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에서의 칼빈의 성경사용
- 1권1장(최종판 1559년)의사례 -
칼빈의 성경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다.1) 아무도 성경 없 는 칼빈을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하다. 그는 전적으로 성경을 힘입 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칼빈의 집착력은성경주석의분량만보다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다. 칼빈 은전생애를드려서성경을주석했다. 그의주석을간단히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L = 라틴어, F = 불어번역).2)
1540 로마서 L(1550 F)
1542 유다서 F
1545 베드로전후서와 유다서F
1546 고린도전서 L(1547 F)
1547 고린도후서 F(1548 L)
1548 갈/엡/빌/골L(1548 F), 디모데전후서 L(1548 F) 1549 디도서 F(1550 L), 히브리서 L(1549 F)
1550 데살로니가전후서 L
1551 이사야서(1판) L(1552 F), 공동서신 L(1556 F),
요한일서F, 야고보서F, 유다서F
1552 사도행전a L(1552 F)
1553 요한복음 L(1553 F), 공관복음 Harmony
1554 창세기 L(1554 F), 사도행전b L(1554 F)
1557 시편 L(1558 F), 호세아 L(1557 F)
1559 이사야(2판) L(1572 F), 소선지서
1561 다니엘 L(1562 F)
1563 예레미야서와 애가 L(1565 F), 모세오경 L(1564 F)
1564 여호수아 F(1564 L)
1565 에스겔1-20 L(1565 F)[1552-54에설교됨, 1563-64에강의됨]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생애는 성경을 주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표현해도과언이아니다. 그가이처럼성경주석에온힘을기 울인 것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fons)이며 교사(dux)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칼빈의 이런 성경관은 기독교강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칼 빈은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의 세 부분에서 성경에 관한 견해 를 피력한다. 첫째로 1권 6-9장에서는 성경과 하나님 지식을 연 관시켜 다루며, 둘째로 3권 2장에서는 성령의 구원 사역과 성경을 관련시켜 다루고, 셋째로 4권 8장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 문제 를 다룬다.3) 칼빈의 성경관을 종합하면 성경은 원천이며 교사라 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초판(1536년)부터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님 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정리했고 이 생각을 최종판(1559년)까지 변함없이 유지했다.4) 이렇게 볼 때 칼 빈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가지요소로집약할수있다.5)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이와같은 이중적인지식을 알수있는 길은 성경밖에 없다.6) 이중적인지식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경이다.7) 성경은 특히 하나 님을아는일에있어서가장중요한역할을한다. 하나님을찾는 최선의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서 시작한다.8) 이 때문에 칼빈은 1 권 6장의 제목을 “누군가가 창조주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지도자인 성경이 필요하다”는 제목을 달았다.9)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교사(dux)이며 지도자(magistra)이다. 칼빈이 성경을 논하는 일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그의 견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밝히 드러내어 하나님의 계시나 그분 자신의 의사소통을 구체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0)
사실 기독교강요 자체가 성경이해를 위한 책이었다. 기독교강 요는성경을이해시키기위한노력외에다른것이아니었다. 이 것은 칼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언급하는 사실이다. 칼빈 은 성경 이해를 열어주기 위해서 기독교강요를 썼다.11) 칼빈은 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기독교강요 초판(1539년)에서 이것을 밝히고 있으며 최종판(1559년)의 독자에게 주는 서문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이것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 이 작업으로 내가 의도하는 것은 거룩 한 신학의 후보생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준비시 키고 가르침으로써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다 가설 수 있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해받지 않고 하나 님의 말씀 안에서 점점 전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2)
칼빈은 누구든지 기독교강요를 올바로 파악하기만 하면 성경 에서주로무엇을연구해야하는지알수있고, 성경에서어떤목 적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수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진술을 볼 때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성경 내용의 총합을 얻어 서술하는 것이었다.”13) 한 마디로 말해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종으로 활동한 일면을 보여주 고 있다.14)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그의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로 봉사하기를 원했다.15) 이런 점에서 칼빈에게는 기독교강요와 성 경주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면서 심화되 고 강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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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H. Leith는 제네바에서 칼빈이 받은 첫째 명칭은 “성경 낭독자”(Reader in Holy Scripture) 였고(CR 5, 233), 자신을 가리켜 “제네바 교회의 하나님 말씀 목회자”(Minister of the Word of God in the Church of Geneva)라고 불렀다(CR 20, 299)는 사실에 근거해서 칼빈을 “성경의 신학자”(Theologian of the Bible)라고 규정했다("John Calvin - 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25 (1971), 329-44, esp. 329f.).
2) 칼빈의 주석출판 연표는 T. H. L.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Churchman 78 (1964), 23-31 (= ACC 6, 65-73), esp. 30f.에 첨부한 부록(Appendix I)에 잘 정리되어 있다. 칼빈이 학교와 교회에서성경을강의한목록은Parker의Appendix II를참조하라.
3) 신복윤, 칼빈의하나님중심의신학,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5, 79. Cf. 도날드매킴, “칼빈의 성경관,” in도널드매킴편저, 이종태옮김, 칼빈신학의이해. 15명의세계석학들의논문을통해본 칼빈신학연구서,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1, 52-86, esp. 61: “1559년판기독교강요에 보면칼빈은 세곳에서성경에대해서정식으로거론하고있다. ... 이세부분은성경과하나님을아는지식(1,6-9), 구원을위한성령의역사라는맥락안에서의성경(3,2), 및성경의영감과권위(4,8)이다.”
4) Summa fere sacrae doctrinae duabus his partibus constat: Cognitione Dei ac nostri.
5) R. C.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Is There Anything New?", Calvin Theological
Journal 23 (1988), 178-194 (= ACC 7, 44-60), esp. 180: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중적 지식은 칼빈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6) W. Niesel, Die Theologie Calvins, zweite, ü berarbeitete Auflage, Einfü 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VI, Mü nchen: Kaiser, 1938, 1957, 24: "Wollen wir etwas Zutreffendes ü ber Gott und damit auch ü ber sein Verhä ltnis zum Menschen sagen, dann müssen wir von Gott selbst darüber belehrt werden. Das geschieht in der Heiligen Schrift. Sie allein gibt uns Aufschluß ü ber Gott und uns selbst."
7) 이런점에서칼빈은자연의빛에가치를주지않는다.
8) 칼빈, 창세기 48:15 주석을 참조하라: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시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방법이다”(Haec optima est ratio quaerendi Dei, ubi a verbo incipimus)(CR 51, 584). 9) Cf.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1.
10) 도날드 매킴, “칼빈의 성경관,” 61.
11)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P. T.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Interpretation 6 (1952), 188-209 (= ACC 6, 104-125), esp. 205는 W. Walker (Jean Calvin, transl. by E. and N. Weiss, Geneva, 1909, 138 and note)의말을인용해서, 기독교강요의 초판의본질적인 목적은 성경의 가르침을 열어주는 것이었다(Its essential aim was to unfold the teaching of Scripture)고 말한다. Cf. J. L. M. Haire, "John Calvin as an Expositor as an Expositor," Irish Biblical Studies 4 (1982), 2-16 (= ACC 6, 74-88), 8: "He certainly wrote his Institutes - Institutio, as in the great Roman lawyers, meant simply 'a summary' in Latin - to be a summary of the teaching of scripture and so a guide to the many who, in the Reformation age were, for the first time, seeking to read and understand the Scriptures for themselves."
12) CR XXX, 1-2 (Johannes Calvinus Lectori). Cf.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6.
13) Niesel, Theologie Calvins, 24.
14)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7.
15)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8.
16) Cf.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Leith, "Theologian of the Bible," 332.
칼빈의 성경 사용 방식
그러면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와도 같은 기독교강요에서 칼 빈이 실제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범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습관적으로 성경구 절을 책이름과 장절로 언급한다. Battles는 Westminster 출판사를 통해서 기독교강요를 영역하면서 성구색인을 달았는데17) 그 초두에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며 정확한 색인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18)는 야심 찬 표현을 사용했다. 이 색인은 성경의 직접인용 뿐 아니라 암시구절까지 포 함한다.
실제로 이 성구 색인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얼 마나 자주 풍부하게 사용했는지 여실히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자 료로 훌륭한 유익을 준다. 후에 Battles는 기독교강요의 성경사용 에 관한 이 복잡한 자료를 도표화하는 수고를 했다(Tabulation of Biblical Citations in the Institutes).19) 우리는 Battles의 도표를 바탕 으로 다음과 같이 더욱 간단하게 만들어 볼 수 있는데 이 도표를 보면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각 성경책을 몇 번씩 사용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성경 | 장르 | 책 |
구약 2,424 | 모세오경661 | 창254 출164 레65 민23 신155 |
역사서238 | 수10 삿30 룻1 삼상52 삼하34 왕상51 왕하42 대상3 대하7 스1 느6 에120) | |
시가서754 | 욥68 시580 잠82 전21 아3 | |
대선지서625 | 사324 렘162 애가3 겔98 단38 | |
소선지서146 | 호32 욜21 암11 옵1 욘8 미7 나0 합14 습4 학2 슥19 말27 |
성경 | 장르 | 책 |
신약 4,330 [4323] | 복음서1303 | 마542 막60 눅235 요466 |
행276 | ||
바울서신2187 | 롬598 고전428 고후205 갈183 엡282 빌84 골132 살 전33 살후36 딤전105 딤후50 딛49 몬2 | |
히244 | ||
공동서신 292[285]21) | 약57 벧전116 벧후24 요일88 요이0 요삼0 | |
계28 |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의 에스더와 나훔서, 신약성경의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747번).
둘째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을 대략 전체에서 3분의 1정도 사용했고, 신약성경을 대략 3분의 2정도 사용했다. 이것은 구약성경 사용과 신약성경 사용을 비교해 볼 때 구약성경보다 신약성경이 두 배 정도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기독교강요에서 로마서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598번). 이것은 칼빈이 본래 기독교강요를 쓰면서 로마서 주석과 연결시키려고 했던 의지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22)
그 다음에 기독교강요에서 시편(580번)23)과 마태복음(542번)이 압도적으로 많 이 사용되었다. 시편이 많이 사용된 이유는 칼빈이 보기에 시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24)
그 다음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서(324번), 신약 성경에서는 요한복음(466번), 고린도전서(428번)가 많이 사용되었다. 분량에 비해서 에베소서(282번)가 많이 사용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역사서(통틀어 238번)와 요한계시록(28번)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여러 차례 외경을 사용했다. 때로는 명 시적으로 책이름과 구절을 언급한다: 토빗(Tobit) 12:15(1.14.8), 솔 로몬의 지혜(Wisdom of Solomon) 14:15-16(1.11.8), 시락의 집회서(Ecclesiasticus) 15:14-17/14-18(2.5.18), 16:14/15(3.15.4), 16:14(3.15.4), 바룩(Baruch) 2:18-19 Vg(3.20.8), 3:2(3.20.8), 마카비 상(I Maccabees)1:56-57(1.8.10)25), 마카비 하(II Maccabees) 12:43(3.5.8), 12:43(3.5.8), 15:39(3.5.8).
또한 칼빈은 책이름과 구절에 대한 언급 없이 외경을 진술하기도 한다: 집회서(Ecclesiasticus) 6:31(3.9.6), 18:11/18:9(1.5.6), 24:9/24:14(1.13.7), 24:9/24:14(1.13.7), 24:9/24:14(2.14.8).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외경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아주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마카비 하 12:43[3.5.8], 12:43[3.5.8], 15:39[3.5.8])26), 중립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며(토빗 12:15[1.14.8]: 천사 라파엘 언급; 솔로몬의 지혜 14:15-16[1.11.8]: 우상숭배의 기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 다(바룩 2:18-19 Vg[3.20.8], 3:2[3.20.8]27)).
2) 출처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성경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성경주석에 서 가져오기도 하고, Vulgate와 칠십인 역(Septuagint, LXX)이나 히 브리어 성경을 사용하기도 하며, 에라스무스(Erasmus)를 참조하는 경우도 있고,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을 보기도 했다.28) 칼빈이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한 경우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는 형상과 모 양을 언급하는 1권 15장 3절이다.29) 칠십인 역을 사용한 대표적 인 예는 시 94:12-13(93:12-13)이 ceirotonh,santej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헬라어 성경을 사 용한 예를 분명하게 보여준다.31)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란히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칼빈에게 구약성경과 신 약성경은 수평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칼빈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결성을 확신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증거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동일한 말씀을 증 거한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말씀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님의 한 말씀을 선포한다.”32)
3) 방식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성경을 사용한 방식은 간단해 보이지 않지만대체로다음과같이세가지로정리를해볼수있다: 녹 아진 암시, 단순한 참조, 해석적 인용. 이 글에서는 논의를 좁히기 위해서 기독교강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부분(1권 1장)을 중심으로 이런 성경사용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제한한다.
(1) 녹아진 암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비록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지 않 더라도 언어와 내용에서 성경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 은 칼빈이 성경의 언어와 내용에 매우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논 지를 전개할 때 자연스럽게 활용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은 우리의 은사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나 왔고 우리의 존재 자체도 하나님 안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하면 서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는 축복에 관해서 설명하는데(1.1.1), 이 것은 시편 133:3을 암시하고 있다(“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이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최초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 은 비참한 파멸에 관한 것인데(1.1.1), 이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세기 3장의 아담의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칼빈이 인간의 파멸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모두가 위 선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인간은 지혜가 있다고 생 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어리석은 존재라고 지적하는 것(1.1.2)은 로 마서 3: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과 1: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33)를 풀어 쓰고 있는 것이다.(1.1.2). 이것은 영락없이 욥기 40:3을 연상시킨다. 칼빈은 성도들 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때 충격을 받고 압도를 당한다고 말 하는데(1.1.3.), 이것은 분명히 이사야의 체험을 지시한다(사 6:1ff.).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은 단지 부패하고(putredo) 벌레(vermis)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기 13:28(cf. 7:5)의 용어와 시편 22:6(21:7 VL)을 빌려온 것이다.
또한 칼빈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 포로 쓰러지는 것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고 말한다(1.1.3). 이것은 칼빈이 다니엘(단 8:17,18; 10:9-10,15), 바울(행 9:4; 22:7; 26:14), 요한(계 1:17)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을 의심할 필요 가 없는 까닭은 칼빈이 실제로 이 단락(1.1.3)에서 욥과 이사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 셨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진술한다(1.2.1). 이것은 사도 바울의 기 독론을 참조한 것이다(롬 5:1,10; 고후 5:18; 엡 2:14,16; 골 1:20,22). 여 기에서 하나님이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구속자로 나타 나셨다”(deinde in Christi facie redemptor apparet)는 표현은 분명히 고린도후서 4:6에 기초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분 밖에서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마가복음 10:18과 시편 16:2를 암시한다.
비슷한 내용으로 칼빈은 지혜, 빛, 의 등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을 원인으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고린도전서 1:30이나 야고보서 1:17을 가리킨다. 칼빈은 이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기대하며 그에게서 찾아 야 한다고 권면한다(1.2.1). 이것은 시편 123:2를 암시한다.
칼빈은 로마의 황제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를 예로 들어(1.3.2) 가장 방자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가 장 비참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것은 마 치 나뭇잎들(folii)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는 것과 같다 고 비유했다. 이것은 레위기 26:36를 암시적으로 따온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예들만 살펴보아도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쓰 고있는용어와내용은성경에서출원한것임을알수있다. 이런 예들은 비록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거나 인용하지만 않지만 성경이 그의 글 가운데 녹아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런 예들은 칼빈이 성경을 마치 자기의 말처럼 자 연스럽게 풀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2) 단순한 참조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과 관련해서 말할 때, 여기에 “단순한 참조”라는 표현은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단지 성경책 이름과 장, 절만 제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칼 빈은 어떤 경우에 한 구절을 인용하고 거기에 참고구절들을 열거 한다. 예를들면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앞에 선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하여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 게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우리가 죽으리라”(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는 사사기 13:22을 인용한 후에(1.1.3), 거기에사실은 이와 똑같은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이사야 6:5, 에스겔 1:28; 3:14를 증거구절로 덧붙인다.
이 보다는 조금 적극적이지만 어떤 때는 칼빈이 하나의 신학적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 의내용을풀어서참조하는경우가있다. 예를들어칼빈은이세 계가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speculum)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 해서(1.5.1) 히브리서 11:3과 시편 19:1을 참조구절로 제시한다(그 후에 로마서 1:19를 직접인용으로 첨가한다).34)
(3) 직접인용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가 장 관심을 끄는 것은 직접인용이다. Battles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문자적으로보다는 의미적으로 인용하며 심지어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도 잘 알려진 성경구절을 자구적으 로 인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35) 이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 지식을 다루 는 단락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① 생략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첫 구절은 사도행전 17:28이다(1.1.1). 칼빈은 Vulgata에서 이 구절을 참조한 흔적이 분 명하다. 이 구절은 Vulgata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다.
Vulgata: in ipso enim vivimus et movemur et sumus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기독교강요: in quo vivit et movetur
Vulgata와 기독교강요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칼빈은 이 구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칼빈은 단지 “살 다”(vivere)와 “움직이다”(moveri)만을 인용하고 “존재하 다”(esse)는 인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칼빈은 이 구절을 기독교강 요의 문맥에 맞추어 일인칭 복수로 되어있는 것을 삼인칭 단수로 바꾸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사도행전 17:28을 모두 5번 사 용했는데(1.1.1; 1.5.3; 1.15.5; 1.16.1; 1.16.4), 그 중에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 17:28 상반절을 2번 다시 사용했고(1.16.1; 1.16.4), 이 2번의 경우에는 “살다”(vivere), “움직이다”(moveri), “존재하다”(esse) 세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칼빈은 기독교강요 1.16.1에서는 이 세 가지 내용을 사도행전 17:28과는 완전히 거꾸로 된 순서로 배열했고(esse et moveri et vivere), 1.16.4에서는 완전히 일치하는 순서로 배열했다(vivere,moveri, et esse).
따라서 칼빈이 기독교강요 1.1.1에서 비록 두 내용(vivere와 moveri)만을 인용했다 하더라도 세 번째 내용을 몰랐기 때 문이라고말할수는없다. 실제로칼빈은이구절을인용하고나 서 바로 다음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존재에 관해서 논의 한다(“진실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는 한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36)). 칼빈에게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이 어서 이 구절을 해석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엿보인다. 따라서 언 뜻 보면 인용에 약간의 실수가 생긴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해석 으로 만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문법변형
칼빈이 성경구절을 자구대로 인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계속 되는 인용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칼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 험한 사람들이 내놓는 고백을 설명하는 중에 사사기 13:22에서 대표적으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게 했던 죽음의 공 포에 관한 말을 인용한다(1.1.3).
Vulgata: moriemur quia vidimus Deum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으리라
기독교강요: 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
칼빈은 Vulgata에 “우리가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능 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기 때 문이다”는 수동태 문장으로 고쳐서 인용했다. 히브리어 성경(Wnyair' ~yhil{a/ yKi)이나 칠십인 역(o[ti qeo.n ei;domen / e`wra,kamen)이 모두 능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전히 칼빈 이 임의로 변경시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③ 순서변경
같은 맥락에서 칼빈은 창세기 18:27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아브라함이 자신을 가리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 재라고 고백했던 것을 제시한다(1.1.3). 이때 칼빈은 Vulgata의 “먼지와 재”(pulvis et cinis)라는 표현 대신에 “흙과 먼지”(terram et pulverem)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두 단어의 순서를 엇바 꾸어사용한것이다. 여기에서한가지더눈에띄는것은칼빈이 “재”(cinis) 대신에 “흙”(terra)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추정하건대 칠십인 역(gh/ kai. spodo,j)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칼빈이 성경인용에 자유를 행사한 것을 보여준다. 단어변경에 관 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칼빈이 단어의 순서를 교차적으로 바꾸어 사용한 경우는 위 와 같은 주제와 이사야 24:23을 인용한 곳에서도 명백하게 드러 난다(1.1.3).
Vulgata: erubescet luna et confundetur sol
cum regnaverit Dominus exercituum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주께서 다스릴 것임이라
기독교강요: erubescet sol et confundetur luna quum Dominus exercituum regnaverit
칼빈은 이 구절의 전반부에서 두 개의 동사(erubescet, confundetur)는 그대로 둔 채 Vulgata의 “달”과 “해”의 순서를 “해”와 “달”의 순서로 교차시켰고, 후반부에서는 Vulgata에서 맨 앞에 위치한 “다스렸다”(regnaverit)를 맨 위로 이동시켰다.
④ 단어변경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자주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대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예는 단어를 조금 변형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사도행전 17:28(“우리는 그의 소생이라”)를 인용하면서(1.5.3)Vulgata의 genus를 progenies로 약간 바꾸어 표현했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종교의 씨(religionis semen)를 심어주셨는데 사람은 이 씨를 제대로 키우기는커녕 도리어 미신 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말하면서(1.4.1) 사 람들에게 지혜로움이 어리석음이라는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로마서 1:22를 인용한다. 이때 칼빈은 Vulgata에 사용된 “어리석다”(stultus)라는 단어 대신에 infatuatu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칼빈은 시편 14:1 / 53:1(Ps 13:1 VL / 52:1 VL)을 인용하면서(1.4.2) “어리석은 자”(insipiens)라는 한 단어를 “불경한 자들과 미친 자”(impius et vesanus)라는 두 단어로 확장 시켜 변경하였다. 또한 시편 36:1(35:2 VL: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 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을 인용하 면서 Vulgata의 “눈에는”(ante oculos)를 “눈에는”(prae oculis)로 바꾸었다(1.4.2).
단어와 순서가 한꺼번에 변경된 경우는 갈라디아서 4:8 인용 에서 나타난다(1.4.3).
Vulgata: tunc quidem ignorantes Deum
his qui natura non sunt dii serviebatis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기독교강요: Quum Deum nesciretis,
serviebatis iis qui natura dii non erant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Vulgata의 ignorantes는 기독교강요에서 nesciretis로 변경되었 고, 둘째 줄에서 Vulgata에서는 맨 뒤에 자리 잡은 serviebatis가 기독교강요에서는 맨 앞으로 이동하였다.
⑤ 문장변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큰 자유를 행사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몇 경우들과 같이 문장을 통째로 바꾸 는 일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1.4.2에서(시 10:11; 9:32 VL)
Vulgata: dixit enim in corde suo oblitus est Deus
avertit faciem suam ne videat in finem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기독교강요: item sibi in maleficiis superbe plaudere,
quia Deum non aspicere, sibi persuadeant.
그들이 악행 중에 교만하게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자신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1.4.2에서(딤후 2:13)
Vulgata: ille fidelis manet
negare se ipsum non potest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기독교강요: Deus se ipsum abnegare,
quia sui perpetuo similis manet
주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다
영원토록 자신과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목적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사람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이며 교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이미 말 하였다. 이 때문에 칼빈은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자신 의 입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구절(prooftext)로 역할하게 한다. 이와 같은 논리전개에 관한 대표적인 예를 교회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4.1.6). 칼빈은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직의 권위를 너무 과 장하는 견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령의 일을 사람에 게 부여하면 안 된다며 성직의 권위를 너무 폄훼하는 견해를 격
파하기 위해서 두 견해의 조화를 제시한다.
이때 칼빈은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성경구절들을 사용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이다(말 4:6; 요 15:16; 벧전 1:23; 고전 4:15; 고후 3:6).
둘째로 복음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누구도 자 기의 공로로 자랑할 수 없다는 구절들이다(골 1:29; 갈 2:8; 고전 3:7; 고전 15:10). 이와 같이 칼빈은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는 논리를 전 개하면서 성경을 증거구절(prooftext)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칼빈은 성경을 직접 인용할 때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이 “다윗은 자기 말의 해석자임을 우리는 본다”(David alibi optimus suae sententiae est interpres)고 말했던 이유이다(1.4.2). 때때로 칼빈은 성경구절을인용하고그에대한해석을내린다. 이때다시성경 을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 한 지식으로 요약된다. 칼빈은 신자들이 이와 같은 이중적인 지식 을 확립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않도록 신학을 전개했다. 아마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로 이런 사상 을 표명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에서 첫 구절(1.1.1)로 사도행전 17:28을 인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가 그 안에서 살며 기동한다,” in quo vivit et movetur).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이 구절을 가장 먼 저 인용한 까닭은 이 구절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선명하게 서술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칼빈주의자의 구 절이다. 다시 말하자면 칼빈은 신지식과 인간지식을 논하면서 이 둘의 우선성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non facile est discernere), 이 구절로부터 하나님을 응시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 을 살펴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결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1.1.1).
다른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마치면서 마지막 구절(4.20.32)로 고린도전서 7:23을 인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는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에 우리를 복종시키지 말고 불경한 자들의 욕망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 ne pravis hominum cupiditatibus nos mancipemus in obsequium; multo vero minus impietati simus addicti).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맨 앞과 맨 뒤에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배치함으로써 기독교강요 전체를 특이한 인클루시오(inclusio) 형태 안에 넣었다. 칼빈이 직접적으로 인용한 이 두 구절 은 기독교강요의 도입(opening)과 종결(closing)을 형성하면서 칼빈 신학의 전체사상을 요약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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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에서의 칼빈의 성경사용
- 1권1장(최종판 1559년)의사례 -
칼빈의 성경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다.1) 아무도 성경 없 는 칼빈을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하다. 그는 전적으로 성경을 힘입 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칼빈의 집착력은성경주석의분량만보다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다. 칼빈 은전생애를드려서성경을주석했다. 그의주석을간단히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L = 라틴어, F = 불어번역).2)
1540 로마서 L(1550 F)
1542 유다서 F
1545 베드로전후서와 유다서F
1546 고린도전서 L(1547 F)
1547 고린도후서 F(1548 L)
1548 갈/엡/빌/골L(1548 F), 디모데전후서 L(1548 F) 1549 디도서 F(1550 L), 히브리서 L(1549 F)
1550 데살로니가전후서 L
1551 이사야서(1판) L(1552 F), 공동서신 L(1556 F),
요한일서F, 야고보서F, 유다서F
1552 사도행전a L(1552 F)
1553 요한복음 L(1553 F), 공관복음 Harmony
1554 창세기 L(1554 F), 사도행전b L(1554 F)
1557 시편 L(1558 F), 호세아 L(1557 F)
1559 이사야(2판) L(1572 F), 소선지서
1561 다니엘 L(1562 F)
1563 예레미야서와 애가 L(1565 F), 모세오경 L(1564 F)
1564 여호수아 F(1564 L)
1565 에스겔1-20 L(1565 F)[1552-54에설교됨, 1563-64에강의됨]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생애는 성경을 주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표현해도과언이아니다. 그가이처럼성경주석에온힘을기 울인 것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fons)이며 교사(dux)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칼빈의 이런 성경관은 기독교강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칼 빈은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의 세 부분에서 성경에 관한 견해 를 피력한다. 첫째로 1권 6-9장에서는 성경과 하나님 지식을 연 관시켜 다루며, 둘째로 3권 2장에서는 성령의 구원 사역과 성경을 관련시켜 다루고, 셋째로 4권 8장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 문제 를 다룬다.3) 칼빈의 성경관을 종합하면 성경은 원천이며 교사라 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초판(1536년)부터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님 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정리했고 이 생각을 최종판(1559년)까지 변함없이 유지했다.4) 이렇게 볼 때 칼 빈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가지요소로집약할수있다.5)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이와같은 이중적인지식을 알수있는 길은 성경밖에 없다.6) 이중적인지식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경이다.7) 성경은 특히 하나 님을아는일에있어서가장중요한역할을한다. 하나님을찾는 최선의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서 시작한다.8) 이 때문에 칼빈은 1 권 6장의 제목을 “누군가가 창조주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지도자인 성경이 필요하다”는 제목을 달았다.9)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교사(dux)이며 지도자(magistra)이다. 칼빈이 성경을 논하는 일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그의 견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밝히 드러내어 하나님의 계시나 그분 자신의 의사소통을 구체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0)
사실 기독교강요 자체가 성경이해를 위한 책이었다. 기독교강 요는성경을이해시키기위한노력외에다른것이아니었다. 이 것은 칼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언급하는 사실이다. 칼빈 은 성경 이해를 열어주기 위해서 기독교강요를 썼다.11) 칼빈은 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기독교강요 초판(1539년)에서 이것을 밝히고 있으며 최종판(1559년)의 독자에게 주는 서문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이것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 이 작업으로 내가 의도하는 것은 거룩 한 신학의 후보생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준비시 키고 가르침으로써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다 가설 수 있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해받지 않고 하나 님의 말씀 안에서 점점 전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2)
칼빈은 누구든지 기독교강요를 올바로 파악하기만 하면 성경 에서주로무엇을연구해야하는지알수있고, 성경에서어떤목 적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수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진술을 볼 때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성경 내용의 총합을 얻어 서술하는 것이었다.”13) 한 마디로 말해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종으로 활동한 일면을 보여주 고 있다.14)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그의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로 봉사하기를 원했다.15) 이런 점에서 칼빈에게는 기독교강요와 성 경주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면서 심화되 고 강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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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H. Leith는 제네바에서 칼빈이 받은 첫째 명칭은 “성경 낭독자”(Reader in Holy Scripture) 였고(CR 5, 233), 자신을 가리켜 “제네바 교회의 하나님 말씀 목회자”(Minister of the Word of God in the Church of Geneva)라고 불렀다(CR 20, 299)는 사실에 근거해서 칼빈을 “성경의 신학자”(Theologian of the Bible)라고 규정했다("John Calvin - 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25 (1971), 329-44, esp. 329f.).
2) 칼빈의 주석출판 연표는 T. H. L.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Churchman 78 (1964), 23-31 (= ACC 6, 65-73), esp. 30f.에 첨부한 부록(Appendix I)에 잘 정리되어 있다. 칼빈이 학교와 교회에서성경을강의한목록은Parker의Appendix II를참조하라.
3) 신복윤, 칼빈의하나님중심의신학,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5, 79. Cf. 도날드매킴, “칼빈의 성경관,” in도널드매킴편저, 이종태옮김, 칼빈신학의이해. 15명의세계석학들의논문을통해본 칼빈신학연구서,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1, 52-86, esp. 61: “1559년판기독교강요에 보면칼빈은 세곳에서성경에대해서정식으로거론하고있다. ... 이세부분은성경과하나님을아는지식(1,6-9), 구원을위한성령의역사라는맥락안에서의성경(3,2), 및성경의영감과권위(4,8)이다.”
4) Summa fere sacrae doctrinae duabus his partibus constat: Cognitione Dei ac nostri.
5) R. C.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Is There Anything New?", Calvin Theological
Journal 23 (1988), 178-194 (= ACC 7, 44-60), esp. 180: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중적 지식은 칼빈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6) W. Niesel, Die Theologie Calvins, zweite, ü berarbeitete Auflage, Einfü 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VI, Mü nchen: Kaiser, 1938, 1957, 24: "Wollen wir etwas Zutreffendes ü ber Gott und damit auch ü ber sein Verhä ltnis zum Menschen sagen, dann müssen wir von Gott selbst darüber belehrt werden. Das geschieht in der Heiligen Schrift. Sie allein gibt uns Aufschluß ü ber Gott und uns selbst."
7) 이런점에서칼빈은자연의빛에가치를주지않는다.
8) 칼빈, 창세기 48:15 주석을 참조하라: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시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방법이다”(Haec optima est ratio quaerendi Dei, ubi a verbo incipimus)(CR 51, 584). 9) Cf.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1.
10) 도날드 매킴, “칼빈의 성경관,” 61.
11)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P. T.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Interpretation 6 (1952), 188-209 (= ACC 6, 104-125), esp. 205는 W. Walker (Jean Calvin, transl. by E. and N. Weiss, Geneva, 1909, 138 and note)의말을인용해서, 기독교강요의 초판의본질적인 목적은 성경의 가르침을 열어주는 것이었다(Its essential aim was to unfold the teaching of Scripture)고 말한다. Cf. J. L. M. Haire, "John Calvin as an Expositor as an Expositor," Irish Biblical Studies 4 (1982), 2-16 (= ACC 6, 74-88), 8: "He certainly wrote his Institutes - Institutio, as in the great Roman lawyers, meant simply 'a summary' in Latin - to be a summary of the teaching of scripture and so a guide to the many who, in the Reformation age were, for the first time, seeking to read and understand the Scriptures for themselves."
12) CR XXX, 1-2 (Johannes Calvinus Lectori). Cf.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6.
13) Niesel, Theologie Calvins, 24.
14)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7.
15)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8.
16) Cf.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Leith, "Theologian of the Bible," 332.
칼빈의 성경 사용 방식
그러면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와도 같은 기독교강요에서 칼 빈이 실제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범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습관적으로 성경구 절을 책이름과 장절로 언급한다. Battles는 Westminster 출판사를 통해서 기독교강요를 영역하면서 성구색인을 달았는데17) 그 초두에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며 정확한 색인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18)는 야심 찬 표현을 사용했다. 이 색인은 성경의 직접인용 뿐 아니라 암시구절까지 포 함한다. 실제로 이 성구 색인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얼 마나 자주 풍부하게 사용했는지 여실히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자 료로 훌륭한 유익을 준다. 후에 Battles는 기독교강요의 성경사용 에 관한 이 복잡한 자료를 도표화하는 수고를 했다(Tabulation of Biblical Citations in the Institutes).19) 우리는 Battles의 도표를 바탕 으로 다음과 같이 더욱 간단하게 만들어 볼 수 있는데 이 도표를 보면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각 성경책을 몇 번씩 사용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성경 | 장르 | 책 |
구약 2,424 | 모세오경661 | 창254 출164 레65 민23 신155 |
역사서238 | 수10 삿30 룻1 삼상52 삼하34 왕상51 왕하42 대상3 대하7 스1 느6 에120) | |
시가서754 | 욥68 시580 잠82 전21 아3 | |
대선지서625 | 사324 렘162 애가3 겔98 단38 | |
소선지서146 | 호32 욜21 암11 옵1 욘8 미7 나0 합14 습4 학2 슥19 말27 |
성경 | 장르 | 책 |
신약 4,330 [4323] | 복음서1303 | 마542 막60 눅235 요466 |
행276 | ||
바울서신2187 | 롬598 고전428 고후205 갈183 엡282 빌84 골132 살 전33 살후36 딤전105 딤후50 딛49 몬2 | |
히244 | ||
공동서신 292[285]21) | 약57 벧전116 벧후24 요일88 요이0 요삼0 | |
계28 |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의 에스더와 나훔서, 신약성경의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747번). 둘째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을 대략 전체에서 3분의 1정도 사용했고, 신약성경을 대략 3분의 2정도 사용했다. 이것은 구약성경 사용과 신약성경 사용을 비교해 볼 때 구약성경보다 신약성경이 두 배 정도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기독교강요에서 로마서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598번). 이것은 칼빈이 본래 기독교강요를 쓰면서 로마서 주석과 연결시키려고 했던 의지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22) 그 다음에 기독교강요에서 시편(580번)23)과 마태복음(542번)이 압도적으로 많 이 사용되었다. 시편이 많이 사용된 이유는 칼빈이 보기에 시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24) 그 다음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서(324번), 신약 성경에서는 요한복음(466번), 고린도전서(428번)가 많이 사용되었다. 분량에 비해서 에베소서(282번)가 많이 사용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역사서(통틀어 238번)와 요한계시록(28번)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여러 차례 외경을 사용했다. 때로는 명 시적으로 책이름과 구절을 언급한다: 토빗(Tobit) 12:15(1.14.8), 솔 로몬의 지혜(Wisdom of Solomon) 14:15-16(1.11.8), 시락의 집회서(Ecclesiasticus) 15:14-17/14-18(2.5.18), 16:14/15(3.15.4), 16:14(3.15.4), 바룩(Baruch) 2:18-19 Vg(3.20.8), 3:2(3.20.8), 마카비 상(I Maccabees)1:56-57(1.8.10)25), 마카비 하(II Maccabees) 12:43(3.5.8), 12:43(3.5.8), 15:39(3.5.8). 또한 칼빈은 책이름과 구절에 대한 언급 없이 외경을 진술하기도 한다: 집회서(Ecclesiasticus) 6:31(3.9.6), 18:11/18:9(1.5.6), 24:9/24:14(1.13.7), 24:9/24:14(1.13.7), 24:9/24:14(2.14.8).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외경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아주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마카비 하 12:43[3.5.8], 12:43[3.5.8], 15:39[3.5.8])26), 중립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며(토빗 12:15[1.14.8]: 천사 라파엘 언급; 솔로몬의 지혜 14:15-16[1.11.8]: 우상숭배의 기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 다(바룩 2:18-19 Vg[3.20.8], 3:2[3.20.8]27)).
2) 출처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성경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성경주석에 서 가져오기도 하고, Vulgate와 칠십인 역(Septuagint, LXX)이나 히 브리어 성경을 사용하기도 하며, 에라스무스(Erasmus)를 참조하는 경우도 있고,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을 보기도 했다.28) 칼빈이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한 경우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는 형상과 모 양을 언급하는 1권 15장 3절이다.29) 칠십인 역을 사용한 대표적 인 예는 시 94:12-13(93:12-13)이 ceirotonh,santej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헬라어 성경을 사 용한 예를 분명하게 보여준다.31)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란히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칼빈에게 구약성경과 신 약성경은 수평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칼빈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결성을 확신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증거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동일한 말씀을 증 거한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말씀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님의 한 말씀을 선포한다.”32)
3) 방식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성경을 사용한 방식은 간단해 보이지 않지만대체로다음과같이세가지로정리를해볼수있다: 녹 아진 암시, 단순한 참조, 해석적 인용. 이 글에서는 논의를 좁히기 위해서 기독교강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부분(1권 1장)을 중심으로 이런 성경사용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제한한다.
(1) 녹아진 암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비록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지 않 더라도 언어와 내용에서 성경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 은 칼빈이 성경의 언어와 내용에 매우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논 지를 전개할 때 자연스럽게 활용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은 우리의 은사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나 왔고 우리의 존재 자체도 하나님 안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하면 서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는 축복에 관해서 설명하는데(1.1.1), 이 것은 시편 133:3을 암시하고 있다(“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이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최초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 은 비참한 파멸에 관한 것인데(1.1.1), 이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세기 3장의 아담의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칼빈이 인간의 파멸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모두가 위 선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인간은 지혜가 있다고 생 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어리석은 존재라고 지적하는 것(1.1.2)은 로 마서 3: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과 1: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33)를 풀어 쓰고 있는 것이다.(1.1.2). 이것은 영락없이 욥기 40:3을 연상시킨다. 칼빈은 성도들 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때 충격을 받고 압도를 당한다고 말 하는데(1.1.3.), 이것은 분명히 이사야의 체험을 지시한다(사 6:1ff.).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은 단지 부패하고(putredo) 벌레(vermis)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기 13:28(cf. 7:5)의 용어와 시편 22:6(21:7 VL)을 빌려온 것이다.
또한 칼빈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 포로 쓰러지는 것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고 말한다(1.1.3). 이것은 칼빈이 다니엘(단 8:17,18; 10:9-10,15), 바울(행 9:4; 22:7; 26:14), 요한(계 1:17)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을 의심할 필요 가 없는 까닭은 칼빈이 실제로 이 단락(1.1.3)에서 욥과 이사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 셨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진술한다(1.2.1). 이것은 사도 바울의 기 독론을 참조한 것이다(롬 5:1,10; 고후 5:18; 엡 2:14,16; 골 1:20,22). 여 기에서 하나님이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구속자로 나타 나셨다”(deinde in Christi facie redemptor apparet)는 표현은 분명히 고린도후서 4:6에 기초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분 밖에서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마가복음 10:18과 시편 16:2를 암시한다. 비슷한 내용으로 칼빈은 지혜, 빛, 의 등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을 원인으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고린도전서 1:30이나 야고보서 1:17을 가리킨다. 칼빈은 이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기대하며 그에게서 찾아 야 한다고 권면한다(1.2.1). 이것은 시편 123:2를 암시한다.
칼빈은 로마의 황제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를 예로 들어(1.3.2) 가장 방자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가 장 비참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것은 마 치 나뭇잎들(folii)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는 것과 같다 고 비유했다. 이것은 레위기 26:36를 암시적으로 따온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예들만 살펴보아도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쓰 고있는용어와내용은성경에서출원한것임을알수있다. 이런 예들은 비록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거나 인용하지만 않지만 성경이 그의 글 가운데 녹아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런 예들은 칼빈이 성경을 마치 자기의 말처럼 자 연스럽게 풀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2) 단순한 참조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과 관련해서 말할 때, 여기에 “단순한 참조”라는 표현은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단지 성경책 이름과 장, 절만 제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칼 빈은 어떤 경우에 한 구절을 인용하고 거기에 참고구절들을 열거 한다. 예를들면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앞에 선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하여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 게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우리가 죽으리라”(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는 사사기 13:22을 인용한 후에(1.1.3), 거기에사실은 이와 똑같은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이사야 6:5, 에스겔 1:28; 3:14를 증거구절로 덧붙인다. 이 보다는 조금 적극적이지만 어떤 때는 칼빈이 하나의 신학적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 의내용을풀어서참조하는경우가있다. 예를들어칼빈은이세 계가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speculum)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 해서(1.5.1) 히브리서 11:3과 시편 19:1을 참조구절로 제시한다(그 후에 로마서 1:19를 직접인용으로 첨가한다).34)
(3) 직접인용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가 장 관심을 끄는 것은 직접인용이다. Battles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문자적으로보다는 의미적으로 인용하며 심지어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도 잘 알려진 성경구절을 자구적으 로 인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35) 이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 지식을 다루 는 단락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① 생략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첫 구절은 사도행전 17:28이다(1.1.1). 칼빈은 Vulgata에서 이 구절을 참조한 흔적이 분 명하다. 이 구절은 Vulgata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다.
Vulgata: in ipso enim vivimus et movemur et sumus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기독교강요: in quo vivit et movetur
Vulgata와 기독교강요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칼빈은 이 구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칼빈은 단지 “살 다”(vivere)와 “움직이다”(moveri)만을 인용하고 “존재하 다”(esse)는 인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칼빈은 이 구절을 기독교강 요의 문맥에 맞추어 일인칭 복수로 되어있는 것을 삼인칭 단수로 바꾸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사도행전 17:28을 모두 5번 사 용했는데(1.1.1; 1.5.3; 1.15.5; 1.16.1; 1.16.4), 그 중에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 17:28 상반절을 2번 다시 사용했고(1.16.1; 1.16.4), 이 2번의 경우에는 “살다”(vivere), “움직이다”(moveri), “존재하다”(esse) 세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칼빈은 기독교강요 1.16.1에서는 이 세 가지 내용을 사도행전 17:28과는 완전히 거꾸로 된 순서로 배열했고(esse et moveri et vivere), 1.16.4에서는 완전히 일치하는 순서로 배열했다(vivere,moveri, et esse).
따라서 칼빈이 기독교강요 1.1.1에서 비록 두 내용(vivere와 moveri)만을 인용했다 하더라도 세 번째 내용을 몰랐기 때 문이라고말할수는없다. 실제로칼빈은이구절을인용하고나 서 바로 다음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존재에 관해서 논의 한다(“진실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는 한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36)). 칼빈에게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이 어서 이 구절을 해석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엿보인다. 따라서 언 뜻 보면 인용에 약간의 실수가 생긴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해석 으로 만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문법변형
칼빈이 성경구절을 자구대로 인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계속 되는 인용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칼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 험한 사람들이 내놓는 고백을 설명하는 중에 사사기 13:22에서 대표적으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게 했던 죽음의 공 포에 관한 말을 인용한다(1.1.3).
Vulgata: moriemur quia vidimus Deum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으리라
기독교강요: 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
칼빈은 Vulgata에 “우리가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능 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기 때 문이다”는 수동태 문장으로 고쳐서 인용했다. 히브리어 성경(Wnyair' ~yhil{a/ yKi)이나 칠십인 역(o[ti qeo.n ei;domen / e`wra,kamen)이 모두 능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전히 칼빈 이 임의로 변경시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③ 순서변경
같은 맥락에서 칼빈은 창세기 18:27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아브라함이 자신을 가리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 재라고 고백했던 것을 제시한다(1.1.3). 이때 칼빈은 Vulgata의 “먼지와 재”(pulvis et cinis)라는 표현 대신에 “흙과 먼지”(terram et pulverem)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두 단어의 순서를 엇바 꾸어사용한것이다. 여기에서한가지더눈에띄는것은칼빈이 “재”(cinis) 대신에 “흙”(terra)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추정하 건대 칠십인 역(gh/ kai. spodo,j)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칼빈이 성경인용에 자유를 행사한 것을 보여준다. 단어변경에 관 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칼빈이 단어의 순서를 교차적으로 바꾸어 사용한 경우는 위 와 같은 주제와 이사야 24:23을 인용한 곳에서도 명백하게 드러 난다(1.1.3).
Vulgata: erubescet luna et confundetur sol
cum regnaverit Dominus exercituum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주께서 다스릴 것임이라
기독교강요: erubescet sol et confundetur luna quum Dominus exercituum regnaverit
칼빈은 이 구절의 전반부에서 두 개의 동사(erubescet, confundetur)는 그대로 둔 채 Vulgata의 “달”과 “해”의 순서를 “해”와 “달”의 순서로 교차시켰고, 후반부에서는 Vulgata에서 맨 앞에 위치한 “다스렸다”(regnaverit)를 맨 위로 이동시켰다.
④ 단어변경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자주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대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예는 단어를 조금 변형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사도행전 17:28(“우리는 그의 소생이라”)를 인용하면서(1.5.3)Vulgata의 genus를 progenies로 약간 바꾸어 표현했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종교의 씨(religionis semen)를 심어주셨는데 사람은 이 씨를 제대로 키우기는커녕 도리어 미신 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말하면서(1.4.1) 사 람들에게 지혜로움이 어리석음이라는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로마서 1:22를 인용한다. 이때 칼빈은 Vulgata에 사용된 “어리석다”(stultus)라는 단어 대신에 infatuatu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칼빈은 시편 14:1 / 53:1(Ps 13:1 VL / 52:1 VL)을 인용하면서(1.4.2) “어리석은 자”(insipiens)라는 한 단어를 “불경한 자들과 미친 자”(impius et vesanus)라는 두 단어로 확장 시켜 변경하였다. 또한 시편 36:1(35:2 VL: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 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을 인용하 면서 Vulgata의 “눈에는”(ante oculos)를 “눈에는”(prae oculis)로 바꾸었다(1.4.2).
단어와 순서가 한꺼번에 변경된 경우는 갈라디아서 4:8 인용 에서 나타난다(1.4.3).
Vulgata: tunc quidem ignorantes Deum
his qui natura non sunt dii serviebatis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기독교강요: Quum Deum nesciretis,
serviebatis iis qui natura dii non erant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Vulgata의 ignorantes는 기독교강요에서 nesciretis로 변경되었 고, 둘째 줄에서 Vulgata에서는 맨 뒤에 자리 잡은 serviebatis가 기독교강요에서는 맨 앞으로 이동하였다.
⑤ 문장변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큰 자유를 행사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몇 경우들과 같이 문장을 통째로 바꾸 는 일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1.4.2에서(시 10:11; 9:32 VL)
Vulgata: dixit enim in corde suo oblitus est Deus
avertit faciem suam ne videat in finem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기독교강요: item sibi in maleficiis superbe plaudere,
quia Deum non aspicere, sibi persuadeant.
그들이 악행 중에 교만하게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자신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1.4.2에서(딤후 2:13)
Vulgata: ille fidelis manet
negare se ipsum non potest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기독교강요: Deus se ipsum abnegare,
quia sui perpetuo similis manet
주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다
영원토록 자신과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목적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사람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이며 교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이미 말 하였다. 이 때문에 칼빈은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자신 의 입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구절(prooftext)로 역할하게 한다. 이와 같은 논리전개에 관한 대표적인 예를 교회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4.1.6). 칼빈은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직의 권위를 너무 과 장하는 견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령의 일을 사람에 게 부여하면 안 된다며 성직의 권위를 너무 폄훼하는 견해를 격
파하기 위해서 두 견해의 조화를 제시한다. 이때 칼빈은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성경구절들을 사용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이다(말 4:6; 요 15:16; 벧전 1:23; 고전 4:15; 고후 3:6).
둘째로 복음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누구도 자 기의 공로로 자랑할 수 없다는 구절들이다(골 1:29; 갈 2:8; 고전 3:7; 고전 15:10). 이와 같이 칼빈은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는 논리를 전 개하면서 성경을 증거구절(prooftext)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칼빈은 성경을 직접 인용할 때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이 “다윗은 자기 말의 해석자임을 우리는 본다”(David alibi optimus suae sententiae est interpres)고 말했던 이유이다(1.4.2). 때때로 칼빈은 성경구절을인용하고그에대한해석을내린다. 이때다시성경 을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 한 지식으로 요약된다. 칼빈은 신자들이 이와 같은 이중적인 지식 을 확립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않도록 신학을 전개했다. 아마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로 이런 사상 을 표명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에서 첫 구절(1.1.1)로 사도행전 17:28을 인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가 그 안에서 살며 기동한다,” in quo vivit et movetur).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이 구절을 가장 먼 저 인용한 까닭은 이 구절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선명하게 서술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칼빈주의자의 구 절이다. 다시 말하자면 칼빈은 신지식과 인간지식을 논하면서 이 둘의 우선성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non facile est discernere), 이 구절로부터 하나님을 응시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 을 살펴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결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1.1.1).
다른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마치면서 마지막 구절(4.20.32)로 고린도전서 7:23을 인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는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에 우리를 복종시키지 말고 불경한 자들의 욕망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 ne pravis hominum cupiditatibus nos mancipemus in obsequium; multo vero minus impietati simus addicti).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맨 앞과 맨 뒤에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배치함으로써 기독교강요 전체를 특이한 인클루시오(inclusio) 형태 안에 넣었다. 칼빈이 직접적으로 인용한 이 두 구절 은 기독교강요의 도입(opening)과 종결(closing)을 형성하면서 칼빈 신학의 전체사상을 요약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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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에서의 칼빈의 성경사용
- 1권1장(최종판 1559년)의사례 -
칼빈의 성경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다.1) 아무도 성경 없 는 칼빈을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하다. 그는 전적으로 성경을 힘입 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칼빈의 집착력은성경주석의분량만보다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다. 칼빈 은전생애를드려서성경을주석했다. 그의주석을간단히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L = 라틴어, F = 불어번역).2)
1540 로마서 L(1550 F)
1542 유다서 F
1545 베드로전후서와 유다서F
1546 고린도전서 L(1547 F)
1547 고린도후서 F(1548 L)
1548 갈/엡/빌/골L(1548 F), 디모데전후서 L(1548 F) 1549 디도서 F(1550 L), 히브리서 L(1549 F)
1550 데살로니가전후서 L
1551 이사야서(1판) L(1552 F), 공동서신 L(1556 F),
요한일서F, 야고보서F, 유다서F
1552 사도행전a L(1552 F)
1553 요한복음 L(1553 F), 공관복음 Harmony
1554 창세기 L(1554 F), 사도행전b L(1554 F)
1557 시편 L(1558 F), 호세아 L(1557 F)
1559 이사야(2판) L(1572 F), 소선지서
1561 다니엘 L(1562 F)
1563 예레미야서와 애가 L(1565 F), 모세오경 L(1564 F)
1564 여호수아 F(1564 L)
1565 에스겔1-20 L(1565 F)[1552-54에설교됨, 1563-64에강의됨]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생애는 성경을 주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표현해도과언이아니다. 그가이처럼성경주석에온힘을기 울인 것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fons)이며 교사(dux)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칼빈의 이런 성경관은 기독교강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칼 빈은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의 세 부분에서 성경에 관한 견해 를 피력한다. 첫째로 1권 6-9장에서는 성경과 하나님 지식을 연 관시켜 다루며, 둘째로 3권 2장에서는 성령의 구원 사역과 성경을 관련시켜 다루고, 셋째로 4권 8장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 문제 를 다룬다.3) 칼빈의 성경관을 종합하면 성경은 원천이며 교사라 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초판(1536년)부터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님 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정리했고 이 생각을 최종판(1559년)까지 변함없이 유지했다.4) 이렇게 볼 때 칼 빈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가지요소로집약할수있다.5)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이와같은 이중적인지식을 알수있는 길은 성경밖에 없다.6) 이중적인지식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경이다.7) 성경은 특히 하나 님을아는일에있어서가장중요한역할을한다. 하나님을찾는 최선의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서 시작한다.8) 이 때문에 칼빈은 1 권 6장의 제목을 “누군가가 창조주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지도자인 성경이 필요하다”는 제목을 달았다.9)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교사(dux)이며 지도자(magistra)이다. 칼빈이 성경을 논하는 일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그의 견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밝히 드러내어 하나님의 계시나 그분 자신의 의사소통을 구체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0)
사실 기독교강요 자체가 성경이해를 위한 책이었다. 기독교강 요는성경을이해시키기위한노력외에다른것이아니었다. 이 것은 칼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언급하는 사실이다. 칼빈 은 성경 이해를 열어주기 위해서 기독교강요를 썼다.11) 칼빈은 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기독교강요 초판(1539년)에서 이것을 밝히고 있으며 최종판(1559년)의 독자에게 주는 서문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이것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 이 작업으로 내가 의도하는 것은 거룩 한 신학의 후보생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준비시 키고 가르침으로써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다 가설 수 있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해받지 않고 하나 님의 말씀 안에서 점점 전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2)
칼빈은 누구든지 기독교강요를 올바로 파악하기만 하면 성경 에서주로무엇을연구해야하는지알수있고, 성경에서어떤목 적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수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진술을 볼 때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성경 내용의 총합을 얻어 서술하는 것이었다.”13) 한 마디로 말해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종으로 활동한 일면을 보여주 고 있다.14)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그의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로 봉사하기를 원했다.15) 이런 점에서 칼빈에게는 기독교강요와 성 경주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면서 심화되 고 강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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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H. Leith는 제네바에서 칼빈이 받은 첫째 명칭은 “성경 낭독자”(Reader in Holy Scripture) 였고(CR 5, 233), 자신을 가리켜 “제네바 교회의 하나님 말씀 목회자”(Minister of the Word of God in the Church of Geneva)라고 불렀다(CR 20, 299)는 사실에 근거해서 칼빈을 “성경의 신학자”(Theologian of the Bible)라고 규정했다("John Calvin - 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25 (1971), 329-44, esp. 329f.).
2) 칼빈의 주석출판 연표는 T. H. L.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Churchman 78 (1964), 23-31 (= ACC 6, 65-73), esp. 30f.에 첨부한 부록(Appendix I)에 잘 정리되어 있다. 칼빈이 학교와 교회에서성경을강의한목록은Parker의Appendix II를참조하라.
3) 신복윤, 칼빈의하나님중심의신학,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5, 79. Cf. 도날드매킴, “칼빈의 성경관,” in도널드매킴편저, 이종태옮김, 칼빈신학의이해. 15명의세계석학들의논문을통해본 칼빈신학연구서,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1, 52-86, esp. 61: “1559년판기독교강요에 보면칼빈은 세곳에서성경에대해서정식으로거론하고있다. ... 이세부분은성경과하나님을아는지식(1,6-9), 구원을위한성령의역사라는맥락안에서의성경(3,2), 및성경의영감과권위(4,8)이다.”
4) Summa fere sacrae doctrinae duabus his partibus constat: Cognitione Dei ac nostri.
5) R. C.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Is There Anything New?", Calvin Theological
Journal 23 (1988), 178-194 (= ACC 7, 44-60), esp. 180: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중적 지식은 칼빈신학의 지배적인 구조이다(the controlling structure of Calvin's theology).” 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보려면 Gamble의 각주를 참조하라.
6) W. Niesel, Die Theologie Calvins, zweite, ü berarbeitete Auflage, Einfü 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VI, Mü nchen: Kaiser, 1938, 1957, 24: "Wollen wir etwas Zutreffendes ü ber Gott und damit auch ü ber sein Verhä ltnis zum Menschen sagen, dann müssen wir von Gott selbst darüber belehrt werden. Das geschieht in der Heiligen Schrift. Sie allein gibt uns Aufschluß ü ber Gott und uns selbst."
7) 이런점에서칼빈은자연의빛에가치를주지않는다.
8) 칼빈, 창세기 48:15 주석을 참조하라: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시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방법이다”(Haec optima est ratio quaerendi Dei, ubi a verbo incipimus)(CR 51, 584). 9) Cf.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1.
10) 도날드 매킴, “칼빈의 성경관,” 61.
11)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P. T.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Interpretation 6 (1952), 188-209 (= ACC 6, 104-125), esp. 205는 W. Walker (Jean Calvin, transl. by E. and N. Weiss, Geneva, 1909, 138 and note)의말을인용해서, 기독교강요의 초판의본질적인 목적은 성경의 가르침을 열어주는 것이었다(Its essential aim was to unfold the teaching of Scripture)고 말한다. Cf. J. L. M. Haire, "John Calvin as an Expositor as an Expositor," Irish Biblical Studies 4 (1982), 2-16 (= ACC 6, 74-88), 8: "He certainly wrote his Institutes - Institutio, as in the great Roman lawyers, meant simply 'a summary' in Latin - to be a summary of the teaching of scripture and so a guide to the many who, in the Reformation age were, for the first time, seeking to read and understand the Scriptures for themselves."
12) CR XXX, 1-2 (Johannes Calvinus Lectori). Cf.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6.
13) Niesel, Theologie Calvins, 24.
14)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207.
15)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188.
16) Cf.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Leith, "Theologian of the Bible," 332.
칼빈의 성경 사용 방식
그러면 성경주석을 위한 입문서와도 같은 기독교강요에서 칼 빈이 실제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범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습관적으로 성경구 절을 책이름과 장절로 언급한다. Battles는 Westminster 출판사를 통해서 기독교강요를 영역하면서 성구색인을 달았는데17) 그 초두에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며 정확한 색인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18)는 야심 찬 표현을 사용했다. 이 색인은 성경의 직접인용 뿐 아니라 암시구절까지 포 함한다. 실제로 이 성구 색인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얼 마나 자주 풍부하게 사용했는지 여실히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자 료로 훌륭한 유익을 준다. 후에 Battles는 기독교강요의 성경사용 에 관한 이 복잡한 자료를 도표화하는 수고를 했다(Tabulation of Biblical Citations in the Institutes).19) 우리는 Battles의 도표를 바탕 으로 다음과 같이 더욱 간단하게 만들어 볼 수 있는데 이 도표를 보면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각 성경책을 몇 번씩 사용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성경 | 장르 | 책 |
구약 2,424 | 모세오경661 | 창254 출164 레65 민23 신155 |
역사서238 | 수10 삿30 룻1 삼상52 삼하34 왕상51 왕하42 대상3 대하7 스1 느6 에120) | |
시가서754 | 욥68 시580 잠82 전21 아3 | |
대선지서625 | 사324 렘162 애가3 겔98 단38 | |
소선지서146 | 호32 욜21 암11 옵1 욘8 미7 나0 합14 습4 학2 슥19 말27 |
성경 | 장르 | 책 |
신약 4,330 [4323] | 복음서1303 | 마542 막60 눅235 요466 |
행276 | ||
바울서신2187 | 롬598 고전428 고후205 갈183 엡282 빌84 골132 살 전33 살후36 딤전105 딤후50 딛49 몬2 | |
히244 | ||
공동서신 292[285]21) | 약57 벧전116 벧후24 요일88 요이0 요삼0 | |
계28 |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의 에스더와 나훔서, 신약성경의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747번). 둘째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을 대략 전체에서 3분의 1정도 사용했고, 신약성경을 대략 3분의 2정도 사용했다. 이것은 구약성경 사용과 신약성경 사용을 비교해 볼 때 구약성경보다 신약성경이 두 배 정도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기독교강요에서 로마서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598번). 이것은 칼빈이 본래 기독교강요를 쓰면서 로마서 주석과 연결시키려고 했던 의지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22) 그 다음에 기독교강요에서 시편(580번)23)과 마태복음(542번)이 압도적으로 많 이 사용되었다. 시편이 많이 사용된 이유는 칼빈이 보기에 시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24) 그 다음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서(324번), 신약 성경에서는 요한복음(466번), 고린도전서(428번)가 많이 사용되었다. 분량에 비해서 에베소서(282번)가 많이 사용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역사서(통틀어 238번)와 요한계시록(28번)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여러 차례 외경을 사용했다. 때로는 명 시적으로 책이름과 구절을 언급한다: 토빗(Tobit) 12:15(1.14.8), 솔 로몬의 지혜(Wisdom of Solomon) 14:15-16(1.11.8), 시락의 집회서(Ecclesiasticus) 15:14-17/14-18(2.5.18), 16:14/15(3.15.4), 16:14(3.15.4), 바룩(Baruch) 2:18-19 Vg(3.20.8), 3:2(3.20.8), 마카비 상(I Maccabees)1:56-57(1.8.10)25), 마카비 하(II Maccabees) 12:43(3.5.8), 12:43(3.5.8), 15:39(3.5.8). 또한 칼빈은 책이름과 구절에 대한 언급 없이 외경을 진술하기도 한다: 집회서(Ecclesiasticus) 6:31(3.9.6), 18:11/18:9(1.5.6), 24:9/24:14(1.13.7), 24:9/24:14(1.13.7), 24:9/24:14(2.14.8).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외경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아주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마카비 하 12:43[3.5.8], 12:43[3.5.8], 15:39[3.5.8])26), 중립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며(토빗 12:15[1.14.8]: 천사 라파엘 언급; 솔로몬의 지혜 14:15-16[1.11.8]: 우상숭배의 기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 다(바룩 2:18-19 Vg[3.20.8], 3:2[3.20.8]27)).
2) 출처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성경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성경주석에 서 가져오기도 하고, Vulgate와 칠십인 역(Septuagint, LXX)이나 히 브리어 성경을 사용하기도 하며, 에라스무스(Erasmus)를 참조하는 경우도 있고,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을 보기도 했다.28) 칼빈이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한 경우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는 형상과 모 양을 언급하는 1권 15장 3절이다.29) 칠십인 역을 사용한 대표적 인 예는 시 94:12-13(93:12-13)이 ceirotonh,santej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헬라어 성경을 사 용한 예를 분명하게 보여준다.31)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란히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칼빈에게 구약성경과 신 약성경은 수평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칼빈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결성을 확신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증거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동일한 말씀을 증 거한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말씀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님의 한 말씀을 선포한다.”32)
3) 방식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성경을 사용한 방식은 간단해 보이지 않지만대체로다음과같이세가지로정리를해볼수있다: 녹 아진 암시, 단순한 참조, 해석적 인용. 이 글에서는 논의를 좁히기 위해서 기독교강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부분(1권 1장)을 중심으로 이런 성경사용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제한한다.
(1) 녹아진 암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비록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지 않 더라도 언어와 내용에서 성경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 은 칼빈이 성경의 언어와 내용에 매우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논 지를 전개할 때 자연스럽게 활용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은 우리의 은사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나 왔고 우리의 존재 자체도 하나님 안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하면 서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는 축복에 관해서 설명하는데(1.1.1), 이 것은 시편 133:3을 암시하고 있다(“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이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최초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 은 비참한 파멸에 관한 것인데(1.1.1), 이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세기 3장의 아담의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칼빈이 인간의 파멸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모두가 위 선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인간은 지혜가 있다고 생 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어리석은 존재라고 지적하는 것(1.1.2)은 로 마서 3: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과 1: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33)를 풀어 쓰고 있는 것이다.(1.1.2). 이것은 영락없이 욥기 40:3을 연상시킨다. 칼빈은 성도들 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때 충격을 받고 압도를 당한다고 말 하는데(1.1.3.), 이것은 분명히 이사야의 체험을 지시한다(사 6:1ff.).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은 단지 부패하고(putredo) 벌레(vermis)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기 13:28(cf. 7:5)의 용어와 시편 22:6(21:7 VL)을 빌려온 것이다.
또한 칼빈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 포로 쓰러지는 것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고 말한다(1.1.3). 이것은 칼빈이 다니엘(단 8:17,18; 10:9-10,15), 바울(행 9:4; 22:7; 26:14), 요한(계 1:17)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을 의심할 필요 가 없는 까닭은 칼빈이 실제로 이 단락(1.1.3)에서 욥과 이사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 셨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진술한다(1.2.1). 이것은 사도 바울의 기 독론을 참조한 것이다(롬 5:1,10; 고후 5:18; 엡 2:14,16; 골 1:20,22). 여 기에서 하나님이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구속자로 나타 나셨다”(deinde in Christi facie redemptor apparet)는 표현은 분명히 고린도후서 4:6에 기초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분 밖에서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마가복음 10:18과 시편 16:2를 암시한다. 비슷한 내용으로 칼빈은 지혜, 빛, 의 등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을 원인으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1.2.1). 이것은 고린도전서 1:30이나 야고보서 1:17을 가리킨다. 칼빈은 이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기대하며 그에게서 찾아 야 한다고 권면한다(1.2.1). 이것은 시편 123:2를 암시한다.
칼빈은 로마의 황제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를 예로 들어(1.3.2) 가장 방자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가 장 비참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것은 마 치 나뭇잎들(folii)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는 것과 같다 고 비유했다. 이것은 레위기 26:36를 암시적으로 따온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예들만 살펴보아도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쓰 고있는용어와내용은성경에서출원한것임을알수있다. 이런 예들은 비록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참조하거나 인용하지만 않지만 성경이 그의 글 가운데 녹아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런 예들은 칼빈이 성경을 마치 자기의 말처럼 자 연스럽게 풀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2) 단순한 참조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성경사용과 관련해서 말할 때, 여기에 “단순한 참조”라는 표현은 칼빈이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단지 성경책 이름과 장, 절만 제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칼 빈은 어떤 경우에 한 구절을 인용하고 거기에 참고구절들을 열거 한다. 예를들면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앞에 선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하여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 게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우리가 죽으리라”(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는 사사기 13:22을 인용한 후에(1.1.3), 거기에사실은 이와 똑같은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이사야 6:5, 에스겔 1:28; 3:14를 증거구절로 덧붙인다. 이 보다는 조금 적극적이지만 어떤 때는 칼빈이 하나의 신학적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 의내용을풀어서참조하는경우가있다. 예를들어칼빈은이세 계가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speculum)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 해서(1.5.1) 히브리서 11:3과 시편 19:1을 참조구절로 제시한다(그 후에 로마서 1:19를 직접인용으로 첨가한다).34)
(3) 직접인용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가 장 관심을 끄는 것은 직접인용이다. Battles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에서 성경을 사용할 때 문자적으로보다는 의미적으로 인용하며 심지어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도 잘 알려진 성경구절을 자구적으 로 인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35) 이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 지식을 다루 는 단락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① 생략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첫 구절은 사도행전 17:28이다(1.1.1). 칼빈은 Vulgata에서 이 구절을 참조한 흔적이 분 명하다. 이 구절은 Vulgata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다.
Vulgata: in ipso enim vivimus et movemur et sumus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기독교강요: in quo vivit et movetur
Vulgata와 기독교강요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칼빈은 이 구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칼빈은 단지 “살 다”(vivere)와 “움직이다”(moveri)만을 인용하고 “존재하 다”(esse)는 인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칼빈은 이 구절을 기독교강 요의 문맥에 맞추어 일인칭 복수로 되어있는 것을 삼인칭 단수로 바꾸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사도행전 17:28을 모두 5번 사 용했는데(1.1.1; 1.5.3; 1.15.5; 1.16.1; 1.16.4), 그 중에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 17:28 상반절을 2번 다시 사용했고(1.16.1; 1.16.4), 이 2번의 경우에는 “살다”(vivere), “움직이다”(moveri), “존재하다”(esse) 세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칼빈은 기독교강요 1.16.1에서는 이 세 가지 내용을 사도행전 17:28과는 완전히 거꾸로 된 순서로 배열했고(esse et moveri et vivere), 1.16.4에서는 완전히 일치하는 순서로 배열했다(vivere,moveri, et esse).
따라서 칼빈이 기독교강요 1.1.1에서 비록 두 내용(vivere와 moveri)만을 인용했다 하더라도 세 번째 내용을 몰랐기 때 문이라고말할수는없다. 실제로칼빈은이구절을인용하고나 서 바로 다음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존재에 관해서 논의 한다(“진실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는 한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36)). 칼빈에게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이 어서 이 구절을 해석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엿보인다. 따라서 언 뜻 보면 인용에 약간의 실수가 생긴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해석 으로 만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문법변형
칼빈이 성경구절을 자구대로 인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계속 되는 인용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칼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 험한 사람들이 내놓는 고백을 설명하는 중에 사사기 13:22에서 대표적으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 부인에게 했던 죽음의 공 포에 관한 말을 인용한다(1.1.3).
Vulgata: moriemur quia vidimus Deum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으리라
기독교강요: moriemur quia Dominus apparuit nobis
칼빈은 Vulgata에 “우리가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능 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기 때 문이다”는 수동태 문장으로 고쳐서 인용했다. 히브리어 성경(Wnyair' ~yhil{a/ yKi)이나 칠십인 역(o[ti qeo.n ei;domen / e`wra,kamen)이 모두 능동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전히 칼빈 이 임의로 변경시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③ 순서변경
같은 맥락에서 칼빈은 창세기 18:27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아브라함이 자신을 가리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 재라고 고백했던 것을 제시한다(1.1.3). 이때 칼빈은 Vulgata의 “먼지와 재”(pulvis et cinis)라는 표현 대신에 “흙과 먼지”(terram et pulverem)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두 단어의 순서를 엇바 꾸어사용한것이다. 여기에서한가지더눈에띄는것은칼빈이 “재”(cinis) 대신에 “흙”(terra)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추정하 건대 칠십인 역(gh/ kai. spodo,j)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칼빈이 성경인용에 자유를 행사한 것을 보여준다. 단어변경에 관 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칼빈이 단어의 순서를 교차적으로 바꾸어 사용한 경우는 위 와 같은 주제와 이사야 24:23을 인용한 곳에서도 명백하게 드러 난다(1.1.3).
Vulgata: erubescet luna et confundetur sol
cum regnaverit Dominus exercituum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주께서 다스릴 것임이라
기독교강요: erubescet sol et confundetur luna quum Dominus exercituum regnaverit
칼빈은 이 구절의 전반부에서 두 개의 동사(erubescet, confundetur)는 그대로 둔 채 Vulgata의 “달”과 “해”의 순서를 “해”와 “달”의 순서로 교차시켰고, 후반부에서는 Vulgata에서 맨 앞에 위치한 “다스렸다”(regnaverit)를 맨 위로 이동시켰다.
④ 단어변경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자주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대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예는 단어를 조금 변형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사도행전 17:28(“우리는 그의 소생이라”)를 인용하면서(1.5.3)Vulgata의 genus를 progenies로 약간 바꾸어 표현했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종교의 씨(religionis semen)를 심어주셨는데 사람은 이 씨를 제대로 키우기는커녕 도리어 미신 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말하면서(1.4.1) 사 람들에게 지혜로움이 어리석음이라는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로마서 1:22를 인용한다. 이때 칼빈은 Vulgata에 사용된 “어리석다”(stultus)라는 단어 대신에 infatuatu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칼빈은 시편 14:1 / 53:1(Ps 13:1 VL / 52:1 VL)을 인용하면서(1.4.2) “어리석은 자”(insipiens)라는 한 단어를 “불경한 자들과 미친 자”(impius et vesanus)라는 두 단어로 확장 시켜 변경하였다. 또한 시편 36:1(35:2 VL: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 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을 인용하 면서 Vulgata의 “눈에는”(ante oculos)를 “눈에는”(prae oculis)로 바꾸었다(1.4.2).
단어와 순서가 한꺼번에 변경된 경우는 갈라디아서 4:8 인용 에서 나타난다(1.4.3).
Vulgata: tunc quidem ignorantes Deum
his qui natura non sunt dii serviebatis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기독교강요: Quum Deum nesciretis,
serviebatis iis qui natura dii non erant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
Vulgata의 ignorantes는 기독교강요에서 nesciretis로 변경되었 고, 둘째 줄에서 Vulgata에서는 맨 뒤에 자리 잡은 serviebatis가 기독교강요에서는 맨 앞으로 이동하였다.
⑤ 문장변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큰 자유를 행사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몇 경우들과 같이 문장을 통째로 바꾸 는 일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1.4.2에서(시 10:11; 9:32 VL)
Vulgata: dixit enim in corde suo oblitus est Deus
avertit faciem suam ne videat in finem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기독교강요: item sibi in maleficiis superbe plaudere,
quia Deum non aspicere, sibi persuadeant.
그들이 악행 중에 교만하게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자신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1.4.2에서(딤후 2:13)
Vulgata: ille fidelis manet
negare se ipsum non potest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기독교강요: Deus se ipsum abnegare,
quia sui perpetuo similis manet
주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다
영원토록 자신과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목적은 성경만이 하나님과 사람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이며 교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이미 말 하였다. 이 때문에 칼빈은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자신 의 입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구절(prooftext)로 역할하게 한다. 이와 같은 논리전개에 관한 대표적인 예를 교회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4.1.6). 칼빈은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직의 권위를 너무 과 장하는 견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성령의 일을 사람에 게 부여하면 안 된다며 성직의 권위를 너무 폄훼하는 견해를 격
파하기 위해서 두 견해의 조화를 제시한다. 이때 칼빈은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성경구절들을 사용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이다(말 4:6; 요 15:16; 벧전 1:23; 고전 4:15; 고후 3:6).
둘째로 복음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누구도 자 기의 공로로 자랑할 수 없다는 구절들이다(골 1:29; 갈 2:8; 고전 3:7; 고전 15:10). 이와 같이 칼빈은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는 논리를 전 개하면서 성경을 증거구절(prooftext)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칼빈은 성경을 직접 인용할 때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이 “다윗은 자기 말의 해석자임을 우리는 본다”(David alibi optimus suae sententiae est interpres)고 말했던 이유이다(1.4.2). 때때로 칼빈은 성경구절을인용하고그에대한해석을내린다. 이때다시성경 을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 한 지식으로 요약된다. 칼빈은 신자들이 이와 같은 이중적인 지식 을 확립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않도록 신학을 전개했다. 아마도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로 이런 사상 을 표명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에서 첫 구절(1.1.1)로 사도행전 17:28을 인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가 그 안에서 살며 기동한다,” in quo vivit et movetur).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이 구절을 가장 먼 저 인용한 까닭은 이 구절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선명하게 서술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칼빈주의자의 구 절이다. 다시 말하자면 칼빈은 신지식과 인간지식을 논하면서 이 둘의 우선성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non facile est discernere), 이 구절로부터 하나님을 응시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 을 살펴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결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1.1.1).
다른 한편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마치면서 마지막 구절(4.20.32)로 고린도전서 7:23을 인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종속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우리는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에 우리를 복종시키지 말고 불경한 자들의 욕망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 ne pravis hominum cupiditatibus nos mancipemus in obsequium; multo vero minus impietati simus addicti).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맨 앞과 맨 뒤에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배치함으로써 기독교강요 전체를 특이한 인클루시오(inclusio) 형태 안에 넣었다. 칼빈이 직접적으로 인용한 이 두 구절 은 기독교강요의 도입(opening)과 종결(closing)을 형성하면서 칼빈 신학의 전체사상을 요약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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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alvin, Institutes on the Christian Religion, 2 vols. translated and indexed by Ford Lewis Battles (LCC XX),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vol. 2, 1553-1592.
18) Calvin, Institutes on the Christian Religion(Battles), vol. 2, 1553.
19) F. L. Battles, Interpreting John Calvin, Grand Rapids: Baker 1996, 359f. Cf. F. L. Battles, New Light on Calvin's Institutes. A Supplement to the McNeill-Battles Translation, Hartford: Hartford Seminary Press, 1966.
20) Battles는 기독교강요에 에스더서가 한 번 사용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21) 이도표에서Battles는두가지실수를범하고있다.첫째로그는계산에실수를보이고있다.공동서 신은292번이아니라285번이다. 따라서신약은4330번이아니라4323번사용되었다. 둘째로그는유 다서를 빼놓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데, 실제로 유다서는 기독교강요에서 여섯 번 사용되었다(6절 = 1,14,16; 1.14.19; 3.25.6; 4.11.1; 9절=1.14.8; 1.14.19).
22) Cf.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27.
23) 기독교강요에서 사용되지 않은 시편들은 다음과 같다: 13, 35, 54, 58, 66, 67, 70, 76, 81, 83, 85, 109, 114, 120, 123, 124, 125, 126, 128, 129, 134, 137, 139, 146, 148, 149, 150.
24) 시편에 대한 칼빈의 메시아적 해석을 보려면, Russell, S. H., "Calvin and the Messianic Interpretation of the Psalms,"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21 (1968), 37-47 (= ACC 6, 261-271)를 참조하라.
25) 이것은책이름과구절을언급하지않은채사용되었지만안티오커스(Antiochus)가거명되었기때문에 책 이름이 언급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26) 칼빈은마카비하를정경에포함시키지않는다고분명하게말한다(3.5.8).
27) 바룩의내용은인간의죄인됨과하나님께만자비를구해야함을말하고있는데, 칼빈은이구절을 가리켜 “가장 참되며 거룩한 글”이라고 극찬했다.
28) Battles가 Westminster 출판사의 기독교강요 번역자 노트(Translator's Note)에서 말한 것을 보라
(Calvin, Institutes on the Christian Religion, vol. 1. xxiv).
29) 칼빈의 히브리어 능력에 관해서는 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Columbia Series in Reformed Theolog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58f.를 보 라.
30) 아래에서기독교강요, Vulgata, Septuaginta의밑줄친부분들을주의해서비교해보라.
기독교강요: beatus homo quem tu corripueris, Domine, et in lege tua erudieris, ut praestes illi quietem a diebus malis, dum foditur peccatori fovea
Vulgata: beatus vir quem erudieris Domine et de lege tua docueris eum ut quiescat a diebus adflictionis donec fodiatur impio interitus
Septuaginta: maka,rioj a;nqrwpoj o]n a'n su. paideu,sh|j ku,rie kai. evk tou/ no,mou sou dida,xh|j auvto.n tou/ prau/nai auvtw|/ avfV h`merw/n ponhrw/n e[wj ou- ovrugh|/ tw|/ a`martwlw|/ bo,qroj.
Battles의색인에는칼빈이시편143:2/142:2Vg/Lxx(3.12.2; 3.20.8), 시편78:67-68/77:67-68Vg/Lxx(3.21.6), 시편 1 4 7 : 2 0 ( 3 . 2 1 . 6 ) 도 칠십인 역을 사용했음직 하다고 추정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있다.
31) 유사한내용을진술하는칼빈의사도행전주석을참조하라.
32) Niesel, Theologie Calvins, 28: "Gesetz und Evangelium sind nicht nur Worte, sondern sie verkündigendaseineWort Gottes." Niesel은칼빈이견지하는구약성경의의미에관해서잘설명 해준다(103-107). 그러나Niesel은K.Barth의신학을따라성경의목적을주로기독론적으로이해하 는 편향성을 가진다.
33) 이구절은1.4.1에서인용된다.
34) 칼빈은 이 단락(1.5.1)에서 성경기자에게 명칭을 부여하는데 몇 가지 특별한 사항들이 나타난다. 칼빈 은히브리서저자(autor epistolae adHebraeos)를사도바울과구별되는것처럼언급하며, 시편기자 를선지자(propheta)라고부름으로써 시편의장르에색감을달리하며, 사도바울에게는 사도(apostolus) 라는 명칭을 주어 독특성을 부각시킨다.
35) Calvin, Institutes on the Christian Religion(Battles), vol. 1. xxiv: Translator's Note: "At the outset, it became obvious that Calvin more often quotes Scripture ad sensum than ad litteram and even when he is quoting directly very often no known Scriptural version is followed verbatim."
36) imo ne id quidem ipsum quod sumus, aliud esse, quam in uno Deo subsistentiam.
결론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회와 학교와 저술이라는 영역들에서 보여준 역할에 따라서 성경의 목회자, 성경의 교사, 성경의 신학 자라고부를수있다. 성경은칼빈이어떤영역에서어떤역할을 담당하든지 항상 원천(fons)과 교사(dux)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리와 신학은 전적으로 성경에서 나온다. 다 시 말해서 칼빈의 사상은 성경의 논리적 재조합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기독교강요(institutio)의 최종판(1559)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거기에서 칼빈의 성경사용방식은 녹아진 암시, 참고적 사용, 직접인용이라는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중에서 칼빈에 의한 성경의 직접인용은 자구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접인용에서 칼빈의 자유로운 행사는 성경을 경시한 것을 의미 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편안한 자세로 대하면서 그 자신이 성 경에 합일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칼빈의 신학은 성경해석이다. 이 말은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해 야할필요가있다. 엄격한의미에서칼빈이성경을해석한것이 아니라 성경이 칼빈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했다기보다는 성경이 칼빈을 해석함으로써 신학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조병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http://www.sbpcc.or.kr/user/saveDir/board/www138/5314_1435047244_0.pdf
결론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회와 학교와 저술이라는 영역들에서 보여준 역할에 따라서 성경의 목회자, 성경의 교사, 성경의 신학 자라고부를수있다. 성경은칼빈이어떤영역에서어떤역할을 담당하든지 항상 원천(fons)과 교사(dux)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리와 신학은 전적으로 성경에서 나온다. 다 시 말해서 칼빈의 사상은 성경의 논리적 재조합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기독교강요(institutio)의 최종판(1559)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거기에서 칼빈의 성경사용방식은 녹아진 암시, 참고적 사용, 직접인용이라는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중에서 칼빈에 의한 성경의 직접인용은 자구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접인용에서 칼빈의 자유로운 행사는 성경을 경시한 것을 의미 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편안한 자세로 대하면서 그 자신이 성 경에 합일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칼빈의 신학은 성경해석이다. 이 말은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해 야할필요가있다. 엄격한의미에서칼빈이성경을해석한것이 아니라 성경이 칼빈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했다기보다는 성경이 칼빈을 해석함으로써 신학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조병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http://www.sbpcc.or.kr/user/saveDir/board/www138/5314_1435047244_0.pdf
결론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회와 학교와 저술이라는 영역들에서 보여준 역할에 따라서 성경의 목회자, 성경의 교사, 성경의 신학 자라고부를수있다. 성경은칼빈이어떤영역에서어떤역할을 담당하든지 항상 원천(fons)과 교사(dux)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리와 신학은 전적으로 성경에서 나온다. 다 시 말해서 칼빈의 사상은 성경의 논리적 재조합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기독교강요(institutio)의 최종판(1559)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거기에서 칼빈의 성경사용방식은 녹아진 암시, 참고적 사용, 직접인용이라는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중에서 칼빈에 의한 성경의 직접인용은 자구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접인용에서 칼빈의 자유로운 행사는 성경을 경시한 것을 의미 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편안한 자세로 대하면서 그 자신이 성 경에 합일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칼빈의 신학은 성경해석이다. 이 말은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해야할 필요가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칼빈이 성경을 해석한것이 아니라 성경이 칼빈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했다기보다는 성경이 칼빈을 해석함으로써 신학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조병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http://www.sbpcc.or.kr/user/saveDir/board/www138/5314_1435047244_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