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6.
통안재-유치재-매요리-유치삼거리-사치재-새맥이재-시리봉-부채바위-아막산성-흥부마을갈림길-복성이재.
토요일, 해나루산악회를 따라 창녕 화왕산에 갔다가 오후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창녕까지 왕복 8시간을 버스에서 시달렸더니 좀 피곤했다. 집에 도착해 양치만 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좀 불안했던 모양이다. 알람을 3시40분에 맞춰놨는데 2시 50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좀 더 자려고 떠진 눈을 감았지만,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등산준비를 했다.
시간에 맞춰 동사무소에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람이 많아 보였다. 알고 보니 불교산악회 분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불교산악회의 버스가 먼저 들어와 떠나고 잠시 후 당진산악회 버스가 도착했다. 다섯 시 조금 넘어 2동사무소에서 출발, 비 때문인지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출발할 때 당진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신성아파트 앞에서 몇 분이 탔고, 신터에서 몇 분이 타 빈자리가 많이 채워졌다. 늦잠을 잔 석정기 형님이 허둥지둥 달려와 설악가든 앞에서 탔고, 새로온 여자 두 분이 달려와 자리를 채워 서른아홉명이 통안재를 향해 달렸다. 당진산악회 고정버스 전유철사장님은 1박2일로 다른 곳에 가셔서 다른 분이 수고해주셨다. 고속도로를 들어서기도 전에 버스는 실내등을 소등했고, 우리는 잠을 청했다. 모두 새벽에 일어난 탓인지 대부분 잠이 들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여산이었나? 휴게소에 도착해 아침식사를 한 다음 위재형총무님을 필두로 이오형회장님의 인사말씀과 구경모 산악대장님의 산행안내, 그리고 처음 참석하신 분들의 인사가 있었다. 꽤 많은 분들이 새로이 참석했다.
산행 안내 중 위재형총무님이 매요리에 막걸리를 파는 주막집이 있다고 얘기하며 이오형회장님께 막걸리를 사실 의향이 있냐고 묻자, 석정기형님이 아침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막걸리는 형님이 사겠다고 했다. 아! 막걸리를 사신다고 외치는 형님의 모습은 가히 명량의 이순신장군이었다.
10시경 권포리에 도착, 가볍게 몸을 푼 후 산행을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 하도 떠들어 비가 많이 올까 걱정했는데,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비는 겉옷조차 적시지 못 할 만큼만, 흐르는 땀을 식혀줄 만큼만, 오르막을 오르는데 지치지 않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내렸다. 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만큼만 내렸다. 더러는 우비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준비해온 비옷을 배낭 속에 갈무리했다.
권포리에서부터 앞서 걸었다. 처음부터 걸음을 빨리했다. 일요일인데도 대간길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제 화왕산은 사람이 넘쳐 복잡했는데 비 예보 때문인지 등산객과 드물게 마주쳤다. 꼭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간 산행 중엔 사람이 넘쳐 불편했던 적은 기억에 별로 없다.
지치지 않을 만큼 빨리 걸었다.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을 때 뒤에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성함을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일행이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얘기를 나눠보니 호서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분과 함께 열심히 걸었다. 내리막이 끝나고 긴 오르막이 시작됐다. 한참을 앞만 보고 걸었다. 오르고 또 올랐다. 부지런히 한참을 올랐다. 인기척이 없어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소변이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혼자서 걸었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산은 대체로 조용했다. 대간길은 사람들이 드물게 다녀서인지 등산로가 잘 닦여있지 않았다. 나뭇가지들도 많았고, 돌도 많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등산로 옆에서 소변을 보려다 내가 나타나자 내리던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엉거주춤 서서 포기한 여자도 두 명 있었다. 10초만 늦게 왔어도 나는 두 명의 여자가 나란히 앉아 소변보는 모습을 날것 그대로 목격할 뻔했다. 다행히도(?)10초의 타이밍으로 인해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뒤에도 사람들이 오냐고 묻기에 많이 오고 있다고 말하자 그들의 뒤에서 기다리던 남자들을 불러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혼자 걸었다. 조심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대간 길을 혼자 걷는 것도 운치가 있었다. 숲은 는개로 인해 흐리게 지워져있었다. 는개는 숲속 구석구석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활짝 핀 진달래 꽃잎에 내려앉아 연분홍 꽃잎을 더욱더 선명한 빛을 발하게 했고, 조심스레 싹을 틔운 연녹색 이파리위에 내려앉은 는개는 이파리 끝에 눈물처럼 맺혀 있었다. 아직 잎을 틔우지 못 한 나뭇가지 끝에도 물방울이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산은 젖어있었다. 아주 달콤하게 적당히 젖어있었다. 한참을 는개비에 취해 대간 길을 혼자 걸었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혼자 걸으면 보일 때가 있다. 비에 젖은 꽃잎들이 보이고, 연녹색의 수줍은 새싹들이 눈에 들어오고, 는개에 젖은 숲이 보였다. 그리고 대간 길을 혼자 걷는 내가 보였다.
긴 오르막이 끝나고 긴 내리막이 시작됐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말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좀 전에 나와 함께 걷다 사라졌던 호서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함께 매요리에 도착했다. 매요리에 도착해 선생님이 나보고 왜 그렇게 빨리 걷느냐고 했다. 쫓아오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하시면서. 나를 쫓아와야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쫓아오셨는지...
작은 격려의 박수조차 없는 것을....^^ 매요리에 도착해 매요휴게실을 찾아 놓고 마을을 둘러봤다. 매요리 회관과 ‘매요정’이라는 정자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기환님과 임서옥님, 그리고 김규한님 등이 도착했다. 함께 매요휴게실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박신규님 등 일행이 더 도착해 술을 더 주문했다. 할머니 혼자서 운영하시는 허름한 주막이었다. 탁자 바로 옆에 마늘 밭이 있었다. 마늘 두어 뿌리 뽑아서 안주로 먹었다. 김치도 먹을 만했지만 마늘대 안주는 일품이었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뽑은 마늘은 네 뿌리였는데, 지청구는 열두 뿌리만큼 먹었다. 그렇게 먹을 만 했다. 우리에겐 몇 뿌리지만, 그 할머니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뽑는다면 마늘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선두그룹에서는 이기환님이 네 병, 박신규님이 네 병을 사서 여덟 병을 마시고 봇짐을 싸 길을 떠났고, 나는 남아서 위재형총무님과 정제열 임승철 형님, 조경선 박성일 친구들과 한 잔 더 마셨다. 4병을 더 마시고 있는데 오늘따라 이순신장군 만큼이나 용감해 보이는 석정기형님이 도착했다. 형님은 도착하자마자 이순신장군이 공격명령을 내리듯 할머님께 막걸리를 있는 대로 가져오라고 소리 높여 주문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막걸리가 동이 났다는 지렁이 갈비뼈 부러지는 허무한 소리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막걸리 열 두병이 끝이라니. 김일성 혹 터지는 소리보다 더 슬픈 소리였다. 그러자 어느 여성분이 소리 높여 외쳤다.
“역시 돈이 따르는 사람은 쓰려고 해도 주변 환경이 아끼도록 도와준다니까.”
그 여성분의 목소리가 슬픈 메아리가 되어 가슴을 후볐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술이 떨어졌다니.... 여기서 한 잔이라도 더 마셨다가는 막걸리가 아닌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 같았다. 나는 막걸리가 동이 났다는 말을 뒤로하고 서둘러 배낭을 메고 산행 길에 올랐다.(나중에 석정기형님은 막걸리 20병을 사셨단다.)
좀 가다보니 정제열형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제열이 형은 기특하게도 곧잘 따라온다. 빠르게 걷다가도 잠깐 뒤돌아보면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
좀 가다보니 태안에서 열심히 참석하는 장기순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빠짐없이 참석하다가 지난달에 보이지 않아 살짝 걱정했는데 새벽에 2동사무소에서 얼굴이 보여 많이 반가웠다. 지난달 빠진 구간을 남편분과 둘이서 땜빵을 하셨다고 했다. 솔직한 내 심정은 2기에서는 많은 분들이 함께 완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기순님은 애들이 시험기간이라서 혼자 참석했다고 했다. 남편분은 다음에 이 구간을 또 때울 거라고 했다. 셋이서 선두그룹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 젊은 친구도 중간에 만나 합류해서 같이 걸었다. 버스에서 구경모 산악대장님이 주의를 당부하던 고속도로 공사장이 나왔다. 다행히 대간 길은 고속도로 위로 이어져있었다.
고속도로 구간을 지나자 오르막이 시작됐다. 오르막을 한참 오르는데 박신규님이 다리에 쥐가 나 길옆에 앉아 있었다. 함께 오르던 동료들과 함께 다리를 주물렀다. 박신규님의 장딴지는 두꺼웠다. 건강원 앞에 진열해 놓은 굵은 칡뿌리처럼 굵고 단단했다. 웬만한 아가씨의 허벅지보다도 굵은 장딴지는 박성일의 장딴지와는 달랐다. 박성일의 장딴지는 힘을 줬을 때 불룩 튀어나오는 근육형 장딴지인데 반해 박신규님의 장딴지는 전체적으로 굵고 단단했다. 누구의 장딴지가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굵고 단단한 장딴지에 쥐가 났으니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여럿이 대들어 주물렀지만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풀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헬기장이 나왔다. 헬기장에는 당진산악회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매요리휴게소에서 나보다 훨씬 늦게 출발한 사람들까지 이미 다 모여 점심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고, 나를 추월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미 헬기장에 도착해 있었다. 지름길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내 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올라왔다. 처음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대간 산행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점심식사를 하면서 바라본 저 멀리 산봉우리와 하늘은 지독히 아름다웠다. 각종 맛있는 반찬도 좋았지만 식사를 하면서,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바라본 하늘은 그대로 한 폭의 멋진 풍경화였다.
그림 속 정지된 풍경화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풍경화였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구름에 의해 풍경은 수시로 변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갈 때는 어둡게 변했다가, 먹구름이 지나가면 밝은 미소를 띠웠다. 더러는 구름이 하얀 거품이 되어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기도 했다.
바람과 구름과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시를 쓰고 있었다. 바람과 구름과 산봉우리가 읊조리는 시는 내 망막을 통해 시신경을 타고 내 뇌 속으로 흘러들어 뉴런들을 술렁이게 했다. 뉴런은 시를 안고 내 심장으로 빠르게 침투해 내 혈관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랬다. 바람과 구름과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쓰는 시는 내 안에서 용해되어 혈관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나는 시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써 내리는 시를 보면서도, 내 용렬한 글 솜씨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작은 탄성을 지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치를 감상했다.
식사를 끝내고 거의 마지막에 출발했다.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양도 엄청나다보니 맨 마지막에 올라 온 사람들의 음식까지 함께 먹느라 결국 서너 명만 뒤에 남겨두고 출발했다. 배도 부르고 취기도 올라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어도 걸음이 좀 빠르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만치 앞에 걸어가는 아리따운 여인 두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오늘 처음 참석한 분들이었다. 나도 당진산악회에 참석한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처음오신 분들을 챙긴다고 같이 걸으면서 사진도 찍어 드리고 농담도 하면서 얼마동안 함께했다.
김영미님과 한수정님, 두 분이었다.
자연이 써내려가는 시를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리고, 경치에 감탄도 하면서 걸었다. 경치에 취하고 사진에 취해 걸음이 많이 더뎠다. 더뎌도 많이 더뎠다. 내 성격은 누군가를 챙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마침 최원준님인가? (나는 그분을 최원준님으로 알고 있다.) 그분이 올라와 사진을 찍어 주기에 나는 좀 더 같이 걷다가 걸음을 빨리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앞에 이오형 회장님이 혼자 걷고 있었다.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조금 앞에 이태수 감사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은 두릅 순을 따면서 천천히 산행을 즐기는 중이었다. 두 분을 지나 조금 더 가자 이번엔 위재형 총무님이 혼자 걷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모두모여 점심을 먹더니 걸을 때는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총무님과 함께 걷는데 길쭉한 바위하나 길가에 우뚝 서있었다. 바위만 사진에 담았다. 총무님은 사람들을 만나 막걸리를 마셨고, 나는 이미 취기가 올라있었기에 그냥 내려왔다. 내리막길, 굵은 자갈길이었다. 한 무리의 검은 구름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루 종일 구름은 낮게 흘렀다. 얼마 걷지 않아 버스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산주를 마시고 있었다. 양희선님이 먹여주는 안주에 반해 막걸리 두어 잔을 마셨더니 만취였다. 막걸리를 마시고 복성이재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람들을 찍었고, 표지석을 찍었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도 헬기장에서 가슴 속에 찍은 사진만큼 아름다운 사진은 없었다. 복성이재에서 버스로 30분 쯤 거리에 있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후 당진으로, 당진에서 저녁식사 후 동사무소에 도착해 집으로....
이틀연속 산행과 오랜시간 버스에서 시달려 피곤했는지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 앞으로 대간산행 때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겠다. 많은 시간 혼자 걸었더니 재미있는 사건이 별로 없었다.
백두대간6 끝.
첫댓글 멋진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