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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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탐색, 그 영혼의 진실
--이종철 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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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송 배
시인 .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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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생명의 이법’의 탐색
현대시 창작에서 주제로 투영된 핵심은 인본주의(humanism)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지금까지의 주관적인 시론으로 정착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창작의 요체가 바로 인간의 지적 성품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인성(人性-human voice)의 인식이거나 성찰로의 전환적인 심리적 작용이 우리 시의 표정으로 많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인성의 현실적인 입증이나 궁극적인 인식의 범주(範疇)는 대체로 인간의 생명성에서 탐색하는 시법(詩法)이 상당한 설득력으로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 시인의 심저(心底)에 깊게 흐르고 있는 의식(意識-consciousness)이 그 지향점을 정착시키는 중요한 관점(觀點-viewpoint)으로 착목(着目)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 Dewey)는 생명이란 환경에 대해서 작용하는 행동을 통하여 자기를 갱신(更新)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또한 영국의 시인 존 드라이든(J. Dryden)도 자유에의 사랑은 생명과 함께 주어진 것으로 그 생명 자체는 하늘의 소박한 선물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자기의 새로운 생명의 갈구를 탐색하는 일은 우리 시인들의 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이종철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에서 감지할 수 있는 생명성도 이와 같은 ‘새로운 생명’을 지향하는 순수 서정이 넘치는 그의 시적(혹은 인간적)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천착(穿鑿)하는 생명-여기에는 탄생에서부터 그 축복, 환희 그리고 죽음 등-의 진의(眞意)를 명민(明敏)하게 탐구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그는 ‘생명의 환희’를 다음과 같이 존재의 의미와 동일하게 그의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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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환희,
천지신명의 조화다.
두 손 움켜잡은 첫 디딤은
모체로부터의 분리,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탄생의 축복 반길 때,
온갖 고뇌를 짊어진 양
울음을 터뜨리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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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의 이법(理法)
그건 고뇌일까, 두려움일까.
먼저 떠난 길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양상은
가냘프고 슬픈 사슴인 양,
허공을 바라보며
창백한 고독의 웃음 흘려본다.
--「생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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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시인은 이렇게 ‘생명’에 대한 논지를 ‘새로운 생명의 이법(理法)’이라고 전제하면서 이것을 단순한 논리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그건 고뇌일까, 두려움일까.’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우선 의문형 어법으로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내면에 깊게 잠재한 생명성에 대하여 새로운 ‘이법(理法)’으로 정의를 내리려는 웅대한 가치관을 발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생명이 태초에 포괄하는 고뇌와 두려움 등의 현실적인 우리들의 공통된 관념의 범주에는 ‘먼저 떠난 길손들의 모습’에서 감지하는 사유(思惟)의 형태는 ‘허공을 바라보며 / 창백한 고독의 웃음’이라는 결론으로 유로(流路)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단정하는 ‘생명’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시적으로 생성하는 생과 멸에 대한 집념은 허무라는 결론으로 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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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멸
운집은 흩어지고
결합은 해체
오르는 것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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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환영
말은 메아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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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하나 오고 가니
끝 없는 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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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갈 때는 빈 손
인생은 석양처럼 지고
죽음은 저녁의 긴 그림자처럼 가까워진다
--「사라지는 마지막 그림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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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종철 시인이 이처럼 공(空)이거나 허무적인 관념으로 전환하는 시적 주제의 착목은 그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도입부분에서 ‘생은 멸’이라는 전제로 ‘죽음은 저녁의 긴 그림자처럼 가까워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메시지를 우리는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법은 작품 「겨울나무」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 생生=사死 / 대등한 관계성’이라거나 작품 「생의 여정」에서도 ‘언제 어디로 / 운명처럼 흐르는 걸까 // 죽도록 고생만 하다 / 이제 삶을 알 것 같은데 / 정녕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어조로 그의 사유에는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한 의문의 생명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가득 찬 텃밭은 / 어느새 텅 빈 충만(充滿)으로 채워지고 / 유년의 자아(自我)를 찾아 / 대중(大衆)속으로 점멸되다 / 끝내 자아(自我)속으로 사라진다(「텅 빈 충만」중에서)’거나 ‘내 처음의 소유는 생존 / 두 번째 소유는 욕망 / 세 번째 소유는 안정 / 마지막 소유는 생명의 끝이다(「무소유」중에서)’라는 어조의 체념(諦念)이거나 소멸되려는 자아를 다시 재생하면서 공(空)의 개념으로 생명의 진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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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멸과 영혼 세계와의 교감
이종철 시인은 이와 같은 생명성이 바로 영혼의 세계와 상관한다는 새로운 의식을 현현하고 있다. 이는 그가 가장 중시하는 생명이 영혼과 교감할 때 그는 진정한 생과 멸의 진실을 감득(感得)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존재(또는 생명)가 어차피 여과(濾過)하면서 영혼과의 접맥(接脈)을 시도하려는 이종철 시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다양한 단계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그가 보편적인 관념으로 창조하는 시법을 초월해서 그의 심저(心底)에 깊이 간직한 삶과 생의 진실이 바로 영혼과 교감함으로써 그의 형이상적인 정신세계를 성취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그의 뇌리에 충만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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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밑바닥 언저리에서 스며나는 음률
고깔 쓰고 승무하듯 너울너울 춤사위 한다
본래의 고향으로 던져진 영혼처럼
내 영혼은 춤사위로 스며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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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 인연 뒤로한 채 인고의 세월을 떨쳐버리고
구중심산으로 들어간다
맑은 계곡을 따라 가랑잎 흘러내리고
간간이 보이는 초가삼간에 댕기머리에 색동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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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곳, 맹금의 제왕
독수리 떼 무리 지어 벗어 던진 육신에
배고픔 달래려
속세에서 때 묻힌 육신 말끔 없애듯
갈가리 찢어져 조장되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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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 휘돌아 가는 여울목
조잘거리는 새 소리에 내 영혼은 사위어 가고
번민, 고통이 없는 영혼의 세계
--「명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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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상’ 속에서 그가 명징(明澄)하게 발현할 수 있는 영혼은 생명과 유기적(有機的)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영혼은 유기체의 본질원리와 작용원리 그리고 형성원리에서 생성하는데 이 유기체와 본질적으로 결합해 있고 신체와 실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학설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번민, 고통이 없는 영혼의 세계’로의 지향은 ‘속세 인연 뒤로한 채 인고의 세월’에서 선험적으로 체득한 시간성과 ‘속세에서 때 묻힌 육신 말끔 없애듯’하는 육신이 서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생멸(生滅)의 해법을 적시하고 있다.
이종철 시인은 이처럼 ‘영혼의 슬픔 / 눈망울 맺혀 / 동공에 새긴다’거나 ‘본래의 고향 / 추억을 그리는 / 영혼의 아픔이다(이상「눈물」중에서)’거나 ‘인간은 죽으면 영혼은 별이 된다 / 무한 생명, 대자연에 대한 동경, / 그것은 하나의 신화이다(「낭만주의와 나」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가 교감하는 영혼은 인간의 ‘ 무한 생명’에의 갈구(渴求)이거나 기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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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핥고 간 흔적은 텅 빈 상흔만 남기고
지나온 과거는 후회와 연민, 번뇌 속에서 갈등만
증식되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 후회,
연민의 비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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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 끝에 오는 생동감마저 느끼지 못한 채
무기력과 괴리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마냥 잔잔한 미풍은, 겨울 내 얼었던 대지를 녹여주고
차디찬 나의 아픈 마음을 덮어두지 못한 채
두 볼 사이로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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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지나쳐 흘러온 세월,
내 영혼 깊은 내면의 의식 속에서 천둥과 소쩍새
또한 심혈을 쏟고 소박한 정성 기울였듯이
폭풍과 긴 장마와 잔잔한 미풍들은 잠든 자아를
흔들어 또 다른 낯선 자아를 발견케 하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까닭 없이 자라는 내 손톱눈
같은 저 빛나는 고독 하나 후회로 남는다.
--「뼈아픈 후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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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종철 시인이 뼈아프게 되뇌이는 ‘후회’는 무엇일까. 그가 자주 사용하는 수사(修辭)에서 감지할 수 있는데 바로 ‘상흔’, ‘후회’, ‘연민’, ‘번뇌’, ‘갈등’, ‘동경’ 등의 관념에서 창출될 수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에게 내포(內包-connotation)된 외연(外延-denotation)에서 융합한 현실적인 체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체험은 ‘긴 장마 끝에 오는 생동감마저 느끼지 못한 채’ 또는 ‘차디찬 나의 아픈 마음을 덮어두지 못한 채’에서 출발하여 ‘불혹을 지나쳐 흘러온 세월’과 동행하는 ‘폭풍과 긴 장마와 잔잔한 미풍들은 잠든 자아를 / 흔들어 또 다른 낯선 자아를 발견케 하는’ 자아의 재발견에서 종내에 다가올 영혼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 까닭 없이 자라는 내 손톱눈 / 같은 저 빛나는 고독 하나 후회로 남는다.’는 절박한 어조로 공감의 평범성을 획득하고 있어서 그의 시적 진실이 흡인되고 있다.
그는 다시 ‘내 처음의 소유는 생존 / 두 번째 소유는 욕망 / 세 번째 소유는 안정 / 마지막 소유는 생명의 끝이다’라거나 ‘죽음과의 정면대결 / 소망의 빛 사라지고, / 깊은 좌절이 있던 날 /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 생명의 빛을 찾는 저 부산함(이상「무소유」중에서)’이라는 어조로 근엄하게 죽음과 좌절과 생명의 상관성을 적시하여 영혼에 이르는 시적 정도(正道)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혼은 ‘가난한 영혼들 / 무엇 하나 소유치 않아 /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 버리고 떠난다(「무소유」중에서)’거나 ‘이 시간 눈물로 비 오거니 / 밤하늘에 총총 별이 되어 / 영혼의 등불 밝혀 주소서(「별리 2」중에서)’, ‘비정한 도시로의 탈출 / 존재가 없는 임사체험 / 상처입은 영혼의 일탈(「그리우면 열차를 타자」중에서)’, ‘남은 세월이 적은데 / 낙화는 너울너울 춤추며 / 영혼을 불사르고 / 대지에 살픗 나려 앉는다(「낙화」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생명과 영혼이 대칭의 구조로 그가 갈구하는 시적 진실을 명민하게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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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성과 존재의 시적 상관관계
이종철 시인의 시간성(또는 세월)은 삶과 공시성(共時性)을 갖는 존재의식과 동행하게 된다. 우리 인간들에게 부여된 소중한 시간은 이를 적절하게 운용(運用)하려는 노력이 따르게 되는데 그가 시적으로 상황을 설정하거나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적인 상황을 직시(直視)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 아직은 혼돈이다.’라는 결론으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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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독한 영혼마다에
좋은 음조로 떨어지는 환청 같은
언어의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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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월은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저 아직은 혼돈이다.
--「그저 아직 혼돈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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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종철 시인의 시적 원근법에는 세월과 생명, 생명과 혼돈 그리고 혼돈과 영혼의 삼분법적인 ‘번뇌의 현상’과 동시에 ‘영혼의 절망’을 그의 정서와 사유의 넓은 광장에서 아직도 정리를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인간학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 작품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눈뜨면 어쩔 수 없는 / 현상에서 오는 삶의 고뇌’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러한 고뇌가 바로 시간 속에서 탐색한 ‘내 고독한 영혼’과 이미지가 동일하게 투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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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건너편 피안의 세계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눈뜨면 어쩔 수 없는
현상에서 오는 삶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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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시 창의적인 예술가는
이전 작품에 만족할 수 없듯이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지금 벼랑 끝에선
내 영혼은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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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잃은 계절 끝자락
내 고독한 영혼 위로
저렇게 떨어지는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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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몰의 시간,
방향감각을 상실한
내면의식은 미망迷妄이다
--「세월 앞에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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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종철 시인은 이 ‘세월 앞에서’ 다양한 상상력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가 체득한 삶의 한 단면이거나 신조(信條)와 같이 정착해버린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 지금 벼랑 끝에선 / 내 영혼은 절망이’이며 ‘방향감각을 상실한 / 내면의식은 미망迷妄’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서 시간성은 ‘세월의 물 발 핥고 간 호산湖山 해변 / 상큼한 향기의 들꽃은 피고 / 내 유년의 기억은 퇴색되어 / 어제의 시간에 머문다(「그 파도 소리」중에서)’거나 ‘낙엽처럼 잊혀 진 세월 / 흑암과 고통의 터널 끝 / 둥둥 새날의 태양 눈부실지라도 / 그 밤 서럽도록 울었다(「그 밤」중에서)’ 그리고 ‘기억 속 묻혀 진 흔적 / 시간의 물발에 밀려 / 마른 침 같은 세월을 삼킨다(「세월2」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의 비장한 메시지가 공감의 영역을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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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창조되던
과거에도 살아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기에
시간이 다하는 날까지
대지와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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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살아 충동하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비록 미약하나 끝이 없는 존재이기에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우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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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닿는 미래에도 살아갈 것이되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무한한 유전자이기에
최후의 한순간까지
항시 살아 있을 목숨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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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상을 감지하고 인식하는
인생(人生)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공전하는 실체이리라
--「여울 속에서-존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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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시간성에서 도출(導出)된 가장 소중한 의식은 존재라는 관념의 극치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존재=생명=시간’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그가 지향하는 ‘인생’의 실체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다시 존재의 의미는 시간과 더불어 우주로 향하는 원대한 갈망들이 그의 시적 원류에서 가득 흐르고 있어서 그의 시간 개념은 과거에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에 까지 사유의 진폭이 무한대하게 광의(廣義)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성체(聖體) 응시하여도 / 신의 존재는 의문이다 / 시야에 사라진 석가 / 정녕 법문은 없다(「휘청이는 시대」중에서)’라거나 ‘존재해서 사랑했는데 / 한낮의 태양을 따라간 것들 / 사라진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흔적」중에서)’라는 의문은 아직도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의문형 수사법에서 그가 탐구해낸 해답을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어서 ‘존재=시(시인 혹은 문학)’라는 진솔한 그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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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을 / 정신적 유산으로 / 안겨주는 한권의 책 / 감동을 주는 말씀 // 여행을 하 는 / 꿈의 예언자 / 나그네 같은 / 시인이다(「삶2」중에서)
-가을 갓 핀 황국(黃菊)이 되어 / 어느 시인의 꽃말처럼 살다 / 한편의 시가 되고 싶다 (「삶」중에서)
-바람이 분다 / 살아야 된다는 의지 / 시인의 삶을 살아가야지(「서시」중에서)
-부도덕한 행동 쓰레기 더미에서 인문학을 / 찾아야 하는 방황하는 시인의 사색은 슬프게 한다(「세월」중에서)
-낙엽 지는 만추, 시인에 의해 읊어지고 / 내면세계 파헤쳐 사람에게 교훈을 안겨주네(「자 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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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그는 선(禪)이라는 또 다른 정화(淨化)를 통해서 존재의 성찰과 가치관의 정립을 투영하는 작품으로 「연잎」「우리 사는 동안에」「석남사 가는 길」「지천명」「수선사의 만추」등에서 그의 심원(心願)으로 발현하는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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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연 서정과 삼라만상의 표정
이종철 시인은 자연을 사랑하고 거기에 창조되는 삼라만상의 표정을 만끽(滿喫)하는 서정 시인이다. 그의 서정에는 친자연과 동행하는 계절적인 이미지가 잔잔한 메시지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우리 현대시론에서는 서정적 자아라는 개념으로 인간과 자연이 동일시하는 시법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종철 시인은 자연 동화(同化-assimilation=자연의 인격화에는 동화와 투사(投射-poject)라는 감상적 오류의 시법이 있음)와 그 속에서 생성하는 만물들의 생동감이 우리의 정서를 안온하게 흡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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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소녀처럼 봄바람 일렁이면
봄비 나리는 푸른 대나무 숲
바람결 댓잎 부비는 소리
눈으로 보지 말고 귀로 들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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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이 빨갛게 익어가는 유월
그림 같은 구름 수줍게 피어낸 강가의 개망초
가슴 두근거리며 만나는 두물머리 강은
물비늘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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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빛 애틋한
높고 푸른 하늘, 알알이 영그는 황금들판
갈바람이 솔숲을 바다를 풍경 속 나를 울리며
조용히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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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언덕
붉게 핀 자포니아,
사려니 숲 개울엔 노오란 인동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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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손길로 꽃피워
마음 속 푸른 빛 그리며
갈빛 애틋함 안고
깊은 산처럼 깊은 맘으로 살리라
--「자연에 기대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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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는 이 자연의 거대한 실체 앞에서 많은 인식과 자성(自省)을 통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생을 발현하고 있다. 그는 자연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녹아 있는데 대체로 살펴보면 ‘푸른 대나무 숲’, ‘댓잎 부비는 소리’, ‘강가의 개망초’, ‘두물머리 강’, ‘높고 푸른 하늘’, ‘황금들판’, ‘솔숲’, ‘동백 언덕’, ‘숲 개울’, ‘노오란 인동초’, ‘깊은 산’ 등등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은 시각적인 감응(感應)을 통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그의 특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상황(사물)에서 그가 결론으로 적시한 대목은 바로 ‘깊은 산처럼 깊은 맘으로 살리라’라는 서정성이 돋보이는 주제에서 탐구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자연 서정에서는 자연 환경이나 그 환경에 동반하는 생명들의 변화에서 시적 소재와 주제를 창조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종철 시인 역시 ‘자연에 기대어’서 바라본 시적 탐색은 자연 생명의 천착으로 포용되고 있다.
그가 자연 정취에서 획득한 진실의 발현은 작품「단풍」「도봉산 가는 길」「노을진 강」「녹차향」「바닷가」「숲」「풀잎」「꽃」「내 고향」「향수」등에서 자연의 변화와 그 변화가 우리들에게 내밀하게 흡인시키는 메시지는 더욱 아름다운 공감으로 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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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르 꽃잎 피어나는
섬세한 저 미동에
태고의 하늘은
저렇게 어둠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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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한 날의 태양은
빛이 열리는 동녘하늘 가득
수천의 황금빛 날개 짓으로
바다를 연모해 솟아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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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광명으로 비춰
침묵에 잠든 삼라만상 일깨워
눈부신 역사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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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해 오름은
새날을 개벽하여
온 누리 가득 광명의
축복과 감동 안겨주나니
--「여명」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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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만물의 생성과 변화는 시간성(혹은 계절성)의 변화와 동일한 개념으로 시인들에게 부각(浮刻)된다. 이 ‘여명’은 바로 하루의 출발인 거룩한 시간이다. 이것이 ‘파르르 꽃잎 피어나는 / 섬세한 저 미동에 / 태고의 하늘은 / 저렇게 어둠은 열린다’는 시적인 상황의 설정은 참으로 그 정경(情景)이 ‘천지를 광명으로 비춰 / 침묵에 잠든 삼라만상 일깨워 / 눈부신 역사를 창조한다’는 그의 심저를 이해하게 한다.
그는 다시 이 여명은 ‘찬란한 해 오름은 / 새날을 개벽하여 / 온 누리 가득 광명의 / 축복과 감동 안겨주’는 자연의 변화에서 우리는 광명을 통한 희망을 공감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 현상에서 시간과 공존하는 작품에는 「가을 날」「매화」「여름날 흔적」「봄의 정취」「목련화」「동백꽃」「만추2」「눈오는 밤」등에서 그의 서정적인 이미지의 음미(吟味)를 맛보게 하고 있다.
그는 ‘낮은 산등성이 /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추엽 / 싱그럽던 푸른 생명 벼랑 끝에 세운다(「가을 산사에서」중에서)’거나 ‘하얀 눈은 동심이다 / 아이들의 너울너울 춤사위로 / 대지위에 자신의 존재, 불태운다(「눈은 내리고」중에서)’는 어조는 그가 진정한 자연 애호가의 상념(想念)이 시로 형상화하는 서정 시인의 특성이 잘 분사되고 있다.
이종철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실체에서 간과할 수 없는 고뇌인 생멸과 존재의 문제를 깊게 탐색하고 있는데 그는 새로운 생명의 이법과 영혼과 시간성과 존재의 문제를 심도 있게 비평적인 시법으로 그 화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인간들에게서 필요충분 조건을 항상 요구하는 서정적 자아의 구현을 위해서 생동감으로 자연과 동화하거나 감응하는 시법에 감동하게 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셸 리가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며 하나의 시는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하는 인생의 의미라는 말이 실감나는 연유가 바로 이종철 시학이 인생의 의미(존재와 생멸-영혼)를 다시 일깨우려는 시의 위의(威儀) 정립을 위해서 아직도 고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