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소장)중 계변가화(溪邊佳話)~>
계변가화(溪邊佳話)는 ‘개울가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뜻이다.
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남자가 빨래하는 여인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은 체통없는 짓이고, 또한 젊은 아낙네가 이를 즐기듯 미소를 띠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혜원은 오히려 이를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훤칠한 젊은 사내가 가슴을 드러내 놓고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있는데, 이 여인 또한 싫지 않은지 묘한 미소를 띠고 있다. 반면 나이 든 여인은 이를 시샘이라도 하는 양 표정이 구겨져 있고, 방망이질하는 여인 또한 좋은 표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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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조그만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노스님이 탁발을 하고 돌아가다가 길섶 바위아래 강보에 쌓인 어린아기를 발견, 안고 암자로 돌아왔다.
노스님은 어린 사내아이에게 사슴젖을 먹이며 정성껏 키웠다. 아이는 자라면서 영특함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아이에게 도훤이라 이름 지어주고 수행제자로 삼아 큰스님으로 만들기로 작정을 했다.
다섯살도 안된 도훤은 글을 깨우치더니 불경을 파고들어 노스님이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쳤다. 공부 틈틈이 도훤은 숲 속에서 산짐승들과 놀았다.
이 암자는 동네에서 30리나 떨어진 심산유곡이라 동자승 도훤은 사람이라고는 노스님밖에 몰랐다. 열서너살이 된 도훤의 공부는 노스님을 뛰어넘어 노스님을 흐뭇하게 했다.
어느 초여름날~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도끼를 들고 개울따라 내려가던 도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전 처음 보는 짐승 셋을 만난 것이다.
몸은 중하고 비슷한데 머리엔 검은 털이 길게 났고 가슴엔 봉오리 두개가 봉긋 솟았고 사타구니엔 검은 털이 났지만 고추와 불알이 없었다. 이상한 짐승 셋이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도훤을 보자
'으악!' 소리를 지르더니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돌맹이에 맞아 머리에 난 혹을 달고 암자로 도망쳐온 도훤이 노스님에게 고해바쳤다. “생전 처음 보는 사나운 짐승 셋을 만났습니다."
짐승 생김새를 설명하자 “이럴 수가!”
스님은 탄식하며 태연한 척~ “그만한 게 다행이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노스님은 도훤이 도를 닦는 데 여자는 큰 장애물이라 판단, 그를 겁주기 시작했다. “그 짐승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모르는구나. 중을 하도 많이 잡아 먹어서 중을 닮은 게야.”
도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이 부처님 덕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도훤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책을 펴도 글은 보이지 않고 그 무섭다는 짐승(?)들만 눈앞에 아른거리고 밤에 잠을 자도 꿈속에 그 짐승들만 나타났다.
공부도 일도 모든 걸 손 놓은 채 시름에 빠진 도훤을 불러 노스님은 하안거를 명했다. 가부좌를 틀고 면벽해 독경을 해보지만 머릿속엔 그 짐승들만 아른거렸다.
보름을 면벽하고 난 도훤은 울면서 노스님에게 “제게 악귀가 씌었나 봅니다. 아무리 독경을 해도 제 머릿속엔 그 짐승들만…”
그날부터 노스님은 도훤의 머리를 밀지 않았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자 도훤에게 속인들의 옷을 입혀 속세로 내보냈다. 춘하추동이 돌고 돌아 십년이 흘렀다.
눈이 쏟아지는 어느 날 밤, 세파에 시달린 젊은이가 암자를 찾아왔다. 암자 처마 밑에 서서 만감에 젖어있는 젊은이를 향해 방 안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도훤이 왔느냐?”
“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스님이 도훤의 머리를 밀었다.
며칠 후~ 노스님은 입적하고 암자 마당에서 도훤이 혼자서 조촐하게 다비식을 올렸다. 연기가 하늘 높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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