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 부흥회 / 11월 5일 주일 저녁 / 고명진 목사님
말씀 : 누가복음 2:41-51
제목 : 오직 예수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에 가을 심령부흥성회를 열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의 전에 나오며 마음과 정성을 모두어 귀한 예물을 올렸습니다.
주님 기뻐 받으시옵소서.
성경적인 가치관과 기독교적인 세계관, 무엇보다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사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 세상에 널리 알리는 모습을 주안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내시옵소서.
하나님이 예비한 복을 이들에게 허락하므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물질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아니하도록 주께서
넉넉하게 하시고 부족한 때에도 범죄치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신실함을 추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물이 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넉넉하게 하여 주옵시고, 무엇보다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고상한 인격과 삶의 높은 수준을 나타낼 수 있도록 복 내려 주옵소서.
부족한 것을 하나님의 강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셨사오니
하나님의 말씀만 바르게 전하도록 주의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대단히 반갑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김포 비행장에서 부산에 오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져 정상궤도에 올라서서 앞에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니까
할머니는 금방 기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밖에 나왔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넓은 자리가 텅 비어 있어요. 그래서 가서 앉았습니다.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는 좁은 자리였는데, 넓은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얼른 앉자 스튜어디스가 다가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이 자리는 비지니스클라스라 할머니 자리로 가십시오.'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듣습니다. '아따 마 빈 자린데 앉아 가면 안 되나?'
제가 방금 한 말 알아 들으세요?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할머니, 이 자리는 비즈니스 클라스라 할머니가 앉으시면 안 됩니다. 할머니 자리로 돌아가세요.'
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아따 마 빈 자린데 앉아 가면 되지~'
실갱이가 점점 심해지니까 옆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신사가 얼른 다가와서 할머니의 귀에다가 소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할머니 자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 젊은 신사가 할머니의 귀에다가 뭐라고 이야기하였는지 궁금하면 500원 되겠습니다.
'할머니 이 칸은 광주 가는 칸이예요.'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자리로 가더래요..
비행기가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보통 국내선 비행기도 시속 700km, 800km,
국제선의 경우에 굉장히 빨리 달려가면 시속 1000km 이상 날아가지요.
오늘 저녁에 주안교회 선임 장로님 이병철 장로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대한항공 기장 출신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여기서 확인 안 해도 제 말이 맞을 거예요.
얼마나 빨리 가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거지요.
어떤 아주머니가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가 90km,100km로 막 갑니다.
한참 가는데 택시에 탄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제가 아까 우리 언니네 집에 가자 그랬어요? 동생네 집에 가자 그랬어요?'
택시 기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줌마, 언제 탔어요?' 그러더래요..
시속 90km, 100km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목적지가 어디인가?
아니, 더 단적으로 설명하면 목적지 없이 살아가는 인생, 방향감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방금 파안대소 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던져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한 걸음 더 여러분의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방향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홈런을 치고도 1루 2루 3루 홈베이스를 정확하게 밟지 않으면 점수 낼 수 없습니다.
100m를 달리는 달리기 육상 선수가 자기의 레인으로 레인을 지키지 못하면 실격됩니다.
정확한 목적지와 정확한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빠르고 느린 것은 상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인천 광역시에서 100m 달리기를 제일 잘 한다고 해서 전국체전에서 꼭 금메달 따란 법이 없어요.
대한민국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올림픽에 가서 금메달을 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 신앙이 굉장히 급속히 자라나는 것 같아'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러나 정확한 어떤 목적지로 어떤 방향으로 내 신앙생활을 운영해 가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른 질문 하나 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이 땅에 살아오시면서 여러분 나름대로 개인의 인생을 쭉 살아오시면서 무엇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려 본 적이 있으세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것,
무엇을 잊어 본 적이 있거나 잃어버려 본 적이 있으십니까? 있지요?
이번 성회에 왠지 은혜가 임할 것 같다 1번, 찜찜하다 2번..
1번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잊어버렸을 때,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을 때가 언제입니까?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잃어버리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큰 것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 잃었다.. 성경에는 안 나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내가 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나에게 당황함과 당혹감과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게 뭔가 하면, 사람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아니, 자식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부모는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그럽니다. 하여간 성경에 안 나와도 이런 건 잘 알아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 살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은 마리아, 아빠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세히 보십시오. 단순한 열두 살 아들을 잃어버린 게 아니예요.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를 잃어버렸어요.
마리아와 요셉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성경 누가복음 1장에 마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제가 성경 그대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마리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났어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그리고 네 몸 속에 아이가 잉태되었다고 말합니다.
숫처녀입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예요. 순결한 처녀입니다. 그런데 처녀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성경은 그 다음에 뭐라고 돼 있지요?
마리아가 놀라 이르되 이런 인사가 어찌 함인고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무슨 내 안에 내 몸 안에 애기가 있다고?
이런 이야기 듣고 안 놀래는 사람은 주안교회에만 있나 봐요..
아니, 생각해 보세요. 처녀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게다가 숫처녀인데, 몸 안에 아기가 있다?
누가 안 놀랩니까? 놀래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천사가 계속 이야기해요.
사내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을 보탠다면 얼마든지 많아요.
택도 없는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게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전혀 불가, 안 됩니다.
얼마든지 많은 말이 있지만, 그래도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나실 바 그 거룩한 자가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이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고,(눅 1:35)
마리아의 마지막 반응이 뭐지요?
개역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게 마리아 이야기라고 아멘 그렇게 쉽게 할 게 아니예요.
여러분 집의 딸이 결혼도 안 했는데 배 불러 와도 여러분 아멘 할 겁니까?
여러분 집에 아멘 안 할 걸, 왜 마리아에겐 그렇게 쉽게 아멘 해요? 일단 성경이니까 아멘 할 분위기 같아요?
여러분, 지금 천사가 마리아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새 애들 말로 바꾸면, 애들 말로, 마리아의 영발은 보통이 아니예요.
여러분, 천사와 주고 받고 늘 이야기 하는 분 얼마나 계세요?
비 오는 주일 저녁에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세상에...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늘 천사하고 이야기 주고 받고 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쉽지 않습니다.
아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어요. 그렇지요?
우리의 구원 계획은 창세 전에 온 우주 만물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겁니다.
좀 어려운 신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acting GOD'이라고 말합니다. '행동하시는 하나님',
행동하시기 이전에 하나님이 계셨어요. 그 하나님을 'being GOD'이라고 그래요. '존재하시는 하나님',
그때, acting, 천지 만물을 만드시는 행동 이전의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저와 여러분의 구원 계획을 하셨다고요.
곧 창세 전에 그 깊으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그때 우리를 예정하셨어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 계획은 창세 전에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그 깊으신 뜻대로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요.
창세 전에 계획하신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낼 때 유일하게 득한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그냥 예쁜 여인 정도가 아닙니다. 그냥 믿음 좋은 여인, 그냥 영성 탁월한 여인, 그런 정도의 여인이 아니라
인류 역사 가운데 단 한 명, 선택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여인,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 - 요셉에 대해서 마태복음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무엇을?)
자기와 정혼한 여인의 배가 불러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면, 어떻게 되지요? 레위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정혼한 약혼자가 나와 상관 없는 아이를 갖게 될 때, 내가 입을 벌리면 이 여인은 성 밖에 끌어내어 돌로 쳐 죽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의 운명은 요셉의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어요.
그런데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얼마나 나이스 합니까? 얼마나 젠틀해요?
어쩌면 마리아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가장 아름다운 배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남자들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결혼할 때가 돼서 약혼을 했어요.
그런데 약혼한 여자가 나는 손도 안 만졌는데, 배가 불러 옵니다.
할렐루야 이게 웬 떡인가? 이런 사람 있습니까? 그럴 사람 누가 있어요?
그 여자 데려 올 사람 있으면 손 한 번 들어 보세요. 그 여자를 데려오시겠다고? 나와 상관 없는데, 배가 불러오는데 ......
하여간 저 태어나서 저런 분 첨 만나요~~
사실은, 일반적인 논리로 나와 약혼했는데 나와 상관 없는 아이를 그 여자가 갖고 있다면,
아주 믿음이 특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 데려오는게 정상입니다.
요셉도 그러잖아요. "가만히 끊고자 하여"
왜요? - 자기가 말하면 여인은 죽게 되니까...
왜 그렇게 했다고 말하죠? 요셉이 그렇게 한 이유를 잘 들어 보세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랬어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의로운 사람이 요셉입니다.
인류의 구세주 에수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아버지가 된 사람이 요셉이예요.
그리고 얼마나 고민이 됐겠어요. 얼마나 기도가 됐겠어요. 얼마나 생각이 많았겠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그냥 연극 한 번 해 볼게요.. '저 여자가 어떤 놈하고 놀아난 거야?' 그런 생각 할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이야기를 그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데리고 와서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말아라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고 또 아들을 낳으면 임마누엘이라 하라"(마태복음 1:20-23)
임 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임마누엘, 그대로 요셉은 그렇게 했어요.
아내를 데려 왔어요. 아이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성경이라 그냥 쉽게 들으려고 하지만, 이게 생리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사회 상황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남자들은 알고 있어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
그리고 요셉이 보세요. 지금 주의 사자하고 요셉도 이야기 하잖아요~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어! 무서워하지 말어!"
"데려와. 동침하지 말어. 예수라고 해, 임마누엘이라고 해"
요셉이 그대로 다 합니다. 더구나 오늘 본문 보실까요...
(눅 2: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님의 부모 마리아와 요셉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지금 마리아와 요셉이 살고 있는 데가 (51절)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나사렛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유월절의 절기는 예루살렘에서 지킵니다.
그러면,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지금 따지면 한 175km~180km 정도 돼요.
당시에 이 거리를 걸어서 가는데는 무려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예요. 그런데 그 절기를 지킵니다.
자, 여쭤 볼게요~
절기는 며칠 간 지키지요?
여러분들의 눈빛은 드디어 이런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자꾸 자꾸 묻지 말고 네가 빨리 이야기해라. 어짜피 이야기할 거 아이가?'
예, 일주일을 지킵니다. 절기의 첫날부터 끝날까지 하면 8일 지키는 게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7일 동안 지킵니다.
자, 보십시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주일을 가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일주일을 가야 돼요.
모든 유대의 남자들이 일 년 절기를 몇 번 지키지요? "너희 남자들은 일 년 3차 절기를 지킬지니"
"유월절을 지키라 맥추절을 지키라 그 다음에 장막절(초막절)을 지키라"
유월절 지키고, 오십 일째 될 때, 그 때가 맥추절입니다. 처음 밀이 익었다, 보리가 익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 그래요.
나팔을 불어서 나팔절이라고도 말해요. 신약성경에는 그때 성령이 강림해서 성령강림절이라고 말해요.
펜테코스트(pentecost) 펜트라는 말은, 미국의 국무성을 펜타곤(오각형 건물입니다) 펜트란 말이 5입니다.
코스트는 열이예요. 5순 다섯 오+ 열 순 = 오십 일, 그래서 칠칠절 다음날이 오순절입니다.
일곱번의 안식일을 지켜요. 칠칠절, 초실절, 오순절, 성령강림절, 다 같은 절기인데 표현만 다릅니다.
신약성경에는 맥추절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오순절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
- 그건 성령강림절이 맥추절인 유월절을 지키고 칠칠절 다음날인 오순절에 그런 성령 사건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연말에 지키는 수장절(守藏節)이라고, 거둘 수(守) 감출 장(藏)
굳이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추수감사절이라고 할까요... 모든 것을 거두어 창고에 들인 후에 지키는 절기, 초막절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사십 년 동안에 장막 생활을 했던 걸 초막 생활을 했던 것을 기념하여 구원으로 지킵니다.
유월절은 구원의 결정적인 사건, 양의 피를 발라서 그리고 오십일 째 초실절, 이런 절기를 일 녕에 세 번 지킵니다.
제가 좀 빨리 빨리 이야기를 해도 이해는 되지요?
그러면, 절기 한 번 지키는데 21일이 걸립니다. 세 번 지키려면 63일이 걸립니다.
우리가 일년에 주일을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지키면 52일입니다.
그런데, 아주 신앙이 좋은 정통 유대인들은 이 세 절기만 지키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킵니다.
유명한 이스라엘 사람은 지금도 시간제 버튼, 소위 말하는 타이머를 해 갖고,
밥 하기 하거나 이런 것들, 쌀을 씻어서 밥을 하는 게 일이니까 안식일 전날 쌀을 다 씻어갖고 앉혀놓고 버튼만 눌러요.
그러면, 안식일 날은 밥이 저절로 돼요. 밥을 퍼먹는 건 죄가 아닌데, 밥을 하는 건 일이라고,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만드는 모든 엘리베이터는 안식일 날이 되면 1층부터 20층까지,
60층은 60층까지 몽땅 다 층마다 불이 다 들어옵니다. 이게 셋업 버튼이라고 그래서 안식일 버튼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그만큼 그 사람들이 철저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이 일주일에 한 번만 있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 모든 절기의 첫날과 마지막날이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고난주간에도 안식일이 두 번 들었어요.
매주 토요일,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은 시작되는 겁니다.
그것 아니고도, 중간에도 절기가 시작되거나 절기가 있으면 그날은 무조건 안식일입니다.
절기의 첫날과 끝날은 안식일로 늘 지켰어요. 이게 얼마나 많은 날입니까...
아니, 적어도 이 세 절기만 해도 63일을 지켜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52일 주일을 다 지킨다고 해서 52일을 온전히 지키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요?
주일에 오전에 예배 드리고, 오후에 가끔 시장에 들러서 뭐 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건 온전히 지키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는 한 번 집에서 일단 출발하면 한 주일 꼬빡 걸어가야 돼요.
걸어가다가 어 다른 거 있네, 또 집에 갔다오고, 이렇게 할 수 있는게 아니잖습니까..
보십시오. (42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관례" = 습관이 됐다는 거예요.
마치 김유신의 말이 올라타기만 하면 술집에 가는게 습관이 되었던 것처럼...
경건한 그리스도인인 마리아와 요셉은 절기를 지키는게 관례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좋은 습관들이 있습니다. 저는 음식만 나오면 자동으로 눈이 감겨져요. 여러분도 거의 그렇잖아요~ 안 그래요?
한참 먹다가 '아유, 기도 안했네' 그런 사람은 없어요.
여러분들,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소경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요. 이렇게 쉽게 설명하는 목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여러분, 마리아와 요셉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마리아도 요셉도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그해에는 예수를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어요.
절기를 마치고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는 거예요.
나는 굉장히 예수를 잘 믿는 줄 알았는데, 어떤 날 보니까 내 삶에 예수님이 없어요.
아니, 감히 도전적으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세요? 오늘 주일 낮 예배를 드리고 나서 저녁 이 심령부흥성회에 오기까지 정말 주님을 얼마나 생각하셨어요?
한 주일을 세상에 살아가면서 일상의 삶 가운데서 입은 교회 내의 사역을 한다 해도,
정말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생각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릴 때가 너무 많아요. 왜요? - 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잊어버렸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보십시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첫번째,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했어요. 몰랐어요.
다른 말로 바꾸겠습니다. 무지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무지했단 말예요.
여러분,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왜 무지하지요? 무지라면 좀 괜찮아요.. 왜 무식하지요?
무지가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게 왜 무지가 멸망의 원인입니까..
저는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호세아서 4장 6절에 보게 되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그러니까, 무지가 망하는 거예요. 지식이 없어 망한다는 거예요.
왜 지식이 없어요? 왜 무지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유치원 식으로 대답해 보세요.
공부 안해서 무지해요. 공부 안 하는게 멸망의 원인이예요.
무슨 공부? - 국영수사회과학이 아니예요. 예수님을 아는 공부예요. 예수님을 아는 공부!
저는 이렇게 또 도전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예수님 아시지요? 아멘!
얼마나 아세요? 누구로 아세요?
저는 주목사님을 제가 좀 알아요. 첫째, 성함도 알고, 또 주목사님 장신대 훌륭한 교수님으로 계셨던 것도 알아요. 그 정도 알아요.
그런데 주목사님의 사모님이 주목사님을 아는 것, 저와 비교하면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지요?
여러분 만큼 제가 절대로 주목사님을 잘 몰라요.
종종 만나기도 하고 정말 좋은 목사님이라는 것, 그 정도는 알지만 깊이 잘 몰라요.
다시 여쭤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계세요?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계세요?
그게 우리의 신앙의 정도예요. 그게 우리의 신앙의 정도입니다.
호세아가 조금 전 호세아 4장 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그랬어요.
호세아 6장 3절과 6장 4절에서 호세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내가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고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 자기의 혈통과 가문을 통털어 내가 이스라엘 족속이요(선민이라는 거예요.)
내가 베냐민의 지파요, 사울 왕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왕손이예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그 누구보다 내가 종교심이 열심있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예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 - 내가 바리새파 사람이라
당시에 있었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여러 파 가운데서 가장 율법을 준수하는 파가 바리새파입니다.
바리새파의 원어의 뜻은 분리주의자, 그말을 좀 쉽게 말하면,
'나는 너네하고 달라. 나는 너네처럼 그렇게 살지 않아. 나는 율법을 제일 열심히 준수하고, 율법을 제일 잘 지키는 사람이야.
그래서 너네들하고 난 달라. 말도 잘 안 섞을 거야.' 그게 바리새인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한 그가, "내가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빌 3:8)
그 구절 앞에 무슨 말이 있지요?
"내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내가 혈통 있는, 뼈대 있는 가문에서 왕손으로 태어난 선민이요, 그렇게 열심이고 율법 잘 지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박해했던 것, 내 자랑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이게 헬라어 원어에 사람이 음식을 먹고 내어 놓으면, 그걸 똥이라 그러지요.
그런데 그걸 개가 먹었다가 토해 놓은 것, 그게 배설물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단순한 배설물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가 자랑하고 있는게 사도 바울이 자랑하고 있는게 보통 사람은 아무나 원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왕손으로 태어나는 게 내가 원한다고 되나요?
이스라엘 족속으로 나는 것이, 베냐민 지파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으로,
율법을 그렇게 잘 지키는 바리새파가 된다는 게 쉽습니까?
그 이외에도 산헤드린 공회의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을 다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 된다는 게
내가 원한다고 되는 거냐고요? 입법 권한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 되기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깨달았어요. 이게 얼마나 고상한지, 이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여겼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 달리셨을 때에,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세요.
(The Seven Greatest Words of cross)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말하지요.
첫번째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이 알지 못하여"
(알지 못하여 - 왜 알지 못하죠? - 공부 안해서~) 예수님 공부를 안했어요..
우리의 자녀들에게 국영수사회과학 열심히 가르쳐요. 독일어도 가르치고, 불어도 가르치고, 뭐 일본어 뭐......
속셈학원, 뭐 그렇게 겉셈도 복잡한데 속셈학원까지~ 어려서부터 가르치느라고, 뭐 태권도 갔다오라, 피아노 바이올린 갔다오라,
그런데 성경공부는 잘 안 시켜요~~~
그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보면, 다 엄마 아빠가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 집사님 이런 분들인데도 피아노는 열심히 보내고 그러는데, 성경은 과외를 안 시켜요...
참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 스스로가 참 한심하고 참 답답한 인간들예요. 그렇지요?
아니,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나요?
무지했어요...
여러분,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예수님을 한 번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은 제자가 있어요.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세요. 짐작으로도 맞아요. 정답이예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찬을 제정하실 때, 주의 만찬하실 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거야." 예수님이 또 말씀하세요.
"나와 함께 떡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거야"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떡을 떼어주는 그 사람이 나를 팔 거야"
그 때, 제자들이 다 한 마디씩 하잖아요. "주여 내니이까?", "주여 내니이까?", "주여 내니이까?"
가룟 유다, 한 마디 해야 될 거 아녜요. 뭐라 그러죠? "랍비여 내니이까?"(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랍비예요.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검과 몽치를 들고 따라오는
로마의 병정들과 당대의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그 사람들에게
"내가 입 맞추는 그가 예수니까 그를 잡으라"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잖아요. 그렇지요~ 여러분 성경에도 다 나와요..
그런데, 예수님께 가서 뭐라고 그럽니까? 입을 맞추면서 "랍비여 안녕하십니까?"(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여러분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심지어는 회교, 아니 남묘호랑계교도, 불교의 웬만한 승려들도 성경책이 훌륭한 책인 건 다 압니다.
공산주의 국가도 성경책이 훌륭한 책이라는 건 다 알아요.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에도 특급 호텔 방에는 반드시 자국어와 영어로 된 신약성경, 기드온협회서 나온 성경책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슬림 국가에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있는 국가에도 특급 호텔방에는 반드시 있어요.
요사이는요, 신약성경 영어와 자국어로 되어 있는 신약성경 외에 회교권의 코란도 있는 데가 있어요.
몰몬교 몰몬경을 넣어 놓은 데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나라든지 거의 빠짐없이 있는 건 성경책을 다 있어요.
쉬운 말로 말하면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인류의 사대 성인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 다 알아요. 그거는...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아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주님으로 시인하는 사람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제가 여러분에게 여쭙는 것은,
여러분이 교회에 몇 년 다녔습니까? 여러분이 교회 직분이 뭡니까를 묻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구주로 영접한 적이 있습니까? 아멘!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의 인생의 주인으로 그렇게 모시고 사십니까?
일반 교양 있는 대학 교수도 책꽂이에 성경책 없는 집이 어디 있겠어요..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 성경책입니다. 제일 큰 책 성경책입니다. 제일 작은 책? 성경책입니다.
제일 많이 읽는 책? 성경책입니다. 제일 안 읽는 책? 성경책입니다. 누구를 두고 이야기하는지 아실 겁니다.
사흘 뒤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해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 무슨 이야기입니까?
"엄마 그걸 몰랐어요? 제가 여기 있어야 된다는 걸 어머니 모르셨습니까?"
몰랐다는 거지요. 그것이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첫번째 원인입니다.
두번째, 보십시오.
(43절)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 우리 용어로 바꿔 보면, "착각"입니다.
의외로 교회 내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예수 믿은지가 오래 된 사람, 그 교회에 처음 창립할 때 공신이었던 사람, 헌금을 많이 했던 사람,
교회 내에서 굉장히 아주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일수록 착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꼭 그렇다고는 안 했어요. 경향이 있다고 그랬지... 저도 피해 나갈 구멍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내가 그래도 우리 교회에서는 제일 오래 됐잖아~ 헌금 액수는 내가 그래도 좀 많잖아~
그런데, 내가 낸 헌금의 액수보다 주님이 달아보시는 주님의 저울이,
주님의 시각이, 주님의 관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동의하시면 아멘! 아멘!
많은 사람이 착각을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삼 대째, 사 대째 믿는 집안에서~
저는 지금 침례교 목사지만, 제 집안 배경이 우리 친가는 통합측입니다.
우리 외가는 합동측입니다. 제가 장로교로 말하면, 성골 진골 출신예요.
어쩌다가 이단인 침례교로 갔지만~ 조크를 조크로 알아 들으실 줄 알지요?
우리 아버지는 제가 침례교 신학교 갈 때, 짐 챙기는데 당회에서 쫓겨날 뻔 했어요. 무슨 장로 아들이 왜 이단에 가냐고...
이단 아니었어요. 이단 아니예요... 어쨌든 착각을 많이 합니다. 착각은 커트라인도 없다지요. 착각은 자유랍니다.
이런 신앙적인 자만과 교만의 착각이 예수님을 상실해요.
내가 교회 나온지 몇 년인데, 내가 예배당 지을 때 기둥을 몇 개나 세웠는데, 헌금을 얼마나 했는데,
그런데, 주님은요~ '글쎄 난 그거 잘 모르겠다' 이러시면 어떡하죠?
잔 뉴튼이 말한대로, 천국에 가 보니까 '어! 꼭 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분이 안 보여서 놀래고,
두번째,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와서 놀라고, 세번째, 히! 나도 와 있네!' 그래서 놀란다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잊어버렸어요?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갔어요. 이게 관례가 되었어요. 그래요~ 습관이 되었어요. 관습이 되었어요.
다시 말하면, 형식은 몸에 충분히 익어 버렸어요 익혀졌어요. 그런데, 신앙의 핵심, 예수님이 없어요.
여러분에게 여쭤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소그룹 모임, 예를 들면 남선교회, 여전도회니 이렇게 모임을 하는데 목사님이 안 계시면, 우리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그런 경우가 있으세요? 구역 모임 마칠 때 어떻게 하세요? 주기도문 해요?
그러면, 여러분 주기도문 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정말 임해야 됩니다."
그런 간절한 소원을 갖고 그렇게 기도합니까?
주기도문이 너무 익숙합니다.
그런데 형식은 있는데, 주기도문의 내용은 없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이 되면 절기 지키는 건 관계가, 관습이, 습관이 되었어요.
그냥 자동으로~~ 음식만 나오면 기도가 돼요. 그렇게 좋은 습관인데, 문제는 감격이 없어요.
제 이야기지만, 부끄럽지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추석을 맞이했는데 고향에 가라는데 기숙사 문을 닫으니까 고향에 가라는데 고향까지 갈 수가 없어요.
너무 멀고 첫째 차비도 없고, 제가 보니까 주머니에 돈을 다 확인해 보니까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갔다 올 수 있는 금액이 있어요. 그래서 갔어요.
밥을 사 먹으면 도저히 갔다 올 수가 없어서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어요.
아니, 그냥 물도 마시지 말고 한 번 삼일 동안만 단식을 해 보자..
사흘 뒤에 제가 물을 한 대접 달라 그랬어요. 물을 받았는데, 그냥 마실 수가 없는 거예요.
물대접을 들고 기도를 하는데, 조금 과장법을 조금만 쓰면요, 마치 만화책에는 눈물이 분수처럼 막 나오지요.
그런 식으로 눈물이 막 펑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이 물 한 대접이 그렇게 귀하게 저한테 다가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물을 마시고
하나님, 오늘의 이 감격을 갖고 앞으로 물을 마시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물 마시고 내려왔어요.
그 다음날 제가 학교 기숙사에 가서 물 마시는데 어제의 감격은 하나도 없어요.
습관화되어 있는데, 진정한 음식 먹을 때 감사기도 하면서 얼마나 진정 감사해요.
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며칠간 굶다가 먹는 사람처럼 그런 감격적인 감사가 있어야 돼요.
얼마나 많은 우리의 기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교회 생활 가운데 신앙 생활 가운데 형식은 누구보다.. 기도의 패턴이 있어요.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어요.
매 주일마다 예배를 어김없이 드려요. 빠짐없이 드립니다. 얼마나 좋은 습관입니까?
그런데 그게 만약 정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 그런 감동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없는, 소위 명분상의 명목상 그리스도인인지 잘 모르겠어요.
자, 정리해 볼까요~
첫번째, 왜? 무지해서
두번째, 착각
세번째, 형식주의에 내용이 없어서
네번째,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요셉이 너무 바쁘지 않았을까?
요셉의 직업이 목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목수 요셉은 좋은 목수였겠다?, 아니면 나쁜 목수였겠다?
요셉은 바쁜 나머지 예수님을 챙기고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을 깜빡 하고 그냥 갔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걸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은 거예요.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설교 끝났을 때 막 바삐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안내하는 분들이 아유 왜 그렇게 집사님 이렇게 서두르세요?
아, 빨리 가야 돼~~
아, 장로님 축도는 마치고 가셔야지요~
아이 바뻐 바뻐~~
그런데 뭐가 그렇게 바쁘지요?
이런 말, 아~ 빨리 차를 빼려고~ 아유... 배려심 때문에~
그거 조금 천천히 빼도 괜찮아요~
마지막 찬송 하고 축도 끝난 다음에 나가서 빼도 괜찮지요?
그 시간에 성질 부리면, 그 성질 부리는 그 사람이 성질이 나쁜 거지, 예배 다 끝난 뒤에 가는 거예요.
이런 말이 있어요.
'아빠, 바빠?' - '아니 안 바빠! 아들이 왔는데',
'아빠랑 놀이터에 가고 싶어요.' - '그래! 가자!'
그 아빠가 좋은 아빠예요.
아빠 바빠 아빠 바빠, 엄마도 노래해요~ '야, 너희 아빠 바쁘다. 바쁜 아빠 보채지 말어'
그런데, 진짜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지요?
요셉이 어쩌면 바쁜 나머지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네 가지
1) 무지해서
2) 착각 때문에
3) 형식 주의에 빠져서
4)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결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걸 알았을 때, 하룻길을 간 후 없어요.
(48절)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근심'이란 말의 원어의 뜻이 '마음이 나뉘어지는 거'예요. 우리 예수가 어떻게 됐지? 오만 생각이 다 들어갔다는 거예요.
혹시,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어갔어요.
예수님을 잊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룻길을 내려왔어요. 없는 걸 깨달았어요.
예수님을 찾는데 사흘 뒤에 가서 예루살렘에서 만났어요.
사흘이예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미지네이션!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리아와 요셉이 지금 예수를 찾습니다. 정신없이 찾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영적인 곤비함과 피곤함이, 영적인 문제가 예수님을 잊어버려서 생겼어요.
예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정신적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거예요.
※ 모든 경제적인 어려움은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어떤 나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림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 육체적인 피곤함과 곤비함, 육체적인 질병까지도
모두가 다, 모든 질병, 모든 아픔,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떤 질병이나 어떤 아픔, 고통, 염려 근심, 걱정 영적 피폐함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지금 나는 왜 이렇게 영적으로 곤비하죠? 영적으로 내가 왜 이렇게 메마르죠?
"그러나 이번 심령부흥회 때 정말 예수의 영으로 내 안이 가득했으면 좋겠어."
다시 말씀드립니다.
목사님, 저 예수님 잊어버리고 예수님 잃어버리고 살다가 여기 왔어요.
예수님 잊어버렸기 때문에, 모두가 아프고~
아니예요. 다른 질병의 원인들도 여러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질병이나 어떤 국립학교(교도소)에 가는 그런 사람들이나,
어떤 어려움을 겼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지요? - 예수님을 회복해야지요..
마리아와 요셉은 잃어버린 예수님, 잊어버렸던 그곳, 잃어버렸던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찾고 난 뒤에 그들이 나사렛으로 돌아가 함께 거하셨다"
그 뒤의 이야기는 오늘 생략......
저는 이번 2박3일의 짧은 성회이지만, 가을심령부흥성회가 내 영혼 속에
내 정신과 내 모든 삶 속에, 그리고 내 언어와 내 모든 삶의 태도 행동 가운데 예수님 회복하는,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한 성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