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암 무량수각
무량수각無量壽閣은 서방 극락세계에 머물고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무량수無量壽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수명’인 극락을 의미한다. 통도사 극락암 무량수각은 고종 30년(1893) 중건된 것이다. 현재 법당은 1982년 신도회장 우성호와 경상남도의 후원으로 중창한 맞배지붕 형식의 정면 7칸, 측면 5칸 건물이다. 건물 외벽에는 본성을 찾는 일을 소 찾는 것에 비유해 그린 심우도尋牛圖와 사군자‧연꽃‧매화 등의 그림이 있다. 무량수각 중앙의 현판 글씨 ‘極樂庵’은 청남 오제봉(1908~1991), ‘無量壽閣’은 추사 김정희(1786~1856), ‘獅子吼’는 회산 박기돈(1873~1948), ‘護國禪院’은 경봉스님의 것이다.
무량수각에는 경남 문화재 자료인 청동반자青銅飯子(제386호), 가경이십삼년嘉慶二十三年 신중탱神衆幀(제385호‧1818년), 도광원년道光元年 아미타후불탱阿彌陀後佛幀(제384호‧1821년), 석조관음보살좌상(제383호)이 있다. 법당의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불상으로 1835년(헌종1) 통도사 옥련암에서 제작하고 1885년(고종22) 개금蓋金했다.
극락암 청동반자는 불구佛具 가운데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법구法具이다. 이 청동반자는 지름 85.5~85.8cm 크기의 대형으로 측면에 반원형의 고리, 전면 중앙에는 돋을새김의 태극원문 당좌撞座가 있다. 전면에 ‘대황제폐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 등의 글씨가 새겨져 대한제국 왕실의 수복과 안녕을 기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봉스님은 이 반자를 1938년 5월 극락암 뒤 대나무 숲에 묻어두었다가 1945년 8월 16일, 즉 해방 다음 날 이 쇠북을 파내어 다시 걸고 스님께서 3번을 크게 치시며 해방을 기뻐하셨다.
극락암 주련은 북한의 사찰인 금강산 마하연 선원에 있었던 8언 절구로 경봉스님의 사형인 구하 천보스님의 글씨이다.
毛吞巨海芥納須彌 가는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에 수미산이 들어가고
舌括梵天口包四海 혀로는 대범천을 지탱하고 입으로는 사해바다 아우르네
我爲法王於法自在 나는 법왕이라 법 쓰는 것에 자유롭고
禪風大振法雨遍林 선의 가풍 크게 떨치니 불법의 비 총림에 두루 내리네
萬里白雲一輪紅日 하늘 가득 흰 구름 속에 한 바퀴 붉은 태양처럼
一念忘機太虛無站 한 생각마저 잊는 기틀 너른 허공에 티 한 점 없네.
극락암 극락영지와 홍교
연못인 극락영지極樂影池는 통도팔경 중의 하나이다. 봄이면 한 그루의 벚나무가 극락영지를 장식하고, 여름이면 연꽃으로 장엄하고, 가을이면 단풍 물든 영축산이 잠기고, 겨울이면 맑은 하늘 구름이 노닐다 간다.
극락영지를 가로질러 놓은 무지개다리인 홍교虹橋는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를 버리고 극락을 가는 다리로 경봉스님께서 71세 때인 1962년에 만들었다.
극락영지極樂影池 (구하스님)
一杖徘徊數步立 지팡이 짚고 몇 걸음 배회하다 우뚝 서니
慇懃水國現山容 연못 속에 은근히 산그림자 비치네
團團花葉承金露 둥근 연꽃잎은 금빛 이슬 머금었고
秦樂法音散翠峰 연주하는 법음소리 푸른 봄에 흩어지네
극락연지極樂蓮池 (경봉스님)
古庵佳景幾人逢 옛 암자의 멋진 풍경 몇이나 맛보았나
碧水紅蓮鍊玉容 푸른 물에 홍련이 옥같이 피어나네
風送香聲開錦谷 바람이 향기 소리 보내 비단 골에 펼치니
野來秋色倒金峰 들엔 가을빛 오고 연못엔 금빛 봉우리 잠기네
극락영지極樂影池 (경하스님)
極樂庵前池聳出 극락암 앞의 연못에는 맑은 물이 솟는데
虹橋橋下日遲遲 홍교 아래 해는 느릿느릿 넘어가네
山橫水面魚遊峀 산이 수면에 어리는데 물고기 한가로이 헤엄쳐 놀고
松倒波心鳥睡枝 소나무 넘어질 듯 물결에 흔들려도 새는 가지에 앉아 잠들어 있네
통도사 극락암 수세전
수세전壽世殿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도교의 칠성신앙이 불교화해 나타난 것이다. 극락암 수세전은 고종 황실의 명복이나 황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할 목적으로 양산군수가 왕명을 받들어 세운 것이다.
수세전은 1820년대 건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현판은 1903년(고종7) 음력 9월 하순에 김용택이 태파스님에게 썼다. 1967년 7월 경봉스님 때 단청 보수를 했다. 수세전 산수외벽화 ‘종성동강성鍾聲動江城’ ‘벽산옥수碧山玉水’ ‘관풍청폭觀楓聽瀑’ ‘해중금강海中金剛’ 등은 통도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전각의 주물은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이 불보살상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한국전쟁의 참화를 입은 다른 사찰에 있던 것을 경봉스님이 지종스님을 시켜 모셔 와 극락암 수세전에 봉안한 것이다.
전각 안에는 경남유형문화재 제436호인 칠성탱七星幀이 있다. 총 9폭의 탱화로 치성광여래탱熾盛光如來幀 1위와 자미대제紫微大帝 삼태육성탱三台六星幀 1위, 칠원성군탱七元星君幀 7위를 그렸다. 탱화에는 대황제폐하大皇帝陛下 천체안녕天體安寧 용루만세龍樓萬歲 등의 글자가 있다. 탱화를 봉안한 사람은 양산군수 안종설이다.
수세전의 주련은 경봉스님의 선게禪偈이다.
神光普照諸天地 신령스러운 빛 널리 천지 두루 밝히니
日月廣大摠無邊 해와 달보다 광대하여 전혀 끝이 없네
淸於秋水明於月 가을 물보다 맑고 달보다 밝으니
宇宙山河在目前 우주 산하가 눈앞에 펼쳐졌네.
극락암 원광제 삼소굴
원광제圓光齊의 ‘원광圓光’은 경봉스님의 호이다. 원광제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재 경봉스님의 유물을 보관하고, 극락 선원장의 거처로 사용 중이다.
현판 ‘圓光齊’는 대구 출신으로 팔능거사八能居士로 알려진 석재 서병오, ‘好快大活’은 추사 김정희, ‘無盡藏’은 경봉스님의 글씨다. 경봉스님은 “기껏 살아봐야 백 년을 더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 언제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여태껏 생활해 온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 관념에 잘못이 있으면 텅 비워 버리고, 바르고 참되고 활발한 산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삼소굴三笑窟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봉스님이 36세부터 91세 후 입적하기까지 50여 년을 생활하던 공간으로, 지금은 불교화가 김범수가 그린 경봉스님 영정 그림을 모셔놓았다. 건물은 순조 31년(1831)에 영봉스님이 ‘토굴’로 지었다. 그 후 ‘영봉헌’이라 불리다가 철종 6년(1855) 봉흡스님이 보수했다. 1927년 경봉스님이 득도한 후 ‘삼소굴’로 이름하였다. 삼소三笑는 깨달음의 웃음을 의미한다. ‘三笑窟’ 현판은 석재 서병오, ‘方丈’ 현판은 경봉스님의 글씨이다.
경봉스님은 1927년 11월 20일 삼경에 방안의 촛불이 치직 하고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자성自性을 깨닫고는 기쁜 마음에 문을 박차고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경봉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주련은 회산 박기돈이 썼다.
我是訪吾物物頭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目前卽見主人樓 눈앞에 바로 주인공 나타났네
阿阿逢着無疑惑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優鉢花光法界流 우담바라 꽃 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
극락암 단하각
단하각丹荷閣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신 독성각獨聖閣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극락암에서 가장 작은 전각이다. 건물의 내외벽에는 파랑 바탕에 흰옷을 입은 선사를 그린 벽화가 있다. 독성인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 때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라고 부촉咐囑한 4명 중의 한 명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를 가리킨다. 말법시대末法時代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분이시다.
경봉스님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 1934년부터 자주 가셨고, 극락암에 독성을 모실 가장 좋은 곳에 신상균이 만든 나반존자 소상塑像을 1955년 조성해 봉안했다. 단하각은 한국전쟁 이후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신심과 재활의 의지를 북돋아 주기 위해 건립했다. 부산, 울산, 경남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독성기도의 영험이 널리 알려져 사업 번창, 건강 발원 등을 위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학업 성취 효험이 있어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올리러 온다.
주련의 구절은 ‘대공양예참 전문(28)’ 중에서 따온 것이다.
霞衲半肩樂道 노을빛 같은 가사를 오른 어깨는 드러내고 도를 즐기며
雪眉覆眼觀空 백설 같은 눈썹이 눈을 덮도록 공空을 관觀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