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석모도는 4개 섬이 합해진 섬이다
매음도(煤音島)는 석모도와 어유정도 사이에 있던 섬으로, 매도(煤島), 구음도(仇音島), 구음섬, 그음섬, 글음섬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숙종 때에 간척사업으로 석모도에 합쳐졌으며, 현재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 궁궐에 깔던 박석을 채굴하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 재위 기간
1674년 9월 22일 ~ 1720년 7월 12일
숙종 시기에
북쪽의 송가도(松家島), 남쪽의 매음도(煤音島)와 합쳐졌고,
일제강점기에
남서쪽의 어유정도(魚遊井島)
1861년(철종12년) 고산자 김정호 제작의 『대동여지도』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로 표기되어 있다.
1864년(고종 1) 최제우 참수 순교
'석모로'라는 지명은 '물이 돌아 흐르는 모퉁이' 혹은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라는 뜻이다.
'돌모로'를 한자화하면서 석모로(石毛老)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석모도(席毛島)로 기록되어 있다.
석모도는 조선 시대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 석우도(席隅島)라고도 했다.
조선 숙종 때에 간척사업으로 북쪽의 송가도(松家島), 남쪽의 매음도(煤音島)와 합쳐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남서쪽의 어유정도(魚遊井島)와 합쳐졌다.
석모도(席毛島)는 인천시 강화군 서부에 위치한 섬으로, 멋진 바다 조망을 볼 수 있는 수도권의 섬 산행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는 섬으로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 소속돼 삼산면이라 불리게 됐고 1910년 강화군에 편입됐다.
삼산면이란 명칭은 석모도에 있는 명산인 해명산(327m)·상봉산(316m)·상주산(264m) 등의 봉우리가 한자의 산자(山字) 모양을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됐다.
석모도 산행은 해명산에서 시작해 낙가산이나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서해바다와 야트막한 산봉들이 운집한 강화도를 조망하며 갈 수 있어 인기가 있다.
해명산~낙가산 ~ 상봉산 종주산행은 대개 전득이고개에서 능선으로 올라붙은 다음 해명산과 낙가산을 거쳐 상봉산으로 진행하나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보문사로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명산~낙가산 ~ 상봉산 종주산행은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10분만 가면 닿을 수 있어 편하게 섬산 특유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으나 석모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는 섬 산행의 매력이 반감되었다.
하산길에 있는 보문사는 선덕여왕 시절의 사찰로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히는 곳이다. 눈썹바위 아래 거대한 절벽에는 높이 9.7m 너비 3.64m의 관음보살상(시유형문화재 제63호)이 조각돼 있다. 눈썹바위에서 보는 낙조 또한 인상적이다.
상봉산(上峰山)
높이 : 316m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삼면 석모도
해명산(海明山, 309m)에서 낙가산을 지나 상봉산(上峰山, 316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북쪽에는 성주산(264m)이 고립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낙가산(落袈山)
높이 : 235 m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 되었다.
"낙가산"은 한자로 "落袈山"이라고 쓴다, 한자 뜻풀이로 그 의미를 알려고 하면 전혀 알수 없다.
왜냐하면 "落袈"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옛 言語인 '산스크리트語'로서 "관세음보살"이 살던 인도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인도의 산 이름을 중국에서 자기네 글자인 한자로 표기할 때 단순히 音譯해서 표기했으니 뜻 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이니 의미를 알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떨어질 落"과 '십자가'나 '고가도로'를 쓸때 쓰는 "시렁 架"를 한자로 해석해서는 그 본래 뜻을 전혀 알수 없다.
"落袈山"은 인도 남부에 있는 산으로서 "관세음보살"이 살던 전설적인 산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 금강산 보덕암에서 수도하던 "회정스님"이 이곳을 와 보고 "봉황이 날아와 집을 짓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하여 이곳에 "보문사"라는 절을 짓고 "관세음보살"을 흠모하던 "회정스님"이 "관세음보살"의 고향 산 이름을 이 산 이름으로 명명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