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
-세바스찬 융거-
그것은 백년에 한 번 있음직한 폭풍이었다. 30미터가 넘는 파도를 동반한 그 폭풍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그런 일은 너무나 드물기 때문에 기상학자들은 그것을 “완벽한 폭풍, perfect storm”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 10월 그 폭풍이 닥쳐왔을 때 사실상 경보가 발령되지 않았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어이, 폭풍이 맹렬히 다가오고 있어” 노바 스크샤 근해에서 안드레아 게일 호 선장 빌리타인이 무선을 쳤다. 곧이어 배와 승무원 여섯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바스찬 융거(Sebastian Junger)가 쓴 소설 <<퍼펙트 스톰>>의 책 갈피에 나온 글이다.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융거는 저널리스트로 매거진 어워드(National Magzine Award), 피버디 상(Peabody Award)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베스트 셀러 작가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레스트 레포, Restrepo>를 통해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파병된 미군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으며,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아카데미 영화제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안드레아 게일호를 타고 바다에 나간 여섯 명의 어부가 사라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사실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면담이나 전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거의 사실대로 옮겼고, 당시의 긴박했던 무선 대화도 그대로 옮겨 썼다.
융거는 이 책 제목을 <퍼펙트 스톰, The perfect storm, 완벽한 폭풍>이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한다. ‘완벽한’이라는 말이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미안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완벽한’이라는 말은 기상학적인 의미에서 사용한 것으로,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이 소설은 2000년 볼프강 펜터젠 감독, 조지 클루니(선장, 빌리타인 역)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작비가 1억 2천만 달러 들어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작으로 전 세계에서 3억 2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괜찮은 흥행을 기록했다.
퍼펙트 스톰
1991년 10월, 실제로 있었던 엄청난 폭풍으로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폭풍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글로체스트 항구에서 빌리(선장), 피에르, 셜리, 머피, 바비는 황새치(참치) 잡이로 큰 돈을 벌 것이라는 꿈을 안고 출항했다. 한달 여 동안 잔뜩 고기를 잡아 올리지만 그만 제빙기가 고장나 버린다. 한시라도 빨리 항구로 돌아가지 않으면 고기들은 모두 썩어버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글루체스트 항구로 돌아가는 길목에 ‘퍼펙트 스톰’이 기다리고 있다.
역사에 남을 ‘완벽한 기상재앙’에 여섯 명 선원의 몸은 찾을 수 없었다. 고기잡이 동료가 울먹이며 애도사를 읽는다. “바다에서 운명한 이들은 정해진 무덤이 없습니다...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우리 가슴 속이나 꿈 속입니다.”
국립기상청 보스턴 지국의 밥 케이스 부국장은 당시 악천후가 세 가지 서로 다른 관련 현상의 융합으로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허리케인 그레이스가 북상하고, 세이블 섬 남쪽에서는 또 다른 폭풍이 시작되고, 세 번 째로 캐나다에서 한랭전선이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 제트기류까지 탔다. 폭풍과 허리케인, 한랭전선이 합쳐져 “perfect situation(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퍼펙트 스톰‘이 기상학적 의미로 사용된 것은 1936년 미국 텍사스 주의 ’포트 아서뉴스‘라는 매체를 통해서였다. 당시 발생한 풍수해를 설명하면서 “열대성 저기압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결과”라며 ’퍼펙트 스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금과 같은 은유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미국 작가인 세바스찬 융거가 출간한 논픽션 “The Perfect Storm”과 2000년 개봉 된 영화를 통해서였다. 융거는 부국장이 말한 ’perfect’라는 단어에 주목해 ‘퍼펙트 스톰’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냈고, 결국 책 제목으로 삼았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서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 표현은 여러 상황이 이례적으로 합쳐지면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를 의미하게 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가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와 손쓸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빗대어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퍼펙트 스톰은 무엇인가?
지금 지구촌은 생태위기, 기후위기, 전염병 등 여러 가지 사태들이 겹치면서 퍼펙트 스톰이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기후과학자 조천호박사는 ‘북한 기아사태’를 분석한 존 페퍼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퍼펙트 스톰을 잘 설명하고 있다.
1990년대 북한은 석유를 기반으로 농업을 했지만 소련 붕괴로 석유공급이 끊기면서 식량 감소를 대처하기 위해 경사지의 나무를 베어 다락 밭을 확대했다. 1995년 대홍수로, 산림을 훼손해 만든 다락 밭은 산사태로 일거에 뭉개졌다. 석유가격 상승, 기상재해, 식량생산 감소의 연속적인 타격으로 퍼펙트 스톰을 맞았다.
기후변화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구증가, 에너지 문제, 물 부족, 생물 다양성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기후문제는 단순히 개별적인 위험이 아니라, 위험이 더해질 때마다 피해가 비선형적으로 증폭되는 ‘퍼펙트 스톰’으로 나타난다.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에 서서히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다른 문제들과 합쳐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기후변화는 폭염, 가뭄, 태풍과 홍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환경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석유와 식량, 식수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또는 지역적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