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사과꽃에 대한 경배
김건화
갓 눈 뜬 뱀의 눈꺼풀을 덮어준 사과꽃
비틀린 겨드랑이 더 굵은 열매 열리라고
가려운 사과나무 등 긁어 준 것은
발 없는 뱀의 차가운 뱃가죽이다
나무를 키운 것은 땅이 분명한데
꽃을 피운 것은 햇살이라고
서로의 공을 내 세우는 사과밭
한 여자의 생장점을 자르고부텨
더 실한 사과를 기다리는 당신
흠집 많은 게 더 달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사각사각 싱싱함만 베어문다
가까스로 중력의 무게 견뎌낸
함부로 따먹지 말아야 할 금기인, 풋사과
나면서부터 사과 맛을 아는 당신은
거침없이 앞니를 들이민다
한 번의 실족으로 추락하는 사과
끊임없는 벌과 나비의 성업으로
욕망이 빚어낸 은유 사이에서
지구의 뇌관처럼 붉게 익는 사과
검은 씨앗은 언 땅에서도 발아하고
우주의 배꼽에 위태롭게 매달려
탯줄이 잘리자마자 떨어져 저려 밟히는
지는 사과꽃은 생명의 시작이다
김건화
2016년 『시와경계』 등단
시집 『손톱의 진화 』 『발랄한 거짓말 』
-《시산맥》 2024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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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여름호 지는 사과꽃에 대한 경배 / 김건화
혜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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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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