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평온하고
김개미
손수건만한 햇빛이 집안을 돌아다녀요
내 손목에 올라앉아 맥박을 끌어올려요
햇빛을 따돌리기 위해 잠을 청해요
밝은 건 무섭거든요.
햇빛은 헤어진 애인만큼이나 질겨요
꿈속까지 따라와 눈동자를 파가요
음지식물 같은 나한테 안아달래요
나는 오래전에 늙어버렸는데요
따뜻한 걸 가지고 지옥으로 갈 순 없어요.
햇빛 쪼가리가 흉곽에 쌓이는 날은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서
연초록 부리들이 벌어져요 머지않아
스스로 맺은 열매 때문에 골치가 아플 나무들
천장에서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요
휴대폰은 새로운 경련을 시작하고요
왜 쥐알만한 아이들이 머리가 아플까요?
왜 핀셋은 평생토록 상처를 먹고도
구급함을 열 때마다 아가리를 쩍쩍 벌릴까요?
태양이 높이 떠오르니까 갈 곳이 없네요
내게 그림자를 조금만 더 덮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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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 동시집 『커다란 빵 생각』 『어이없는 놈』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레고 나라의 여왕』 『오줌이 온다』 등을 냈다.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제1회 권태응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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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091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김개미,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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