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의 양모(養母)를 모시고 살았던
명가문(名家門)의 하종성(河鐘成) 친구
李鶴源: 부산교대 2회 졸업,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지난 3월 7일, 친구 하종성 교장이 세수(世壽) 아흔아홉의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장두기 교장으로부터 메일로 전해 듣고 짧은 가슴앓이를 했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에 상관없이 누구 어머니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으면, 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가슴앓이를 한다. 살아오는 동안 자주 앓던 그 가슴앓이가 이젠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신경성 가슴앓이로 변해버려 나에겐 일종의 질병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자식인 나에게 한평생 어머니가 베풀어 주셨던 사랑과 자비, 겸손과 헌신, 절망을 이기는 인내와 희망을 갖게 했던 원천을 잃어버린 천애고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보다 더 가깝고, 깊고, 크고, 넓게 살아있던 사랑과 자비를 잃은 자식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대병원 장례예식장 102호에 빈소가 마련되었다는데, 직접 문상을 못했다. 상을 당한 친구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
하 교장은 1남 4녀의 친손 자녀들을 잘 키워주신 99세 양모(養母)이신 안악 이씨 어머님 유택을 고향인 진주시 일반성면 선산에 모셨다. 64세에 먼저 별세하신 양부(養父) 하삼주 아버님과 합장으로 모셨다.
하종성 친구는 명문 가문인 진양 하 씨 후손이다. 생부이신 하석주 아버님과 생모이신 진양 정 씨 어머님 슬하에 태어난 5남 3녀의 자녀 중 4번째 아드님으로 진주시 일반성면 답천리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후, 후손이 없던 3째 숙부님의 양자로 입적하게 되었다. 양부모님께서는 34살의 노총각이었던 하 교장 결혼도 시켜 주셨고, 하 교장 부부 사이에 태어난 1남 4녀의 금쪽같은 손자손녀를 직접 돌보시고 키우시며, 행복한 여생을 아들며느리 내외와 손자손녀들과 지내시다가 세수 99세의 연세에 타계를 하신 것이다. 하 교장 내외가 효자효부였다.
하종성 친구 내외는 42년 동안 99세의 노모를 끝까지 잘 모신 효자효부다. 요즘 세상에 흔치않은 일이다. 하 교장은 전화를 통하여 어머님을 여의고 참으로 마음이 허전하다 하였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의 예를 들면, 고부간에 한평생 사이좋게 한 집에서 잘 지낸다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나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내 집에 모시지 못했던 불효자였다. 어머님께서 직접 낳으신 내 밑의 동생 3남 3녀의 자녀들 집에도 가시기 싫어하셔서, 내 바로 밑 남동생이 고향에 가서 밥을 직접 지어올리고 보살펴 드리는 중에 별세하여 내 동생을 제외한 모든 자손들이 불효자식들이 되고 말았다.
하종성(河鐘成) 친구는 본이 진양(晉陽) 하 씨(河氏)다. 진양 하 씨는 삼한시대부터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1,000여년 넘게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져 살며 번창해 온 선비 집안이다. 하종성 친구는 고려 10대 정종(1034~1046년)과 11대 문종(1046~1083년) 시대에 궁중에서 임금을 모시던 사직(司直) 벼슬을 지낸 사직공파(司直公派) 하진(河珍) 선생의 30세 후손 이다.
퇴직 후, 진주에서 매 월요일 마다 같이 만나 산행을 하며, 푸른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신록과 고운 단풍, 산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을 벗 삼아, 신선 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2회 동기 정해근, 정갑정, 제종대, 하수종, 하종성 친구들과 2회 동기들의 친목 모임인 바랑회 친구들이 힘을 모우고 도와서 별세하신 어머님을 잘 모셨다고 하였다. 매 월요일 만나는 다섯 친구 중에, 서각과 목각의 명장으로 유명한 하수종 친구가 사진작가로 명성을 얻은 하종성 친구와 같은 조상인 하진 선생의 31세손으로 하종성 친구의 조카뻘이 된다고 하였다.
5반의 하현천 교장과 진주고등학교 내 동기인 전 MBC 유명 앵커 하순봉 친구는 같은 진양 하 씨 이지만, 고려 현종 2년 1010년 거란의 3차 침입으로 고려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20여명의 군졸들과 맨 몸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지금의 양주 지방에서 40만 거란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선 거란의 성종과 담판을 짓고, 거란군 40만을 철수시켰던 시랑공(侍郞公) 하공진(河拱辰) 선생의 직계 후손이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하종성, 하수종, 하현천, 하순봉 친구들은 거공명현(巨公明賢)과 충효절의(忠孝節義)가 면면이 이어져 온 명문 진양 하 씨 가문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 날 우리들의 친구인 이 진양 하 씨 친구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늘 당당하고, 다정다감하며 스마트 하다.
晉陽 河 氏의 시조이신 하공진(河拱辰) 선생은 진주시 남선동 진주성 공원 내 경절사 터에서 태어나셨다. 하공진 선생은 필마 단기(匹馬單騎)로 거란 군 적진으로 달려가 거란의 성종과 담판을 벌여 40만 거란 대군을 철수 시켰으나, 정작 선생께서는 거란군의 인질로 잡혀가 항거하다 살신구국(殺身救國)의 공을 세운 만고충신이셨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륜(河崙) 선생과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만고충절(萬古忠節)의 사육신의 한 분인 충렬공 하위지(河緯地)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하계선(河繼先) 장군 등 기라성 같은 많은 선조들이 진양 하 씨 가문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빛나게 한 자랑스러운 우리 모두의 선조님들이다.
진주를 충절의 고장으로 우뚝 서게 한 분이 하공진 선생과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사수한 김시민(金時敏) 진주 목사와 하계선 장군, 최후의 일인까지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한 수많은 진주백성들이었다. 진주라는 이 고장에 이 같은 충절이라는 정신적 문화 바탕이 세세손손 내려오지 않았다면, 오죽하면 기생 신분이었던 일개 여성이었던 논개 마저도 적장 목을 껴안고 푸른 남강에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었겠는가!
나는 2013년 3월에 전립선암 선고를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이후, 금년 2018년 3월이 암치료를 시작한지 만 5년이 되는 해다. 지난 5년 동안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저자(著者)인 하종성 친구가 보내준 ⌜회상의 여운(回想의 餘韻)⌟ 사진 Ⅰ집, Ⅱ집, Ⅲ집에 실린 아름다운 사진 한 장, 한 장이 암으로 어쩔 수 없이 당황한 내 마음을 진정시켰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서적 안정을 찾는 데, 크나 큰 도움을 준 내 암 치료의 명약 중의 하나였다.
저자인 하종성 친구의 철학과 인문•자연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명 사진들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금방 저승사자가 부를지도 모를 음산하고 울적한 밑바닥 마음을 뿌리치고 달랠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만든 귀한 사진첩을 강원도 북동쪽 끄트머리 춘천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 이학원이를 기억하고 보내준 내 동기 친구인 하종성 교장이 고맙지 않겠는가!
암환자에게는 약물치료 외에도 그림치료와 음악치료와 식이요법 치료가 병행되어야 5년 이상을 살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음악치료에는 Youtube의 Andre rieu 음악을 즐겨 들었다. 식이요법 치료는 아내가 고생을 했다. 그 외에도 가족들과 선배 동기들의 간단없는 조언과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 주신 따뜻한 마음 때문에 여태까지 살 수 있었다. 나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5년이란 세월을 살 수 있었으니, 지금은 여한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친구 하종성 교장은 자랑스러운 친구다. 모교 재학시절 남상돈 교수로부터 학문적인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1964년부터 9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1972년 중등학교 지구과학 검정고시에 합격, 1973년부터 26년 동안 중등교사, 교감, 교육연구사를 지냈고, 5년 동안 교장으로 봉직하며 사천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을 맞으며, 40여년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 가족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친구들 곁으로 돌아온 하 교장은 시조창의 명인이 되어 지금도 우리들에게 창도 들려주고, 국궁과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으로 국내와 세계 각 지역으로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사진첩을 발간하여, 이 세상에 온 하종성 교장을 길이길이 남기고 있다. 교직에 봉직하는 동안 수상한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장관표장을 3번이나 수상했고, 1985년 국무총리상을 수상, 2004년 사천중학교 교장으로 정연 퇴임 하면서 정부로부터 황조근정 훈장을 수상했다. 자랑스러운 수상 경력이다.
하종성 교장!
나의 경우에는 부모님을 여인 슬픔이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네. 무한한 절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잘 못 모신 자식의 후회가 조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네.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이 되어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이 들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는 이른 봄이 되면
나에게도 죽음이란 것이 아주 내 가까이에 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문득 문득 있다네.
99세의 어머님을 여이고 마음이 슬픈 친구에게 나의 사모곡을 들려드리며, 친구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네. 용서하시게.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다시 만나보세.
엄마 얼굴
생후 9개월 만에
엄마가 죽었다
나는
엄마 얼굴을 모른다
무슨 원수지간인지
세상에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한평생 엄마 얼굴을
찾아 먼 길을 떠다녔다
혹시 내 얼굴 어딘가에
엄마 얼굴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 아닌가
엄마와 같은 시기에 시집왔던
동네 아주머니들께도 물어도 보고
함 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엄마 얼굴을 찾아보기도 한다.
혹시 손자인 아들 얼굴에
할머니 얼굴 흔적이
남아 있을까
혹시 재롱이 한창인
네 살배기 손녀 얼굴에
증조할머니 피색이
전해져 내려왔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을
쳐다보고 찾아보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어린 제자들 얼굴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제자들 얼굴에서
대학 강의실 제자들 얼굴에서
DMZ 특강 아주머니들 얼굴에서
내 마누라 얼굴에서도
내 엄마 얼굴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며
구름 같은 인생길을 떠다녔다
내 엄마 얼굴은
활짝 핀 4월의 벚꽃이
5월의 짙은 라일락 향기가
온갖 유혹을 다해도
지지구구 지지구구
수놈 비둘기가
사랑의 찬가로
숲 속 삶의 환희를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해도
나타나질 않다가
뇌성벽력 몰아치는
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
파란 하늘이 나타나면
소슬바람 탄
산봉우리 흰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 못난 아들 앞에
찰나에 나타났다
찰나에 사라진다.
2018년 4월 14일
춘천에서 이학원 배.
첫댓글 금천은 인문학자요. 시인이요. 감성과 儒家정신이 어릴때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親.外家의 가문의 전통을 계승 발전하려는
얼, 魂이 있는 선비지요. 진주에 河씨, 姜씨 3性은 서로 결혼도 안 하고 돈독하게 지냈다는 것 '宗報'에도 표현했지요.
어머니에 대한 '思母曲'에 사무친 그 메마른 가슴을 문학이 대신 채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좋은 글, 친구의 집안까지 소개해 주어 훈훈해요. 지난 3월31일 광주 옆 함평에 다녀 왔고, 4월 30일 진주 세덕사 총회에 갈 예정,( 대종회 집행부에서) 이박사의 글은 항상 사람 냄새를 품겨서 꽃처럼 좋아요.
학주 정재종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진주정씨 대종회 창간호 종보가 저 서가에 꽂쳐있습니다. 저는 진주정씨의 외손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까지 외가에 가면 외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 표현으로 외 할아버지와 겸상으로 밥을 먹게 하여 늘 죄송했고, 외할아버지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어 참으로 따뜻한 외할아버지의 정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에미 얼굴도 모르는 불쌍한 외손자인 저를 외할아버지께서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지금도 진주정씨 외가가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충절의 고장 진주에서 열리는 진주정씨 대종중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선배님께서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학원 배.
금천님 반갑습니다.
암치료는 만 5년이 지나면 완쾌된 것으로 본다고 알고 있습니다.금년이 치료시작 5년째라니 계속 치료 잘 받으시고 완쾌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아울러 친구분 하교장님과의 깊은 우정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손자의 엄마사랑!!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에게 달라붙어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볼때마다 금천님 생각이 나곤 합니다.
비단 제 손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엄마를 밝히고,엄마에게 매달리고,엄마품속을 찾아드는 것을 보노라면
엄마가 저렇게 좋을까 !! 하고....
생후 9개월에 엄마를 잃은 금천님,비록 조모님이 온 사랑을 베풀었겠지만 그래도 엄마와 할머니는 또 다릅니다.
금천님의 사모곡에 가슴이 시립니다.
문경자 선배님! 그 간 안녕하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우리 나이에 2가지 이상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합니다. 병이 있어야 늘 조심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었던 겨울이었습니다. 앓아서는 안 되는 병이 대상포진이란 병이었습니다. 여자들의 산고 보다 더 아프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제가 앓아보니 천하에 몹쓸병 이었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예방 주사를 맞아 덜 하다는 것이 이 정도였으니 생으로 앓는 경우였다면 어쩔뻔 했나 했습니다. 2개월 동안 감기로 골골했습니다. 조석으로 아직 차기는 하지만 화창한 봄 날씨를 맞으니
@금천 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1회 남자 선배님들이나 우리 2회 부산교대 남자 동기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짜개지게 가난했던 집안 아들들이었고, 대학이란 문턱을 생각해 볼 수도 없었던 형편에 있었다는 가슴 아프고 숨기고 싶은 형편들이었다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태어난 인생이 가여워서 아주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길고 가는 인생을 꿈 꾸며 지내온 슬픈 역사가 공통점일 것이 아닌가 합니다. 거기다 저 같이 슾픈 출생과 고달픈 성장과정이 보태지면 두려운 마음으로 살얼음판 인생을 살아가며 명보존을 하기 십상이지요. 이런 친구들이 명보존을 하여 지금 만나보니 대단한 삶을 산 자랑스러친구들이 많아 참 좋습니다.
@금천 어머니를 휘어잡고 천진난만하게 재롱을 부리는 손녀를 바라보시고, 어릴 적 저의 형편을 생각하시며, 글 내용을기억해 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껬습니까? 감사합니다. 흐드리게 활짝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지고 있습니다. 저 인생도 저 꽃과 같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님, 내내 건강하시기 기원합니다. 춘천 학원 배.
금천님, 주위에 동문님들께선 어찌그리도 모범생들이신지? 금천님인가? 친구님인가? 유유상종 모두가 우리 교대의 귀감이군요. 금천님은 하늘이 점지해 주신 귀한분이라 감히 함부로 대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어서 많이 궁금했습니다. 혹시나 건강이 좋지 않나? 여기 까페를 이제 잊어셨나 ? 저도 통 소식을 못 전해서 신도님과 충웅님을 어떻게 뵐까 노심초사 하든 중에 창욱님이 용기있게 글을 올려 주셨기에 기회를 잘 잡은 셈이지요. 이제 통과 된것 맞지요?금천님, 이제 절대로 아프시면 안됩니다.
남편을 보내고 나니 세상이 모두 무감각해 졌습니다. 회색빛 아스팔트입니다.
53년을 제 앞에서 웃고, 성내고 ,고함을 지르기도, 잠자기도 하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 . 이게 죽음이라는 잔인함입니다. 하늘에 구름도 사라졌다가 다시 만들어 지기도 하기에 가끔은 하늘을 애절하게 쳐다봅니다. 잠시만이라도 나타날까... 아직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이 잔인한 이별, 인생무상함, 금천님, 많이 사랑 나누고 사시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무상보 송명자 선배님! 제 증조님과 조모님께서 대응 이어 제 생일 날이면 목욕재계하시고, 조그만 상 위에 쌀과 미역과 냉수 한그릇을 올려 놓으시고 조앙님께 비시기를 삼천갑자 동방석이 처럼 살게 해 주십사고 비시는 말씀이 한 평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명보존 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두 분 할머니께서 조앙님께 간절히 빌어주신 덕택이 아니었겠나생각합니다. 선배님께서 저를 하늘이 점지해 주신 귀한 분이라고 지상최대의 띄움 말씀으로 추겨 올려 주시니 심상찮은 봄바람에 제주도에서 추락한 열기구 같은 후배가 될까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상보 선배님! 실은 선배님이 걱정입니다. 최충웅 선배님, 곽신도 선배님,
정재종 선배님, 문경자 선배님 등 가까운 동기 분들이 옆에 계셔서 덜 외로우시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밀려오는 숱한 밤의 외롭고 허전한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잘 메우시며 지내실까 하고 가끔 생각을 한답니다. 저는 일흔일곱 나이인데도 재롱이 한창인 다섯살 손녀 하나만 보고 죽는 것이 아닌가, 대를 이어가는 손자를 못 보고 어떻게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많이 했습니다. 임신 6개월에 접어 든 며느리가 다니던 서울 병원에 다녀 오더니, 오는 6월 25일 경 에 손자를 보게 될 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 이제 나도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구나! 순간 기쁨의 눈물이 왈콱 쏟아졌습니다. 아내는 이런
저를 두고 전형적인 보수꼴통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좋아하면서도 그 나이에 왜 눈물까지 흘리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배 부른 며느리를 위해 집안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널어주고, 먹고 싶은 것도 사다주고, 걷는 모습도 우찌 그리 예쁘냐고 칭찬도 해 주고, 요즘 제가 제 정신이 아닙니다. 발이 둥 떠서 다닙니다. 이 죽어 하늘나라에 이사를 가면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 증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선배님! 독한 마음 자시고 건강 또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춘천 학원 배.
존경하는 금천 이학원 교수님!
너무 오랫만입니다. 그동안 카페에서 뵐 수가 없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시고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에 감기로 2개월간 앓으셨다니 그동안 소식이 없으셨든 궁금증이 좀 풀렸습니다.
이 교수님의 수작인 '엄마 얼굴' 시는 몇번을 읽어도 가슴 깊숙히 심금을 울려주는 불후의 명작 시 입니다.
그리고 이번 6월 25일에는 그토록 고대하시던 옥동자 손주를 보시게 됐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우리 이교수께서 발이 둥둥 떠서 다닌다는 심정을 백번 이해가 갑니다.
이 교수님 이제는 귀한 손주 자라는 모습 보시면서 제발 건강 만 하십시오.
최충웅 선배님! 제가 어려울 때 도와주신 선배님들께서 포진해 계신 우리 부산교대 재경동문 까페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향입니다. 좀 무리를 한 것 같았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일어난 증좌가 몸 여러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봄이 되니 제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더위는 지내기가 좀 나은데 추위는 정말 힘 듭니다. 예! 만삭이 된 며느리가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습의 며느리라고 칭찬을 하면 얼굴이 빨개져 웃습니다. 눈 감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3대를 잇지 못하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님께서 늘 건강하고
자랑스럽고, 힘 있는 필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시고 계시니 늘 선배님을 배움니다. 이렇게 만나뵈서 정말 반갑습니다.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춘천 학원 배.
가슴은 뜨겁고 마음은 여리고 의지는 강철보다 강한 아름다운 詩心의 소유자, 초등,중등,대학을 두루 섭렵한 귀한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 이르른 일흔 일곱살의 詩人, 영원한 그리움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랑을 품고 사는 사연때문에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의 소유자 금천님, 망설임 없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이창욱 선배님! 참으로 반갑습니다.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후유증 없이 잘 나으시기를 빌었습니다. 선배님의 주옥 같은 귀한 글이 이 카페에 올라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선배님 글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늘 들곤합니다. 참 아름다운 먼 옛날의 내 고향 같은 곳을 찾아온 느낌 같은 것을 받는 곳이 이 곳 부산교대 재경 동문 카페 입니다. 여러 선배님들과 동문님들께서 키워온 보람이 있습니다. 늘 깊은 관심과 격려를 주셔서 행복한 후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그 따뜻한 마음이 봄바람을 타고 춘천까지 전해져와 벚꽃도 제 마음도 완연한 봄이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춘천 이학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