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읍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일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 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장군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 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 중 효행 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10살 의 어린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 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 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 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3.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 적이 있었다. 주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 있냐 고 묻자 250명의 학생 중 단 한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 건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난 후.. 나는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 중 단 한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 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이야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 중 단 한명도 알지 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 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 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 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역사에는 세계에 내놀만한 수군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국가 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에 질문에...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 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 보라 스페인을 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 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 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 바꿔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 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인진왜란 1년전만 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정도 더 이순신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아 보았다... 어떤 학생 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중 한분이셨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 해서 연구하시던 중 1995년 고구려 역사 편입하는 작업 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 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 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전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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