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기 전에 미생물이 있고 벌레가 있고 하늘을 나는 크고 작은 새가 있고 땅 위를 닫는 동물이 있었으며 동물이 있기 전에 강과 바다가 있었다 대지가 있기 전에 암석이 있고 암석이 있기 전 펄펄 끓는 용암이 있고 용암이 있기 전에 뽀얀 먼지구름이 태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이 있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으니 시간과 더불어 공간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광활한 우주다 이 광활하고 복잡한 우주 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있었으니 첫째가 물이요 둘째가 대기다 물 없는 공간은 가치가 없고 산소 없는 대기는 숨이 막힌다
이 시간과 더불어 이 공간을 어느 누가 만들었을까 오늘날 성원사가 있기 이전에 아래로는 작은 대지가 받치고 있었고 위로는 궁륭한 하늘이 덮고 있었다 이 하늘과 대지 사이를 힘껏 벌린 뒤에 부처와 중생이 손잡고 함께 살아갈 아름다운 터전을 한 땀 한 땀 펼치니 첫째 이름이 선덕사善德寺요 둘째 이름이 성원사聖元寺다
오늘날 이 성원사를 만드는 데 앞장을 선 고덕高德이 계셨으니 상서 서瑞에 날 일日자 서일 스님이시고 이 서일 스님을 돕는 이들이 있었으니 음으로 양으로 언제 어디서나 오직 성원사를 사랑하는 불자들이다 서일 화상과 불자들의 만남을 놓고 볼 때 봉鳳과 황凰이 짝을 이룸이요 금琴과 슬瑟이 하모니를 이룸이며 난鸞과 봉鳳이 어우러져 추는 춤이다 장엄한 도량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서일 스님의 고향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이다 청주 한씨 상연 공公을 아버지로 하고 광산 김씨 필녀 당堂을 어머니로 하여 서기 1956년 음 9월 14일 묘시卯時에 고고지성을 울리니 서일 화상의 첫 모습이다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라고 하는 고대 여섯 가지 교과 과정 가운데 특히 예와 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출가하기 전에는 한학漢學을 배우며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깊이 새겼고 어려서부터 불심이 깊었던 스님은 출가의 꿈을 펼칠 곳을 찾아 문경 봉암사 허응 원행 스님을 은사로 통도사 청하 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고 출가 사문의 길을 걷는다 법주사 강원에서 사교를 이수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이태 동안 깊이 천착한다
그러던 중 1994년 가을이다 이곳 연봉정 선덕사에 잠시 왔다가 석장錫杖이나 걸어 두고자 했을 뿐인데 선덕사 당시 창건주이기도 했던 자상하신 비구니 묘련 노스님과 함께 신도들의 간곡한 청이 있어 더 깊은 인연으로 머물게 된다 서일 화상이 가진 것이라곤 단 하나 오로지 깊은 신심이요 보현보살의 원력을 닮았을 뿐이다
그로부터 첫 번째 천 일 동안 대비주 기도를 올리니 호사다마好事多魔요 다마호사多魔好事라고 했던가 좋은 일에는 마장이 많이 따르고 마장이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 했다 서일 스님은 기도하는 도중에 마장이 올 때면 매일 삼천배를 올리며 백일 용맹정진을 이어갔고 참회기도로 마장을 물리쳤다
서일 스님은 네 번의 천일기도를 통해 오늘날 부처님 도량을 가꾸었으니 시주들의 공덕이야 더없이 크겠지만 스님의 공덕도 결코 작은 게 아니다 그는 졸음이 올 때면 수마를 쫓기 위해 매일 양쪽 팔에 연비를 했으니 그래서 그의 팔뚝은 보고 있으면 달 표면의 크레이터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엄청난 원력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치악산 줄기에서 하늘이 참여한다는 천참산天參山 봉우리 그 아래 연꽃을 피워낸 듯싶은 더없이 포근한 곳 연봉정 이 연봉정에 세운 도량이 성원사다 성원사는 구석구석 서일 스님의 꼼꼼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으니 아름답다기보다 보현의 원력 도량이다
그러던 중 2019년 6월 16일(음5-14) 꼭두새벽에 대적광大寂光에 드시니 스님의 세수가 만 62세요 법납이 하마 30세라 삶 떠난 수행자에게 있어서 법납이 왜 필요하고 세수는 어디에 쓰려는가
새겨銘 가로되曰
곤丨이 곧 일一이요 일一이 곧 곤丨이다
치악稚岳은 표정이 없고 천참天參은 소리가 없는데 연봉정蓮峯頂 화사한 웃음소리에 성원사는 온통 꽃밭이 된다
서일 종사 대적광大寂光에 드시니 고요寂는 고요寥대로 숨고 광명光은 광명明대로 비춘다 어느 것이 이 종사의 모습이더뇨
검劍 끝을 향해 쏜 화살이 검 끝에 맞아 땅에 떨어지고 겨자를 향해 던진 바늘이 겨자와 서로 맞아 하늘로 솟는다
내 이제 서일 종사에게 묻노니 그대 진면목이 무엇이더뇨 까마귀는 그 빛이 검고 백로는 그 빛이 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