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대강당에 1970년 1월 17일 육군3사관학교가 창설 후 첫 졸업생이며, 첫 육군소위(771명)로 임관된 20대 중반의 젊고 씩씩했던 장교들은 반세기라는 무심한 세월의 흔적인 이마에 가득한 굵고 깊은 주름살이과 은빛머리카락을 휘날리며 70대중반 500여명 역전의 노장(老將)모습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수많은 내외귀빈 및 가족, 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1기생 임관50주년 기념행사」는 서서히 막이 올랐고, 박용태 총무국장의 사회로 제1부 식전행사, 제2부 정기총회, 제3부 50주년 행사 순으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김정환 1기 회장(제36대)은 기념사에서 “우리 1기생은 924명이 입교하였으나, 정예간부 육성의 고된 훈련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153(30%)명이 퇴교 당하였고, 771명이 50년 전 바로 오늘 임관한 후 반세기만에 다시 모였습니다. 우리는 비록 고희가 넘은 노장들로 변모되었지만, 임관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치 못하고, 조국을 위하여 전·후방과 월남전에서 용전분투하다 전사 및 순직한 동기생들의 살신성인 정신이 다시 떠오릅니다. 우리는 선배 없이 외롭게 야전에서 살아왔기에 더욱 후배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임지에서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임무수행에 불철주야 매진하였던 지난추억을 거울삼아 앞으로 더욱 모교 및 동문사랑과 학교발전을 위하여 헌신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인하 14대총동문회장은 축사를 통하여 “존경하옵는 771명 1기 선배님! 대망의 2020년 새해 시작과 함께 임관 50주년을 맞이하신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선배님들은 그 어떤 욕심도 요령도 없이 오직 하나! ‘나라를 구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저희 후배들은 선배님들이 개척하신 지난 영욕(榮辱)의 50년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의 100년을 향하여 거침없이 달려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임관50주년 자축 케이크커팅에는 김정환 회장, 김운태 회장, 정규민 추진본부장, 곽형근 자문위원, 김문범 조직위원장, 문경수 초대회장, 이양수 전 총동문회장, 박재화 전 발전기금이사장, 정인하 총동문회장, 후임 한동주 총동문회장, 후배기 대표로 2기 박복규회장이 함께하여 축하와 발전을 다짐하였다.
호국의 방패「육군3사관학교」‘영천 벌’에 우뚝서다
筆者는 지금부터 시계바늘을 50년 전으로 돌려 호국간성의 요람인 「육군3사관학교」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인고(忍苦)와 영욕(榮辱)의 세월 속에 인내와 끈기, 나라사랑정신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 국토방위의 역군(役軍)이었던 '영천 벌의 혼' 1기생을 조명한다.
■ 1960년대 말, 대한민국은 최대안보위기였다
세계는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終戰)됨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축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한반도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민족상잔(民族相殘), 6.25전쟁이 휴전이 된지 18년이 경과된 시기로서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어 ‘보릿고개’를 탈피하려고 온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운동으로 하나로 뭉쳐있었다.
남한과 북한은 38선(군사분계선)철의 장막을 중심으로 상호간의 평화스러운 대화나 경제교류는 찾아볼 수 없는 냉전의 으름장이 항상 존재하였다.
특히, 북괴 김일성 집단은 1962년 12월 재 남침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4대 군사노선인 ① 전인민의 무장화 ② 전국토의 요새화 ③ 전군의 간부화 ④ 장비의 현대화를 채택하여 재 남침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괴군에 의한 경천동지한 도발사건이 발생되었다.
1968년 1월 21일 밤 10시경, 북한군특수8군단 예하(隸下)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일당31명이 ‘청와대 대통령관저’를 목표로 서울세검정까지 기습적으로 침입하였으나, 완전 일망타진되었던 大도발사건이 발생되었다. 북한은 ‘제2의 6.25남침야욕’에 혈안이 되었기에 자유대한민국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국가안보는 커다란 위기상황에 도래(到來)되었다.
■ 대통령의 특명이다. “북한군보다 더욱 강력한 초급장교를 양성하라”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1964년 7월부터 1973년 2월까지 8년 8개월 동안 맹호사단, 백마사단, 청룡여단 및 지원부대 등 주월한국군 1개 군단이 월남전선으로 연인원 총34여만 명이 파병됨으로서 병력감소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 용맹무적(勇猛無敵)의 파월장병들은 30~40도 오르내리는 무더위 갈증해소를 위하여 물과 염분(鹽分)으로 수시보충하며 얽히고 설켜있는 열대림으로 가득 찬 정글(jungle)을 헤치고, 또한 그 속에서 꿈틀거리며 소리 없이 다가온 소름끼치는 독충(毒蟲)에 시달리며, 월맹군과 베트콩(VC)의 구정공제와 춘계공세 등 수많은 혈전(血戰)은 피와 땀, 눈물 속에서 지속되었고, 일선 소대장급 초급장교들의 전·사상자가 급증되어 전술전기로 무장된 강인한 장교양성기관의 창설이 절실히 요구된 시기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968년 1월 21일 북한124군부대소속 김신조일당의 청와대기습사건이 발생되었던 거의 동일한 시점인 1968년 1월 23일 1시경 동해안 북방한계선(NLL) 40km 지점공해 상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미군최신정보함 ‘푸에블로호’를 중무장한 북한해군 4척의 초계정과 전투기(미그기 2대)의 위협아래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강제로 납치된 세계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도발사건이 자행되어 대한민국은 종합적인 안보위기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다, 6𐄁25전쟁과 월남전쟁, 대간첩작전에서 수많은 전쟁영웅을 배출하여 눈부신 활약을 하였던 육군보병학교(일명 : 갑종장교. 1950년 1월 창설)가 1969년 8월에 230기 임관을 끝으로 완전히 해체된 상태에 있었다.
위와 같이 1960년 말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국토방위를 위하여 국가안보 최우선주의선언에 이어 “북괴군보다 더욱 강력한 초급장교를 양성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육군3사관학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군본부 일반명령 제12호에 의거하여 1968년 10월 15일 육군3사관학교설립 명(命)에 따라 고) 임충식 국방장관에 의하여 3사관학교의 영원한 상징인 학교기를 초대학교장인 고) 정봉욱 소장에게 이양함으로서 육군의 정예장교를 육성하는 보무(步武)도 당당한 호국의 요람, 육군3사관학교가 창설하게 되었다.
육군3사관학교(Kora Third Military Academy)는 옛 신라시대 삼국통일의 주역들인 화랑도(花郞徒)들의 활동무대였던 드넓은 ‘영천 벌’에 학교교훈인 조국(祖國) 명예(名譽) 충용(忠勇)을 거울삼아 대북우위 및 세계 제1의 강인한 육군 장교양성의 메카(mecca)로 탄생됨으로서 『육군사관학교, 학도호국단(ROTC) 및 육군3사관학교』는 육군의 맥(脈)인 장교양성의 3대축이 되었다.
이렇게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난극복(國難克服)을 위하여 새로 창설된 육군3사관학교는 지난 반세기(1970년~2020년)동안 제1기생으로부터 54기생에 이르기까지 총46,477명(여근 55명)의 육군정예장교들이 배출되어 대북우위의 강인한 체력과 전략전술에 능통하고 살신성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월남전참전 및 대침투 작전의 주역으로서 수많은 전쟁영웅이 탄생되었다. 또한 국가안보의 거룩한 초석(礎石)으로서 애국애족(愛國愛族)사랑으로 가득 찬 장교양성의 요람이 되어 반세기를 명예스럽고 자랑스럽게 그 맥(脈)을 이어왔다.
3사인의 혼(魂) 1기생을 조명(照明)하다
■ 인고(忍苦)를 극복한‘영천 벌의 혼’1기생들!
1968년 10월 3사관학교가 설립 및 창설된 이후, 1969년 3월 1기생 생도모집시험에 전국에서 3,412명이 지원하였다. 그중 924명이 최종합격함으로서 3.5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교되었다.
그들은 혹한과 혹서기의 계절 속에서도 팬티바람으로 맨발로 자갈밭 도로를 보행하였고, 엄격한 90도 직각식사, 매일아침 4km이격된 단포강까지 구보로 뛰어가 세면 후 다시구보로 복귀하였다.
매주금요일 하기식이후 정봉욱 학교장의 직접통제로 열병과 분열교육이 계속되었다. 야간에는 동양최대넓이의 흙먼지연병장 주변에 트럭20여대를 배치하여 라이트를 켜고 새벽 1~2시가 넘을 때까지 9백여 명의 생도들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하나같이 오와 열 등 모든 동작이 중대별로 통일되어 최종 “합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고경사격장 등 야외훈련장으로부터 학교까지는 M1소총(4.2kg)을 휴대한 단독군장구보로 복귀하는 등 장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강인한 체력과 대북우위의 정신전력강화에 부합하는 ‘정예장교 육성’이라는 교육방침을 참고 이겨냈다. 그러나 고되고 힘든 인고(忍苦)의 교육훈련을 끝까지 이겨내지 못하고 17명의 동기들은 도중에 퇴교를 당하였다.
그것뿐만 아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게도 교육훈련도중에 남종영 동기 등 4명이 꽃 같이 젊은 나이에 순직하여 1기생 중 최초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추서에 의거 소위로 임관되신 슬프고 안타까운 동기생이 되었다.
당시 정봉욱 초대 학교장의 엄격하고 강인한 교육정책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개인인성과 인격문제 소유자 그리고 생도 및 장교자질 부족 등으로 총170명이 중간에 퇴교됨으로서 최종적으로 훌륭한 인격과 품성, 올바른 국가관으로 무장된 생도만이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1970년 1월 17일 임관식에는 771명이 영광의 육군소위로 임관되었고 그중에서 보병 572명, 공병101명, 통신26명을 비롯하여 9개 기능별 특과병과로 분류되어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소위계급장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전·후방 임지(任地)로 각각 배치되어 정들었던 모교를 떠나게 되었고, 그동안 골육지정과 희로애락으로 뭉쳤던 동기들과 뿔뿔이 헤어졌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9년 3월 단국대학교 대 강당에서 1기생 문경수 초대회장(보병대령)을 중심으로 87명이 모여 “동기생간에는 우정을, 후배들을 위해서는 단결 및 우호증진(友好增進)을, 그리고 영원한 모교사랑”을 모토(motto)로 ‘충성회’를 최초결성 및 발족하였다.
특히, 문경수 회장은 2004년에는 다음카페 ‘삼일광장’을 개설하여 현재까지 동기회 및 모교, 그리고 후배들을 아우르는 가교역할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왔다.
특히, ‘영천 벌의 혼(魂)’ 1기생들을 기점으로, 2기, 3기, 4기로부터 현 54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선·후배상호간과 연계된 全동문이 하나가 되었다.
한편,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육군3사관학교 총동문회관 빌딩」은 全동문이 하나 되어 십시일반(十匙一飯)기금을 조성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빌딩을 매입하여 명실상부한 3사인의 보금자리로 안착되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1기생초대 문경수회장를 비롯한 전·후임 역대회장단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총동문회는 全동문 상호간의 우의와 단결, 국가와 사회에 봉사라는 창립목적을 거울삼아 현, 15대 총동문회 한동주(14기. 예, 중장)회장을 중심축(軸)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알찬 활동과 상부상조 및 모교발전에 가일층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였다.
■ 월남전참전 및 대침투 작전에서 전쟁영웅으로 용천(湧泉)하다
1기생들은 소부대 지휘자(전투소대장)로 월남전에 참전하거나, GOP작전지역 또는 후방지역에 침투한 북한무장공비 소탕작전에 참전하여 살신성인 정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전승에 기여한 그 큰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❶ 이무표 중위의 경우는 국가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❷ 강영식 중위를 비롯한 11명은 화랑무공훈장을, ❸ 강홍만 중위를 비롯한 38명에게는 인헌무공훈장 등 총50명이 전투유공자에게만 수여받을 수 있는 영예(榮譽)로운 무공훈장을 수상하였다.
그들은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육군본부 파월명령에 의거하여 전·후방에서 1차로 소대장 1년의 실무경험을 축적한 1기생들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 있는 ‘오음리 특수훈련장’에서 4주 동안의 실전적응전투훈련을 마치고, 전투소대장요원으로 이역만리(異域萬里) 월남전쟁터에 참전하여 열대정글(jungle)을 헤치며 월맹정규군 및 베트콩(vc)의 총·포탄 속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40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용전분투(勇戰奮鬪)하였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전쟁영웅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하였던 이무표 중위, 김낙중 중위, 차건수 중위의 무운담(武運談)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은 살아서는 받을 수 없으며 주로 전사하신 분에게 수여된다는 말처럼 살아생전에 받기 매우 힘든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또한 국군장병은 누구나 전투에 참여하여 살신성인정신으로 전승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했을 경우에 명예스러운 인헌·화랑·충무·을지 및 태극무공훈장 등 5가지 훈장을 훈격(勳格:서훈의 등급)에 따라 국가로부터 수여받게 된다.
월남전에 참전한 이무표 중위는 3사관학교가 설립된 지 약3년, 1기생으로 임관한지 겨우 2년이 경과된 1972년 4월 중순경에 2주 동안 실시되었던 치열한 「안케패스 전투」에 소대원들과 함께 투입되어 월맹정규군의 빗발치는 총·포탄을 헤치고 최종목표인 638고지를 최초로 탈취 확보함으로서 남베트남중부지역에서 작전 중인 월남군 2군단 병력의 생명과 같은 보급품 추진의 주보급로였던 19번 공로(公路)를 개통시킨 주역이 됨으로서 수많은 전쟁영웅 중에서도 大영웅으로 탄생되었다. 이어서 대위로 특진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영광스러운 국가최고의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김낙중 중위는 전방사단 수색소대장으로 보직되어 2개월이 되었다. 1970년 3월 군사분개선(MDL) 이남 비무장지대로 은밀하게 침투하는 무장공비 2명을 기습공격으로 사살하여 3사출신 장교 중에서 최초로 화랑무공훈장을 영예롭게 수여받았다.
차건수 중위는 1972년 맹호사단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어 전투임무를 충실하게 수행 하는 중, 갑자기 중대기지에 적의 박격포 탄이 수없이 날아와 작열하는 파편에 두 눈이 실명되어 국가 상이등급1급으로서 현재까지 48년 동안 00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다.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장성급 장교 9명에게는 정부로부터 보국훈장국선장을 수여받았고, 영관급 장교 및 국방공무원(2·3급)들은 보국훈장삼일장을 무려47명이나 정부로부터 수여받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방위하기 위하여 최 일선에서 살신성인정신으로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여 혁혁(赫赫)한 공을 세운장교들이다.
그렇다! 자랑스러운 1기생들은 임진왜란으로 누란(累卵)의 위기에 쳐하였던 조국을 방호하기위하여 초개(草芥)와 같이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셨던 이순신장군의 살신성인정신을 그대로 본 받았던 애국자들이 분명하다.
■ 50년의 흔적과 미래 4차 산업혁명시대 대비하자!
아~ 장하도다! 대한민국의 방패 육군3사관학교 제1기생 중에서 장군승진은 총9명이 탄생되었다.
그들 중 육군대장은 박영하 장군 1명, 소장은 김문범. 김복산, 김군식 장군 등 3명, 준장은 김영철 장군 등 5명이 영예롭게 승진을 하였다. 특히, 장교들의 꿈이며, 장군들의 꽃인 육군대장이 1기생 중에서 최초로 탄생되었다. 2006년 11월에 육군대장으로 승진된 박영하 장군은 3사관학교 최초의 대장승진의 영광을 차지하였기에 더욱 돋보인다.
또한, 1기생 중에서 정치인은 김운환 前 국회의원이 있으며, 김영삼 정부시절에 부산해운대구에서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어 민의의 전당에서 국민을 위하여 최선의 활동을 다하였으며, 현역복부시절에는 군인정신이 투철하였고 매우 공명정대한 장교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1기생들은 모교의 맏형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군에서는 祖國𐄁名譽𐄁忠勇인 3사관학교의 교훈을 가슴에 간직하고, 호국의 간성으로서 부여된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고, 전역 후에는 지역사회로 진출하여 경제활동에 최선을 다 하였다. 따라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후배들의 귀감(歸勘)이 되었다.
향후 50년..! 1기생들의 바람이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육군3사관학교의 생도교육은 4차 산업혁명의 국가적인 발전과제인 전산적인 사고, 디자인적인 사고, 창의력, 협동 및 합동성, 커뮤니케이션 등을 국가안보에 접목시켜 다가오는 미래 전(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투능력발전, 작전 및 전략 전술발전에 부합된 기술력증진을 위하여 혁신적으로 연구 발전하길 바라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1기생들이 걸어온 외로운 개척정신을 거울삼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닥치더라도 모교의 명예를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국가안보의 파수꾼으로서 훌륭한 軍최고지도자가 더욱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하였다. 끝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군사적인 위협(威脅)과 각종안보환경에 지혜롭게 대처(對處)하면서 육군3사관학교 창설 100주년을 향하여 알찬발전을 추구(追究)하였다.
※ 본 연구집필을 위하여 자료제공과 증언에 적극협조해주신 1기 문경수, 최익환, 김운태, 이무표, 박용태님께 감사드린다.
(함경달 시인·수필가. 한빛전투수당연구소대표. 3사 3기)
(1968년 10월 임충식 국방장관이 학교기(學校旗)를 학교장인 정봉욱 소장께 이양하는 장면)
(1기생 신·구회장 및 전·후임총동문회장이 참석, 임관50주년 축하케익 커팅장면이다)
(1기생 및 귀빈, 후배 등 500여명이 태극기를 향하여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
축시 ‘大서사시(敍事詩)’
호국의 불사조들!
시인 함 경 달
반세기 전前이다~!
대구를 지나 영천 벌 세찬바람 눈발 헤치고
8도 강산 젊은 영웅들 하나로 뭉쳤다.
조국祖國 명예名譽 충용忠勇 교훈을 거울삼아
나라사랑 국토방위에 용트림하였도다.
아~ 육군 3사관학교 제1기생들(충성회)!
부모형제 정든 고향 멀리하고
팬티바람 맨발로 자갈밭길 누비었고
차가운 새벽, 단포강 맑은 물에 온몸 씻고
90도 직각식사 그 꿀맛 어느 뉘 아리요..!
영광의 1970년 1월이다~
대한민국대통령 명命에 따라
국방장관의 ‘육군소위’ 임명장수여식..
빛나는 다이아몬드 양어깨에 짊어지고
젊음을 불사른 대한의 간성干城되었노라
야~ 장하도다!
대한민국의 산하를 누비며
전·후방 철통같은 국토방위 앞장섰고
이역만리 월남전쟁에 뛰어들어
열대정글jungle, 적의 총·포탄에 피땀 흘리며
조국위해 살신성인정신으로 젊음을 받쳤노라!
50년 세월이 지난 2020년 1월이다.
은빛머리카락, 이마의 깊은 주름살 칠십대 노장老將들
임관50주년 세종문화회관 행사장에 다시 모였도다
조국수호를 위해 전사, 순직한 전우들께 묵념하며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추억의 꼬리 더듬는
‘호국의 불사조들’ 더 없이 자랑스럽구나..
아~ 그들의 호국충정 기도소리다!
배달민족 뿌리와 혼이 얽힌 ‘애국가’ 찬양하고
영원히 피고 지는 민족의 꽃 ‘무궁화’ 에 사랑담아
오대양 육대주에 ‘대한민국 태극기’ 힘차게 흔들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 평화통일 이룩하자는
하염없는 기도소리 광화문 천지를 진동하노라..
함경달 시인 걸어온 길
시인·수필가. 3사 3기. 3사 총동문회고문
2019년 월간문예사조 최우수상(詩)수상 ‘부산 제3부두의 추억’
월간문예사조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한빛전투수당연구소대표
월남전참전(소대장), 국방대학원졸업. 영관장교예편, 2급 정년퇴직
대한민국보국훈장삼일장, 국무총리 표창 등
(1968년 10월 임충식 국방장관이 학교기(學校旗)를 학교장인 정봉욱 소장께 이양하는 장면)
(1기생 신·구회장 및 전·후임총동문회장이 참석, 임관50주년 축하케익 커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