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도적인 의지를 바꿔서 악의 사이클을 파쇄하고 의의 사이클이 형성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한 가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앞에서 저는 다윗이 말한 '한 가지'가 전부이고 모든 좋은 것이 한 가지를 통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 더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은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의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것을 원하면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즉 일류가 되려면 한 가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에 관해 조목조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자기가 닦은 인격과 한 가지를 통해 형성된 인격은 차원이 다릅니다.
출애굽기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자기 힘으로 닦은 인격은 그냥 도덕적이고,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는 정도입니다. 사람 보기에만 바를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추구하면 죄를 이기고 순종하게 됨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됩니다.
고린도전서 15:40-41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한마디로, 자기 힘으로 인격을 닦은 자는 기껏해야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가 될 뿐이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은 성인들을 닮게 됩니다.
2) 머리가 좋고 공부 열심히 하고 연구를 통해서 얻은 지혜와 한 가지를 통해 주어진 지혜는 차원이 다릅니다.
잠언 28:5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사도행전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한 가지를 통해 얻는 지혜는 바울이 말한 대로 "세상의 ...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고전1:27) 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또, 한 가지를 추구하면 지혜뿐 아니라 계시가 주어집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져 비밀한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지혜는 혼만 만지고 영을 만지지 못하지만, 한 가지에서 나온 지혜는 영을 깊이 만지고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신자들이 계속 설교를 들어도 갈증을 느끼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목회자들이 한 가지에서 나오지 않은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맛이 없습니다. 갓 만든 따끈따끈한 음식이 맛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만든 지 오래된 책에 나오는 지식들에 의존하여 설교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중에 받은 막 쪄낸 찐빵과 같은 따끈따끈한 계시와 깨달음을 성도들에게 대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충족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처음으로' 이단시비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단정죄로 인해 받는 핍박과 불이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에서 나오는 지혜와 계시가 있다면 성도들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영적인 충족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슨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교회에 올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저는 우리 교회의 미래가 이단 누명을 벗는 것이 아니라 저와 동역자들이 한 가지를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 교회의 미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3) 은사를 사모하고 집회에 쫓아다니고 임파테이션 받아서 나타나는 능력과 한 가지를 통해 얻은 능력은 차원이 다릅니다.
은사를 원하고 집회에 쫓아다녀서 나타나는 능력은 대단해 보여도 최고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롬11:29). 하나님은 은사를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래서 주님은 은사가 아니라 열매로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과거에 릭 조이너는 그의 책들에서 기적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의 지적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인정하고 계시며 바른 상태에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와 다른 국면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바울이 행한 기적은 '사도의 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도 그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2-5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요한복음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즉 어떻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도 행할 수 있는 기적이 사도의 표와 심지어는 메시아의 표적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경우는 그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요소에 대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일으킨 기적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어서 즉 성령의 은사를 거두어가지 않아서 일어난 것인 반면, 예수님이나 바울이 행한 기적은 아버지를 깊이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산 결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함께하셔서 일어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음 두 구절을 비교해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미국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캘리포니아 레딩에 위치한 벧엘교회 빌 존슨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하게 정당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구체적인 사역의 내용은 간단하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는 것(4) ... 하나님은 이러한 사역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해주셨다. ... 이러한 은사는 하나님의 얼굴과의 만남이 흘러넘친 결과이다."
또한, "기적과 신유의 여종"이라 불리는 캐더린 쿨만은 『날마다 신유의 은사를 경험하라』라는 책에서 매우 의미 있는 고백을 했습니다.
"기적들
집회가 시작되기 전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권능에 사로잡힙니다. 강단에 올라설 때면 기름부으심이 내게 임합니다. 이런 일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성령이 움직이시는 것을 봅니다. 그가 고치십니다. 내가 아닙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실제로 내게 임하는 기름부으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에 의해 완전히 붙잡히게 됩니다. 실로 완전히 붙잡힙니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스무 시간은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예배하는 동안 나머지 네 시간에 기름부으심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기적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 안에서 성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기름부으심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기적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처럼 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적은 한 가지를 목적으로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한 삶을 산 결과입니다.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기적은 진실로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식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바로 이런 종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더 사모하고 열심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4) 부와 명예와 권세도 세상 방식으로 얻은 것과 아브라함이나 다윗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 세상에 살 때 좋은 것을 다 누려본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언 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그러므로 성공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비유 안에 두 명의 부자가 나옵니다. 한 명은 땅에서는 부자였으나 죽은 후 비참한 신세가 된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누가복음 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재벌 중 대다수가 이 부자의 뒤를 따랐습니다. 지금도 이건희 회장을 비롯하여 대다수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저는 그들이 부럽기는커녕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그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또 한 명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부자인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에서만 부자가 아니라 지금 하늘에서도 부자입니다.
누가복음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 구절의 아브라함에 대한 묘사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내세에서도 부자입니다.
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성이 어떤 성일까요? 바로 천성입니다. 문은 열두 진주요, 성벽은 각종 보석으로 되어 있고, 길바닥이 정금으로 되어 있는 성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늘에서도 영원히 부자입니다.
오늘날 교계에는 '기복신앙'이니 '번영신학'이니 하면서 부와 성공을 싸잡아 비난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 자체가 목적이라면 기복신앙 혹은 번영신학이라는 지적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은 결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한 가지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이 주는 복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복은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가련한 부자처럼 죽을 때 제로가 됩니다.
시편 49:16-17, 20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 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짐승 같은 사람]
전도서 5:13, 15-16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불행한 사람]
생각해보면, 인간은 제로로 태어나서 무언가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다가 힘들게 얻은 후, 늙고 병들어 죽어서 다시 제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참으로 인생무상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추구하는 자는 제로에서 시작해서 복을 받고 번영할 뿐 아니라 죽음도 그들이 받은 복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자기를 위하여' 땅에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눅12:21)가 아니라 주님 말씀을 따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마6:20)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이런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바와 같이, 무엇이든 최고의 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의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최고의 것들을 받은 사람들은 다윗처럼 한 가지를 추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류나 삼류로 생을 마치지 않고 일류가 되고 싶으면 다윗처럼 한 가지에 집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편, 제가 오래전 한 책에서 읽은 것인데, 어떤 청교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회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심이 그 사람에게 한 가지 소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회심하게 된다."
주도적인 의지로 하나님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원이 한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원이 한 가지가 되려면, 다윗이 말한 한 가지가 전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가지를 잡으면 모든 것을 얻고, 한 가지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에 집중할때만 차원이 다른 생명, 차원이 다른 인격, 차원이 다른 지혜, 차원이 다른 능력, 차원이 다른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꾸어 말해서 한 가지를 통해서만 진짜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후, 이 진리를 붙잡고 깊이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마음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주도적인 의지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