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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9월10일 이숭인이 세상을 떠났다. 도은 이숭인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 말의 절의를 대표하는 선비이다. 그래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1길 28-6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강당 청휘당, 사당 문충사, 도은 기념관이 있다. 이는 그가 성주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성주에는 가야산이 있다. 이숭인이 가야산을 노래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가야산에서 노닐다〉 등을 썼는데,
‘가도 가도 하루 종일 사람소리 없고 산새울음뿐’
인 가야산을 거닐다가
‘꽃 지는 풍경에 길을 잃었다’
고 했다. 그렇다. 꽃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
〈칠석〉에서는
‘견우와 직녀는 해마다 아름다운 날이 있으니
멀리 헤어져 지내는 인간보다 낫구나’
라고 했다. 보통 사람은 ‘만날 날이 있으니’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이숭인은
‘아름다운 날佳期이 있으니’
라고 했다.
아름다운 날!
살아오면서 언제 그런 날이 있었던가 아득하다. 인간은 본래 그런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다. 이숭인 시 〈첫눈〉의 표현을 빌면, 눈이 와도 반길 일 없는 까닭에
‘산 속 둥지를 잃고 /
먹을 것 없는 들판에서 우는’
새처럼 인간의 실존은 늘 막막할 뿐이다.
그래도 인간은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유일한 영장이다. 이숭인은 〈입춘에 약간의 술을 마시고〉에서
‘한 해의 봄을 맞으니 /
푸른 들나물 새로 보겠네’
라고 했다. 내년에도 봄날은 온다. 보통 사람에게 이 봄날은 견우직녀의 칠월칠석과 같은 것이다!
이숭인 타계 400년 후 영국 시인 셸리가 태어났다. 셸리는 〈서풍부〉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했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고 말하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도 그런 제목이 있다.
박희진은 ‘시인아, 선지자가 되라”고 외쳤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적어도 남의 말을 퍼뜨리지는 않아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시인이 드물다. 물질만능세상이 된 탓인지 사익을 위해 정치적 언행을 일삼는 ’시 기술자‘가 허다하다.
마태복음은 “가짜 선지자가 양의 옷을 입고 접근하니 조심하라”고 했다. 김광섭은 비둘기가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고 했다. 현대인은 꽃 지는 풍경, 아름다운 날, 푸른 들나물에 대한 기대 모두를 잃고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현대는 더욱 진정한 시인의 존재가 절실한 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 기술자‘만 가득하니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