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唐詩意圖비교 연구 –16-19세기 왕유, 두보 시의도를 중심으로- 조인희 Ⅰ. 서론 * 이 논문은 201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논문요약> 본 논의는 16-19세기 동아시아 3국에서 동일한 화제로 그렸던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 비교를 통해 양상과 특징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작품에 내재된 공통 인식과 표현의 독창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 한자 문화의 영향권에 있던 조선 후기와 에도시대는 시화일률이란 문예적 지향, 왕유와 두보 작품의 문학적 탁월성과 시가 지닌 회화성, 시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에 긍정적 인식을 같이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왕유의『망천집』의 일련의 시들과 「종남별업」, 「종남산」두보의 「南隣」, 「秋興八首」, 「飮中八仙歌」, 「登高」, 「春夜喜雨」등의 詩句가 공통의 시의도 화제가 되었다.
명청대 화가들은 화면 가득 경물을 배치하는 치밀한 필법으로 시 내용의 배경이 되는 산수 표현에 보다 적극적임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화가들의 보다 간략한 필선으로 시의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시의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개자원화전』 등 화보의 화면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중국의 시의도와는 다른 화면을 보이고 있다. 또한 화제의 詩意표현에 인물을 자세, 동작 등을 강조하며 산수표현보다 중시한 경향을 보인다. 에도시대 시의도의 경우 일부 漢學派를 중심으로 그려졌고 중국화보에 소개된 준법을 사용해 경물을 유기적으
반면 에도시대 화가들에게 왕유 시의도와 두보시의도는 중국문화에 대한 선호의 대상으로 인지되며 시도되었다. 문인계급의 부재라는 사회적 특성은 당시의도의 제작을 적극화하는데 쉽지 않았고 시를 그린다는 형식적인 면을 자국화해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 화면에 옮기는 하이가(俳畵)의 발달로 이어진 특성을 보인다. 주제어: 동아시아 문화, 한자문화권, 詩畵一律, 詩意圖, 王維, 杜甫, 明淸時代, 中國畵譜 Ⅰ. 서론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詩書畵三絶, 詩畵一律論등의 예술적 지향을 공감한다. 특히 회화 영역에서는 形似보다는 寫意를 중시하는 인식으로 사실성을 중시하는 서양과는 다른 美感으로 문인화를 발전시켰다. 회화가 시대적 美感과 물질적 조건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문화 산물임을 감안 할 때 한자 문화권의 한중일 3국은 공통된 회화권을 형성하며 이면의 독창성을 발현한다는 의미를갖는다.1) 이러한 특징은 문학과 회화의 긴밀한 친연성이 중시되는 3국의 詩意圖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의도는 시인의 詩情을 화가의 畵意로 이루어낸 회화로 寫意를 중시하는 독특한 회화 영역이다.2) 특히 시의도의 화제가 된 唐詩는 자연과 계절에 대한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언어 구사 등으로 많은 문인들에 회자되었고, 특히 唐詩의 繪畫性은 한중일의 많은 화가들의 붓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화폭에 옮겨졌다. 이러한 문화적 공감대에서 동아시아 3국의 唐詩意圖비교를 통해 작품에 내재된 공통 인식과 차별화된 표현의 독창성을 밝히는 것이 본 논의의 주된 목적이다.
1) 회화권역에 대한 논의는 이동주, 『韓國繪畵小史』, 범우사,1996. pp.13-18. 4) 紺野達也, 「王維『輞川集』と「輞川圖」の唐宋期ににおける評價の變遷」, 『日本中國學會報』 61집,日本中國學會,2009;이병주, 『詩聖杜甫』,대현각, 1982; 이영주 외, 『두보의 삶과 문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전영란, 『杜甫, 忍苦의 詩史』,태학사, 2000 ;蔡鎭楚, 「中國詩話與杜甫崇拜」, 『중국학보』31권,한국중국학회,1991,pp.127-132;王曉蓉, 「明末淸初的杜甫詩意圖硏究」, 上海大學校美術學碩士學位論文, 2010. Ⅱ. 한·중 ·일 당시의도의 제작과 유형
시의도의 연원은 중국 東漢桓帝(147-167) 때 『詩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6) 이후 중국에서의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에 대한 언급은 宋代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郭熙(생몰년 미상, 11세기 활동), 郭思(생몰년 미상, 12세기 활동) 父子가 엮은 『林泉高致』에는 “여가가 생기면 晉,唐의 고금 시를 읽고 그중 사람의 내면을 잘 드러낸 것을 눈앞의 경치로 그렸다”는 내용과 함께 16편의 시를 열거해 놓았다.7) 이중 왕유의 「終南別業」중 한 구절인 “가다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 이는 그때를 바라본다(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라는 구절과 두보의 「客至」의 “집의 남쪽 북쪽 온통 봄물결인데/보이는건 날마다 떼 지어 날아드는 갈가마귀 떼(舍南舍北皆春水 但見群鷗日日來)”구절, 「野望」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과 더불어 맑고/외딴 성은 안개에 숨어 깊다(遠水兼天淨 孤城隱霧深)”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왕유, 두보 시에 대한 회화 표현의 적극성을 알 수 있다.
특히 杜詩의 문학성은 宋代에 문학의 典範으로 자리잡았고 이어 ‘사대부의 표상’으로 세워진 두보의 위상은 끊임없이 후대로 이어져 명청대 문인화가들의 화폭을 풍성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11) 명청대의 화가인 謝時臣(1487-?), 周臣(1460-1535), 唐寅, 文嘉(1501-1583), 盛茂燁(1575경- 1640), 陸治(1496-1576), 文伯仁(1502-1575), 董其昌, 宋懋晉(?-1620), 項聖謨(1597-1658), 張路(1464-1538),尤求(16세기 활동, 생몰년미상), 李士達(1550-1620), 杜菫(15-16세기), 張翀(16세기 활동, 생몰년 미상), 陳洪綬(1599-1652), 王翬(1632-1717), 錢杜(1764-1845),王時敏(1592-1680), 石濤(1642-1707)등 다수의 화가들이 왕유와 두보 시의도를 남기고 있다. 6) 서은숙, 「蘇軾題畵詩硏究- 회화론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2004.pp.95-96. 10) 유순영, 「李白의 미이지 유형과 이백 문학의 회화」, 『미술사학연구』 274, 한국미술사학회,2012). p.131. 도 1 理宗글씨, 馬麟그림 <좌간운기도>, 견본수묵, 25.1 ×25.0cm, 1256년,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馬麟그림 <좌간운기도>坐看雲起圖
도 2 조규, <두보시의도>, 견본수묵, 24.7×212.2cm, 상해박물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시와 회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왕유 시를 그린 시의도 관련된 기록과 작품은 조선 중기부터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왕유의 『輞川集』이나 혹은 중국에서 전래된 망천도를 통해 익힌 ‘망천’은 조선인들에게 중국의 실경, 이상향 등으로 인식되며 회화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13) 또한 중국의 朱之蕃이 조선에 전래하여 국내 화가들에 의해 여러 편으로 임모된 《천고최성첩》중 왕유의 「桃源行」를 화제로 한 작품이 있어 왕유 시를 그린 그림은 이미 조선 중기에는 세간에 알려진 것으로 본다.14) 이후 조선후기에 이르면 왕유의 은거 생활에 지어진 『망천집』중 일련의 시와 「終南山」, 「終南別業」, 「積雨輞川莊作」, 「田園樂」등의 시와 陶淵明(365-427)의 「桃花源記」를 재해석한 「桃源行」을 화제로 한 시의도가 그려져 조선 문인들의 隱居의 지향, 이상향에 대한 동경 등을 대변하게 된다. 두보의 시를 그린 내용은 조선 초의 문헌기록에 보인다. 조선초기 문신 朴彭年(1417-1456)의 『朴先生遺稿』 중 「三絶詩序」에 따르면 安平大君(李瑢, 1418-1453)은 安堅(15세기 활동, 생몰년 미상)에게 두보의 시를 화제로 <李司馬山水圖>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15) 조선 중기 許筠(1569-1618)의 기록 중 화원 李澄에게 임모하게 한《천고최성첩》의 수록 작품 중, 두보의 시 「악양루」를 그린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16) 金尙憲(1570-1652)의 『淸陰集』 중 「題尹洗馬敬之飮中八仙圖」가 실려 있어 두보의 「음중팔선가」또한 시의도로 그려져 완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두보의 시 중 25편 가량이 화제가 되어 조선후기 시의도 화제로서 가장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17) 화제가 된 두보의 시는 「南隣」, 「秋興八首」, 「飮中八仙歌」, 「春夜喜雨」, 「小寒食舟中作」, 「草堂卽事」등 다양하다. 이상의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는 尹斗緖(1668-1715), 姜世晃(1713-1791), 李麟祥(1710-1760), 鄭敾(1676-1759),崔北(1712-1786?), 沈師正(1707-1769), 李昉運(1761-1815이후), 金弘道(1745-1806이후), 李寅文(1745-1824이후) 등 문인 사대부, 화원 등 화가 신분을 망라하고 다양한 계층에서 다수 그려져 조선인들의 화제에 대한 선호를 알 수 있다. 12) 이명한, 『白洲集』 권16, 「稧屛後跋」참조. 15)안휘준, 「安堅과 그의 畵風- 夢遊桃源圖를 중심으로」, 『한국회화사연구』, 시공사,2000.pp.352-353. 文人계층이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에서 唐詩를 화제로 한 회화 기록과 작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寫意를 중시하며 詩情을 화면에 펼치는 시의도를 문인화로 인지하고 논의하는 중국과 조선의 기준으로 일본의 시의도, 문인화를 동일시하기에는 적지 않은 기준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한계도 있다.18) 일본에서 문학과 회화가 결합한 이른 예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9-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귀족들의 주거 공간에 쓰이던 내실 미닫이문(障子)그림과 병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당시 화가들은 미닫이문 그림과 병풍에 중국의 시를 화제로 그리거나 古典의 내용을 그리고 관련 문구를 적었다. 중국의 어떤 시가 화제로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또한 남종문인화의 교과서 역할을 하는 중국 화보집 『개자원화전』이 1748년 일본에서 출판되어 남화 화풍의 정착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8) 한중일 문인화의 개념에 관한 논의는 한정희, 「문인화의 개념과 한국의 문인화」, 『미술사논단』제4권, 한국미술연구소, 1996; 신나경, 「일본의 문인화개념과 요사부손(與謝蕪村)의 예술개념」, 『동양예술』제14호, 한국동양예술학회, 2009. pp.230-235. 19) 아키야마테루카즈 지음 이성미 옮김, 『일본회화사』, 예경, 2004. p.83. 2. 화제에 따른 시의도의 유형 현재 국내에 전해지는 조선시대 시의도는 唐詩를 화제로 한 것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두보와 왕유의 시를 화제로 한 것이 다수이다. 이를 기준으로 이 장에서는 한중일 3국에서 왕유, 두보의 시 중 동일한 시를 그린 당시의도의 구체적인 작품을 알아보고, 화면 표현과 특성 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왕유는 종남산의 망천 자락에 宋之問(660-712)의 藍田別墅를 얻어 살며 친구 裵迪과 함께 배를 타고 망천 주변을 돌며 20곳을 완상하고 시를 지어 『망천집』을 엮었다. 또한 왕유는 망천 주변의 경관을 그린 <망천도>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왕유의 <망천도>는 현재 전하지 않으나 이를 임모해 그린 것으로 알려진 북송대 郭忠恕(약 910-977) 의 <임왕유망천도>(도 3)를 통해 그 실제를 추정할 수 있다. 전칭작을 포함한다면 이어 李公麟(1049-1106)등 후대 작가들은 곽충서의 임모본을 기본으로 <망천도권>을 임모한 것으로 보인다.22) 明代의 仇英(1494?-1552)은 <망천십경도>를 그렸고, 1617년 郭世元(1573-1620)은 곽충서의 임모본을 모사해 석각한 <망천도권>(도 4)을 남기고 있다. 이중 곽세원의 작품과 명대 仇英(16세기 활동)이 10경만을 추려서 그린 것은 조선 후기 화가인 이방운이 그린 《망천십경도》(도 5)의 화면 표현의 연원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23) 이방운의 《망천십경도》는 기존에 왕유가 그렸다는 <망천도> 임모본을 모본으로 하여『망천집』에 실린 시를 그리는데 화면으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도식화된 ‘망천’주변의 장소, 산수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 이러한 이방운의 인식은 왕유의 시 「積雨輞川莊作」을 그린 시의도 <夏景山水圖>(도 6)에서도 확인된다. 중국 명청대의 <망천도>류가『망천집』의 시 내용과는 별개로 임모본을 다시 임모하며 실경 산수도로 그려졌다면, 이방운은 왕유의 『망천집』에 실린 일련의 시들을 화제로 <망천십경도>를 그렸고 이때 화면 표현은 21) ‘桃源’이란 이상향을 읊은 왕유의 「도원행」은 陶潛의 「桃花源記」를 재해석한 것으로 두 작품은 문학적으로 내용상 거의 동일하게 취급된다. 특히 도원을 이상향으로 그린 일련의 <도원도>는 특히 명대 이후 강남지역에서 널리 그려졌다.(한정희,앞의 논문,p.212.) “장맛비 빈 숲에 연기 피어오르더니/ 명아주짜고 기장 밥 지어 동쪽 밭으로 내어간다/ 아득한 논에 백로가 날고/ 그늘 짙은 여름 숲에는 꾀고리가 지저귄다/ 산속에 좌정하여 아침 무궁화를 관조하고/ 소나무밑 맑은 집에서 아욱을 먹고 산다 (積雨空林烟火遲 蒸藜炊黍餉東菑 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鸚 山中習靜觀朝槿 松下淸齋折露葵)”
도 3 곽충서, 宋代郭忠恕 <임왕유망천도> (부분), 견본채색, 33.4×487.7cm, 美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明代仇英绘《辋川十景图》局部 도 4 곽세원, <망천도권> (부분), 석각, 美프린스톤대박물관 이방운, 《망천십경도》중 남타 이방운, 《망천십경도》중 죽리관 도 5 이방운, 《망천십경도》중 <남타>(상)와 <죽리관>(하), 지본담채, 각 27.3×30.5cm,홍익대박물관 도 6 이방운, <하경산수도>,지본담채, 107.3×54.5cm,고려대박물관 도 7. 沈師正, <山水圖>, 견본담채,20.6×14.8cm,국립중앙박물관 반면 『망천집』에 실린 시 「죽리관」만은 이를 화제로 하는 한중일 3국의 시의도 표현에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항성모의 《王維詩意圖冊》중 <죽리관>(도 8), 김홍도의 <죽리탄금도>(도 9), 이케노다이가 <죽리관도> (도 10)는 왕유의 시 「죽리관」의 全文, 혹은 일부 시구를 화제로 한 시의도이다. 항성모의 작품은 왕유의 시만을 그린 화첩의 마지막 면에 실린 것으로 “그윽한 대숲에 홀로 앉아 거문고 타고 휘파람 분다(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라는 구절을 화제로 적고 있다. 항성모는 인물 표현을 하지 않고 대나무 울타리와 주변의 나무를 통해 詩意를 표현하고 있다. 이같이 인물이 배제된 화면 표현은 화첩에 실린 다른 작품과도 유사한 특징으로 항성모는 화제로 한 시구의 표현에 인물의 행위보다는 산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시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케노다이가의 <죽리관도> 역시 「죽리관」의 전문을 화제로 한 시의도이다. 간일한 필체로 그려진 이케노다이가의 시의도는 화면 상단에 성근 대나무를 넓게 그려 대나무 숲을 표현하고 대나무 숲 앞에서 탄금하는 인물을 표현하였다.25) 탄금하는 인물의 악기가 넓은 바위 위에 얹혀진 것, 주변에 괴석을 묘사한 것이 이채롭다. 이케노다이가의 <죽리관도> 前面에는 차를 달이는 시동이 표현되었는데 이같은 표현은 김홍도의 <죽리탄금도>중 대숲 뒤에 묘사된 시동의 표현과 연관된다. 중국의 <망천도권>이나 이방운의 <망천십경도>에서의 죽리관이 대나무 숲에 있는 건물이 강조된 반면 김홍도와 이케노다이가의 <죽리관>은 詩의 내용에 부합하듯 대숲에서 탄금하는 인물에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화면의 변화는 중국에서 출간되어 전해 진 『당시화보』에 실린 <죽리관>(도 11)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25) 鄭麗芸, 「文人の詩畵表現-王維「竹里館」詩意圖をめぐって-」, 『鹿島美術硏究』 第17號 別冊, 鹿島美術財團, 2000. pp.59-72. 도 8 항성모, 《왕유시의도책》중 <죽리관>,1629년, 지본수묵, 28×29.7cm, 北京故宮博物院 도9. 金弘道, <竹里彈琴圖>, 김홍도, <죽리탄금도>, 지본수묵, 22.4×54.6cm,고려대박물관 도 10 이케노다이가 <죽리관도>, 지본담채, 116.1×29.2cm, 日出光美術館 도 11 『당시화보』중 왕유의 <죽리관> 시의도가 제작되었다. 반면 명대의 전공을 비롯하여 조선후기의 정선, 김홍도, 이인문 둥근 선면에 그려진 마린의 시의도는 馬夏派양식의 변각구도에 산위에 올라 앉아 자연을 관조하는 인물의 뒷모습을 그려 隱者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27) 이같이 구름을 바라보는 단독 인물의 표현은 성무의 <좌간운기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무는 마린이 여백으로 표현한 구름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인 형상으로 제시했을 뿐 물길이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인물의 묘사는 동일하다. 화첩의 형태로 제작된 조선후기의 윤두서의 <좌간운기시> 역시 화제로 택한 구절 중 “흥이 나면 자주 홀로 오가며”라는 시구의 시의표현과 무관하지 않은 듯 앉아 있는 단일 인물의 화면으로 시의도가 제작되었다. 반면 명대의 전공을 비롯하여 조선후기의 정선, 김홍도, 이인문 에도시대의 이케노다이가의 인물 표현은 2인 이상으로 변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첫째는 화가들이 왕유의 「종남별업」전문을 인식하고 “어쩌다가 산에 사는 늙은이를 만나면 이야기를 즐기다가 둘째는 1679년 발간된 『개자원화전』의 <인물옥우보>에 실린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시구를 표현하며 예시한 도상이 두 명의 인물이 담소하는 모습(도 17)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원만한 산세에 채색, 먹의 농담으로 산수와 바위 등의 원근감과 입체감을 나타냈고 『개자원화전』 중에 수록된 荊浩(910-950경),關仝(907-960)의 雜樹畵法과 胡椒點으로 전경의 나무를 표현했다. 화면 중앙에 시동을 거느린 인물과 약초를 캐는 인물과의 대화 장면은 「종남별업」의 마지막 2구인 “어쩌다 산에 사는 늙은이를 만나면 이야기를 즐기다가 돌아갈 줄 모른다”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번째 시구인 “늙어서는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짓는다”를 표현한 듯 화면 중앙 산자락에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다. 다른 화가들의 시의도와는 달리 시인의 거주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이루어져 있다. 이밖에도 明代항성모의 《왕유시의도책》중 11번째 작품과 조선후기 허련의 <산수인물도>는 왕유의 시 「종남산」의 8구 중 각각 2구 씩을 화제로 한 시의도이다.29) 조선후기 화원인 李命基(생몰년 미상)의 <초당독서도>와 明代陳稞의 <王維詩意圖>는 「春日與裵迪過新昌裏訪呂逸人不遇」중 “문닫고 독서로 오랜 시간을 보내니 소나무가 모두 늙어 용비늘이 되었다 (閉戶著書多歲月 種松皆作老龍鱗)”를 화제로 그렸다. 27) 박은화, 「明代後期의 詩意圖에 나타난 詩畵의 相關關係」, 『미술사학연구』201,한국미술사학회, 1994. p.80. 28) 이케노다이가는 화면 좌측 상단에 「종남별업」의 전문과 ‘霞樵’ 서명을 초서체로 적었다. 朝日新聞社, 「池大雅筆王維詩意圖雙幅」, 『國華』1207호, pp.22-23. 29) 왕유의 시 「종남산」중 허련의 <산수인물도>에는 “흰구름 돌아보니 뭉쳐있고/ 푸른 안개는 들어가보니 없어졌다(白雲回望合 靑靄入看無)”, 항성모의 작품에는 "인가에 투숙하고 싶어/ 물 건너 나무꾼에게 물어본다(欲投人處宿 隔水問樵夫)"가 각각 화제로 적혀 있다. 도 12 성무, <좌간운기도>, 盛懋 坐看雲起圖 견본채색,27×28cm, 北京故宮博物院 도 13 윤두서,《관월첩》중 <좌간운기시>, 견본수묵, 19.1×14.9cm(그림부분), 국립중앙박물관 도 14. 鄭敾, <坐看雲起>, 지본담채, 19.8×32.3cm, 개인소장 도 15.김홍도, <고사관수도>, 金弘道, <高士觀水圖>, 지본담채, 29.5×37.9cm, 개인소장 도 16 이케노 다이가,《왕유시의도쌍폭》중 1폭 크기미상, 개인소장 도 17 『개자원화전』중 <인물옥우보>의 왕유 시 표현
화제가 된 시는 「南隣」, 「秋興八首」, 「飮中八仙歌」, 「登高」, 「陪諸貴公子丈八溝攜妓納凉晩際遇雨」, 「春夜喜雨」, 「嚴公仲夏枉駕草堂兼攜酒饌)」등이다. 이 글에서는 두보의 「南隣」, 「秋興八首」, 「飮中八仙歌」을 화제로 한 한중일 3국의 시의도를 주로 논의하겠다. 明代의 周臣의 <柴門送客圖>(도 18), 文嘉의 『詩意圖冊』중 <제2폭>, 程嘉燧(1565-1643)의 <柴門送客圖>,왕시민 《두보시의도책》중 <제2폭>(도 19), 조선후기 성재후의 <月下送別圖>(도 20), 작가미상의 <柴門新月圖>(도 21)는 두보의 시 「南隣」중 “흰 모래밭과 푸른 대숲 어우러진 강가 마을에서 날이 저물면 손님 전송하는 사립문에 비치는 달빛이 새롭다 (白沙翠竹江村暮 相對柴門月色新)”는 구절을 화제로 한 시의도이다. 주신은 이별하는 인물과 주변의 소나무 등을 화면의 중심에 상세히 묘사하며 詩意를 표현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수목과 인물 비중이 거의 동일하다. 반면 왕시민은 산수표현에 치중하며 멀리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별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시간에 畵意를 집중했다. 화면 좌측 상단에 쓰인 화제를 통해 前景에 간략하게 묘사된 인물의 자세가 전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화면 상단에 담채로 표현한 해진 저녁하늘, 노란 달을 그려 시구에 읊어진 시간을 표현했다.
조선후기 김유성의 <나월로화>(도 24) 역시 제2수의 시구를 화제로 한 시의도이다. 이 시를 화제로 한 시의도는 《천고최성첩》(선문대소장본)(도 25)에도 실려 있어 이미 조선 중기부터 잘 알려진 것으로 추정 된다. 육치의 작품은 화면 좌측에 등나무가 늘어진 바위를 주로 그리고 물의 갈대와 배를 타고 주변을 완상하는 인물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김유성의 <나월로화>는 산 등성이에 올라간 인물들이 손을 뻗어 달을 가르키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김유성 작품은 『당해원방고금화보』의 두보시의도(도 26)를 차용했다. 도 18 주신, <시문송객도>,周臣 柴門送客圖 지본설색, 121×57cm,남경박물관 도19 왕시민, 《두보시의도》중제2폭, 王时敏(杜甫诗意图册02) 지본채색,39×25.5cm,北京故宮博物院 도 20 성재후, <월하송별도>, 지본담채, 28.5×20.5cm, 선문대박물관 大阪藤田美術館 柴門新月圖 柴门新月图 도 21 작자미상, <시문신월도>,지본수묵, 129.4×43.3cm,大阪藤田美術館 陸治《唐人詩意圖》之一,蘇州博物館藏 . 請看石上藤蘿月,已映洲前蘆荻花 陸治 唐人詩意圖冊 杜甫詩意圖 도 22 육치, 《당인시의산수책》중 <두보시의도>,지본담채, 27.6×26.3cm, 소주박물관 王时敏 杜甫诗意图册 《杜甫诗意图》册第九开 도23왕시민, 《두보시의도》중제9폭,지본채색, 39×25.5cm,北京故宮博物院 나월로화 [蘿月蘆花] 김유성(金有聲). 도 24 김유성, <나월로화>,지본담채, 21.8×18.5cm,간송미술관
千古最盛帖천고최성첩 추흥팔수(秋興八首) 도 25 작자미상,《천고최성첩》중 <추흥팔수>, 저본담채,27×30.7cm(그림부분), 선문대박물관
도 26 『당해원방고금화보』중 <두보시의도>도 唐解元倣古今畵譜 杜甫诗意图 明代唐寅이 1517년 그린 요녕성박물관 소장의 <臨李公麟飮中八仙圖>를 비롯해 張路(도 27), 尤求, 李士達(1550-1620), 杜菫(15-16세기), 張翀(16세기 활동,생몰년 미상), 陳洪綬(도 28) 등이 그린 횡권 형태의 <음중팔선도>와 조선후기 김홍도의 <하지장기마도>(도29), 이한철의 <취태백도>(도 30), 일본 카이호유쇼(海北友松, 1533-1615), 官南(생몰년 미상,16세기 후반 활동)의 <음중팔선>(도31)은 「飮中八仙歌」를 화제로 했다. 「음중팔선가」는 酒仙으로 지칭되는 賀知章, 李白, 張旭등 술과 관련된 일화로 유명한 8인의 인물을 읊은 시이다. 명청대의 화가들은 대부분 횡권의 형태로 두보의 시를 그렸다. 화제가 되는 시의 전문을 그림 분분과 별도로 전후에 배치(당인,장로)하거나 화면 중간 중간에 인물과 연관된 시구를 적는 형식(우구, 진홍수)을 취했다. 배경을 생략하거나 장로의 작품처럼 절파화풍의 산수를 간략하게 표현하며 인물의 특징과 일화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인의 경우 백묘로 인물을 표현해 이공린 작품의 원형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이같은 화면 형태와는 달리 조선후기의 김홍도, 이한철의 작품은 8선 중 한 사람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홍도는 배경을 생략하고 간략한 필선으로 하지장 관련 시구인 “하지장은 말 탄 것이 배 탄 것처럼 기우뚱거리다가 눈이 아찔하여 우물에 빠지면 그대로 물속에서 자고 있다(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를 화제로 그렸다. 이 같은 논지는 곧 조선후기 지배 계급이 가졌던 ‘음중팔선’에 대한 인식과 화원들에 의해 <음중팔선도>가 그려졌던 배경 또한 알 수 있다. 일본의 카이호 유쇼, 官南의 <음중팔선도>는 6폭의 병풍형식으로 한 화면에 인물을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두 작품 모두 화면에 화제를 적지 않았고 표현된 인물 또한 8명을 이루지 못한다. 官南의 경우 詩句에서 언급한 각 인물의 특정 행동을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으나 카이호 유쇼의 작품에서는 각 인물들의 특징을 찾기 힘들다. 30) 강경희, 「詩의 변주, 詩意圖와 序跋- 『飮中八仙歌』, 『飮中八仙圖』, 『飮中八仙圖序』-」, 『동양고전연구』 제37호, 동양고전학회, 2009. pp.189-216. 조인희, 앞의 학위논문, pp.166-168. 장로(張路) <음중팔선서화 수권(飮中八仙書畵 手卷)> 도 27 장로(그림), <음중팔선서화수권>,견본설색, 25.5×329cm(그림부분), 개인소장 진홍수(陳洪綬)의 <음중팔선도(飮中八仙圖)> 권(卷) 도 28 진홍수, <음중팔선도권>, 지본수묵, 31×335.5cm,개인소장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하지장도(賀知章圖)> 또는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단원은 제시(題詩)로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 첫 두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도 29 김홍도, <지장기마도>, 지본담채, 25.8×35.9cm, 국립중앙박물관 도 30 이한철 李漢喆, <취태백도> [醉太白圖], 지본담채,지름 80cm, 서울대박물관 官南 飮中八仙 도 31 官南, <음중팔선>, 지본수묵, 153.0×224.0cm, 일본 正宗寺이밖에도 明代文徵明(1470-1559)의 <五月江深>, 唐寅의 <江深草閣圖>, 盛茂燁의 <江深草閣圖>, 淸代王時敏의 《두보시의도책》중 <제8폭>, 조선후기 崔北의 선면 <누각산수도> 는 두보가 지은 시 「嚴公仲夏枉駕草堂兼攜酒饌」중 “평생 외진 곳에 살아 사립문 먼데/ 오월의 강은 깊고 초가집은 쓸쓸하다(百年地辟柴門迥 五月江深草閣寒)”를 화제로 그린 것이다. 明代謝時臣의 《山水圖冊》중 <제7폭>,조선후기 沈師正의 <江上夜泊圖>는 「春夜喜雨」중 “들길도 구름과 더불어 검은데 강가배의 불빛만이 홀로 밝다(夜徑雲俱墨 江船火獨明)”를 화제로 했다. 사시신의 《산수도책》중 <제5폭>, <두보시의도>, 陳嘉言(1599-1678)의 <竹深荷靜圖>와 이방운의 <竹林家>는 「陪諸貴公子丈八溝攜妓納凉晩際遇雨」중 “대숲은 깊어 손님을 머물게 하는 곳 연꽃 깨끗하고 더위를 식히는 때(竹深留客處 荷淨納凉時)”를 화제로 해 여름날의 정취를 그린 시의도이다.31) 淸代왕시민의 《두보시의도책》중 <제6폭>, 조선후기 강세황의 《사시팔경도》중 <初冬>, 이방운의 《8폭산수도》중 <제7폭>은 「登高)」중 “끝없이 낙엽은 우수수지고 그침없는 장강은 도도히 흐른다(無邊落木蕭蕭下 31) 두보의 시를 그린 사시신의 산수도책 중 제5폭의 그림, 이방운의 <죽림가>는 『唐解元倣古今畵譜』중 <두보시의도>의 화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련 내용은 조인희, 앞의 학위논문, p.191. 明代文徵明(1470-1559)의 <五月江深> 王时敏 《杜甫诗意图》册第 八开 百年地辟柴門迥 五月江深草閣寒 唐寅의 <江深草閣圖>
심사정(沈師正)(1707-1769) 강상야박도 (江上夜泊圖) Ⅲ. 3국 시의도의 특징과 영향 이상에서 동아시아 3국에서 공통된 화제로 그려진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의 종류와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명청시대, 조선후기, 에도시대의 시의도 특징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자국의 화단에 미친 영향 등을 알아보겠다. 1. 詩에 대한 尊崇이 이룬 情景交融 왕유와 두보의 시를 화제로 그린 명청대 화가의 작품은 기존에 이루어져 있던 두 시인과 詩에 대한 尊崇과 회화 표현에 대한 공유된 인식의 일환으로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왕시민은 제발을 통해 두보시를 화제로 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33) 왕시민은 “두보의 시는 여러 가지 묘함을 널리 갖추고 있어 뜻의 구상과 문장 짓는 솜씨에 탁월한 짜임새가 있으며, 그 깊고 웅장함은 실로 고래를 끌고 봉황의 정수를 더듬는 힘이 있으니, 그리하여 마땅히 백대의 표준이요 고금의 으뜸이다. 내가 매번 그의 칠언시를 읽을 때마다 그 경물 묘사가 아름답고도 높고 서늘함이 내 눈에 또렷하여 황홀하기가 내 몸이 그 속을 노니는듯하고, 문득 흥에 부쳐 마음이 시원하더라”고 적고 있다. 이어 왕시민은 조카의 부탁으로 화첩을 제작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추운 날 창가에서 여가가 날 때 마침내 경치가 있는 좋은 聯句를 뽑아 먹점을 찍고 선염을 베풀어 그림을 완성했다”고 했다. 즉 情景이 交融하는 두보의 7언 율시 중의 일부 구절이 왕시민의 두보시의도의 화제였음을 알 수 있다. 제발문의 마지막 부분에는 “마르고 얼어붙은 폐장으로 속되게 메꾸었을 뿐, 시인의 비동하는 뜻과 운치는 그 약간도 얻지 못했구나. 시는 글자마다 그림이 있는데, 그림은 붓질마다 시가 없다”라며 詩畵一律이란 당시 화가들의 예술적 지향을 밝히고 있다.
32) 고진아, 앞의 책,pp.302-304. 33) 題跋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 “少陵詩體弘衆妙 意匠經營高出萬層 其奧博沈雄 眞有掣鯨魚 探鳳髓之力 故宜標準百代 冠古絶今 余每讀七律 見其所寫物 瓌麗高寒 歷歷在眼 恍若身遊其間 輒思寄興盤礡 旭咸賢甥以巨冊屬畵 寒窓偶暇 遂拈景聯佳句 點染成圖 顧以肺腸枯凅俗賴塡塞 於作者意愜飛動之致 略未得其毫末 詩中字字有畵 而畵中筆筆無詩 慢借强題 鈍置浣花翁不少 慙愧慙愧 西廬老人王時敏” 2. 성리학 이념상의 구현 조선 후기에 그려진 왕유와 두보 시의도는 주로 은자의 삶, 四季山水의 抒情과 인간의 同和등이 그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시인과 시에 대한 위상, 선호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치국이념인 성리학의 문예적 구현과도 연관된다. 윤두서, 정선, 김홍도등이 그린 왕유 시의도의 주제는 곧 隱者의 삶이다.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입신양명하는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 있거나 出仕를 기다릴 때 스스로를 단련하던 또 다른 理想像이었다. 왕유가 살았던 성당시대에 성행했던 은거, 은일의 풍조가 왕유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고34) 蘇軾(1036-1101)이 의해 왕유의 망천 생활과 그 풍취, 정신 세계가 높혀진 것은 조선후기 문인사대부들의 왕유 인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삶을 같은 週期로 보는 성리학적 인식과 충절의 삶을 중시하는 치국 이념 등이 조선후기 문인 사대부들의 문예적 지향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34) 전영실, 「王維詩에 나타난 詩人의 은일과 관직에의 모순된 감정 연구」, 『중국연구』제50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2010. pp.193-213. 36) 간송미술관 소장의 《閒中淸賞帖》은 李寅文이 그림을 그리고 洪儀泳(1750-1815), 兪漢芝(1760-1834)가 두보의 시 「戱爲韋偃雙松圖歌」, 「早起」, 「丹靑引贈曺將軍覇」, 「右僕射相國張公九齡」등을 화제로 적은 화첩으로 두보시의도첩과 관련된 보다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 3. 詩畵공존 형식의 자국화 에도시대에 그려진 왕유와 두보의 시를 화제로 하는 시의도는 극히 소략하다.
Ⅳ. 결론 이상에서 16-19세기 동아시아 3국에서 동일한 화제로 그렸던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의 양상과 특징을 알아보았다.
명청대 화가들의 경우 <음중팔선도>류를 제외하면 다른 시의도는 섬세한 필치로 화면 가득 경물을 배치하는 특히 조선후기 시의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당시화보』, 『당해원방고금화보』, 『개자원화전』 등 화보의 화면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자원화전』의 <인물옥우보>에 실린 인물 표현을 적극 수용하여 중국의 시의도와는 다른 화면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화제의 詩意표현에 詩의 화자인 인물을 자세, 동작 등을 강조하며 산수표현보다 중시한 경향을 보인다. 에도시대 시의도의 경우 주목되는 것은 『개자원화전』에 소개된 준법을 소화하여 화면에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조선후기는 단품으로 전하는 것이 주를 이루며 에도 시대의 경우 병풍형식의 예를 통해 장식품으로서의 회화 효용을 추론케 한다.
<참고문헌> 1. 1차 자료 2. 국내서적 3. 학술논문 전영실, 「王維詩에 나타난 詩人의 은일과 관직에의 모순된 감정 연구」, 『중국연구』제50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2010.
ABSTRACT A Comparative Study on Tang’s Poem-based Paintings in the East Asian Countries Cho, InHee ===============================================
南宋 趙葵《杜甫詩意圖》局部 (1186年9月4日-1266年12月24日),字南仲,號信庵,又號庸齋,衡山(今屬湖南)人,南宋抗金儒將、宗室、畫家、詩人。京湖制置使趙方次子、趙范之弟。經歷孝宗、光宗、寧宗、理宗、度宗五朝,一生以儒臣治軍,為南宋偏安作出卓越貢獻。咸淳二年(1266年)逝世,追贈太傅,諡忠靖。趙葵工詩善畫,傳世作品有《杜甫詩意圖》。 https://kknews.cc/culture/68rvyvm.html 李昉運, 輞川別墅圖, 宋代郭忠恕(传)摹《辋川图》局部 元代王蒙临《辋川图》局部 坐看雲起圖 終南別業 李昉運,《輞川十景圖》. |
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