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감을 당한다’는 뜻의 ‘파라람바노(paralambano)’라는 헬라어가 있다. 요한복음 14장 3절의 ‘처소를 예비하면… 나 있는 곳에 너희를 영접하여’라고 할 때 ‘영접한다’는 말이나 마태복음 17장 1절의 ‘주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라고 할 때의 ‘데리시고’ 등에 쓰여진 말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사용한 ‘파라람바노’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의 때를 말하므로 휴거에 해당하는 말이다.
마태복음의 이 구절들은 도적이 어느 시에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 연결돼 있는데, 주님은 도적같이 오셔서 귀한 물건을 훔치러 오시는 분으로 비유돼 있다(마 24:43).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적을 맞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사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깊이 이해할 때 도적을 맞아야 축복이 된다. 진짜 강도라면 도적을 맞지 말아야겠지만, 여기서는 도적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도적을 맞아야 축복이 된다.
주님은 귀한 보물을 훔치러 오신 분이다. 그분은 깨어 기다리는 신실한 성도를 보물로 여겨 훔치실 것이다.
주님의 손에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주님의 것이 되기 위해 그분께 도적질 당하는 것은 해가 아니라 도리어 축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 땅에서 생명의 성장과 변화를 체험하지 않고 귀한 보물로 변화되어 있지 않다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훔치러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데려가고 훔쳐가시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휴거다.
생명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그분을 닮아가고 진정으로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킨다면 주님은 약속대로 그분의 말씀대로 시험의 때(대환난)를 면하게 하실 것이다(계 3:10, 눅 21:36). 그리고 하늘의 시온산인 보좌 앞으로 들어올리신다(계 14:1-5). 이것이 휴거이며, 사도 바울 같이 성숙한 사도는 이 땅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휴거의 소망을 강하게 피력했다(고후 5:2-4). 우리도 휴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때를 사는 성도들의 지혜이다.
목회실에서 박영민목사
출처 : 다음카페-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영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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