐진 마을과 강,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진 산능선이 보입니다. 또 산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곳곳에 있는 멧돼지 은신처도 눈에 띱니다. 갈나무를 이빨로 꺾어서 둥글게 말아 놓았습니다. 볼 때마다 언제 멧돼지가 뛰어나오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쫙 끼칩니다. 산꼭대기에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하얀 물돌을 지고 올라가서 H자와 둥글게 땅에 박아놓아 헬리곱터가 내릴 수 있도록 한 헬기장도 있습니다.
이 문래산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름도 문래리가 되고요.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초등학교 이름도 문래초등학교였습니다. 저도 제 호를 문래산인(文來山人)이라고 했지요. 바로 제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입니다. 문래산을 앞으로 하고, 유유히 흐르는 골지천을 끼고 있는 언덕 위의 초가삼간이 저의 집이었습니다. 하동들과 용골들이 또 한 눈에 들어왔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4. 문래산 참 이름이 좋습니다. 또 어떤 곳이 있나요?
문래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엔, 아기장수전설이 깃든 우룡산 또는 우롱산이라고 하는 산이 역시 천 길 뼝대와 맑은 물을 휘감으며 서 있습니다. 우룡산은 아기장수를 잃은 용마가 사흘 낮밤을 울다가 아기장수가 없음을 알고 우룡산 앞 용소에 빠져 죽었다고 해서 지어졌습니다. 용마가 울었다는 뜻이지요.
우룡산은 용골에 있는데, 아기장수의 발자국이 찍힌 장수바위는 하동의 웃새먹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곳의 아기장수 전설도 대부분의 아기장수전설과 같이, 아기장수가 태어났음이 나라에 알려지면 역적이 되어 삼족을 멸한다고 해서 비운의 죽임을 당합니다.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겨드랑이에 난 날개를 잘리고 팥 세 가마니와 맷돌에 눌러 죽었습니다. 아기장수가 죽은 후 용마가 나왔는데, 아기장수가 죽었음을 안 용마는 용골의 넓은 들을 치 뛰고 내리 뛰기를 사흘 밤낮을 하고 하늘로 솟구쳐 날았다가 용소에 몸을 빠져 죽었지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민중들의 바람이 좌절될 때마다 아기장수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이야기 되었습니다. 비리가 없고 불합리가 없는 이상향을 아기장수가 태어나서 이뤄주기를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또 우룡산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이 박아놓은 커다란 쇠말뚝도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단처럼 만들고 그 사이로 말뚝과 칼을 박았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그곳에 갔다가 다칠까봐 우룡산 위에는 꽃문댕이가 있다가 아이들 간을 빼먹는다고 했지요.
우룡산 천 길 뼝대에서 계곡을 만들고 물길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곳이 있는데, 그 물은 사람들이 약물이라고 했습니다. 따뜻한 여름철이 되면 땀띠 같은 피부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나다고 해서 우룡산 약물에 가서 폭포를 머리서부터 맞았습니다. 시원하기도 하고 미끈거리는 느낌이 났는데, 땀띠와 옻과 기계충과 옴 같은 피부병은 대번에 나았습니다. 어머니 따라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4. 문래산도 그렇고 우룡산도 그렇고 참 재미있는 산입니다. 그렇게 추억이 깃든 산이 또 어떤 것이 있나요?
아무래도 가장 추억이 많은 산은 집과 가까운 산이겠지요. 집 바로 뒤에는 새먹이가 있고요. 새먹이를 지나면 조개봉과 태양봉이 있습니다.
조개봉은 산꼭대기에 조개껍데기가 많아서 부르고요. 아마도 아주 옛날 바다였던 모양입니다. 바위에도 조개껍데기가 붙어있고요. 돌 사이에도 간혹 조개껍질이 보입니다. 태양봉은 그쪽으로 동해바다에서 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태양봉은 멀어서 자주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조개봉은 산나물을 뜯을 때 많이 갔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곳에 가면 바다가 보인다고 해서 친구들과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본 바다는 아주 멀리 새까만 띠를 기다랗게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바다는 까만색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 본 바다였으니까요.
5. 아까 강물이 길게 태극모양을 이루며 뻗어있다고 했잖아요?
참 맑고 아름다운 강입니다. 강 이름은 골지천이라고 합니다. 남한강 상류인데요. 한강 발원지라고 하는 태백 검룡소에서 약 5십 리길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물고기가 많은 강도 드물 것입니다.
이 강은 이곳 사람들의 젖줄이지요. 옛날에는 식수, 생활용수, 농사용수 등 안 쓰인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아름다운 자원이었습니다. 참 많은 추억이 이 강에 스며있습니다. 고기도 잡고, 멱도 감고, 얼음 썰매도 타고, 시름을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가 천렵을 하기도 했고요. 삼베를 할 때 색을 내고 양잿물을 씻을 때도 이 강에서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강에서 생활했으면 물속에 있는 바위의 모양과 그 바위 속에 든 고기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여름에 홍수가 나서 진흙물이 흐르고 며칠 지났을 때입니다. 우리 밭이 용골에 있어서 어머니께서 마을 아주머니와 처녀들을 모아 김을 매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얕은 곳으로 건너갔기에 점심을 먹으러 올 수 없었지요. 여럿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면서 “학주야 밥해 와!”하는 것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쌀이 참 귀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쌀, 보리, 조, 감자를 넣어 밥을 하고, 밭에 가서 도라지를 캐서 껍질을 까서 무쳐 반찬을 만들어서 커다란 양푼이에 넣었습니다. 그걸 겨우 들고 물을 가로질러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가 드리고 왔던 적이 있습니다.
6. 하동과 용골은 정말 다른 마을 같은 문화권이라 할 수 있네요?
그렇습니다. 용골의 방죽을 막을 때도 두 마을 사람들이 함께 했고요. 서당도 같이 열렸고요. 잔치, 농사, 학교, 치안 할 것 없이 거의 같았습니다. 하다못해 방앗간도 용골에 있어서 벼를 지고 마차에 싣고 가서 찧어 왔지요. 초등학교가 문래리에 있어서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기에 모두 선후배이기도 합니다.
오늘 따라 그때 그 친구들, 마을 어른들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