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
헤엄
집 앞 놀이터 앞에는 제철 과일을 판매하는 트럭이 서 있다. 수박, 참외, 토마토의 선명한 색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지나친다. 그 자리에는 내일 뻥튀기를 판매하는 트럭이 올 것이고, 사흘 뒤에는 만두를 판매하는 트럭이 찾아올 것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다. 아스팔트 도로에 물 뿌리는 트럭이 지나치면, 도로의 색이 짙어진다. 내가 신은 샌들 위로 시원한 물방울이 생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쭉 걷다 보면, 빵집에 도착한다.
십 년 전, 이 빵집의 자리에는 엄마의 첫 번째 인쇄소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를 입학할 때쯤 혼자서 인쇄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엄마와 상의 없이 진행한 사업이 망했기 때문이다. 집에는 사채업자가 찾아왔고, 빨간 딱지가 붙었다. 두 사람은 이혼했다. 그러나 함께 살았다. 아빠는 딸인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돈을 벌러 나가지 않았다. 그 공백을 족히 십 년이라고 가늠한다면, 공백의 이유를 온전히 아빠의 능력 부족으로 탓할 수 있을까?
엄마는 상가의 간판 불이 꺼져 있는 오전 한 시에도 일하는 사람이었고, 아빠는 아무도 집에 없는 오후 한 시에 잠을 청하는 사람이었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학교에 머무는 나는 모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인쇄소와 집을 넘나들어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교복을 입고 인쇄소로 갔다. 손님용 의자 세 개를 일렬로 붙여서 누워있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었고, 엄마에게 건넸다. 방금 눈을 뜬 엄마에게는 텁텁한 입냄새가 났고, 나는 그걸 맡는 게 싫지 않았다.
큰 규모의 인쇄소라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동네 출력소였다. 엄마는 학위 논문 제작이나, 대학생들의 강의 자료 출력 등으로 자잘하게 돈을 벌었다. 주요 수입원으로는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원하는 각종 법정 서류를 대신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다른 서류를 만드는 엄마를 보면서 삶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따금 나도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면, 손님들이 손글씨로 적어 온 종이를 읽으며 한글 파일에 타자를 열심히 치곤 했다. 그 종이에는 꼭 한자가 등장하곤 했는데, 엄마에게 물으면 곧바로 어떤 뜻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한자를 읽지 못하면 부끄럽게 여기고 배울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안도감이 들었다.
커피믹스 스틱이 놓인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각종 동네 소식을 전하는 아줌마들,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는 어르신들, 출력물을 기다리는 대학생들의 자취가 종종 떠올랐다. 엄마에게 인쇄소는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이자 사람 냄새가 끊이지 않는 곳일 것이다. 십 년 사이에 대학생들은 디지털 기기로 교안을 출력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자주 찾아오던 어르신 단골들도 발길이 끊겼다.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만, 부고로 소식을 전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내가 대학교 졸업을 앞뒀을 때 엄마는 인쇄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십 대였던 아이들이 모두 이십 대가 되었고, 코로나 이후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도 오래였다. 엄마의 그 결정이 어떤 마음의 크기인지 함부로 가늠하긴 어렵지만, 엄마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결정임은 알겠다. 나는 언제나 인쇄소 한 켠에서 안경을 쓰고 타자를 치던 엄마의 빠른 손놀림을 더듬어본다. 글자가 지워진 키보드와 각종 서류가 쌓여 있는 엄마의 책상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첫댓글 헤엄의 글을 너무 좋아하는 1인으로 오늘 글이 짧아서 아쉬웠어요. 나중에 소설도 꼭 읽고 싶네요. 좋은 작가가 될 것 같아요. 아니 이미 좋은 작가이십니다^^
제목을 정말 잘 뽑으시는 것 같아요. 타이핑했던 엄마와 타이핑하는 딸이 잘 연결되어요. 텍스트를 넘어서 이미지가 잘 연상되는 글을 좋아하는데, 헤엄 님의 글이 그렇습니다. ㅎ 첫째 딸로서 나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이전에 엄마의 고난과 가족 내에서 나의 책임을 먼저 깨닫게 되는... 그런 힘듦이 느껴져서 뭔가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