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地動說[지동설]하면 사람의 물리학 정도로 서구문명의 쿠페르니쿠스의 혁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이치인데? 쩝...
天 하ᄂᆞᆯ〮텬 天道尚左日月右旋
地 ᄯᅡ〮디〮 以形體稱曰天地地道尚右水泉東流
우리는 한문으로 이조시대 초딩국어교과서 1527년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보고는 전혀 주석을 해석도 못합니다, 저건 천문과학입니다, ㅎㅎㅎ 해석을 할 수 있나요?
하늘 천, 하늘은 도상[삼신도]에서는 좌선하고 일월 천제는 우선한다...
여기여서 일월은 해와 달이 아니고 "해와 지구"다.
땅 지, 형체라고 하고 이는 천지가 지다, 즉 지는 하나의 지일로 보나 형체로서 칭하나 둘로 二로 천일 지일 즉 "천지일체"가 지다. 도상[삼신도]에서는 "우수천은 동류"다, 즉 오른쪽의 샘물은 동쪽으로 흐른다, 즉 지구는 우선이다. 좌에서 우로 서에서 돌으로 돌고 있다 이게 지동설이지 뭔가요?
우리는 常識[common sense]로 당연한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말했다 알고 있었다고 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Unbelievable Matter로 불가시의한 일이다. ... 하고 무시하고 버리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기원전 2181년에 이미 모음 [ㅏ ㅑ ㅓ ㅗ ㅛ ㅜ ㅠ ㅡ ㅣ]가 있었다. 그럼 그 쓴 유물과 유적ㄷ을 내놔라고 질알 질엘 질울하고 자빠집니다.
"언어"와 문자도 모르는 것이지요, 즉 저렇게 자모로 모음은 문자로 문을 이루는 글자의 자모가 있엇다는 것은 아예 문자발명국이다, 문제는 발음으로 언어를 말한다, 우선 유물과 유적이 없어도 화석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람은 구전의 서로 음으로 전한 "언어"라는 매개체가 있고 "한국인"은 한국어를 합니다, 즉 언어계통도를 따지기 위한 연구가 아니고 음운론을 연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으로 모음? 음 영어와 라틴 알파벳은 5모음으로 [ㅏ ㅔ ㅣ ㅗ ㅜ]가 기본 모음으로 "유태인"의 창조의 서"등에는 5음7조 등 음계로 표시한 음악의 음계로 문자를 알파벳의 모음을 구성하고 자음도 아설순치후 반치 반설음으로 마치 유태인의 문자제자원리처럼 이야기하는데 이는 중국의 음운론으로 전혀 음운의 원리도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 즉 '자모"가 없이는 음운의 원리를 말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망각하고 마치 있는 것처럼 한국인의 이야기를 음양오행이라고 하는데 아니고 일변위칠로 북두칠성으로 칠정산의 이치다 "일월수화목금토"로 이루어진 정산, 상수의 이치로 천문의 이치로 자음도 이루어진다, 삼신 천지인 원방각 덕혜력 성명진 조교치, 형언위, 형음의 등등 전부 석삼극 무진본의 기본 사고의 틀로 웅얼알은 일체다 하나다. ㅎㅎㅎ
자 쉽게 말해서 우리 정음은 하루? 일주일이면 다 압니다, 28자에 합용해서 초성 19자 중성 21자 종성 27자를 하더라도 이는 총 67자가 아니고 58자로 합용자음의 종성으로 ㄶ, ㅀ ㄼ 등등이 의미소로 코다로 들어간다는 것정돋입니다, 없다 ㄻ ㄶ 등등 종성 합용자음은 그 어느나라에도 없는 종성의 의미소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 이게 최하위 미개한 인간이 쓸 수 있는가/ 아니다로 정말 위대한 언어로 한글은 더더욱 어려운데 우리는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ㅡ ㅓ]만 알아도 이 세상에서는 없는 언어를 쓰고 있다 디히다 듸히인데요/ ㅎㅎㅎ 듸를 알아요/ 뒤는 어떻게 의, 희, 듸, 릐, 등등 [ㅢ]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냐고요? 나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고등문화의 한국인들입니다 상상이 잘 안가요, 어떻게 저런 사랑의 물리학 등 아름다운 영상의 시가 나오나?? 그런데 그 소리를 다 적고 맛깔스럽게 쓰는 정도의 수준은 신인이다 신선이다는 소리로 너무 너무 신기한 나라의 사람들로 정말 귀중한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존중해주고 북돋아서 정말 올바른 생각과 사고로 참된 진리다, 있었는데 이를 다시 회복하여 살려서 오늘에 되살리자,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위대한 민족이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민족입니다, 아니 어떻게 요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서로 영남이라 신라인이고 호남이라 백제인이라고 저리도 싸우게 해놨을까? 배수지가 백제왜년이라니, 쩝. 나는 웃을 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다, 정말 큰 일 난다고// 만하고 나서 뭘 찾냐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뭘 다시 뛰냐고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웃고 있을 일인가?
아니 기원전 2311년 경인년에 "나라를 그래 朝鮮이라고 이리저리 그려서 이를 '됴션"이라고 비로소 처음으로 칭하다." 자랑스러워서 적었더니 한다는 소리가? 어디서 조작한 것이다. 읍스...
전지의 표상이고 천지다. "대명천지"로 "천자의 천지/누리"라는 천자국 政體다.
야.. 이놈아, 그냥 "나라"를 조선이라고 했다고 고조선 이 사발이 고나라야, 고나라...
착각의 서구문물로 영어는 500년 역사지 5000년이 역사가 아닙니다. 즉 산스크리트어와 영어로 사전으로 말했다고 해서 그곳에 어원이 다 있다? 이는 시대착각으로 우리는 기원전 3897년에 서글을 썼는데 불경을 적기 위한 산스크리트어 문자는 빨라도 기원전 14세기고 보통 기원전 10세기경에 발행한 문자로 봅니다, 수메르 문자가 기원전 3000년경 혹은 3500년경이라고 하는 세계 최초의 문자다. 그런데 그 보다 앞서서 문자가 나왔다 놀라운 것은 자모와 성음의 이치가 있었다?? 음, 이건 그 전에 있던 마고지나 혹은 그 후의 하늘나라에서 알고 있던 고도의 문자를 가져와서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서이 불가사의는 하나두개가 아니다, 천자의 년호는 60갑자년호다.. 문자로 전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제왕군은 일체 천자다, 음..
자연과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수리, 지리, 등 물리학, 하학 생물학의 종합학문은 천문학입니다, 인문지리 천문의 시작은 제네시스 창세기는 바로 북극성 북두칠성 "하나"다, 하나는 바로 서양에서는 "모나드"라는 무낳, 모낳으로 하는 무다 나는 낳다 모나드다. ㅎㅎㅎ
아세요 "하나" 모나드가 뭔지?
2디짓이다 ○●이다 우리는? 천일 일, 지일 이, 인일 삼이다 즉 천지인으로 울얼알이다. 일체다.
하나론이다. 우리가 "하나"에요, 천부로 "하나" 韓이다.
울얼알은? 천지인은? ○◎●이다 즉 서양이나 중국의 음양이원론 음양일원론이 아니고 삼위일체론 삼신일체론 삼황상제 일체론 일즉삼 삼즉일 일삼기용 삼일기체다, 등등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무한한 사고의 틀부터 사상, 철학, 신학, 종교학, 자연과학 물리, 생리, 심리 삼리의 이치까지 정치/ 부도-사도-군도의 일체는 건국이다 乾國이다 建은 붓 聿行 즉 法律 법전으로 8條로 다스린 것이 君道다... 음.. 음...
우리는 일식 월식의 측정.. 중국보다 더 정확했다....
○중국보다 정확했던 일식의 기록
삼국사기에는 일식(日蝕)에 관한 기록이 66회 나온다. 고려사에는 132회, 조선왕조실록에는 190회 나온다. 혜성은 삼국사기 57회, 고려사 87회, 조선 103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흑점에 관해선 고려사에 34회의 관측 기록이 등장한다.
“일식을 관측하는 것은 왕조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식을 제대로 예측하면 별 탈이 없었죠.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일식이 나타나면 흉조가 든다고 생각해 백성이 동요했습니다. 일식을 제대로 예측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문자가 있어야 하고 정확한 달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전의 기록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 수학적인 기반도 갖춰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일본의 역사가 이이지마 다다오는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김부식이 중국의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식의 기록은 이처럼 당시의 과학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이이지마의 학설이 한때 우리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삼국사기를 사대주의적이라고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던 데다 역사가들이 과학을 잘 몰라서 반박을 못했던 겁니다. 이이지마의 학설을 처음으로 반박한 이는 김영훈 한양대 교수로 수학자였습니다.”
김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우선 중국의 역사서에 나와있지 않은 일식이 삼국사기에 기록(신라 점해왕 10년)돼 있다는 점이다. 또 일식이 있어야 하지만 없었다는 기록도 발견했다. 애장왕 2년의 일이다. 당시 천문관은 ‘일식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고 했다.
“이 기록은 일식 관측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현대 과학으로 다시 계산해보니 그날 실제로 일식이 있었던 것으로 증명됐습니다. 관측을 제대로 못했을 뿐인 겁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에는 ‘일식이 있었다. 그러나 사관은 보지 못하고 고구려에서 들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런 근거들이 역사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에 의해 제시됐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내에 과학사 교수는 전국 대학들을 통틀어 다섯 명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日蝕[일식]을 아세요???
이 그림에서 일식이 "지구가 평평한" ㅁ으로 方이면 일어나나요? 상식이지요, 절대로 계산을 못하지요, 즉 이를 관측한다와 언제 일어날지를 알고 계산한다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로 이를 보고 있어다는 것을 적었다 역사학자다, 그러나 역사학자는 보고 적은 것, 듣고 적은 것으로 실제 게산 왜 일나는지를 생각하고 게산할 능력은 사고의 틀이 다르다, 이는 지구가 둥글다, 중력이다 모든 물체는 체가 圓으로 모든 천제이 물리학은 원에서 시작한다, 즉 하늘으 허공이다 창공-현공-무공의 삼천이다 나는 이 공부터 이상해요, 空 볼 공으로 ㅇ 공공칠 빵 ㅇ이다는 이 소리. 이 개념이 기원전 3897년 천훈이라는 곳이 허허공공 허공이 무하늘 공으로 허공 무공 무하늘 무다, 이는 사고의 바탕이 무하늘 무로 없다가 아니고 있는데 너무 커서 모른다 무성이고 무형이고 무청이고 무색의 하늘 무하늘이다 무부재 무불용이다 무형질 무상하사방이다 무극의 무고 무궁화의 무고 巫堂의 무고, 음, 이 무라는 말로 인해 사고이 시작 앗 무시무졷이다 무단무예다 앗 이런 무로 시작해서 무로 끝난다 무시무종 생생지생이다, 아이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저승으로 저이저승이다, 삼승은 구극지도다, ㅎㅎㅎ
하고자 하는 말은 저 일식은요 관측이냐, 즉 보인 것을 적은 것인가/ 첨성대처럼 천문 별의 관측소가 아니다, 바로 일식 월식의 해와 달을 관측하는 365.25일의 해의 관측대다, 음. 뭘 알고 관측하고 있던 것이다, 놀랍다 별관측소가 아니다...
지동설???
○1697년 지동설 등장
기사 이미지 보기 다음은 인류의 문화를 바꾼 지동설(地動說)이다. 서기 150년 그리스의 푸톨레마이노스가 쓴 ‘수학모음집’이라는 책에 천동설(天動說)이 등장한 이후 1400년 동안 천동설이 정설이었다. 이 책이 아랍어로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뜻 알마디스트라는 책으로 번역되면서 유럽뿐 아니라 아랍권까지 천동설이 지배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며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1532년이다. 지동설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 뒤인 1632년 갈릴레이다.
“조선시대에 김석문(1658~1735)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양반집 자제였지만 과거에 뜻이 없고 혼자 공부만 했던 사람입니다. 수많은 서양의 책을 접하면서 영향을 받아 ‘역학도해(易學圖解)’라는 책을 썼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지구 주위를 달이 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구는 둥글다’, ‘지구는 남극과 북극을 축으로 1년에 366회전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습니다. 역학도해가 나온 해는 1697년입니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담긴 책은 1767년에 출판됐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조선에 가져온 책 중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정하는 오위력지가 있었습니다. 김석문은 이 책을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100년 전 서양에 있었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홍대용(1731~1783)은 김석문의 역학도해를 읽고 지구 자전설(自轉說)을 발전시켰다. 그의 책 의산문답(山問答)에는 ‘지구는 하루에 한 번 돈다. 지구의 둘레는 9만리, 하루는 12시간이다. 9만리의 지구가 12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보면 그 속도는 포탄보다도 빠르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홍대용은 지구가 구체라면 자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당시까지 지구가 사각형이라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개념을 뒤엎은 것입니다. 또 우주는 무한히 넓기 때문에 위아래 개념이 없고 따라서 ‘떨어진다’는 개념은 지구상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떨어진다는 개념을 지구 상공에서 땅위로 이동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또 지구가 자전하면서 지구를 둘러싼 대기도 같이 돌기 때문에 지구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튕겨나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홍대용은 ‘큰 물체가 작은 물체를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일부 썼습니다.”
○‘실험과 관측’이 부족했던 조선의 과학
지동설과 자전설이 서양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음에도 한국의 과학은 왜 더 발전하지 못했을까. 허 교수는 ‘관측과 실험’에 그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인슈타인은 “근대 과학의 발전은 갈릴레이부터”라고 주장했다. 지동설을 먼저 주장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지만 실험과 관측을 통해 증명한 것은 갈릴레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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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는 行星이다는 말이 기원전 3897년 삼일신고에 있다면? 지구와 같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 700개가 우주에 있다 이를 주재하는 것이 삼위일체 삼일신이다, 하나님이다는 내용이 있다면?? 에이 거짓말이다고 당장 국수주의자로 몰리는데 그럼 "국수" 좀 사도고... ㅎㅎㅎ
우리는 칠정산 칠요일로 "일월수화목금토"다 칠요일은 "일월화수목금토"다 놀리는 좋아해서 매일 토요이면 좋겠네. ㅎㅎㅎ 자 여기여서 월은 저 달이 아니고 지구다고 내가 말하면 믿어요? 아니요 절대로 못믿지요, ㅎㅎㅎ 칠정산내편에 지구다, 믿어요 절대로 안믿지요, 기원전 27세기 자부선인의 칠정력이다 절대로 안믿지요 기원전 36세기 칠회제신력의 칠정으로 "일월 수화목금토"다 월은 우얼로 울얼로 월이다 바로 지구다.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이는 일월로 일월성이 일체면 신이다 일월성신이다 천문인데 저 뜻은? 지구로 천지의 지르 의미하는 달 땅 지구로 이 지구의 지구는 달 문이다.
제네시스로 진 생명이다 시스 시작이다 생생지샏 무시무종은 位다 위는 바로 북두칠성 북극성으로 무시무종의 생명의 시작 제네시스를 말한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제네시스로 시스는 始作이고 제네는 생명, 생 삶으로 무나 하나시작이다 하나시작이 "無始"다 無終이다. ㅎㅎㅎ 이건 철학이네 천문이라고 합니다.
지동설 주장한 조선초의 과학자 이순지
-코페르니쿠스보다 100년 앞서-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세계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이 코페르니쿠스이고(1543년), 증명한 사람이 갈릴레오(1632)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1543년보다 100년이나 더 앞서서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한 과학자가 바로 이순지입니다.
이순지는 세종임금에게 공식적으로 발탁되기 이전, 1427년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승문원의 외교문서 담당자로 일하고 있하면서, 월식을 보고 월식이 진행될 때 보이는 그림자가 바로 지구의 그림자이고, 그 그림자가 둥글다는 것을 관찰하여 '지구는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문신들이 '그렇다면, 월식이 언제 발생하는지를 증명해낸다면 그 말을 믿겠다'고 했고, 이순지는 월식이 몇 년 몇월 몇일 몇시 몇분에 발생해서 언제 끝나는지를 계산했고, 그의 계산과 같은 시각 월식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다른 문신들도 믿게 됐다고 합니다.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한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정에 세워, 그로 하여금 천동설을 인정하게 강압한 16세기 서구사회의 분위기에 비교하면, 15세기 조선사회가 훨씬 더 학문에 대한 분위기가 진취적이었음을 증명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종 임금 재위 초만 해도 조선에는 자체의 책력이 없어서 동지상사라 하여 동짓달 중국에 온갖 진귀한 선물들을 바리바리 챙겨가서 책력을 얻어왔습니다.
세종 임금은 이 책력을 보고,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다른 중국의 책력이 우리나라와 맞을 수 없다고 여겨, 이순지에게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모두 서운관에 모아 조선의 책력을 만들 것을 명했습니다. 이 때 세종 임금과 정승 판서도 아닌 스물아홉 살의 당하관이었던 이순지가 주고받은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세종임금으로부터 “우리 조선의 실정에 맞는 책력을 만들라!”는 명을 받은 이순지는 그 자리에서 “불가(不可)하다.“고 아룄습니다. 세종 임금은 의아하여 “무슨 까닭인고 ?“ 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서운관에는 인재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서운관은 승차(진급)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른 부서보다 승차가 빠르도록 명을 내리겠노라!“
“그래도 안 옵니다.“
“어찌하여?“
“서운관은 봉록이 너무 적습니다.“
“그럼, 봉록을 올려주면 되느냐?“
“그래도 안 옵니다.”
“또 왜?“
“서운관은 중인들이 일하던 곳이어서 학문을 한 사대부들이 안 옵니다”
“그럼 공조의 노비 장영실을 면천하고, 서운관에서 일하는 중인들과 함께 벼슬을 주어 양반신분을 만들어 주면 되겠느냐?”
“그래도, 서운관 관장의 위엄이 없으면, 연구 진척이 되지 않습니다.”
지엄한 왕명에 잇달아서 토를 다는 이순지에게 세종임금은 나즈막히 물었습니다.
“허면 서운관 관장이 누구여야 하는고?”
“강한 사람을 보내주되, 전하의 측근으로 보내주소서!”
“그게 누군데?”
“영의정 정인지를 보내주소서!”
이렇게 하여 당대 학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영의정 정인지가 전례에 없는 세종임금의 파격인사로 졸지에 천민과 중인들이나 드나들던 하급기관인 서운관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영의정 정인지의 막강한 후광을 받아 이순지는 마음 놓고 인재들을 모아 천문을 관측하고 이론을 정리하여 드디어 1444년에 조선의 책력(칠정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순지가 칠정력을 설명한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82FCA3D50388C5323)
여기에서 우리는 세종 임금이 새파란 신진학자에 지나지 않는 이순지의 방자한 대답에 노여워하기는 커녕, 사실상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 우리나라 실정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책력을 만들고자 했던 강한 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칠정력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본국력>이라 이름하여 백성들에게 배포한 자주정신, 애민정신 또한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달력을 일정표 또는 시간표 정도로 가볍게 여기지만, 농업 생산이 경제 활동의 핵심이었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천체의 규칙적인 운행 주기와 질서를 측정하고 계산하여 만드는 책력은 국가통치의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한 해 전인가 방영된 TV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낱 왕실의 여사제(璽主)에 지나지 않았던 미실(고현정 역)이 신라왕조 세 임금대에 걸쳐서 권력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당나라 사신으로부터 전해 받은 책력을 독점하여, 나라의 안위를 내다보기 위한 점성술(占星術)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 일종의 상응 관계, 즉 천인상응(天人相應) 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천문은 곧 인문(人文)이기도 했습니다.
임금이 나라와 하늘의 질서를 보다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임금이 하늘이 맡긴 나라의 통치권을 튼튼하게 확보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종 임금이 외형적인 군주의 위엄을 버리면서까지 천문기상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연구에 노심초사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순지가 세종 임금의 눈에 들게 된 계기는, “한양의 북극 고도를 계산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자 즉석에서 “한반도의 가운데가 북위 38도”라는 것을 보고한 일입니다. 임금은 반신반의했지만, 중국에서 들여 온 역서(曆書)를 통해 이순지가 계산한 결과가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1431년부터 이순지에게 천문 관측과 역법에 관한 일을 맡겼고, 1434년에는 새로운 동철(銅鐵) 활자인 갑인자(甲寅字) 주조 사업도 맡겼습니다.
1443년 세종은 승정원에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산학(算學=오늘날의 수학)은 비록 술수(術數)라 하겠지만 국가의 긴요한 사무이므로, 역대로 내려오면서 모두 폐하지 않았다.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도 비록 이에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알았을 것이다. 토지를 측량할 때 만일 이순지와 김담(金淡) 등이 아니었다면 어찌 쉽게 측량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산학을 익히게 하려면 그 방책이 어디에 있는지 의논하여 아뢰라.”
이순지는 세종이 이러한 지시를 내리기 얼마 전에 하연, 정인지, 김담 등과 함께 경기 안산에서 토지를 측량하는 임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토지 측량은 농업 생산과 세금 징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순지가 1436년 종5품 봉상판관(奉常判官)으로 간의대(簡儀臺- 조선시대의 천문대)에서 천문 관측 임무를 맡고 있다가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직에서 물러나고자 할 때 세종 임금은, “이순지를 대신할 사람을 천거하되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나는 마땅히 그 사람을 기복(起復- 상을 당해 휴직 중인 관리를 복상 기간 중에도 직무를 보게 함)시킬 것이다. 나는 큰일에 관계되는 사람이 아니면 기복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지금 내가 간의(簡儀)에 뜻을 두는 것이 지극하니, 간의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이순지를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승정원은 집현전의 김담을 후임으로 천거했지만, 세종 임금은 이듬해 1437년에 이순지를 정4품 호군으로 승진시켜 기복시키고자 하면서, 특히 이순지의 아버지 이맹상에게도 ‘아들이 벼슬에 다시 나오도록 하라’는 왕명을 내렸습니다. 기복의 명을 받은 이순지는 그로부터 열흘 뒤 사직시켜줄 것을 바라는 뜻을 아뢰었지만 세종 임금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기어이 임금의 곁으로 불러올린 결과 15세기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 이론으로 공인되고 있는 <칠정산>이 탄생한 것입니다.
칠정산이란, 태양과 달의 운행, 일식과 월식 현상, 다섯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의 운행, 그리고 달과 다섯 행성이 서로 가리는 현상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이 주도한 ‘칠정산 내편’은 중국 천문역법과 산학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원주를 365.2575도, 1도를 100분, 1분을 100초 등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조금 늦게 이순지가 주도하여 펴낸 ‘칠정산 외편’은, 아라비아 천문학 전통에 따라 각각 360도, 60분, 60초로 바꾸어 계산했습니다. 또한 평년의 한 해를 365일로 하고 128년에 31일의 윤일을 두었는데, 1태양년이 365일 5시간 48분 45초로, 오늘날의 수치와 비교했을 때 1초만 짧을 정도로 정확합니다. 1년의 기점을 중국이 동지에 둔 것과 달리 춘분에 두었으며, 일식과 월식 계산에서도 ‘외편’이 ‘내편’보다 정확합니다.
‘내편’을 통해 한양을 기준으로 한 정확한 천문 계산이 가능해졌으며 ‘외편’을 통해 발달된 아라비아 천문학의 성과를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함으로써 조선의 천문학은 아라비아, 중국과 함께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일본은 1643년 조선에서 보낸 통신사 박안기에게 배워 1682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에 맞는 정향력(貞享曆)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옛부터 중국은 “땅이 넓고 자원이 다양한 나라(地大物博)”라고 불리어왔지만, 등소평의 개방정책과 과학기술자 우대 정책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이제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거나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중국 정치지도자들이 과학기술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진심어린 존경의 자세와 정책 시행에 있습니다. 등소평 이후 중국 정치지도자들은 해마다 중국과학원의 엘리트 가운데 원로들을 “원사(元師:으뜸 스승)“로 추대하고, 이들이 종신토록 국가경비로 연구에 종사할 수 있는 특전을 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정초가 되면 국가지도자들이 이들을 예방하여 새해인사를 올리는 존경의 예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1월 18일에도 후진타오 중국수상은 이들 원사들을 차례로 예방하여 새해 인사를 올린 일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비해 기술강국을 외치는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태도가 비교되지 않습니까? 중국이 진정 무서운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이러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왜 할까? 바로 冊曆을 알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즉 중국인은 못만들었다,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즉 우리는 책력하면 태초력으로 기원전 104년 한문제 태초원년인 기원전 104년에 중국최초로 전국시대의 古六曆을 모아서 정한 중국최초의 책력이라고 자랑합니다. 殷曆도 있는데 은나라 역법이다, 그럼 은나라는 기원전 1766년 ~ 기원전 1122년이다. 중국의 단대공정으로 하상주 삳나라/은나라의 년대는?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046년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나는 기원전 1766년 을미년이다 삼국유사에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주호즉위년 기묘년 기원전 1122년이다 아니 한문제도 모르던 태초력도 없던 기원전 1766년? 홀달단군시, 이 홀달단군에 걸리는 것이 바로 戊辰五十年 五星取婁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놀란 것은 기원전 1733년이 무진년이다 이를 증명한 것이 박창범교수인데 25년, 30년후에는 조작이다. 뭐가? 무진년 기원전 1733년이?? 누가 무진년하고 썼냐고? 있으면 내놔라, 완전 똥아이들이다.
오성은? 수화목금토다, 아니 정말 기원전 1733년에 수화목금토성을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이를 관측한다/? 여러분은 밤하늘에 정말 수화목금성 취합이 아니고 밤하늘에 있다면 찾을 수 있어요? 가르쳐 주지 않은면 모르지? 아닌가? 알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다..
取婁로 이는 "양자리가 아니다.' 전부 이상요상 망측한 당나라 聚合이라고 문을 고쳐서 단군세기에 적었는데, 단서대강 등 1920년대 1950년대 출판된 것에는 다 取다 즉 이를 조금만 생각하면 婁는 부루 마루 등 우리나라 향찰에 아하 七星이다 북두칠성 三辰七星이 북두칠성 마루[麻婁]구나, 이는 향찰에 있는 말고 麻古는? 三神이다 三辰이다고 한문? 마고는 언문, 향찰 향어의 찰이다 그럼 夫餘는 국호면 북극섣 천자지표고 여는 "천지,누리"로 조선과 같이 나라의 국호로 호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이 순지의 15세기전에 이미 천문력법으로 주천도수가 365.25도다. 즉 칠정산 내편은 주천도수가 365.25도로 지구의 도수로 360도 정원각이 아니고 주천도수의 내편이 한국고유의 천문학에 쓴 366신기다, 360도는 수리의 정원각으로 천문에 그림은 천문도로는 꽝이다. 알고서 말하자, 그게 정확한 것이 아니다, 몰라서 360도가 주천도수라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치가 있다, 놀랍다, 놀라워서 니는 모른다 그래도 알려준다,
천자국의 년호는 천문력법이다 개천기원력이 제천절로 개천절의 의미다,
은력 정월이 상달 음 11월 동지섣달이다, 왜 동지섯달일까? 태양력이다 우리는 구정, 음력을 차려먹었다고 하느데 아니다, 태얄력으로 동지다음날 그리고 입춘을 챙겨먹었다 즉 입춘이 봄의 시작이 세건법으로 쓴다 이것이 60계해기년법 혹은 60갑자기년법이다. 두개다 동지냐 입춘이냐 서양 신정이 틀렸다고... ㅎㅎㅎ
24절기는 태양력 즉 양력달력의 삭일과 보름이다 1일과 15일이다는 소리다 태음 달력이 아니다.
우리는 地球 혹은 지원[地圓]으로 일월수화목금토의 월이 "지구"를 의미한다 즉 지구성으로 오성에 칠성으로 칠정으로 철정이다 "모든 천체는 제가 圓"이고 용이 方이다는 체용론은 들어도 무감각합니다.
환단고기류에 전부 地球라고 하면 위서로 판정됩니다, 이세요???
地方? 地元? 하면 정말 이게 지구였나???? 고려시대 개인문집 선도사서, 도참설, 음양설 등은 禁書로 지정되어 이게 무슨 일인가/ 좌도 좌파라도 있어야지요, 읽고 연구하게 해야지.. 아닌가?
똑 현재와 같다, 여호와[女好媧]은 "하나님"이야 데우스는 "하느님"이야 다 가져라, 엿같은 기리사독교인들아 목쟈의 스승님에 신의 아버지늘아. 도대체 신이 몇명이야? 신의 아버지 신부들 나의 신부여..
丙子十五年. 監星官皇甫德奏曰, 臣觀測天文五十年, 推究天體之大綱, 則其最大者北極星卽恒星也. 其次太陽, 又其次有 水星金星地球星火星木星土星天明星海明星陰明星新明星等 行星. 從太陽爲中樞, 而回轉矣. 此地球亦太陽系一行星也 日則調和地球之溫度, 助成萬物之生長. 且, 地球之外廓有紅膜包圍地面[5]保全各種氣體, 故 氣體不得發散, 而 在於其範圍之內, 受太陽之熱光, 變化爲風雲雨雹霜雪電雷四時之功各殊, 故地面樓息之人與物法地而效行則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也. 若, 人不能測知自然之理, 則不能循陰陽順四時. 若 不能循陰陽順四時, 則百姓不能適合農期 不得收穫 而必不免飢寒矣. 先整曆法使適合于我國氣候者最急之務也. 帝曰然遂新製國曆頒于國中 是我國曆書之始元也.
丙子(병자, BC2085) 15년. 監星官(감성관)의 皇甫德(황보덕)이 아뢰기를 “臣(신)이 천문을 관측한지 50년이온데 천체의 대강을 미루어 밝혀내보니 그 가장 큰 것은 北極星(북극성) 즉 恒星(항성)이고 그 다음은 太陽(태양)이고 그 다음으로는 水星(수성) 金星(금성) 地球星(지구성) 火星(화성) 木星(목성) 土星(토성) 天明星(천명성) 海明星(해명성) 陰明星(음명성) 新明星(신명성) 등이 행성이 있으며 이들은 태양을 주축으로 하여 회전하고 있사옵니다. 이 지구 역시도 태양계의 한 행성으로서 태양은 지구의 온도를 調和(조화)하며 만물의 생장을 助成(조성)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지구 외곽에는 紅膜(홍막)이 지구의 표면을 포위하고 있어서 각종 기체를 보전하며 따라서 기체가 발산하지 아니하고 그 범위내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태양의 열과 빛을 받아 변화하여 바람과 구름과 비와 우박과 서리와 눈과 번개와 우뢰가 되어 사시사철의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고 원숙하게 되는 공으로서 뛰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지면의 누각에서 쉬는 사람과 만물은 땅을 법으로 하여 그행동을 본받으니 이는 地法(지법)이요, 하늘에는 天法(천법)이 이와 같이 존재하고, 道(도)에는 또한 이와 같이 道法(도법)이 존재하니 自然(자연)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알아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을 좇아 4계절에 순응하지 못하게 되고, 만약 또 이렇다면 백성들이 농사의 철에 적합시키지 못하여 수확하지 못하니 반드시 추위와 배고픔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력법을 바르게 고쳐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帝(제)는 “그렇다”고 하였다. 드디어 새롭게 나라의 력법이 나라 안에 반포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력법의 시원이다.
"옛날 神巿(신불)의 세대에 七回祭神(칠회제신)의 曆法(력법)이 있었다. 一回(일회)는 祭日神(제일신)이라 하고 二回(이회)는 祭月神(제월신)이라 하고 三回(삼회)는 祭水神(제수신)이라 하고 四回(사회)는 祭火神(제화신)이라 하고 五回(오회)는 祭木神(제목신)이라 하고 六回(륙회)는 祭金神(제금신)이라 하고 七回(칠회)는 祭土神(제토신)이라고 한다. 그때에 紫府先生(자부선생)은 해와 달의 궤도를 측정하고 다음으로 오행의 수리를 미루어 고찰하였으며, 七政運天圖(칠정운천도)를 지었고 七星曆(칠성력)을 완성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甲子曆(갑자력)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옛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즉, 子月(자월)을 上月(상월)로 하여 한 해의 처음으로 삼았고 ..."
상고 신시[신불]의 세대에? 발귀리선인이 칠회제신력을, 기워전 27세기 자부선생은? 칠정운천도로 칠성력을 완성?? 하였다 이 순지의 칠정산내편의 유래는 "천문초록"에 실려 있습니다 靑丘는 三韓을 일통한다는 내용과 함께 즉 靑丘=北斗七星이라고...
배달유기는 아니고, 신시배달본기..
甲辰四十三年. 唐堯伐其兄摯, 而卽位, 引兵來侵. 帝命橋牛遣于碣石, 練兵拒守, 堯軍自退.
甲辰(갑진, BC2357) 43년. 唐堯(당요)가 그 형 摯(지)를 벌하고 즉위하였으므로 병사를 이끌고 침략하였다. 帝(제)가 橋牛(교우)에게 碣石(갈석)에서 훈련된 병사로 막아 지키기를 명하니 당요가 스스로 물러갔다.
어떻게 저 년호, 년대를 갑지년 기원전 2357년을 동국통감에서는 아루렇지도 않게?? 쓸까? 썼을까? 어디서 봤으면 어디서 봤다고 사료, 출처라도 쓰지...
개천절의 유래?
開天紀元節 개천기원절 기원전 3897년 상원갑자년, 상달 음 11월 갑자월, 초사흘 3일 갑자일, 정자시 갑자시.. 즉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의 시작년월일시로 개천하여 기원절이다...
癸卯三十六年. 敎化洽被四表, 國家泰平, 人民安樂, 雨順, 風調, 無病長壽, 山無盜賊, 家有餘糧, 夜不閉門, 道不拾遺, 耆老歌詠, 兒童舞踊, 人人以忠君愛國爲心, 家家以設壇祭天爲主. 每晨敬拜而就業, 自是敬天之道爲國民固有之大本. 每歲國中大會以上月三日【古之歲首元日今之冬至朔日】爲祭天節倍達民族之開天開國日也.
癸卯(계묘, BC2298) 36년. 교화가 四海(사해)를 덮어 화합하니 국가는 태평하고 인민은 안락하고 비는 순하게 오고 바람을 고르게 불고 병이 없어 오래 사니 산에는 도적이 없고 집집마다 양식이 넉넉하여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아니하고 길가에서도 拾遺(습유)하지 아니하고 노인은 노래하고 아이들은 춤추고 뛰어다니었다. 사람마다 忠君(충군)과 愛國(애국)이 마음이 되었으며 집집마다 제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 주요한 것으로 삼았다. 매일 새벽에 경배하고 나아가 일을 하였는데 이것으로부터 하늘을 공격하는 도가 나라의 고유한 큰 근본이 되었다. 매 해마다 국가의 큰 모임을 上月(상월) 三日(삼일)【고조선에 한 해의 元日(원일)은 지금의 동지 朔日(삭일)이다.】에 祭天節(제천절)로 하였는데 배달민족의 開天(개천) 開國(개국)한 날이다.
도대체 믿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야 중생이니 못 믿어도, 그냥 올해 2017년은 정유년이야, 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만 최소한 양심이 있는 역사학자라면 어, 이 년대표로 년호로 년도로 정말 무진년 기원전 2333년에 우리만이 쓴 독특한 개천기원절의 기원력이란 말인가?? 하고 연구라도 하는 척 좀 하지...
그저 노아의 방주는 위대한 신의 벌이다, 전 세계가 싹슬려 나가고 시체 뜯어먹다 까마귀는 엘로힘 하나님의 명령을 안듣고, 시체뜰어먹다가 방주에 타지 못하여 이역만리 한반도에 시체뜰어먹으려 왔다 그게 삼족오다 巫堂말 들으니 요꼬라지 붉은 악마만 타령하지. 이 어녕의 5000년래 최고의 찬사 삼족오는 "시체뜰어먹는 새"를 말한다.
壬子四十五年. 始自甲辰歲, 天下有九年之水, 遼瀋之水漲溢, 平壤沉潜, 帝遣皇子四人相土地之宜卜居于阿斯達下唐莊坪, 而結㢚盡濟平壤之民. 命彭吳治國內高山大川, 以奠民居至于牛首州【今之春州】有彭吳碑.
壬子(임자, BC2289) 45년. 처음 甲辰(갑진, BC2297)년으로부터 천하에 9년의 홍수가 있어서 遼瀋(료심)의 물들이 불어 넘쳐 평양은 가라앉아 버렸다.[28] 帝(제)는 皇子(황자)와 4명을 보내 토지를 살펴보고 마땅히 거할 땅을 점치어 阿斯達(아사달) 아래 唐莊坪(당장평)에 에 살게 하였고 곁채를 지어서 평양의 백성을 다[29] 구제하였다. 彭吳(팽오)에게 명하여 나라 안의 높은 산과 큰 하천을 다스리고 백성들로 牛首州(우수주)【지금의 춘주春州】에 거하게 하였는데 여기에 彭吳碑(팽오비)가 있다.
이년도 이야기하면 안되요, 기리사독교인들에게 맞아 죽어요. 으엉으엉...
아무리 생각해도 유태인은 사기꾼같다.
천문으로 행성의 공전주기 계산을 다 했다, 오성만이 아니고 그 외의 행성까지도 계산하여 넣어야 더 정확하다, 으악 으악 으으으...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는 고조선인보다 미개하다, ㅎㅎㅎ 60갑자는 왜 60년인가?
바로 태양의 자전주기가 하루가 "지구의 60년"이란다.
그럼 태양의 공전주기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바퀴도는 것은 지구의 윈리와 같다 하루의 365.25일이다, 즉 태양의 공전주기는?
366갑자 = 지구의 21960년이란다. 으악...
세계 천문학과 학회지에 보고하고 싶단다,누가 프리니까 마음대로 가져다가 제발 좀 연구 좀해서 논문으로 천문학의 보르텍스론에 "태양의 자전은 지구의 60년이고, 태양의 공전주기는 366갑자 즉 366 곱하기 60년 = 21,960년"이다..고...
고조선의 후기에 대부여로 국호를 개칭하다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독서와 활쏘기를 일과로 삼으시고, 하늘에 제사지냄을 가르침으로 삼으셨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는 벌하지 않고 당사자에게만 미치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리셨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있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부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으며,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흘렀다.
단군왕검께서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통일하셔서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했고, 2096년을 지냈다.[환단고기 삼성기전 상.]
이 기사에서 우리는 하나 눈여겨 봐야 할 점이 바로 년호로 "병진년 기원전 425년, 주고왕시절..
중국사서에 년호로 60갑자년호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태초력 기원전 104년이고 그 이후에도 60갑자년호대신 황제국은 건원 즉 년호로 황제년호로 년을 장악했닫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당연한 듯이 병진년?? 기원전 425년이다. 멀지도 않은 기원전 425년 그래도 인정못함, 이름도 안되요, 기간도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 수 188년의 대부여 총 고조선은 무진년 기원전 2333년부터 47대 단군으로 수 2096년.. 어이되었든 고조선/대부여 폐관은 기원전 238년.. 안될까? 안되는 일인가??
"꼭 고조선 패망" 년도가 기원전 108년 "위대한 위만조선"이 한무제에게 멸망당한 년이 바로 기원전 108년 원봉 3년이요.. ㄲㄲㄲ
남에게 찬탈당한 것은 드럽게 좋아해. 우똥이가 병신도 정말 병신이야..
"정미년(丁未年, 기원전 194년) 한(漢) 혜제(惠帝) 때 연(燕) 유민들의 우두머리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차지했다. 이에 번한(番韓)의 왕인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군웅들이 요해(遼海)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뤘는데, 계유년(癸酉年, 기원전 108년) 한 무제(武帝) 때 한(漢)이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우리는 간단한 삼성기전 상.에도 다 년호로 정미년, 게유년.. 단 한 혜제, 한 무제로 그 상대의 왕, 황제의 이름은 적어서 비교,누가, 등으로 상대를 적었다 원봉은 없댜, 원봉을 적어도 이는 비교대상이지 절대년호는 60갑자년호로 이것이 "천자국"의 개천기원력이다.
지동설 지구, 구형으로 태양을 돌아야 365.25일이 나온다고, 평평한 곳에 어떻게 空轉 하늘을 도는 계산이 있는가? 우주를 보고도 지구가 납작한가???
천문년호 개천기원력을 인정을 못하면 한국고대사는 물론 전혀 역사의 해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다 위서고 다 비과학적 조작이기 때문에 한자사용 기원전 108년 끝이다, 이거 언제쯤 이똥치워가 치울래.....
갑갑한 마음뿐이다,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민다 천자국의 강역이 邑이란다, 신라는 왜 그리 못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지네가 목자씨가 더 많이 죽였더구만, 왕씨하고 차는 왜? 전 신라인은 백정으로 50% 500년 구워먹고 삶아먹었으면 그만해 이 잡새기 木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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