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
삼중당에서 문고본으로 펴내고 최남선이 편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문투성이의 이 책에는 정말 허씨의 조상이 된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許黃玉)이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왔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옛날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곰이 환웅(桓雄)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단군신화부터 활을 잘 쏘았다는 주몽,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처용설화, 만파식적, 서동과 선화공주, 지렁이에서 태어난 견훤 등 한반도 모든 설화의 원전이 삼국유사에 담겨 있었다.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승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는 전체 5권 9편이다. 삼국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의 연표를 담은 왕력(王歷), 고조선부터 후삼국의 단편적인 역사를 적은 기이(紀異), 삼국의 불교 수용을 담은 흥법(興法), 탑과 불상에 관한 탑상(塔像), 불교와 승려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 의해(義解)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자주 비교된다. 삼국유사보다 136년 먼저 나온 삼국사기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정사인 반면,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이 쓴 야사다. 따라서 정제된 체계는 삼국사기를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설화와 자료가 가득하고, 문학작품처럼 분방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우리 고대사를 바라봤다면 삼국유사는 독자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일연은 문헌에만 의존하려고 하는 유학적 사관에 반발해 우리 역사를 더 독창적인 세계로 끌어올린다. 그는 민간과 사찰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려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설화적인 이야기는 대부분 기이편에 수록되어 있고 일연은 기이편 첫머리에 이렇게 적고 있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 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일연은 무지개가 신모(神母)를 둘러싸 복희를 낳았다는 등의 중국 설화를 거론하며 우리도 그에 버금가는 신비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강변한다. 시조가 용이나 무지개에서 나왔다는 중국 설화는 줄줄 외우고 다니면서 우리 시조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괴이한 이야기로 치부하던 당시 중화(中華)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문헌의 보고다. 삼국유사 5편에 실려 있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보자.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서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김원중 옮김ㆍ민음사)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이 향가는 신라 문학의 백미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우리 고대사의 화석이자 스토리텔링의 위대한 원전인 것이다.
첫댓글 어스스 추워지는 가을 날씨에 못이겨 떨어지는 낙옆에 죽움울 비유하니 한밤중에 산중을 가는것처럼 무섭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