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3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캄보디아 따아옥소명교회 헌당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 받아주시고 저들의 수고 또한 기억하여 주옵소서.
하오나 눈에 보이는 건물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내 속에서 꿈틀대는 ‘하나님처럼’이라는 나의 義가 어찌나 드러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를 성경은 악인이라 하였습니다.
마치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은 자입니다(사 57:20).
이러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자기부인과 함께 오직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하루도 주의 은혜 안에서 주의 품에 머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11:17-31
제목 : 영원에 속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한 요셉.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 나의 묵상
본문 17-22절은 족장들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을, 23-31절은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라합의 믿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이삭을 믿음으로 제물로 드렸다.
왜냐하면 이삭을 통해서 약속하신 자손이 나온다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비록 이삭이 죽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은 것이다.
그 믿음의 결과 아브라함은 결국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이삭을 다시 받게 되었다(19절).
믿음으로 이삭은 아직 보지 못하는 일, 곧 야곱과 에서의 앞날을 축복하였다.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믿음으로 요셉은 장차 있을 일인 출애굽에 대해서 미리 말하고 자기 뼈를 가나안으로 가져갈 것을 명하였다(22절).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났을 때 아기를 죽이라는 바로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숨겼다.
믿음으로 모세는 성장하여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크고 나은 소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었으며 이 고난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을 떠나되 바로 왕의 분노를 무서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믿음으로 모세는 유월절을 준비하고 문설주에 피를 발라 장자들의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가다가 빠져죽고 말았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 주위를 7일 동안 돌자 그 성이 무너졌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잘 영접하여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죽임 당할 때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
본문에 열거된 믿음의 사람들은 단순히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그 믿음의 증거를 보인 이들이 아니다.
이들이 만약 땅의 것을 소망하고 바라보았다면 이 땅에서 훨씬 더 큰 부요와 권세를 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땅의 것은 결국 쇠락의 법칙에 의하여 썩어지고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아는 이들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하였다.
그 나라는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음을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참으며 그 나라를 바라본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육신으로는 죽었으나 죽은 것이 아니요 지금도 하나님 앞에 살아서 그 믿음을 증거하고 있다.
(히 11:4b)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오늘은 이 믿음의 사람들 중에 특별히 요셉을 살펴보려고 한다.
요셉은 그의 나이 17세에 형들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이스마엘 대상들에게 은 20에 팔린다.
요셉을 돈 주고 산 이스마엘 대상은 요셉을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판다.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팔려온 요셉은 그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한다.
이는 보디발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한 것이다.
그가 만약 보디발 앞에서 충성을 하였다면 잠깐 잠깐 보디발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눈속임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믿음을 보였기에 속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속이지 않고 신실하게 그의 충성을 보였던 것이다.
요셉은 비록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의 삶을 사는 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형통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형통임을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한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것이 그에게는 역으로 작용하여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그에게는 이런 일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들어온 바로의 관원장 두 사람의 꿈을 해몽해 주면서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날 것을 말하고 그에게 청탁을 한다.
당신이 3일 후에 풀려나 바로 앞에 복직이 되거든 바로에게 내 이야기를 해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창 40: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요셉의 해몽대로 3일 만에 풀려난 술 맡은 관원장은 석방이 되지만 이내 요셉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것도 2년 동안이나 말이다.
(창 40:23-41:1)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만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이 쯤 되면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할 법도 한데 원망은커녕 감옥에서 2년 동안이나 잠잠히 억울하게 갇혀 지낸다.
그러다가 만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는데 애굽 전역에 그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 낸다.
하나님의 때는 정말 절묘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도 바로 하나님의 때에 보내셨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요셉 역시 자기가 원하는 때에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풀려나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하신다.
그 결과 요셉은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리게 되며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위기를 하나님의 지혜로 잘 감당하게 된다.
바로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땅의 약속 곧 너에게 땅을 주겠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긴 후에 약속의 땅을 주겠노라는 말씀을 이루는 단초가 된다.
(창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요셉은 애굽 땅에서 총리가 되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리에 수행하여 당시 바로 왕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결코 자신의 권세를 높이거나 교만하게 군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그의 형들이나 자녀들 그리고 조카들에게 유언을 한다.
그 유언의 내용이 오늘 히브리서에 나온 단 한 절의 말씀이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110세에 죽을 때까지 그가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서 그의 믿음을 단 한 줄로 묘사한다.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의 유언인 이 말씀의 내용이 창세기 50장에 기록되어 있다.
히 11:22절에 나온 내용과 같이 요셉은 딱 두 가지 유언을 한다.
하나는 당신들이 출애굽 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죽어 땅에 장사될 것이지만 그 해골을 메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말이었다.
(창 50:24-25)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무려 100년 가까이 애굽에서 살았다.
온갖 고난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가 행했던 믿음의 일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성경은 그 어떤 믿음의 행위보다도 그가 죽기 전에 했던 그 말이 진정 믿음의 행위였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증거가 도대체 어떠하기에 성경은 단 한 줄로 묘사된 그의 이 두 가지 유언을 최고의 믿음의 행위로 꼽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출애굽을 미리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가 죽고 나서도 출애굽은 300년 이 넘게 남아 있었다.
어쩌면 출애굽은 요원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고 선포한 것이다.
이제 겨우 입애굽을 성취했는데 그의 믿음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출애굽을 미리 바라보았다는데 그 핵심이 있다.
또 한 가지는 그가 죽을지라도 그의 해골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유언이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 이런 유언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내가 죽거들랑 내 고향 땅에 묻어다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귀소본능이 있어서 죽어서라도 자기 고향에 묻히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만약 요셉이 이런 사람들과 같이 자기의 고향인 가나안에 뼈를 묻어달라고 했다면 그것은 전혀 믿음의 행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셉의 유언을 믿음의 행위로 인정하며 히브리서 믿음장에 기록을 하였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 그 안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육신의 고향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아니다.
그것은 곧 약속의 땅이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정도로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약속으로 받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나라를 소망한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왔고 그 믿음의 고백이 다름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1절 말씀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셉은 그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나는 믿음을 오해하였고 예수를 믿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으면 그것을 받는 것으로 알았다.
또한 요셉에 대한 말씀을 고생하다 출세하는 소위 입신양명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결코 그런 땅의 것을 추구하는 말씀이 아니었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사는 자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면 그때까지 경험한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행동하심으로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고 그들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요셉처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되고 거룩함을 따르게 된다.
결국 요셉을 통해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오해하고 나 중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나의 믿음 없음을 이 시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오늘도 주의 언약 백성 됨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구약 성경을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알고 재미로 읽었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은 결코 단층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세상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수가성 여인에게 주셨던 영생으로 인도하는 샘물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임을 믿사오니 오늘도 이 생명의 말씀 영생으로 인도하는 샘물을 허락하시어 이 말씀이 내게 영생수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우리도 이 믿음의 반열에 들게 하옵소서.
주님의 그 은혜의 말씀 앞에 반응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