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인텐부산'의 운영진과 회원. 맨왼쪽부터 김은주 박경표 임동우 강민성 씨. | |
"부자되세요."
모 카드회사 광고에 쓰였던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복 많이 받으세요"에 버금가는 새해인사가 됐다. 대체 어느 정도 재력이면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집계하기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같은 부호들은 공개된 재산만 50조원이 훨씬 넘는다. 부산시 한해 예산의 10배 가까운 돈이다. 연봉 몇천만원인 봉급쟁이나 식당 사장님들도 억대 부자 소리 들을 날이 과연 올까. 티끌이 모여 언제 태산이 되나 싶으면서도 적금 붓고 펀드 가입하고 가끔은 로또도 긁어보곤 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오기빌딩 101호에 가면 '텐스(TEN'S)'라는 공간이 있다. 260여㎡(80여평)의 깔끔한 사무실이다. 사무실은 사무실인데 그냥 사무실이 아니다. 우선 휴일도 없이 1년 365일 오전 11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문이 열려있다. 입구에 안내 여직원이 한 명 있을 뿐 주인이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누구든 들어가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빼내 읽어도 되고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컴퓨터를 사용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크고 작은 6개의 회의실을 이용료만 내면 누구나 빌려쓸 수 있다. 카페도 서점도 아닌 이런 퓨전 공간을 누가 만들었을까. 장철민(36·회사원) 김은주(여·36·방과후교사) 박경표(35·회사원) 이종태(32·회사원) 강민성(32·회사원) 씨 등 5인방이 싱긋 웃는다.
운영진은 온라인의 한계를 벗어나 질높고 다양한 재테크 정보를 제공하고 회원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 '텐스'를 오픈했다. 회원은 물론 비회원 일반 시민에게도 문이 열려있다. 운영진 모두 직장인이라 상근 직원을 1명 두고 퇴근후 교대로 사무실을 지킨다. 재테크 강의는 일주일 내내 수시로 열린다. 회원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수준에 맞는 강좌를 골라 1만~2만원의 회비를 내고 강의를 듣는다. 업계 종사자나 이름난 전문가는 물론 숱한 실패를 딛고 일어선 내공 깊은 '일반인 고수'가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재테크 모임이라지만 돈 버는 궁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나 취미생활 소모임을 통해 도시 맞벌이 부부의 애환을 달래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데도 열심이다. 1년전부터 활발하게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회원 이경혜(여·29·회사원) 씨. "혼자서는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 옆에 있으면 저도 함께 부지런해지죠. 종합자산관리계좌(CMA)라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됐는걸요."
'텐스'는 카페 운영진 5인방이 자비를 들여 마련했다. 서면 한복판에 자리한 탓에 임대료도 만만치 않다. 강사료와 직원 인건비를 지출하려면 회원들이 낸 회비만으로는 매달 적자. 돈 벌려고 모인 사람들이 소득없는 일에 돈을 쓰고 있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않다. 운영자 강민성 씨는 "부산에서는 질좋은 재테크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빠듯하게 살아가는 월급쟁이 부부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4000만원이라는 돈을 3년 동안 꼬박꼬박 적금 부어 겨우 손에 쥔 사람이 어느날 TV를 통해 강남에서 부동산 투자로 하루 아침에 수억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뉴스를 들으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크다.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부지런히, 조금 더 극성을 부려 한푼 두푼 재산을 불려가고 있는 이웃 사람들의 얘기에는 더 큰 울림이 있다. 카페 운영진들로부터 조금은 특별한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돈 굴리기 노하우를 들어봤다.
# 종자돈 2000만원이 2억 됐어요
- 분양권으로 돈 벌었지만 사기당하기도
- 경제지식이 평생직업 되는 시대 온다
일러스트=김효정 mania909@kookje.co.kr | |
재테크를 잘 하려면 우선 기록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는 것이 김 씨의 지론이다. "현재 본인이 갖고 있는 자산이 얼마인지, 얼마나 줄었는지 늘었는지, 빚은 얼마인지…. 현황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목표와 계획이 구체적으로 서니까요. 이렇게 하면 무엇보다 쓸데없는 지출을 줄일 수 있고 투자처 변경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1주에 20, 30분만 투자하면 됩니다."
김 씨가 재테크라는 수단으로 처음 돈을 번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아파트 분양사무실 앞을 지나다 모델하우스 구경차 발을 들여놓은 것이 계기였다. 결혼할 때 집을 이미 장만했기 때문에 아파트에는 큰 애착이 없었지만 분양사무실 직원의 유혹(?)에 넘어가 분양권 구입에까지 이른 것이다. 당시 김 씨에게는 결혼 후 2년간 우체국 적금을 부어 마련해둔 2000만원이 있었다. 이 돈으로 분양권을 매입, 1년 만에 전매를 통해 꽤 짭짤한 차익을 남겼다. "이때 처음으로 근로가 아닌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내친 김에 또다른 아파트의 분양권도 샀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종의 사기를 당해 이익은 커녕 200만원을 손해보게 된다. 이 즈음 텐인텐을 만난 김 씨. "충분한 사전지식이 없는 투자는 결국 투기가 되고 만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귀한 교훈을 얻고 기회를 엿보던 중 눈에 띈 것이 펀드였다.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텐인텐 회원의 조언을 얻어 국내 펀드 상품에 매달 100만원씩 적립식으로 붓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던지 수익률이 높아 불과 1년 2개월 만에 다시 2000만원의 목돈을 쥐게 됐다. 자신감을 얻은 김 씨는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종목 선택의 기준은 단순했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회사와 평소 언론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제약회사 등 4개 종목을 골랐다. 이중 2종목은 손절매했지만 2종목은 지금도 김 씨에게 꾸준히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종목이다. 꼼꼼한 관리 덕분에 현재 10여개 종목의 주식투자를 통해 매월 상당액의 과외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김 씨. 이 돈은 재투자를 위한 자금이 되기도 하고 가족을 위한 만찬 자금이 되기도 한다.
"직장은 있어도 직업은 없는 시대잖아요. 그 직업이 평생 나를 지켜주지는 않죠. 경제지식이야말로 평생직업이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10억보다 내 주머니 속 몇만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죠." 푼돈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소박한 마음이 재테크의 출발점임을 김 씨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 통장잔고 '0'에서 2주택 보유자로
- 하고픈 일 찾느라 배고픈 백수 시절 보내
- 진정한 재테크는 돈 아닌 사람 모으는 것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민성(32) 씨는 현재 금융과 부동산을 합해 1억5000만원가량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 펀드 등 금융자산이 4000만원이고 1억5000만원 상당의 빌라와 4000만원 상당의 원룸 등 집도 두 채나 된다. 물론 집을 사느라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 있기는 하지만 고정수입으로 은행 이자를 갚고 또다른 투자를 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마이너스 통장을 안고 있기 마련인 대한민국 일반 총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강 씨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끼니를 걱정할 만큼 '생애 최고의 궁핍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강 씨는 3학년 때 일을 찾아 서울로 갔다. 컴퓨터를 좀더 배워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일감을 구하러 다녔으나 수월치 않았다. 벌이가 워낙 작으니 그나마 방학을 이용해 머리핀 장사해가며 모아뒀던 용돈도 바닥을 드러냈다. 밥만 겨우 먹는 빈궁한 생활이었다. "어느날 통장 잔고가 '0'가 된 겁니다. 사람이 돈에 치이기 시작하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늘 앉아서 하는 일이었기에 건강까지 나빠진 강 씨는 결국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강 씨가 고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기까지 그러고도 1년이 흘렀다. 친구나 선배의 소개로 몇몇 중소기업에서 일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결국 4년 전 현재 일하고 있는 제조업체에서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됐다. 텐인텐이라는 동호회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텐인텐의 동료 회원이 재테크 목적으로 사둔 집을 구경하러 따라갔다가 그 동네에서 우연히 분양중인 빌라를 발견하게 됐고 구입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월급을 모아 불려뒀던 목돈 2000만원과 대출금 등을 합해 빌라를 한 채 사들였다. 평소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강 씨는 부산대 평생교육원에서 경매수업을 들었고 그 노하우를 묵히기 아까워 재개발구역 내에 있는 원룸 한 채를 경매로 사들이는 데도 성공하게 됐다.
현재 강 씨는 빌라와 원룸에서 올라오는 월세에 월급까지 합해 월 260여만원의 수입을 고정적으로 올리고 있다. 이중 50만원은 10만원씩 쪼개 국내외 펀드상품에 가입하고, 30만원은 대출이자 갚고, 나머지 150여만원은 모두 은행에 넣어두었다가 주식이나 펀드 재투자에 사용한다. 생활비로 지출하는 돈은 월 20만~30만원 수준. 재테크를 시작하면서 필요없는 술자리는 줄이고 건강을 위해 담배는 몇년전에 끊었다. 그동안 주식에 투자했다가 일부 종목의 경우 80%나 손해를 보는 쓴맛도 보았다. 현재 4개 종목에 주식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중 1개 종목이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어 나머지 종목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보전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텐인텐부산이라는 카페 활동을 하면서 진정한 재테크는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사람이 돈을 벌게 해주는 거죠. 제 개인적으로 진정한 재테크는 인(人)테크라고 자신있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 결혼 5년만에 '우리 집'
- 대학 졸업하자 직장 대신 'IMF' 기다려
- 부동산대학원 석사·내집 마련 꿈 이뤄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8년차 직장인인 장철민(36) 씨는 결혼 5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부인과 1남1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그는 결혼 당시 마이너스 1000만원이었던 자산을 수십 배로 불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저는 일명 '저주받은 91학번'입니다. 제대후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98, 99년. 한창 IMF 금융위기의 광풍이 몰아칠 시기였어요."
장 씨는 경제신문 그룹스터디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교 3학년 때 장학금으로 받은 250만원으로 처음 주식을 시작했다. 코스닥에 상장된 한 민간 통신회사의 주식을 주당 5000원씩 250만원어치를 산 것이다. 이 회사의 주식은 이후 1만8000원으로 올라 장 씨는 600여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원금과 차익을 합해 850여만원의 돈이 내 손에 똑 떨어지는데 기분 꽤 괜찮던데요. 이것이 저의 첫번째 재테크 경험입니다."
대학 4학년 재학 중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취업하는데 성공했지만 장 씨는 해외근무의 어려움과 국내 사정에 어두워지는데 대한 불안감 때문에 1년6개월 만에 귀국, 다시 구직자의 입장에 섰다. 당시 그의 손에는 월 180만원의 임금을 거의 한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은 돈과 주식으로 번 돈을 합해 3000만원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사이 1000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다행히 증권회사 취직이 성사됐지만 2000년 당시 주식시장이 나빴고 초임이라 월급도 작아 2001년 말 결혼을 하기 전까지 저축액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 씨는 그간 꿍쳐두었던 2000만원에 3000만원은 빚을 얻어 총 5000만원의 결혼자금을 마련, 이중 1000만원을 결혼비용으로 쓰고 500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때마침 해운대 센텀 등 아파트 분양 열기가 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들어두었던 청약통장을 활용, 부산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7군데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7전8기 끝에 다른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권을 따내는 데 성공한 그는 이를 되팔아 적지않은 수익을 올렸다. 이후 한차례 더 분양권 투자를 시도했으나 이익을 보지는 못했다. 분양권 시장에서 1승1무의 승률을 올린 셈이다.
텐인텐 카페에 가입한 게 이 무렵이었다. 카페 회원들과 공부를 하면서 경매 재개발 등 부동산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 동의대 경영대학원 재무부동산학과에 진학하고 동료 회원으로부터는 재개발과 경매 실전 노하우를 배워갔다. 그동안 쌓인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카페 회원 대상 강좌와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다. 내집 마련의 꿈은 2년 전에 이뤘다. 월급의 60%를 부었던 펀드 상품과 보유중이던 우리사주 주식을 정리해 34평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장 씨는 "전반 5년은 내공을 쌓고 내 집 마련을 한 데 만족하고 후반 5년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10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돌격 중"이라며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 서로의 자양분을 흡수하면 10년 안에 10억 모으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재테크에 임하는 '그녀'의 문제적 자세
- 이자 1% 더 준다고? 그쯤이야.
돈이 불어날수록 이자율에 의한 금액 차도 커진다. 잠시 머무는 돈이라도 반드시 이자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가 월급통장으로 인기를 얻는 데는 이유가 있다.
- 차부터 바꿔 바꿔.
자동차는 구입하는 데도 돈이 들지만 보험료 기름값 수리비 등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차라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신문이나 책을 읽을 시간도 생긴다.
- 세금? 좀 있다 내도 돼.
세금이나 공과금을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체납 가산금을 물어야 한다. 어차피 낼 돈이라면 하루라도 미룰 이유가 없다.
- 신문 재테크서적? 귀찮아.
재테크에 능한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민감하다. 돈되는 정보가 거기 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뉴스 보기, 경제 신문 읽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 전화요금? 월급통장에서 절로 빠져나가겠지.
재테크를 잘 하는 사람들은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과 공과금 보험료 등이 지출되는 통장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금이 들고 나는 통장을 일원화 하면 씀씀이에 대한 경각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 복권 열심히 긁어 긁어.
확률적으로 승산이 없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끈기와 분석이 필요한 재테크에서는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