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부와 나 그리고 칸쿤
늙은 개와 70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하지않고 그저 경청하며 그 모임이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리는 편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로 강원도 평창에 있는 성 필립보생태마을 관장인 황창연 신부의 행복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수강생 ( 거의 60 - 70대 여성 천주교 신자들 인듯 ) 들에게 노후에 행복하기 위한 3가지를 특히 강조하는데 그 호응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첫때는 절대로 자식과 함께 살 생각 말고 둘째는 가진 돈은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생각은 꿈에도 하지말고 죽을 때까지 나를 위해 모두 쓰고 셋째로 죽을때는 장례비로 500만원 만 남기라는 것이었다. 누가 장례비로 500만원은 모자란다고 하자 부의금이 들어올테니 부의금 플러스 500이면 될것 이라고 해서 청중을 웃긴다. 나는 이 완고한 할머니, 햘아버지들이 전혀 싫증을 내지않고 강의에 열중하는, 그 신부의 강의 테크닉에 매료되었다. 아마 그 날 그의 강의를 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중 10프로 만이라도 늙으면 자식과 함께 살아야겠다던가 또는 죽어라하고 돈을 아껴서 자식에게 모두 물려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바꾼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60 - 70이 넘은 늙은이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일찍이 " 자식에게 유산 안 물려주기운동본부 " 본부장이던 손봉호 교수 ( 전 서울대 교수 ) 님의 뜻에 감화를 받아 그렇게 뜻을 굳힌 나에게 황신부의 강연은 지금도 나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이번 기회에 나도 나를 위해서 돈을 좀 써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써야햐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 때 우리 문협 회원 한 분이 따님 결혼식을 멕시코 칸쿤에서 올렸다는 내용과 함께 그곳의 야자수 우거진 해변과 어우러진 멋진 결혼식 사진을 카페에 올렸다. 그렇다! " 가자! 동해바다로! " 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평생 처음으로 순전히 나를 위한 여행 계획을 세운다. All Inclusive Cancun 7박 8일 ( 왕복 비행기, 숙소, 맛있는 식사에 모든 주류까지 포함된 칸쿤 여행 ) 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것 마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은 아니다. 집사람과 딸이 함께하니 말이다. 출발 당일은 9시 비행기에 맞춰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샌드위치 싸고 5시 30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니 하는 수 없었다. 우리 비행기 체크인 카운터는 이미 바글바글 했다. 비록 체크인은 늦었지만 우리 모두 넥서스 카드 소지자여서 보안 검색에서 그들을 따돌리고 1착으로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넥서스 카드가 미국 입국시에만 편리한 줄 알았는데 밴쿠버공항 출국시에도 효력을 발휘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하릴없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사들고 듀티프리 상점을 서성이며 시간을 죽였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일찍 예약하지 못한 죄로 우리 세 식구는 분산된 좌석을 배정 받았다. 꼼짝없이 내 자리에 콕 박혀 가야한다. 화장실 가는것도 힘들겠다. 대부분이 젊은이들 이었지만 가족을 동반한 우리같은 늙은이도 있었다. 이륙하고 한참 후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커피를 한 잔 시키니 4불 55 센트란다. 아니? 3년전에는 국내선도 커피는 공짜였는데 이건 그래도 명색이 국제선 아닌가. 커피 4불 55센트, 컵라면 6불 55센트. 이 비행기에서 공짜란 냉수 햔 잔 뿐이다. 와! 비행기 인심도 점점 야박해짐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그 맛없고 비싼 커피로 샌드위치를 뱃속에 우겨넣고 칸쿤의 열대 바다와 낭만에 대하여 상상하다보니 착륙준비를 하라고 한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양의 나라 멕시코 칸쿤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 멋진 곳에서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음식 호사를 누리며 젊은이들이 타는 카약이 하도 멋져보여 카약을 1시간 대여했으나 30분 만에 반납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바로 더위 먹고 ( 8월의 칸쿤은 정말 뜨거웠다 ), 식욕 떨어지고, 살 데이고, 허벅지 높이의 바닷물에서도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고는 제 때 일어나지 못해 아내와 딸의 부축임을 받고 겨우 일어서는 불상사(?) 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곳 밴쿠버로 돌아온 후에도 햔 동안 부부동반 모임 때 마다 아내가 나의 이 치부를 들춰내는 바람에 만인의 놀림감이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리 보다 앞서 칸쿤에 다녀온 여행 선배께서 그곳에 갈 때 컵라면 한 박스 가져가라고 했는데 라면이라면 질색인 집사람은 " 아니 그곳에 그렇게 먹을게 많다면서 웬 컵라면이냐? " 고 그들의 충고를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런데 사흘도 안돼 김치 생각이 나더니 4-5일이 지나니 아닌게 아니라 컵라면 생각이 간절했다. 호텔 매점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컵라면을 파는데 그 가격이 3불 50이다. 그것도 미국 달러로. 일단 그 리조트 구역에 들어서면 모두 호구다. 그곳에서 현지 쇼핑 몰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쪄랴 그걸 꼭 먹어야 속이 풀리겠으니. 이곳에서 캐나다 달러로 1불 20짜리를 세배를 더 주고 그걸 사 먹으려니 이 새가슴은 눈물이 나올려고 했다. 집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여행 선배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 고 하는데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어냈는지 알고 싶어졌다.
나도 제법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이번 여행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그 곳을 100% 즐기기는 커녕 그저 어리벙벙 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건 내가 스페인어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허기사 그 땅에서는 호텔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2주간 남미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말이 안 통해 먹는것도 제대로 못 찾아 먹고 고생만 싫것 하다 왔다고 했는데 이해가 간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여전히 음료수에 돈을 받는다. 그렇지. 같은 항공사인데 다르면 이상하렸다. 여전히 커피 4.55$, 컵라면 6.55$ 공짜는 냉수 한 잔 뿐. 그래도 잘들 사 먹는다. 우리는 미리 밖에서 사온 컵라면을 승무원 눈치 안보고 보란듯이 꺼내 뜨거운 물 ( 냉수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물이니 당연히 -꽁짜- 였다. ) 을 청해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마치 너희가 기내에서 파는 커피와 라면이 너무 비싸서 그렇다고 데모 하듯이. 승무원들이 이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런데 그 비행기 안이 내가 느끼기에 너무 서늘하더니 급기야 이곳에 도착해서 바로 감기가 와서 1주일을 거의 격리된 상태로 지냈다. 너무 더운데서 지내다 갑자기 서늘 한 곳에 들어서니 몸이 제 때 적응을 못하는 나이가 되었는가 보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한 열흘 정도 더 지나니 다시 그곳 생각이 났다. 뜨거운 태양, 새파란 하늘, 멀리 보이는 수평선, 푸른 바다에 흰 가로선을 그으며 밀려드는 파도, 하얀 모래사장, 카약....... 그리고 비행기에서 먹던 컵라면까지. 참 사람의 마음이란. 재력만 뒷받침 된다면 내년 1 - 2월 경에 또 가고 싶다. 그러다 " 스님이 고기맛을 보면 절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 " 라는 말이 생각나서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첫댓글 소교님,
- 2월 조선일보 원고입니다.
건강하세요.
황창연 신부와 나/ 칸쿤 기행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단숨에 읽히는 수필... 중요하죠.
- 열대 햇볕을 우습게 알았다가 목 뒤, 양 어께에 약간의 화상을 입었었습니다.
- 옆 자리의 영국인 부부가 차양을 치지 말자고 해서 그냥 햇볕 노출 하룻만에.
-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이튿날 또 그자리에서 여전히 햇볕을 즐기는걸 보니 벡인들은 피부가 우리 보다 2배는 두꺼운듯. 아니면 피부가 하얘서 햇빛 반사가 잘 되서 그런지......
- 아무튼 재미 있었습니다. 감시힙니다.
- 감시힙니다. 가 아닌 감사합니다. 로 정정 합니다.
다음 주(2/9)조선일보에 발표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썬 블록 로션을 떡같이 발라도 타는데 ...ㅠ
해변이 아름다운 곳, 한참 전에 다녀 왔는데 또 가고 싶어요.
근데, 저는 하와이가 더 좋아서 몇 번 다녀 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 소교님, 감사합니다.
- 이사장님과 소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병원장님께서 멋져서 별장을 사놓고도 제대로 즐기기 보다 일년에 한 두번 잔디깍고 청소하느라 고생이라고...
온타리오 토론토 근교에는 샘물이 솟아 생긴 호수가 15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호수 둘레마다 카티지 무수한데, 좋은 곳은 미국 부호나 유명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다 알듯이 한달에 한번 연휴가 있어 연차 하루 쓰고, 전날 오후 세시 퇴근해서 별장으로 향하면 휴가나 마찬가지고
대대로 즐겨 온 매월의 이벤트가 정형화 되어 함께 하는 가족, 친지들에게는 한달 내내 설레는 삶이 된다.
우리는 술판, 고스톱, 가라오케가 주 문화지만
카누, 수영, 수상스키, 달리기, 저전거, 근처 문화 탐방, 독서...
즐길거리 스케쥴이 빡빡하다.
별장을 가지고 있는 부모나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맙고,
함께 할 가족 친척들이 얼마나 정겹고 우애가 깊어질까?
아이들은 4촌, 6촌들끼리 SNS 로 다음 연휴에 모여 함께 할 놀이를 기획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이런 캐내디언들의 문화를 보면,
4대가 한 집에 살고, 근처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산 어린 시절을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우리 문화를 잘 챙기면 행복한 노년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싶습니다.
그신부님 오래전 부터 그 강연을 하시는데, 가뜩이나 시부모 모시기 꺼리고 핵가족화 되어 6-8촌은 아예 모르고, 사촌도 몇년에 한 보기도 힘들어지는 세상에 기름붇는 격이라 방법론일 수도 있고 생각의 자유는 있지만 못하면 바보라며 후회하지 말라고 까지는 ...
직업상 출장이 많고, 출장이라 거짓말 하고 역사찾으러 간다고 가족들 두고 친척들 경조사에는 거의 못다녀
친구들과 동해안에 콘도를 사서 어쩌다 한번씩 가족. 어른들 모시고 가면 그렇게 좋아 하시데요.
저희가 못 모시고 가면 다른 형제나 처남이 양가 어른들모시고 가면 친해지고 격의없이 함께 하게...
캐내디언 중산층들은 오히려 저희보다 대가족 주의고 사돈들과의 벽이나 차별이 정말 없는 문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민자들은 4대쯤 지나야 이런 문화가 일상될 기반과 학습이 끝난다고 본답니다.
이제 캐나다에 뼈묻을 우리는 캐나다 문화를 우리 정서에 맞춰 행복한 일상과 노년을 잘 생각해야 우리 증손이나 고손들 부터는 캐내디언들 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삶과 노년을 행복하게 맞을 수 있지 싶습니다.
정선배님 여행기 반대가 아니라 가족 친척들과 더불어 행복한 노년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 맞는 말씀입니다.
- 아마 그 신부님은 일찍 자식에게 재산 물려줬다가 후에 고생하는 노인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 강연을 하는 모양입니다.
- 과문인지 모르지만 이곳은 한국처럼 그렇게 고부갈등도 심하지는 않는듯 합니다.
좋은 점은 며느리와 친구, 딸같은데
심각한 집은 결혼할때 시어머니를 초청 않기도 한다는데
보편적으로는 양가가 한가족처럼 지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제가 이민해서 처음 감동한 것은 결혼 얼마 안남은 며느리감에게 마라톤 첫 완주를 돕기위해 동반주를 하며 응원하던 시어머니 자리 모델급 중년 여성
4시간 반을 함께 뛰며 캐나다가 다 이럴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
그런데 얼마 후 일간 신문 상담코너에 젊은 처자가 결혼을 곧 해야하는데, 시가에 다 좋은데 시모자리와는 도저히 ....
상담 전문가가 결혼식에 초청은 말고 신혼여행 다녀 오면 양쪽 모두 생각이 많이 달라질테니 가혹해도 그렇게 해서라도 서로 이해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는 길을 모색하라고 하데요.
개성을 존중받으며 살아 온 환경 때문인지 실제 의외로 그런 일이 많고 잘 해결해 멋진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부부간 개인적 성격 차이로 이혼이 많은데도 전남편, 전 부인의 현 가족들과도 하하호호 하는 것을 보면 저같은 사람은 이해불가죠.
온타리오는 토론토 2시간 이내에 유명 카티지 촌이 많아 은퇴 전후로 이사를 가는 추세
겨울엔 중남미의 휴양지 주택을 빌려 살면 생할비용 보다 오히려 싸서 추수감사절 쯤 가서 부활절쯤 돌아 오는 사람들이 많아 가족들을 그곳으로 초청하거나 일정을 나눈다고...
무슨 버드족이라는 신조어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