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와 자연경관 우리 선조들은 맑게 갠 날 가련산(106m) 자락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모습을 완산승경의 하나인 가련청람可連晴嵐으로 묘사하였다. 예부터 전주부성의 북방을 호위했던 덕진 가련산은 풍수지리상 완산부성(전주)의 지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에 한국전쟁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15-18세의 어린 학생들이 참전했다가 전사한 500여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호국성지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가련산공원으로 지정됐다.
▲ 가련산 들머리 청소년문화의 집 주차장 © 새만금일보 | |
<<전주시사>>에는 ‘완산부성(전주)의 형국을 맑게 갠 하늘아래 만경창파로 떠나는 배의 지형(玉京晴嵐 萬頃蒼波 行舟地形)’이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옛날 어느 도인이 완산부성을 진맥한 뒤 ‘서북쪽에 있는 가련산可連山의 이을 연連을 연꽃 연蓮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애석해 했다.’고 한다. 건지산을 휘잡아 돌아 닫는 맥이 끊긴 가련산을 바라보며 날아오던 길조의 상징인 파랑새가 지쳐서 쉬고 말았다는 설화도 있다. 전주지형이 1번 국도(팔달로)에서 건지산과 가련산의 맥이 끊겨서 서북쪽 방위를 채우지 못하는 탓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위치한 덕진 연못은 나무와 언덕이 없어 풍수지리상 기氣가 허약하다.’고 했다. 덕진이란 지명도 참진眞을 쓸 때는 물과 관련이 없지만 나루진津을 쓰면 기가 꺾게 되어 전주에는 큰 인물과 갑부가 드물다는 속설이 있다.
이에 전주의 땅기운이 서북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고려시대에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둑을 쌓고 커다란 덕진 연못을 팠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밝은 전라감사 이서구도 허약한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기 위해 덕진제의 제방을 튼실하게 쌓았다.
그런가하면, 2009년 원광대한방병원-하가지구-전주천 가련교를 잇는 6차선의 가련산로(1.4km)를 개설하면서 가련산 서쪽자락을 절개하였다. 천년전주 혈맥 잇기 사업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산허리를 절개하는 것보다 터널을 뚫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 하가지구 가련산로에서 오르는길 © 새만금일보 | |
가련산 주변의 덕진동 역사를 <<한국지명총람>>, <<전주시사>>, <<지명으로 본 전주 100년>>등으로 고찰해 보면 이렇다. 본디 덕진동은 전주시 조촌면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아래가르내(하가리), 윗가르내(상가리), 학동리, 덕중리, 덕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가리라 했다. 1940년 전주읍(시)에 편입되어 덕진연못의 이름을 따서 일본식으로 덕진정이라 했다가 1947년 일부는 서검암동과 합하여 덕진동 1가, 일부는 북검암동을 합하여 덕진동 2가로 나눴다. 1973년에는 덕진동 1.2가를 합하여 덕진동이 되었다.
가련산의 유래도 웟 가르내와 아랫가르내를 한자명인 상가리上可里와 하가리下可里로 고치면서, 두 개의 마을을 이어주는 산이라는 의미로 옳을 가可, 이을 연連을 취한 듯하다.
덕진동은 건지산, 도천봉, 가련산 품에 안겨있다. 건지산과 도천봉 안쪽에 있는 대젯골에는 대지동, 용수, 연화, 덕암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대젯골 끝에는 전주동물원이 도천봉과 장구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둘러싸여있다. 도천봉에서 조경단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조경단 앞에서는 가맛골에서 흐르는 실개천과 만나 덕진연못으로 흘러들어간다. 장구봉은 건지산 지락으로 천마산으로 이어지고, 갈미봉 서쪽에는 한국소리문화전당이 들어섰다. 도당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전주소방서와 전북대학교가 자리잡았다.
덕진공원은 1929년 10월 창설되었고, 덕진광장에 있었던 덕진 역은 전주 이리간의 경편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1914년 준공되었다가 전라선 이설로 사라졌다. 가련산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학동과 하가리, 서쪽에는 상가리, 남쪽에는 사평마을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하가리 북쪽에 있는 추천교는 용산다리 또는 전주대교로 불리기도 했다. 추천은 모악산 원안덕에서 발원한 삼천과 완주 슬티에서 발원한 전주천이 합류하는 만경강의 지류다.
가련산 북쪽에는 1970년대 택지조성사업으로 만들어진 호반촌이 있다. 가련산 서북쪽에는 상가리에서 법원 쪽으로 명성아파트가 있는 곳을 강정모탱이로 불렀다. 그곳에서 덕진광장 쪽으로 가다보면 사평마을이었다. 사평의 서쪽에는 전주지방법원이 있는 산자락을 자리가 목을 빼고 있는 형상의 자라코빼기였다. 법원은 만성동 법조타운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사평에서 덕진중학교로 넘어가는 길은 서낭배기다. 덕진공원 앞 팔달로에서 충혼탑을 넘어 덕진중학교로 넘어가는 고개에는 한낮에도 여우가 울어대던 무서웠던 곳이었다고 한다. 사평 앞으로 전주종합경기장까지 펼쳐져 있었던 곳이 사평뜰이다. 그 뜰에는 들사평과 떡정마을이 있었다. 떡전거리는 서울로 가는 옛길이 숲정이를 거쳐 이곳을 지나게 되어 떡장수가 많이 모였던 곳이다. 사평沙評마을은 토질이 모래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사평에는 KT, 법원, 덕진초등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덕진동 동남쪽에 있었던 전주 우(소)시장은 본디 동완산동에 있는 쇠전 터에서 2.7일에 서다가 1946년 서노송동으로 옮겼다가 1962년 덕진동으로 이전했으나 지금은 추억의 앨범 속으로 사라졌다.
<<산경표>>의 우리전통지리로 살펴본 가련산의 산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으로 갈려나온 금남호남정맥이 장안산, 팔공산, 마이산을 거쳐 진안과 완주군의 경계인 주화산에 닿는다. 주화산에서 호남정맥이 만덕산에 이르면 서쪽 전주방향으로 전주지맥을 나뉜다. 이 산줄기가 북쪽은 소양천, 남쪽은 전주천을 가르며 은내봉. 묵방산을 거쳐 기린봉에 이른다. 기린봉에서 산줄기는 남.북으로 나뉜다. 남쪽은 승암산을 거쳐 발이산(이목대)로 뻗어가고, 북쪽 산줄기는 기린봉-마당재-건지산-덕진공원-가련산으로 뻗어간다.
▶ 문화유적 및 명소
[충혼탑] 1950년 한국전쟁 때 15-18세의 어린 학생 38개 학교 2천여 명이 위기에 처한 조국수호를 위해 싸우다가, 530명이 전사했다.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순국학도현충탑과 현충비를 세웠다. 매년 가을이면 가련산에서 순국한 학도병을 위해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2008년 가련산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유해 7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전주기상지청] 1918년 전주관측소가 전주 노송동에 설립되었다. 2013년 12월 덕진동 가련산 자락으로 옮겨 온 뒤, 2015년 전주기상청으로 승격하였다. 전주기상지청은 기상재해로부터 지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상예보 및 기상특보 등의 다양한 기상정보와 각종 기후자료를 신속·정확하게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함께 가련산의 난 개발예방과 가련산 자연보호활동과 가련산 둘레 길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 산행코스
o 1코스: 덕진청소년문화관-충혼탑-법원 뒷담길-전주기상대 옆 능선-호반촌APT앞- 덕진중학교 정문-산불감시탑-충혼탑-덕진청소년 문화관(1시간20분 소요)
o 2코스: 덕진청소년문화관-충혼탑-법원 뒷담길-전주기상대옆-능선-호반촌APT앞- 덕진중학교 정문-산불감시탑-충혼탑-덕진청소년 문화관(1시간20분 소요)-1번국도-덕진공원(연지문)-연화마을-최명희훈불공원-장군바위-장덕사정상-오송제-편백숲-대지마을-산불감시초소-이씨제각길-승마장-전북대병원-조경단-연화마을(2시간30분/총 3시간50분)
<글. 사진: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모악산지킴이 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