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 시인은 저의 문하생으로, 최근 우리 인천문협에 들어온 신인입니다. 성경에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이 있듯 기성 시인을 뺨칩니다.
여기에 조경숙 시를 중심으로 그의 시가 지닌 미학을 몇 가지로 나누어 언급해 봅니다.
조경숙(趙敬淑) : 2013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절벽의 귀』가 있음 choks0704@hanmail.net
보이지 않는 세계지만, 의미부여가 주는 상상의 재미
문광영
○ 한국시는 유례없는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시인이 대략 2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팽창은 좋은데, 문제는 상상의 빈곤에서 오는 창작품들이 시단에 판을 친다는 것.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본대로 적어대고 구상화하는 작품들이 문제입니다,
○ 작가의 천재성, 예술성은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또한 요즈음 시단의 한 문제는 울림이 뚜렷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초점이 분명치 못한 시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혹자는 함축성과 다의성을 들어 면피하려고 할지 모르나, 이는 생각과 감정이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한 데서도 기인하고, 나아가 어휘력 부족이나 언어를 조탁하는 힘이 부족한데서도 연유합니다.
1. ‘보이지 않는 그쪽’만 보는 눈, 보통 사람이 못 보는 눈이 시인의 시안(詩眼).
○ 랭보의 ‘견자(見者, La voyant)의 시학’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어 낯선 체험을 갖게 해주는 것이 시이다.
절벽에 귀를 달고
영월 다래산 가파른 바위에 붙어있던 석이石耳
수년을 눈 비바람을 견디며
이끼처럼 적막을 먹고 살았다
석이를 물에 불리니
천수를 다 산 것처럼 야들야들 순해져
담아 둔 소리를 꺼내 놓는다
산 꿩 울음소리, 도토리 구르는 소리
달빛이 걷는 소리 흘러나온다
<중략>
평생 절벽에 붙어 마른 목을 축이며
기다림에 검게 타버린 시간들
허약한 오라버니가 줄을 타고 따던 석이
줄을 잡던 손이 떨리기도 했었다
마른 귀를 물에 담그니
반백이 된 오라버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경숙 <절벽의 귀> 전문
○ 깊은 산골 절벽에 피어있는 석이버섯,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적막한 곳에서 눈과 비, 바람에 견디며 이끼처럼 살아온 석이의 생명력. 화자는 그를 ‘절벽의 귀’라고 했다. 시인은 절벽에서 살아온 ‘석이’에 자신의 자화상이며(1연), 보고 들은 온갖 산정 풍경의 회억(2연)과, 멀리 집 떠난 오라버니에 대한 생각(3연 이하)들을 그려낸다. 그래서 절벽의 석이는 오라버니의 “배곯은 귀”요, “반백이 된 오라버니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석이’를 ‘절벽의 귀’로 본 시인의 눈이 그저 경이로운 것이다. 그런 석이에는 산꿩의 울음과 달빛이 걷는 소리도 있다. 마른 귀를 물에 담그면 오라버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몽상적 상상력은 시인만이 지닌 천부적 재능에서 온다.
2.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상상의 힘과 영안(靈眼)을 가진 시인은 천상과 지상을 오고가는 존재
"바람'이 지닌 상상력.
○ 시는 상상력이 생명이다.
○ 우주와 소통하며 영성적 메시지로 우주의 비밀을 들춰내는 영매(靈媒)이기도 한 시인. 그래서 혹자는 시인을 천기누설자라 하여 사후 벌을 받을 것이라고 악담도 주저 않는다. 또 혹자는 시인은 죽어서 별이 될 것이라고 한다.
○ 바람 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바람은 우주를 순환시키는 비밀의 표정을 담고 있다. 나뭇잎은 늘 바람과 함께 산다. 그녀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람’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명적 역동성으로 드러난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인다. 소리를 동반하고 울기도 하며, 씨앗도 퍼뜨린다. 성깔도 부릴줄 알고, 또 배가 고프기도 한다.
○ 결코 바람은 머무르는 법이 없기 때문에 거처가 없다. 하나의 해체적 코드를 지니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해체이자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깡촌, 줄창 시퍼렇게 서 있는 여름산의 무르팍이 싱싱했다. 산비탈에서 굴러온 바람이 달리는 차창으로 맨발을 디밀었다. 발바닥에서 서늘한 그늘내가 났다. 떡대 좋은 산 하나를 끼고 돌자 풋내가 질펀했다. 산딸기를 만지고 온 농익은 바람이 딸기물 든 손으로 내 머리칼을 연신 어루만지고 버스는 투덜투덜 돌밭을 달렸다. 툭, 탁, 다급한 돌멩이가 계곡으로 튀고 물 젖은 바람이 벼랑을 타고 기어올랐다. 강바람은 이끼빛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곳곳에 바람의 몸에 맞는 바람집이 있었다. 마을에 사는 바람은 미간을 찡그리고 밭두렁에 쪼그리고 있었다. 바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뒷좌석에 마음을 눕히고 찬찬히 바람을 맛보기 시작했다. 개울에 발 담근 물소리를 집어먹으니 박하사탕을 깨문 듯 후련했다. 눈을 감고 바람의 뒷다리를 흠흠, 들이마셨다. 동시에 누군가 나를 맛보고 있었다. 익었나, 설었나, 뒤집고 있었다. "나"라는 맛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나를 한 입 베어 문 바람이 퉤퉤! 나를 뱉어버렸다.
마경덕 <나는 바람을 맛보았다>전문
○ 마경덕의 ‘바람’을 보라. “달리는 차창으로 맨발을 디밀고”, “산딸기를 만지고 온 농익은 바람이 딸기물 든 손으로 내 머리칼을 연신 어루만지고” 등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얼마나 구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는지를. 그래서 시인은 이런 바람에게 “밥 좀 주라, 얼마나 힘들겠니.”라고도 할 수 있다.
3. 시는 자기만의 세계의 남다른 해석, 새로운 의미부여로 개성의 표현이다.
○ 제재로 선택된 사물에 나만의 의미부여의 정감, 생각, 사상을 깊이 담아내야 한다.
○ 빈센트 반 고흐는 <자화상> 시리즈를 적잖이 그렸다. 고흐 특유의 색채나 붓질이 잘 드러난 <해바라기>,<사이프러스 나무> 등의 작품들도 자화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가 자화상을 그린 이유는 가난하여 모델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자서에서 ‘스스로를 닦아주고 싶어서’라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 곧 자신에 대한 외부의 비난과 스스로의 항변, 상처 입은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외치고 싶은 열망을 자화상에 담겨냈던 것이다.
○ 시인의 시는 그다지 세속적인 공리나 현실적 갈등에서 기인하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목이 마른 자아를 닦아주고 싶은 열망, 고향그리움, 우주와 현실과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세계의 해석, 정신적 자아의 성숙을 향한 노력에 비중을 두고 일탈을 노래한다.
○ 시는 약동적이고 생명적 기운이 넘쳐난다. 왜 그럴까? 시적 사물이 지닌 속성, 특성에 정신의 힘을 가하기 때문이다.
○ 시안은 관찰에 끝나지 않고 간파, 통찰에까지 파고든다. 모든 시마다 정신적 의미부여는 활발하다. 때로는 일상의 순간적 체험이 시적 진리로 되새겨지고, 달관에 이른 수도승의 잠언이나 초탈한 범인의 화두와 같은 언어를 만나게 된다.
돌이
처음부터 탑은 아니었다
기도가 쌓여 탑이 되었다
무엇을 빌었건
허공의 바람을 누르고
묵묵히 한 몸이 되었다
조경숙 <돌탑> 전문
○ 시인은 돌이 그냥 탑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거기엔 허공의 바람을 누를 수 있는 기도와 같은 것이 쌓여 비로소 돌탑이 될 수 있다는 섭리를 발견해 낸다.
강가에서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낮아지지 않고서는
한 곳에 닿을 수없는 길
아래로 흐르면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난다
기다린다는 것은 흐른다는 것
조경숙 <애증의 강>전문
○ 강가에서는 그저 강물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대화가 있다는 것. 미학적 관조 내지는 통찰에서만이 가능하다. 곧 ‘물’은 오로지 낮은 데로만 흐르고, 그 ‘장고의 흐름’ 이 있을 때 하나가 되는 ‘만남’을 체득한다.
4.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사물 하나라도 소중하게 보고 존재 의미를 찾아내는 따뜻한 시선, 그 눈썰미가 시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근원이 된다.
○ 산다는 것은 세상을 해석해 나가는 일, 존재하는 것마다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돌, 풀잎, 작은 곤충, 심지어 먼지도 모두 나름의 역사가 있고, 존재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는 바로 사물 존재의 역사의 의미를 확장하고, 다른 사물과 관계의 비밀을 얻어가는 작업이 아닌가.
○ 따뜻한 시선과 관심 속에 남다른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이 작동하고, 의미부여 할 수 있으며, 상상력이 발휘된다.
한때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던 나무였다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죽어가는 불씨를 끌어 모아 살리는 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막힌 숨통을 트며 조금씩 검게 타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당에 솥을 걸고 돼지를 삶아
동네잔치라도 하는 날이면 더욱 바빠졌다곡식을 널어놓은 멍석을 어슬렁거리는닭들을 내쫓기도 하고
마당에 기역, 니은을 끼적거리는 연필이 되었다가
가끔 길손이 묻는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당당하더니
끝이 까맣게 타들어가 점점 키가 줄고
몽당비처럼 닳아
끝내 아궁이속으로 들어가
한 줌의 재가 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저 캄캄한 무덤으로 숲이 사라졌다
토사구팽兎死拘烹
기어이 아궁이는 그를 삼킬 것이다
조경숙<부지깽이> 전문
○ 타다모토의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라는 하이꾸시가 떠오른다. 나뭇가지의 일생을 다룬 시가 성찰적 의미로 다가오는 것.
○ 시 <부지깽이>에서 화자는 ‘나뭇가지’이다. “죽어가는 불씨를 끌어 모아 / 살리는 것”이 그의 일생이다. 그래서 돼지를 삶아내는 마당 솥 아궁이에서 아랑곳하지 않았고, 널어놓은 곡식 멍석에서 닭들을 내쫓기도 하였으며, 길손의 손가락이 되기도 했다. 결국 하늘 향해서 자라던 나뭇가지는 아궁이의 숯으로 사라진다. 한 줌의 재, 그래서 아궁이는 ‘캄캄한 숲의 무덤’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부지깽이는 우리 인생의 과정을 치환한 것이기도 하다.
5. 아름다움이나 감동은 순간적이고 원래 강렬한 것이다.
쭈홍반점 자장면을 먹고 놓고 간 꽃다발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주전자에 꽂았다
주인을 잃은 풀죽은 모습, 그러나
삼 년을 무사히 마쳤다고 환하게 웃는다
누군가의 가슴에 안겼던 졸업꽃다발
줄기 끝에서 축하의 말이 피어난다
환하게 피어난 열 개의 웃음
보리차만 끓이던 주전자가 호사를 누린다
오가는 사람들 입맛을 독차지한
단무지 보다 노란 장미꽃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온다
어서 배달이나 다녀오라고 코를 박은 김군의 등을 떠민다
꽃향기 한 그릇 철가방에 담겨
203호로 배달되었다
주전자가 흘리는 보리차 향처럼
그 아래 흩어진 꽃향기 한 움큼
잠시 머물다갈 주전자 속 안개꽃,
수증기 같은 하얀 웃음이 온종일 끓고 있다
조경숙 <주전자 꽃>전문
○ 순간에 피고 지는 코스모스에 대한 화자의 영성적 생명의 착상
○ 순간적이기 때문에 아를다울 수 있는 것. 화자도 이를 발견한 것 아닌가. “부질없는 찰라”의 “렌즈 속”과 같은 것이 꽃이나 인생 모두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쓰레기덤이 위에 꽃이 피듯 / 웃음도 순간의 비명이 되기도”하는 그런 세계, “발밑에 냄새를 누르고 / 지상으로 피워 올리는 꽃의 향기” 가 곧 쓰레기장의 코스모스의 이름다움은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 때나 섣불리 뜨겁거나 자유하지마라”고 존재의 화두를 던진다.
○ 자잘한 시인의 감지(感知), 사물과 연분을 맺으며 조용히 경이롭게 현현되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해석
○ 시 <주전자 꽃>은 쭈홍반점에 놓고 간 꽃다발을 의인화하여 생명적 상상력으로 아주 의미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삼 년을 무사히 마쳤다고 환하게 웃는” 주전자의 꽃, 한 그릇 철가방에 담겨 배달된다는 꽃향기, “수증기 같은 하얀 웃음이 온종일 끓고 있다”로 이어지는 묘사가 아주 생동감 있다. 또한 이런 이미지들을 시각과 후각, 미각적 언어로 조탁해내는 치밀성이 돋보여 수작으로 읽힌다.
6. 상상력을 동원한 언어 조탁의 재미
○ 시(글)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인생이 재미있어야 하는 것처럼. 시 읽는 즐거움은 재미와 감동에서 온다.
○ 생기발랄한 재미가 있고 감칠맛나는 감성이 드러나야.
○ 신들린 듯한 상상력과 비유가 시를 재미있게 만든다.
○ 풍자, 위트, 해학, 반어에 의한 조탁도 참신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
음악이 밥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중국집 요리사가 된
그는 드럼 치는 남자였다
오늘도 하얀 밀가루 포대를 악보처럼 펼쳐놓고
부드러운 저음으로 반죽을 시작한다
길고 짧게 후려치는 손목의 힘, 점점 옥타브가 길어지고
높고 낮은 음표들이 태어나 오선지에 앉을 시간
가닥가닥 갈라지는 반죽들
그는 붉은 닭 벼슬 위생모를 쓰고 경쾌한 연주에 몰입한다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
때맞춰 절정을 찾아야한다
드럼 속으로 들어간 그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사라진 먼 꿈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던 남자,
입에서 뱉어지던 맵고 아린 소금기,
세상이 바닥으로 그를 후려칠 때
그가 미끄러지는 것을 수 없이 보았다
사분음표 국자를 들고
드럼을 두드리듯 요리를 하는 남자
웅장하고 장엄한 바다 심해의 삼매경 삼선짬뽕,
쫄깃한 음정과 음표를 넣어 짜장을 볶는다
조경숙<드럼 치는 남자>전문
○ 시 <드럼 치는 남자>는 이야기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한때 드럼 지망생이었으나 생계 때문에 포기하고 결국 중국집 요리사가 된 남자이다.
○ 시의 소재는 자기로부터 온다고 했다. 여기 드럼치는 남자 주인공은 실제 부천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주방장에서 일을 하는 남편이다.
○ 늘 그는 하얀 밀가루 포대를 악보처럼 펼쳐놓고 부드러운 저음으로 반죽을 시작한다. 그리고 짧게 후려지치는 손목으로 높고 낮은 음표들의 가닥을 만들어내는 연주를 한다. 참으로 기발한 비유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남자의 애처로운 정감은 깊숙이 발전한다. “사라진 먼 꿈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던 남자 / 입에서 뱉어지던 맵고 아린 소금기,/ 세상이 바닥으로 그를 후려칠 때 / 그가 미끄러지는 것을 수 없이 보았다”고, 좌절당한 소외감이 처연할 정도로 그려진다.
“사분음표 국자를 들고 / 드럼을 두드리듯 요리를 하는 남자 / 웅장하고 장엄한 바다 심해의 삼매경 삼선짬뽕,/ 쫄깃한 음정과 음표를 넣어 짜장을 볶는다”에서는 요리사의 율동이 전해올 만큼 엄청난 실감미로 다가온다. 그 비유 덩어리들의 맛과 생기발랄한 묘사, 적절한 텐션이 그려내는 언어 조탁의 힘에서 상상의 풍만한 재미를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드럼의 쫄깃한 리듬이 실려 있는 면발과 음정으로 빚어낸 짙은 짜장면이 먹고 싶어지는 시이다.
육교에 매달린 햇살이
연등의 이마를 덥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모두 부처를 만나러 석왕사로 갔을까
가까운 산이 들썩이고 거리는 한산하다
부천세무서 사거리 쭈홍반점
빈 식탁에 앉아 있는 파리 한 마리
파리로 태어난 죄 싹싹 빌고 있다
파리채를 들었다 놓는다
오늘은 너도 손님이고 나도 부처다
조경숙<파리 손님> 전문
○ 부처님이 오신 날. 화자는 쭈홍반점이란 중국집 빈 식탁에 앉아 있다. 순간 파리 한 마리가 원죄로 태어난 죄로 싹싹 빌고 있다. 파리채로 잡으려다가 그만 부처님 오신 날임을 의식한다. 그러니 어찌 미물을 살생할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파리 앞에서 화자는 부처가 되어 파리 손님으로 맞이한다. 화자가 전도된 상상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다가 가려워서 보니 모기가 있어 순간 때려잡
는 아이러니한 하이꾸 시인과는 적이 상대적이다.
7. 시사적인 문제 곱씹기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손가락
블랙, 엔터의 토악질
비수처럼 또는 독화살처럼 손끝으로 쏟아지는 글자들
당신의 눈썹 밑 동공아래
콤플렉스 동굴 속
코를 막고 번득이는
온통 치고 오를 것 없는 음성 함정의 면을 넓히는 최상의 조건
어둠속에 숨어 어둠을 낳는다
마지막 바닥이라고 하는 순간그 파문까지가 대상의 악, 플러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목숨을 난도질하는 비수가 날아든다
블랙, 엔터
조경숙<악성댓글>전문
○ 시 <악성댓글>은 인터넷 댓글문화의 부작용을 다룬 시이다. 시인은 ‘악성댓글’을 한 마디로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손가락 / 블랙, 엔터의 토악질”이라고 시적 단언을 내린다.
○ “어둠 속에 숨어 어둠을 낳는” 악성 리플(惡性reply)은 분명한 언어폭력이며 사이버 범죄이다. 상대방에게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은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주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여러 배우와 학생들이 자살한 전력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우리의 댓글 원인을 “콤플렉스 동굴 속”이라는 병리현상으로도 보고, 댓글 현장을 “수많은 목숨을 난도질하는 비수가 날아든다”고 날선 경고를 내린다.
그는 자격을 갖춘 감시자
비행기를 타고 허공에서 살던 블랙박스
어느 날, 지상으로 내려왔다
촘촘한 화소
투명한 세상을 원하는 지상의 열망
생과 사의 증언이 유연하게 작동하고
무엇이든 결과는 클로즈업해야한다
비명의 극한 상황에도
침묵하는 날카로운 빛,
아무도 증인이 되지 않는 시대
유일한 증인이다
싸늘한 감시자의 눈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안과 밖은 섬뜩하다
어두운 행실을 지켜보는 충혈 된 잠이다
그러나 기실其實은 언제든 서로를 옭아맬
제3의 밀고자
뒷모습에 바짝 주목한다
조경숙<블랙박스>전문
○ ‘블랙박스’라는 기기를 의인화한 상상적 착상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자동차 운행에서 필수적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는 블랙박스. 시인에 의해 인격화한 블랙박스는 “자격을 갖춘 감시자”이자, “아무도 증인이 되지 않는 시대이 유일한 증인”이며, “언제든 서로를 옭아맬 제3의 밀고자”이다. 시인은 일련의 사물이 지닌 속성, 특징을 붙잡아 의미화 하려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시대상을 반영하고 인간상을 비판한다. 곧 증인이 되지 않는 불신시대의 인간성이나 밀고자라는 섬뜩한 문명에 지배당한 인간의 소외의식을 드러내어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화가 솔거가 있다면
중국엔
마량이라는 화가가 있다는데
부실공사가 판치는
중국 건설업계
이번에는 벽에 페인트로 창문을 그린
아파트가 등장했다는데
입주자는 황당하지만
그 임기응변은
예술의 경지
마량이 살아 돌아온다면
그 창문을 열고
별 다섯 개는 그에게 던져줘야 될 일
조경숙 <페인트로 그린 창>전문
○ 시 <페인트로 그린 창>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속임의 짝퉁문화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시인은 서두에서 한국의 솔거와 중국의 전설적인 화가 마량을 대비시킨다. 그러면서 아파트 벽에 페인트로 창문을 그려 넣어 입주자들을 눈속임한 실제 뉴스를 시로 소재화한다. 한 마디로 그 “임기응변은 /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해학적 현실의 꼬집기가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