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라포션 "וַיֵּצֵא 바예쩨" : 11월 넷째 주 in 5784
창28:10-32:2(To), 호12:12-14:9(Haft), 요1:19-51(Brit), 요12:1-17:26(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보통 엄마들을 아기를 낳으면 아기를 키울 것이 힘들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세나는 세 아이를 주신 이유가 있었더라. 두명 정도야 민폐 안 끼치고 키울 수 있었을텐데, 셋이라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도움을 받고, 민폐를 끼쳐야만 하는 상황 속으로 밀어넣으셔서 세나를 평생 속여왔던 나는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들을 벗겨가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ויצא 바예쩨
바예쩨만큼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는 토라포션 단어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비상구 표시에 바예쩨가 다 박혀있다. 우리 삶에 바예쩨가 주는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보도록 하겠다
창28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여기에 바예쩨뿐만 아니라 키슬레브월이 진행되고 있는데, 키슬레브의 주제까지 들어있다. 야곱이 주인공인 포션으로 넘어왔다. 지난주엔 이쯔학, 노는 것에 대해서 배웠다. 이 야곱이란 사람은 이삭을 계승한다. 그 웃음과 놀이, 즐거움을 계승하는 아들인 것이다
갈4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다. 지난 주 이스마엘을 위해서 중보했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오늘 우리 세나를 통해서 두 가지의 모습을 다 본 것 같다. 세나가 육신으로 셋째로 태어나서 죽을뻔했던 경험이 있다. 셋째는 지우라는 말로 말미암아 어떻게 속임당했는지를 배웠다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런데 이삭은 자유한 아들이다.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을 언약의 자녀라고 칭해주신다. 아브라함에겐 약속이 있었고, 이삭은 그 약속을 계승한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선한 일을 위해서 여러분을 창조하셨다. 선하고 좋은 그런 선물을 여러분에게 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그래서 이삭은 그 선물을 받는 자유한 약속의 아들이었다. 선물을 받으면 웃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좋다. 하영이가 기도 덕분에 미국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어제 고 아버지가 오셔서 말씀을 나눠주시는데, 하영이가 매 샤밭 때마다 고 목사님께 일종의 사역보고를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이 너무 감사한데, 내가 바트야 이모와 남편분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건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선물을 은혜라고 한다.
우리가 그 선물을 풀어보며, 그 선함을 풀어보면서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평생의 약속이고 선물인 것이다. 우리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톨도트로 넣으신 목적이 이 선함에 있다. 이번 주의 주인공인 야곱을 보자.
יעקב 야아코브
עק 아크라는 뜻 자체에 압박이라는 뜻이 있다. 선물을 풀어보며 즐겁게 하시리라고 하신 분이 왜 야곱의 이름을 압박이라고 지으셨을까? 이것이 아이러니이다. 야곱은 나중에 바로 앞에서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세나가 고통 가운데 들어간 것처럼, 야곱도 아크의 삶으로 들어갔다. 선을 베풀기 위한 이삭의 자녀라면, 즐겁고 행복한 길로 걸어가야하는데, 골짜기로 걸어갔다
기홍과 세나를 보면 사람이 저렇게 안 자도 살 수 있고, 저렇게 못 먹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다. 기홍 형제가 걸그룹 몸무게를 가지고 있고, 압박과 고통 속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삶의 하나님의 약속의 선이 보이지 않는 것을 거친다. 언제쯤 그 선이 나타날지.
이번에 하늘이가 휴가에 나와서 집에 몇일 같이 있으면서, 20년만에 처음으로 선함의 부분을 맛본 것 같다. 20년 동안 하늘이와 함께 압박의 시간,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지금에야 이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선물을 받는 것 같은 즐거움과 기쁨이 제 안에 있었다. 우리의 아보트들은 인내하는 자들이었다. 야곱은 특별히 티프에레트를 대표한다. 인내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현천이가 에스더에게 하는 것을 보면, 요새는 현천이가 저한테 전화해서 미리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제작년만해도 싸웠다고 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면 제가 그런 말을 했다. 미리암이 에스더라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귀엽니. 미리암이 너에게 했던 이야기, 엄마가 들으면 너무 귀엽고 깜찍한데, 왜 이게 현천이에게는 압박으로, 고통으로 들릴까? 우리 현천이가 에스더에게 하는 것은 정말 지극 정성이다. 현천이가 에스더한테는 전혀 벽을 쳐서 손목을 부러뜨리는 애가 아니다. 끝까지 설명하고, 씻기고, 인내해주는 아버지이다
왜 이렇게 아버지는 딸바보가 되는 것일까? 왜 자녀 앞에서 그렇게 선을 베푸는 것일까? 부부 관계에 선을 베풀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녀 앞에서 아버지는 아버지를 자녀에게 경험시키고 싶어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알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부부 관계에는 선이 없는 이유가, 경험이고 뭐고 나한테 잘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압박과 고통이라는 박스에 선물을 감추셔서 여러분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쓰실 수 밖에 없다. 주님이 그 선물을 그냥 주시면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준 것 같이, 우리는 그 선을 발기발기 찢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 저희들에게 그 선물을 보여달라고 한다. 당신이 주시는 선물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주님은 내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고 하신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 짐 앨리엇의 아내가 쓴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는 책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통의 답을 나는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고통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라고 쓰셨다. 우리에게 주님이 고통이라는 박스에 꼭 넣어서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과를 주시면 주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사과만 먹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우리의 육신을 보여주신다
나를 기쁘게하는 그 물질만이 선인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버지 자체를 경험시켜주시기 원하시는 그분을 만나게 되길 원한다. 이것이 바예쩨의 사역이다.
진짜 선한 것이란, 하나님 자체이시다. 제가 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쿠웨이트에 계실 때 한국에서 너무 그리워서 아버지의 선함을 맛보고 싶어서 제가 했던 것이 아버지의 매일매일의 말씀들을 집에 계속 틀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이 탁월하고 좋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가 좋은 것이다. 그냥 그 존재가 좋은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선을 주셨을 때, 그 존재가 아닌 물질만을 원하는 우리 육신의 성향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 있다.
창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너 내 발목 붙잡지 말라고 했을 때의 발목이라는 뜻이다.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야곱이라는 이름 자체가 방해하다, 속이다, 뺏다는 뜻이 있다. 우리에게는 속임수라는 야곱, 바예쩨의 스토리는 다 속고 속이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더 심한 말로 이야기하면 사기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존재 자체의 선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신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취하고, 에서를 속이고, 라반의 속임수에 당해서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동안 일을 한다. 라반은 20년 동안 품삯을 10번이나 속였다. 속임수와 사기가 오늘의 주제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제자도의 4단계를 배우면서 댓가 지불을 기억하시는가? 댓가를 지불해서 우리가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속임수와 비슷한 것이다. 거저 먹는 것이 아니라, 댓가를 지불해서, 속임수를 뛰어넘어서 그 안의 선물을 보는 것이다. 보여진 것 안에 있는 것을 보는 트릭을 보겠다.
이삭이 어느날 아버지가 산에 가자고 하면서 이삭을 속여서 간다. 가면서 제사를 지내야하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했더니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속임수를 쓴다. 그 산에서 주님이 준비하실거야. 삶은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그 산에 올라가자 עקיד 아케이다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묶는다. 우리는 이것을 고통이라고 명명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묶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절대적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을 아케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기꺼이 속임을 당해주는 것을 고통을 넘어선 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바예쩨에서 아케이다를 이어받아서 여호와께서 이야기하신다. 내가 너의 삯이라고 할 때의 삯이다.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얻었던 삯인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에 이 아케이다와 같은 단어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돈, 물질이 삯인 줄 알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하신다. 삯을 얻으면서 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나를 얻기 위한 너희들의 셋팅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배팀과 말씀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한다. 바로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이 찬양을 부르기 위해서 그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주님을 얻기 위한 모든 것이 삯이다.
네케드가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인데, 아케이다와 같은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묶는 것을 통해서 주님을 얻는 것이 아케이다이다. 제일 기쁠 때를 돌아보면, 소소하게 내 감각을 만족시켰을 때 얻은 행복보다, 내 정욕을 묶었을 때 오는 행복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힘들다고, 배고프다고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묶고, 아들을 위해 웃음을 주기로 결정했을 때 진정한 행복, 놀이, 웃음을 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 아들은 결국에 아버지를 알게 된다. 아버지의 선함을 선물로 맛보게 된다. 이 주인공 귀도는 이 고통을 해학으로 묶었다. 단순한 코메디가 아니라, 해학은 깊은 슬픔이 들어있는 뉘앙스가 있다. 이 웃음, 해학이라는 것이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냐면, 긴장된 기대를 계속 하다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버릴 때 일어나는 감정이 웃음이라고 한다. 문제가 있어보이던 것이 사소한 것으로 판명될 때 보이는 것이 웃음이다
죽을 것 같아서 아버지에게 갔는데, 괜찮아. 아무것도 아닌거야라고 하신다. 진정한 해학을 가르치신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죽음이 오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죽는데 마지막으로 아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해학과 익살스런 표정을 통해서 아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래서 아들은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하게 된다. 성경에도 진짜 해학이 있다
막4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있었다. 큰 고난이 왔다. 죽을 것 같은 시점이 왔다. 그런데 주님의 해학을 한번 보자. 주님이 주무신다. 이처럼 해학이 있을까? 미쳐 죽겠는데 괜찮다고 하시는 아버지처럼, 예수님은 베게를 베고 주무신다. 지금 너무 아프고, 수치스럽고,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웃긴 일을 하신다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최고의 해학을 주님이 보여주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잘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진짜 해학 아니겠는가? 이번달의 주제 감각이 있다. 시므온은 청각, 아쉘은 미각인데, 이번 베냐민들은 잠을 담당한다. 우리가 속임당하고 사기당했을 때 제일 못하는 것이 잠자는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잠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한다. 잠을 감각의 한 범주에 넣는다는 유대인들의 정신이 굉장히 독특하다.
잠을 자지 않고 얼만큼 버텨봤는가?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조사했는데, 공식으로는 11일 1분까지 버텼다고 한다. 인간이 참 대단한 존재인 것 같으나, 열흘만 안 자도 이상해진다. 비공식적으로 11일 12시간까지 버틴 사람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람이 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3일로 보고 있다고 한다. 3일이 지나면 잠을 자지 않으면 거리의 간판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4일째 되는 날은 내가 프로 축구 선수라고 착각하고, 6일째는 근육의 제어가 안되고, 기억 상실증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100에서 7씩 빼라는 수학 문제를 주자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닌 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쥐들도 잠을 재우지 않고 2ㅜ간 쳇바퀴를 돌게 했더니 모두 죽었다고 한다. 사람에게 잠의 감각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에게 풀어져야 한다
랍비는 모든 사람, 모든 자연 만물은 잠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이 잠을 자듯이, 나무도 잠을 자고, 바다도 잔잔할 때 잠을 자고 있다. 잠은 깊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잠들 수 있는 능력이다. 잠을 능력이라고 한다. 혹시 잠을 잘 못 이루는 분들이 있다면, 이번달에 치유받기를 축복한다. 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시면서 자게 하시는지를 보자
잠3
23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하길 축복한다. 우리의 잠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과 연결되어있다. 주님을 신뢰하고 믿게되면 잠이 온다. 나는 업어가도 몰란다는 말이 참 무서운 말이다. 업어가서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업어가도 모르게 자는가? 이 잠은 여러분의 신뢰와 믿음과 연관이 있다. 유대인들은 잠은 죽음의 일종이라고 한다. 죽음의 1/60이다.
60이란 숫자가 키슬레브월의 싸멕의 숫자값인데, 죽음의 1/60이 잠이라고 이야기한다. 랍비들은 주님께 항복하라. 그러면 잠이 달콤할 것이라고 한다.
매일매일의 죽음을 연습할 수 있는 잠을 이번달에 연습하면서 진정한 항복과 신뢰에 대해서 배우길 축복한다. 주님이 배에서 최고의 해학을 보여주셨듯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신뢰하는 자에겐 잠과 웃음을 주신다.
유대인들은 잠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을 잘 자려면 경계심을 내려놓고 기도처럼 예비 연습을 해야한다. 아이들에게 쉐마 기도를 읊는 것등은 굉장히 중요한 잠의 훈련이다. 야곱이 키슬레브월에 잠들었다고 표현한다. 야곱은 죽지 않고 잠들어있다고 한다. 불멸하는 존재, 야곱의 도움으로 이번 한 달은 잘 자보길 축복한다. 고난이라는 포장 박스 안에 우리에게 선을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가 든든한 잠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고 아버지가 오랜만에 오셔서 뵙는데, 아버지들은 해학과 웃음의 사람들이신 것 같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항상 타인을 웃게 하려는 것이 진정한 유머이고 이쯔학이다. 타인을 웃게할 때, 아들을 웃게하는 아버지가 웃는 웃음이 찐 웃음이다. 타인을 웃게하는 웃음을 하는 것이 토라이다. 남을 대적하는 불문율로 남을 웃게하는 것을 배우는데, 웃고 노는 것을 배우는 시기를 항문기라고 했다. 바예쩨이다. 항문기 때 우리는 웃는 것을 배운다.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 가운데 항문기에 걸친 아이들이 많다. 그때그때마다 배우고, 습득하고, 그 다음에 넘어가야하는 것들이 있는데, 항문기에 반드시 습득해야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자유롭게 조절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어떻게 자유롭게 배우느냐? 배변 훈련할 때, 엄마들이 똥 쌌다고 때리는 엄마들이 간혹 있다. 저도 하늘이에게 여러번 용서를 구했는데, 항문기의 시간에 한국에 잠깐 나와있었는데, 저희가 언니 집에 얹혀살았다. 굉장히 높은 층수였는데 어린이집을 가야하는데, 그때는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으니까 이걸 놓치면 못 가는데, 내려가는 중간에 꼭 똥을 싼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 화를 내고 애를 두드려팼던 때가 있었는데, 얼마나 후회가 되고 미안하던지. 자유롭게 조절하는 배변 훈련은 반드시 놀이로 배워야 한다. 똥과 오줌을 가지고 도 목사님이 설명하셨던 것이, 황 목사님이 아들 훈련시킬 때 남자가 어떻게 쉬를 싸는지, 이런 것들을 놀이로 보여주셨다고 한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 아기로 태어나서, 구강기를 거치고, 항문기를 거친 분들도 있고, 걸쳐있는 분들도 있다. 일단 교회 오는 것이 재밌어야 한다. 어렸을 때 저는 교회에서 사는게 너무 재밌었다.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밴드를 어린 아이들이 했었는데 반주하고, 노래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교회에 오고 놀고, 말씀을 배우는 것이 여러분들의 최고의 놀이터가 되시길 축복한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하고, 말씀 배우는 것이 너무 좋고, 저와 신랑은 요새 저희가 강원도에 자주 가는데, 제자들은 거기서 도대체 뭐하시냐고 하는데, 저희 둘은 가도 둘이 토라공부한다. 그게 제일 재밌다. 저는 솔직히 설교보다 살림이 훨씬 어렵다. 제가 너무 행복하고 좋은 것을 하면서 매일 살고 있음에 감사한데, 토라가 재밌고 행복해지는 것이 이쯔학의 가문이다. 여러분의 가문은 토라공부를 제일 즐거워하는 가문이다. 교회에 오고 서로 모이는 것이 행복한 공동체이다.
이 항문기에 자율성을 배우게되면, 의지력과 이것을 통해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때 놀이로 자유롭게 놀면서 배우지 못한 우리 존재가 갖게 되는 것이 수치심이다. 항문기 때 만들어지는 것이 수치심이다. 응가가 마려운 것이 수치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 몰래 하게되고, 은밀하게 하게되는 모든 중독이 이때 형성된다. 모든 사기와 속임이 이때 만들어진다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후에 이런 말을 한다. 제가 벌거벗었음으로 부끄러웠다고 한다. 수치를 느꼈다는 것이다. 벌거벗어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두려움이 거기에 들어가있다. 벌거벗은 것 자체는 하나님께 숨을만한 것이 아니다. 은밀하고 중독에 걸리고, 하나님과 다른 세계를 나름대로 구축하는 것은 벌거벗은 것에 원인이 있지 않다. 벌거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게된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저는 신랑 앞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다. 어떤 수치와 어떤 것도 신랑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벌거벗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벌거벗었을 때 느끼는 건강한 수치심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원래 우리 상태로 돌아가게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변질된 수치심과 두려움은 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의 의지, 상상, 재미있게 주님 앞에서 놀 수 있는, 토라를 재미있게 공부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하나님과 사람들, 아버지 모르게 은밀하게 내 판을 짜는 것들이 여기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 생기는 것들이 스릴을 느끼고자 하는 것들이 생긴다. 중독, 사기, 도벽, 이런 것들이 여기에 생긴다.
가장 큰 사기, 도둑질이 뭘까? 삶이 우리를 가장 많이 속였던 영역이 뭘까? 아까 세나가 이야기했는데, 너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다. 내가 태어나면 우리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나가 막내였는데, 엄마 뱃속에서 들어섰는데 얘까지 낳아서 키우면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아서 막내를 지우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게 세나에게 사기친 가장 큰 늙은 왕의 속임수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세나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햇, 민폐 끼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가장 큰 사망의 사기를 당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사기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놀이, 웃음, 이쯔학을 가르쳐주시기 원하시는데, 모든 것이 사기이다. 우리 삶 자체가 사기이다. 여러분도 제게 사기치는 것을 안다. 멀쩡하게 앉아있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하고 있다. 제가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온 것 자체가 사기이다. 우리의 인생은 다 사기로 되어있다. 주님은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사기라는 개념을 통해서 진짜를 보여주고 싶어하신다.
사기당했다.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내가 너한테 기대했는데, 그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유익을 기대했는데, 너는 해를 끼쳤어. 이혼하는 커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세 가지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 나한테 사기쳤지? 속였지? 이다. 속았다. 이 결혼은 사기다.
우리 육신은 유익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의 육신은 계산의 명수이다. 늘 자기의 유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미래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 10년 뒤에 피눈물을 흘릴거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다. 지금 당장 그것보다 내가 싸우는 것이 내 육신에게 더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미리 예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 우리 에고는 그렇게 사기꾼이다. 몇년 후의 일은 우리 육신에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 감각하고 느끼는 것만이 전부이다
사기란 사실을 왜곡시켜서 경제적 이득을 얻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코로나 때 마기꾼, 이런 단어가 있었다. 사실 그것이 사기가 아닌 이유가, 이익이 결합되지 않은 것이다. 속임수를 통해서 그 안의 선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보겠다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때이다. 얼마나 성령 충만했을까?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출18
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굉장한 기적을 체험하고나서 벌어지는 참 웃긴 일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종일 너가 이겼네, 내가 이겼네, 하면서 싸움박질 하고 있는 것이다. 나 사기당했다고 하면서 하루종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뺏고, 뺏기지 않으려고 또 뺏고, 속이고, 속지 않으려고 또 속이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다 매일매일 뺏긴 마음으로 살아간다. 너무 뺏겨서 뺏긴 아픔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너무 아파서 그 아픔을 버려버리는 아이들로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뭐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목사님은 우리 직업이 소방수가 된 것 같다고 하시는데, 24시간 불이 나면 줄 서 있는 백성들 해결하느라 사는데, 우리는 뺏겼다는 마음으로 싸우면서 살아간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트로라는 장인을 보내신다. 유익이라는 것으로 근사한 포장지로 다가오신다. 진짜 유익을 생각해보지 않을래? 이것에 대해서 배우고 또 배우게 하신다.
제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사기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키울 때 사기 진짜 많이 치지 않는가? 밥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 비행기가 날아다닌다고 입에 숟가락을 넣고 하는데, 모든 것이 사기이다. 남을 등쳐먹는 것만이 사기가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것, 가식 자체가 사기이다. 내 아픔을 인정하지 않고, 세나가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참 아픈 자라고 인정해버리면 되었을텐데, 죽지 않으려고,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민폐끼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도 속이고, 삼둥이까지 속이는, 누군가에게 민폐덩어리인 세 녀석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가는 사기치는 삶으로 우리 삶은 점철되어있다
특히 아기 키울 때 사기를 많이 친다. 아기 앞에서 엄마로 서야하는데, 같은 애기짓을 할 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아기 친구인 줄 알고, 아기 앞에서 여자로 설 때도 있다. 남편들은 아내 앞에서 남자로 서야하는데, 지가 아들이거나 아내 친구인 줄 알 때도 있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같이 징징댄다거나, 누구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나도 힘들다고 하거나, 그 사람은 너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한다던가, 우리는 다 그렇게 사기 엄마, 사기 여자, 사기 남편으로 살고 있다
시영 집사님 어머니가 그렇게 건강 식품을 한가득 주셔서 몇 박스씩 가져오신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건강에 관심이 많으셔서 사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평생 귀가 얇아서 다 사신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평생 사기를 당하면서 살아오셨다고 한다.
사기는 왜 당할까? 왜 우리는 속으면서 살아갈까? 밤에는 의자를 사는게 아니라고 한다. 밤에는 기본적으로 피곤한 상태이기에, 모든 의자가 다 편안해보인다는 것이다. 사기와 속임, 사기당하는 것은 내가 결핍이 있다, 뭔가가 부족하다, 내가 건강해야한다는 결핍의 상태에 있는 에고에게 사탄이 유익으로 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트릭이다. 뺏긴 마음으로 사는 우리 에고는 삶이 우리를 속였다고 하면서 살아간다.
רמות 라모트 : 속이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속이다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단어이다. 레쉬, 머리, 꾀이다. 야곱이 꾀돌이였다. 이 꾀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리는 것이 사기, 속이다는 것을 통해서 선함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이 단어에 들어있다. 우리의 머리, 레쉬를 쓰는 사역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것이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야곱이 왜 속이는 자로 이 땅에 태어나서, 이 속임을 완성했을까? 이 야곱의 꾀를 십자가의 못박음을 통해서 완성했을까? 그것을 통해서 야곱의 티프에레트, 아름다움을 보게된다. 스스로 속이지 않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않은, 무엇을 하던지 그대로 거둔 야곱의 놀라운 열매들을 볼 수 있다. 속임이라는 포장지 안에 있는 진짜 선을 볼 때까지 인내하고 인내했던 사람, 그 본질을 볼 때까지 자기 감각을 인식하지 않은 사람, 감각이 완전히 치유된 자의 아름다움을 야곱을 통해서 보았다
야곱은 정말 험악한 인생을 살면서 그 사랑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하고, 하나님의 삯을 얻기 위해서 라반에게 그렇게 봉사했다. 하나님의 본질을 볼 때까지 자기가 본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자기 딸을 강간했을 때, 아들들이 보기에 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한마디라고 하시지, 하몰에게 한 마디 없이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야곱은 그 선을 볼 때까지 자기가 본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나, 레위와 시므온이 가서 다 죽여버린다. 감각을 신뢰하며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티쿤해야하는 것이다
요새 김부장 이야기, 이런 것이 있다. 직장인들이 얼마나 회사에서 고생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쓴 책인데, 한 팀장님이 줌으로 회의를 많이하니까 11시에 회의한다고 했는데, 그분이 그날따라 오지랖으로 20분 전에 들어와보신 것이다. 그때 누가 들어오겠는가? 화가 점점 나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다 들어와서 회의하려고 하는데, 한 팀원이 머리가 삐죽 나와있던 것이 보인 것이다. 지금 일어났군. 그래서 그날따라 회의 시작하기 전에 자유롭게 발언해보자고 했더니, 단 한명도 이야기하지 않자 뚜껑이 열려버려서 회의를 파토내고 나가버린 것이다
만약에 이 팀장님이 보이고 느껴지는 감각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고 목사님이 화가 날 때 심호흡을 열번 해보라고 하신 것처럼, 심호흡을 하고 뭔가가 있을거야. 선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면, 어떤 일이 그때 일어났을까? 그 팀장님은 이런 세상을 창조하셨을 수 있다. 내 감정이 왜 이렇지? 하면서 심호흡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10분 정도 시간을 드릴테니, 이것도 회의니까 옷매무새도 갖추고 머리도 빗고 오고, 메모지에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봅시다. 10분의 여유를 줬다면 그 회의가 어떻게 되었을까?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바예쩨에서 야곱이 라반에게 얼마나 충성되고, 신실하게 씨를 심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창31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이 20년 동안 얼마나 신실하게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붙들고 선한 것을 보이기 위해서 전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감각에게 사기당하고, 속임당했다고 하지 않고 야곱은 이렇게 고백한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알지 못하였구나. 내가 진짜와는 관계할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감각에게 사기당하고 속임당하고 살아왔구나. 내가 못 받았고, 뺏겼고, 죽을지도 모르고, 유익이 안된다고 속으면서 살아왔구나. 나는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거라는 망상에 속아서 살아왔구나.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 감각이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때라고 야곱은 고백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자기 꾀를 못 박은, 주님이 속임과 사기라는 이름을 가진 야곱의 삶을 깨뜨리시고, 그곳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늙은 왕의 속임수로 스스로 속이면서 살아왔다. 우리 중에 누가 세나가 우리에게 민폐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을까? 너무나 많은 헌신과 오른팔로 우리를 섬겨왔는데, 스스로 늙은 왕의 속임수에 속임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감각으로 삶을 인식하고 살아왔다. 우리가 삶을 속여왔다. 감각으로 나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인식하고, 부분만을 인식하면서 죽지 않는데 죽을지도 모른다고, 충분한 사랑이 내 안에 있는데 너는 사랑받지 못하고, 너는 이게 필요하고, 못생기고, 찌질하고, 무능력하고, 할 수 없을거라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감각에 속아서 살아왔다
바예쩨의 감각의 사기로부터 나와서 힐링이 일어나기 바란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각의 어떠함으로 속아 살지 않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은 사닥다리의 비전을 보았다. 한걸음씩 올라가는 제자도의 비전을 본 것이다. 엘레베이터, 에스컬레이터도 아닌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사기당하는 것이 제자도이다. 한 걸음, 매일매일의 반복을 통해서 주님께 돌아갈 수 있는 제자도에서 사기당해왔다. 한방에 올라가고 싶어한다. 은사주의에 사기당해왔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한탕 주의에 사기당해왔다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임윤찬의 피아노곡을 많이 듣는데, 어느날 임윤찬의 스승님 손민수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고 목사님이 뭔가 극한, 절정을 찍는 위대한 사람들은 통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손민수 교수님의 스승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은 퀘스트와 같다. 등산가가 산을 오르는 것처럼 굉장히 고통의 순간과 힘든 과정이 있는데, 개의치 않고 매일매일 찾아나가는 과정이 음악의 과정이다. 하루는 손민수 교수님이 연습하다가 스승님과 통화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때로는 황홀경에 차서 연주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책임감 때문에 해야한다. 그랬더니 스승님이 아주 크게 호통을 치시더라. 음악의 영감이란 가만히 있는 자에게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어려운 길을 계속해서 찾아나갈 때, 그때 한 순간 영감이라는 것이 평생에 한두번 올까말까한 것이다.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아서, 아니면 음악이라는 것이 나를 저절로 끌고가서가 아니라, 떄로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찾아나가는 과정이 음악의 세계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동안 금방 얻기 원했는가? 사닥다리의 비전으로 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제일 사기치고 속여왔던 제자도를 오늘 우리 다시 한번 끌어안기 원한다. 매일매일 반복해서, 부단하고 지진하게 보이는 일상을 삶으로, 고통 가운데 내 욕망을 묶으면서 살면서 진짜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시고자 하는 진짜 선물과 선함을 보게 하소서. 진짜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창30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라헬은 고통받았다. 약속의 땅 직전에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다. 그런데 요셉을 낳다가 다른 아들을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했는데,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다. 다른 아들, 벤 아헤르, 메시아의 이름이다. 다니엘이 풀무불에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포장지 안의 예수 그리스도, 베냐민을 발견할 수 있는, 온맘을 다해 당신만을 추구하겠습니다. 벤 아헤르, 매일매일 예수 그리스도만을 추구하겠다고 할 때, 진정한 우리에게 기적의 빛이 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동안 정말 집단 사기단처럼 살아왔고, 속고 속이고 뺏고 뺏기는듯이 살아왔지만, 그것을 통해서 벤 아헤르, 다른 아들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진짜 나를 살고, 진짜 그분을 얻는 삶을 살기 원한다
온 맘 다해, 당신을 쫓아가겠습니다. 오직 다른 아들이신 그리스도만을 얻겠습니다. 죄의 매력은 그리스도의 매력에 취할 때 극복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을 어떻게 견뎌내는가? 벤 아헤르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견뎌낼 수 있다.
== 온 맘 다해 ==
* 기도
우리는 그동안 정말 사기꾼으로 살아왔습니다. 뺏기 위해서 내 유익을 계산했고, 뺏기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꾸역꾸역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속였고, 삶에게 속임당했다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사기꾼이 아닌 벤 아헤르, 따라가는 아들로 살겠나이다. 기꺼이 우리에게 속임당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당신만으로 충분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아들이 되고, 신부가 되겠습니다.
나는 모든 관계에서 얼마나 사기치며 살았는지,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 왔을 때, 내가 원치 않는 상대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제자, 아비의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며 얼마나 사기치며 상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 그 제자로 살겠습니다. 내가 사기친 이 제자도를 다시 찾아서 제자로 살겠습니다. 우리에게 죄의 덫에 빠지지 않게 지켜 줄 유일한 방법,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름다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 존재를 사기단으로 만들지 않고, 따라가는 아들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셔서, 토라를 주셔서, 마음껏 웃으며, 놀며, 이것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어서 나만의 세상에서 은밀하게 죄를 지으며, 나를 속이며, 진정한 나로, 제자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만드시고, 가장 큰 선물, 갚을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속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벤 아헤르를 얻으며 그 아들로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