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나는 빨간색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직선과 곡선, 나무와 돌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아픔을 보여 줄 수 있다.
ㅡ 우리는 그것을 바로 "보여줌"이라고 부른다.
314.
만일 내가 감각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내가 겪고 있는 두통의 현재 상태를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오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315.
아픔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아픔"이라는 낱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ㅡ 나는 그 여부를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을까?
ㅡ 그리고 우리가 "사람은 언젠가 아픔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아픔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ㅡ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 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가?
316.
"생각하다"라는 낱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우리가 거기에서 관찰하는 것이 그 낱말이 의미하는 것이리라!
ㅡ 그러나 이 개념이 바로 그렇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체스를 둘 줄 모르는데, 체스 게임의 마지마 수(手)를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외통장군"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317.
오해의 소지가 있는 비교 : 외침은 아픔의 표현 ㅡ 문장은 생각의 표현!
마치 문장의 목적이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리는 것인 양 말이다. :
다만 말하자면 위(胃)가 아니라 사유 기관에서 말이다.
3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