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5일 (목) 등록.
2019년 5월 14일 (화) 촬영.
춘천가는 ITX 청춘열차입니다.
춘천으로 가는 길이네요, 용산역에서 오전 8시 52분 열차를 탔습니다(운임, 일반 8,300원, 경로 5,800원)
청춘열차는 1시간 20여분을 달려 오전 10시 10분에 춘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춘천에 있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9점의 유물 중 춘천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1점과 보물 5점,그리고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을 제외한 시내에 있는 2점의 보물을 찾아가는 여행 길입니다.
춘천역에서 내려 왼편 의암호가 있는 방향으로 약 10여분 걸으면 볼 수 있는 당간지주(보물 제76호)입니다.
당간을 받치던 2단의 받침돌인 간대석입니다.
아랫단은 네모로 앞 뒷면에 안상을 새겼고 윗단은 팔각으로 16개의 연꽃잎을 조각하였습니다
근화동 당간지주 / 보물 제76호.
총 높이 3.52m인 이 당간지주는 전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이 깨끗하게 표면을 깍은 간결한 지주로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지고 맨 위는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당간을 지주대에 고정시키는 네모진 홈이 맨 위쪽에 있고 두 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던 2단의 받침돌(간대석)이 있다. 간대석은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네모로 앞 뒷면에 안상을 새겼고 윗단은 팔각으로 16개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또한 윗단의 가운데는 당간이 고정되도록 둥근 구멍을 파 놓았는데 당간지주와는 달리 붉은색을 띄고 있다
단 앞에 두 개의 연꽃무늬가 있는 돌은 석등의 위, 아래 받침돌로서 연꽃잎의 모양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인근의 소양로에 있는 춘천7층석탑(보물77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내용-
당간지주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소양강 의암호가 있습니다. 의암호에 설치한 스카이 워크예요.
스카이 워크 주변에 일주일전에는 등나무 꽃이 만발했었는데 지금은 장미가 피기 시작했네요.
소양강 처녀상 입니다.
소양강 처녀상을 우리들이 독차지하고 놀았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소양강 처녀상과 소양2교의 모습입니다.
소양2교.
6, 25전쟁 당시 춘천지역에서는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특히, 소양강을 두고
밀고 밀리는 수많은 전투가 발생하였다. 1951년 7,8 ~ 8,1 기간 중 미군 62공병 대대는 현 소양2교 위치에
병참선 유지 목적으로 목교를 건설하였고, 당시 62공병 대대의 전 지휘관이었으며 6,25전쟁 중 전사한
Frank H, Forney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Forney Bridge로 명명하였다.
이후 Forney Bridge는 60년대 초까지 춘천시민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담당했으나, 교량의 노후로
인해 해체, 2차에 걸친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차 신축공사시부터 소양2교로 불리며
춘천시민의 편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6,25전쟁 시 조국의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낯선 이국땅에 건너와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름모를 참전국 젊은이들의 고귀한 헌신 위에 이룩되었다.
이러한 숭고한 희생과 그 날의 아픔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소양강의 물줄기와 함께
기억될 수 있도록 기념비 이전을 통해 그 기원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2014,10, 17.
소양2교.
소양2교 아래를 통과하여
봉의산 아래동네 근화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봉의산 입구에 있는 카페 "봉의산 가는 길"도 만났더랬습니다.
봉의산
봉황 춤추며 춘천을 굽어보다.
춘천에 오면 제일 먼저 봉의산이 반겨준다. 봉의산이 보이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공지천, 삼악산, 소양강 등을 떠올려도 온기가 느껴지지만, 봉의산을 제일 앞세우는 까닭은 춘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늘 춘천을 굽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의암호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고개를 돌리면
호수 너머 시내 한가운데 우뚝 솟아 시야에 항상 들어오기때문에 춘천호수길의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동쪽에서 대룡산 줄기가 춘천 시내 쪽으로 오다가 솟아오른 것이 봉의산이다. 봉황이 춤을 추는 모습이라
하여 봉의산(鳳儀山)이라 부른다. 춘천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온몸으로 숱한 역경을 맞서온
봉의산은 춘천의 역사 그 자체인 셈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춘천을 공격하자 춘천을 지키고자 분연히 떨고 일어선 백성이 끝까지 항전한 곳이
이 곳 이었다. 1895년 을미 의병이 일어나자, 춘천 의병 1천여 명이 모여 진영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를 올렸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춘천대첩을 승리로 이끌어낸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봉황은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신령스런 동물 중 하나로 정치가 공평하고 어질며 나라에 도가 지켜질 때
나타난다고 하여, 성군의 덕치를 증명하는 징조로 여겨져 왔다. 어려움 속에서도 태평성대를 꿈꾸며
춘천 시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었으니 봉의산은 춘천의 희망이고 미래인 것이다.
봉의산 가는 길 카페 내부.
오래된 카페네요, 2000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봉의산 가는길 카페 앞, 봉의산 입구에 있는 비석군입니다,
소양로 비석군./ 향토문화재.
선정비란 관찰사와 부사 등 고을의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이룩한 공적이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
우리나라의 어느 고장에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칭송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서 영세불망비, 애민선정비, 송덕비, 공덕비, 흥학비, 청백비 등 다양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
이 비석군은 소양1교 주변과 춘천 관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1940년과 1993년에 모두 이곳으로
옮겨와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비 가운데는 조선시대의 종이품직으로서 지금의 도지사 급인 관찰사비
3기와 종삼품직으로서 시장급인 부사비 15기, 종사품직인 군수비 2기등 총 26기가 있다.
비석군에 있는 비석들 중엔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81세 생일기념비도 있습니다.
비석군을 지나 소양정이 있는 봉의산으로 갑니다.
날씨가 제법 뜨겁네요. 여름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석군과 소양2교가 내려다 보이네요.
봉의산 올라가는 길에는 춘천절기 전계심의 묘비도 있습니다.
춘천절기 전계심묘비 (春川節妓 全桂心墓碑)
이 비석은 춘천에서 태어난 관기 전계심의 무덤 앞에 있던 묘비이다. 비문(春妓桂心殉節之墳)
외형적으로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훼손되어 보잘것 없는 초라한 비석에 불과하나 춘천의 선비들이 그녀의
절개를 가상하게 여겨 세운 비석이다.
계심은 조선 22대 정조임금 때 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기생이 되었으나 아름다운 용모와 단정한
행동으로 칭송이 자자한 덕에 17세 되던 해 춘천부사 김처인의 소실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부사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나 떠나며 기회를 보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만을 믿고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아무 소식도 없는 약조가 무슨 소용이냐며 계심을 서울의 기방에 팔아 버렸다.
계심은 어쩔 수 없이 기방에 있게 되었으나 이미 부사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기에 부사가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는 실날같은 희망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녀의 고결한 성품과 곧은 절개를 꺽어 보려고 많은 사내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녀는 은장도를 가슴속에
간직한 채 모진 마음을 먹고 정숙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 날 폭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조를 유린
당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낙태되자, 사랑했던 부사에게 애절한 사연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한편 계심이 자결하던 날, 유혈이 낭자한 계심의 끔을 꾼 김처인 부사는 기이한 생각이 들어 계심을 찾아
왔다가 죽어 있는 그의 시신을 거두어 그녀의 고향인 춘천 봉의산록에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순찰사가 행적을 가상히 여겨 열녀정문을 세워 주었고
1796년에 춘천의 선비들이 그녀의 절개를 높이 평가하고 뜻을 모아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춘기계심순절지분,春妓桂心殉節之墳>이라는 흔히 볼 수 없는 기생의 묘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 무덤은 본래 봉의산록 소양정 변에 있었으나 도로 개설로 없어지고 비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97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작고 초라한 비석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속에 담겨 있는 애틋하고 절개있던 그의 뜻을 가슴속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향토의 유적이다.
전계심 묘비를 지나면 계단 위로 소양정이 보입니다.
의암십경의 하나인 봉의산 소양정입니다.
소양정 앞에는 영세불망비도 한기 있습니다.
윤공용성영세불망비.
이 비석은 중앙국민학교의 전신인 춘주학교의 창설자인 고 윤용성 선생의 영세불망비입니다.
이 분은 이 고장 사학의 효시로서 견디기 어려운 일제의 역경 속에서 뜻을 세워 후세의 육영사업에
몸 바쳐온 항일 육영상록수이기도 합니다.
이 분의 높고 큰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45년 10월 당시 춘본학교(현 중앙국민학교) 학부형의
뜻으로 봉의산록에 세워진 이 비를 소양정 복원과 함께 이곳에 옮겨 세운 것입니다. -1971년 8월-
소양정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호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말 문인 운곡 원천석의 시에 "소양정"이라는 명칭이 쓰인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인 15세기에는 "이요루"라 불리기도 했으나 1647년(인조25) 춘천 부사 엄황이 정자를 수리하면서
현재의 "소양정" 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소양정은 본래 현재의 위치보다 아래인 소양강 변에 있었으며,
1780년(정조4) 부사 이동형이 홍수로 유실된 것을 다시 지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66년 현재의 위치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재 건립 하였다.
-안내문 내용-
소양정 내에는 편액이 20여 개 걸려 있습니다.
그 중 두 점 입니다.
소양정회고,昭陽亭懷古(소양정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 정약용, 1762~1836.
漁子尋源入洞天 어자심원입동천 어부가 무릉도원 찾아가듯 고을로 들어가니
朱樓飛出幔亭前 주루비출만정전 화려한 누각이 나는 듯 수레 앞에 나타나네
弓劉割據渾無跡 궁유할거혼무적 궁씨 유씨 나누어 차지했으나 자취가 전혀 없고
韓貊交爭竟可憐 한맥교쟁경가련 한과 맥이 서로 다투었으나 끝내 가련할 뿐이네
牛首古田春草遠 우수고전춘초원 우수의 옛 땅에는 봄풀이 가득하고
麟蹄流水洛花姸 린제유수낙화연 인제에서 흘러오는 물엔 떨어진 꽃이 고와라
紗籠袖拂嗟何補 사농수불차하보 깁으로 싸고 소매로 떠는 것이 무슨 보탬이 되리오
汀柳斜陽獨解船 정유사양독해선 석양의 강가, 버드나무에서 홀로 닻줄을 푸노라
소양정에서 본 소양강입니다.
소양정에서 간식을 먹으며 땀을 식혔어요.
이런거.... ㅎㅎ
이제 내려갑니다.
근화동 벽화거리도 지납니다.
번개시장에선 멍멍이도 오마넌을 물고 있네요. 돈 많은 동넨가봐요. ㅋㅋㅋ
번개시장은 야시장이라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 앞에 재작년에 들렀던 정자네 밥집이 있네요.
또 들렀죠, 코다리찜과 짜글이, 백반 등을 먹었습니다. 지난 주에 얻은 사만원 강원도 상품권 몽땅 썼네요.
점심 먹고 강원도청으로 갔습니다. 그 동안에 도로 확장 공사를 했네요.
길이 상당히 넓어져서 어리어리 했어요.
천주교소양로교회 앞까지도 길이 뻥 뚫렸습니다.
춘천 소양로에 있는 성 파트리치우스 성당 (등록문화재 제161호, 1956년 건립)
천주교 춘천교구 소양로본당은 1949년1월 죽림동 주교좌 본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춘천의 두번째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본당 설립 직후 발발한 한국전란 중 아일랜드 전교회 출신인 초대 주임 안토니오(A collier)
신부는 인민군의 손에 순교함으로서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큰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춘천교구의 구 토마스(T Quinlan)주교로부터 이 같은 숭고한 순교를 기리는 성당을 지을
것을 명 받은 부 야고보(J Buckley) 신부는 국내외 여러 은인과 교우들의 도움으로 이 성당을 완공하여
1956년 9월 3일 축성식을 가졌다.
소양로 성당은 반원형에 기둥이 없는 특이한 구조로 당시까지의 일반적인 성당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 현대 성당 건축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소양로 성당은 2005년 4월 15일 문화재청으로 부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강원도및 춘천시의 도움을 받아 지붕과 창호와 제단 공간등 안밖으로
원형복원을 지향하는 정밀한 공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성당 입구 밖에 있는 안내문 내용)
춘천 소양로 성당
이 건물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제임스 버클리(James Buckley)신부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희생된 앤서니 콜리어(Anthony Collier) 초대 주임 신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이 성당은 당시의 건축물로서 보기 드문 반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성당의 내부를 보면 중앙 재단을
중심으로 신자석을 부채꼴로 배열하고 원주면 중앙 2층에 성가대석을, 원주면의 좌우 끝 부분에 제의실과
고해실을 덧붙인 형태이다.
아치창과 버팀벽 등에서 전통적인 성당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지만 이외의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으며
단순한 형태의 밝고 기능적인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건축 개념을 적용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당은 전통적인 중세풍 성당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건축 양식을 도입한 국내 최초의 성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당 마당 안에 있는 설명문)
반원형 구조의 성당 내부.
천주교회 바로 옆에는 절이 있습니다.
그래선지 천주교회당 입구에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한다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습니다.
도청 앞 아파트 입구의 거대한 나무에 열매가 열렸습니다. ㅋㅋㅋ
도청에 있는 조양루입니다.
위봉문, 조양루
위봉문과 조양루는 인조 24년(1616) 춘천부사 엄황이 춘천관아 건물인 문소각을 신축할 때 함께 지었다.
고종대에 국가에서는 춘천을 중요한 국가적 요충지로 인식하고 유사시 임금의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춘천 이궁 설치를 추진하였다. 고종 27년(1890) 춘천유수 민두호가 문소각을 수리하여 이궁 설치로 인해
위봉문은 임금의 침전인 문소각의 내삼문이 되었고 조양루는 문루가 되었다.
위봉문과 조양루는 전형적인 관아건물 형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춘천이궁의 건물로
건축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71년 12월 16일 각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문소각 소실과 이궁터에 강원도청사가 건립되면서 위봉문은 도청 주변으로 여러 차례
이전되었고 조양루는 1938년에 옮겨졌다.
위봉문과 조양루는 2011년 도에서 추진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업으로 제자리를 잃은 지 70여년 만인
2013년에 제 자리인 현재의 위치에 복원 되었다.
(1895년 작성된 춘천 관찰부 관아도를 바탕으로 제자리 찾음)
조양루 /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호.
위봉문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위봉문.
위봉문에서 본 조양루.
위봉문의 봉황.
강원도청 본관 건물입니다.
강원도청 정문 앞에 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조형물.
도청 앞 거리 모습.
도청 정문입니다.
청사내에 있는 조형물들.
강원도청 위쪽에 있는 춘천 세종호텔 정문입니다. 정문 모습이 특이하죠.
세종호텔은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신사터에 호텔을 지으며 신사 정문은 그대로 두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호텔 정문은 신사의 정문이었어요. 아마도 일본 신사의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이 곳 뿐일 것입니다.
신사의 흔적은 호텔내 출입 금지구역인 중정에도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본 중정에는 석상과 건물의 기초석이 남아 있네요.
식당
호텔 입구 벽에 걸린 그림.
답사를 마치고 갑니다.
호텔 정문을 다시 보니 일본 신사의 느낌이 제대로 나네요.
붉은 색을 칠하면 일본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호텔 앞 도로에서 본 시내
시간이 빠듯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있던 "다이빈'이란 중국문화카페에도 들렀었습니다.
카페 다이빈,茶怡斌.
2층의 모습.
비공개 침실을 살짝~~
다이빈에서 나와 10여분 걸어 도착한 보물 77호 춘천7층 석탑이 있는 광장입니다.
춘천7층석탑 / 보물 제 77호
춘천 7층 석탑은 여러층(多層)을 높다랗게 쌓는 고려시대의 특징을 가진 이중 기단의 칠층석탑이다.
이 탑이 속해 있던 사찰에 대한 기록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의 인조 임금 때(1623~1649)
충원 현감을 지냈던 유정립이 춘천으로 낙향하여 석탑근처에서 집터를 닦던 중 충원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물건을 발견하였다는 기록으로 일명 "충원사 칠층석탑"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탑은 다층탑으로 조립된 석재의 수가 적고 상대갑석과 일층옥신 사이에 위로 향한 연꽃잎을 새긴
또 하나의 부재(별석)을 넣어 만든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의 지붕돌은 칠층이 모두 남아 있는데 예전 화재로 인해 많이 훼손된 모습이다.
또한 정사각형의 1층 옥신석 위로 1층에서 4층까지는 옥개석과 옥신석이 하나로 구성되고
5층과 6층 옥신석은 분리되어 있다.
탑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사후에 화장한 후 나온 유골을 봉안한 조형물로 무덤의 성격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불가에서 절대 불가결의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으로 사찰의 중심부에 자리하게 된 유물이다.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며 현재의 높이는 6.37m이다. -백과-
춘천역으로 가는 길.
춘천역.
ITX열차, 2층으로 예매한다는 것이 조작 실수로 아래층에 앉아 가게 됐습니다.
첫댓글 동화보다 재밌고 만화보다 재밌는
춘천 답사기행문 하나라도 놓칠세라 차근히 읽어내려 갑니다
봉의산과 소양정
덕분에 국보와 보물 공부도 잘 합니다.
애달픈 전계심의 자결이야기
기녀들의 님을 향한 사랑과 절개는
감동을 줍니다.
그저 부럽습니다
정성으로 올려주신 춘천여행기 감사히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