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홍의 아동문학 통신 148 / 서평〛
가난, 소외, 결핍에 대한 온기로서의 사랑
고이의 첫 동화집 <달걀이 탁!>
김 문 홍
사랑에 대한 차가운 응시
무릇 모든 문학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그러해야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아동문학은 작가로서의 인간과 문학이 일치해야 한다고 본다. 아동문학은 진심의 문학, 즉 동심에 대한 원형질 적인 눈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세상에 조금씩 때가 묻어가겠지만, 지금 현재 아이로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순진무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아이들의 삶과 일상을 관찰하고 형상화해 작품을 빚는 동시인과 동화작가들이 여느 작가나 시인들에 비해 더 순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고이(본명 김지경)는 서두르게 작품집을 상재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느긋한 행보를 보여 왔다. 그의 첫 작품집 『달걀이 탁!』 (고이, 마음이음, 2023.12, 102쪽)에 실려 있는 네 편의 단편 동화를 톺아보면, 동화집 출간의 시기가 왜 느렸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결코 예사롭지 않아서이다.
공을 들이고 오랜 기간 마음 앓이를 한 낌새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하나같이 행복하지가 않다. 그들은 가난, 소외, 결핍의 터널을 질척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작가는 되도록 그들에게 감정 이입하지 않은 채 일정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포근한 온기의 사랑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든다. 여기에서의 사랑은 곧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가슴 아픈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집 뒷면에 실린 ‘작가의 말“(100〜102쪽) 앞부분에서 그 기척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합니다.
책을 읽을 때면 반짝이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 눈이 갑니다. 수줍고 어수룩한 그들이 궁금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그래서 잔뜩 어깨를 웅크린 인물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입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해 질 녘 푸른 어둠이 깔리는 골목길처럼 가슴 한편이 아득해지는 이야기만 자꾸 떠오릅니다. - 고이, 달걀이 탁!, 100쪽
작가의 눈에는 여유롭고 행복한 아이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주눅 들어 보이는 아이들, 소외되고 결핍이 많은 아이에게 눈길이 가고, 웃음이 넘치는 경쾌한 이야기보다는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듯한 칙칙한 서사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움직인다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토로하고 있다. 그것은 곧 가난, 소외, 결핍이 많은 아이에게 끊임없이 작가로서의 사랑을 주고 싶다는 바람일 수 있다.
이처럼 이 동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네 편의 동화는 작가의 말처럼 ’해 질 녘 푸른 어둠이 깔리는 골목길처럼 가슴 한편이 아득해지는‘ 이야기라는 일관된 주제와 소재로 네 편 모두 나란히 한 줄에 꿰어 있다. 그것은 곧 아동문학에 종사하는 작가로서 응당 가져야 할 근원적인 모성으로서의 사랑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아이들이 비록 결핍에 갇혀 있고(「달걀이 탁!」), 친구들에게 소외되어 외로움을 앓고 있거나(「영식이와 나」), 지독한 가난에 쪼들려 있거나(「파스」), 거짓말과 부끄러움 때문에 끙끙 앓고 있어도(「오렌지 팔레트」), 그들은 끝내는 그 진창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과정은 우중충하고 아득해져도, 각 작품의 결말은 해피엔딩을 암시하면서 희망의 정검 다리를 놓고 있어 다행이다.
가난과 결핍을 툭툭 털고 일어서다
표제작인 「달걀이 탁!」은 건물 공사장에서 떨어져 몸이 성하지 않은 아빠와 화자인 ’나‘의 불편한 관계를 심리적으로 조명한 작품으로, 시종일관 어머니의 가출로 인한 결핍의 문제를 응시하고 있다. 화자는 이웃을 돕다 추락해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못마땅하지만,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가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안간힘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사다리를 발견하는 과정을,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사한 작가가 결코 인물에 감정 이입하지 않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
①
아침 햇살이 얼굴 위로 곱게 내려앉았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발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끝이 접히고 주름진 반창고가 발뒤꿈치에 단단히 붙어 있다. 나는 반창고를 가만히, 오래 바라보았다.
타악!
오늘도 어김없이 달걀이 깨진다.
채채채채챙!
은빛 스테인리스 볼에서 깨진 달걀이 신나게 섞인다. 흰자와 노른자가 젓가락 끝에서 서서히 풀려나간다. 볼은 어느새 노란 달걀 물로 출렁인다.
촤아아아아!
프라이팬에서 달걀이 익어간다.
투명한 흰자는 사라지고, 노랑만 남은 달걀.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투명한 흰자처럼 아빠도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한 번도 사라진 적 없이 그대로.
- 고이,『달걀이 탁!』,「달걀이 탁!」, 27〜29쪽
이 작품은 달걀을 풀어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화자인 인물의 심리적 상태와, 아버지와 내가 서로 화합되지 못한 채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비유하고 있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 달걀을 터뜨릴 때 깨지는 껍질을 통해 아빠의 깨진 머리를, 흰자 위에 볼록하게 솟은 노른자가 볼록하게 솟은 모양을 통해 외로운 섬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심리적 추위를, 달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는 아빠의 불편한 손놀림을 통해 아빠에 대한 나의 원망스런 마음을, 아빠의 쇠젓가락이 들쑤셔 노랗게 익은 달걀말이가 점점 흉하게 변하는 모습을 통해 아빠와 나의 불편한 관계를, 어머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결핍, 그리고 아빠의 젓가락질이 익숙해지는 모습을 통해 가난과 결핍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은유하고 있다.
위 인용 장면은 이 작품의 후반부 결미 부분으로, 계란말이를 능숙하게 만드는 나의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극복되고, 가난과 결핍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는 나의 심리를 요리라는 시각적인 움직임을 통해 은유하고 있다. 결국 그러한 화해는 나의 다친 발에 반창고를 붙여 주는 아빠의 사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감을 통한 감각적인 표현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상에 깊은 영향을 주어 독자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시각적인 감각을 통해 이 작품의 서사를 인상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②
러닝셔츠 밖으로 아빠의 어깨가 드러났다. 어릴 적 내가 목마를 타던 어깨, 작았던 나를 더 높이, 더 멀리 보게 해 주던 어깨였다.
내가 아빠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을 때, 아빠 어깨에는 다른 것들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무거운 생수통과 쌀가마니, 사과 박스가 아빠 어깨에 실려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든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양쪽 어깨에 미처 씻어 내지 못한 파스 자국이 까맣게 달라붙어 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돈을 꺼내 들었다. 꼭 사야 할 것이 있었다.
딸랑!
나는 약국 문을 힘차게 열었다.
- 고이, 위의 작품, 「파스」, 68쪽.
위 인용문 ②는 「파스」의 결미 부분이다. 이 작품 역시 앞의 작품 「달걀이 탁!」과 마찬가지로 화자의 가족 역시 엄마의 부재로 인한 결핍과 가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한 가족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는 사랑의 결핍과 가족의 안온함이 사라진 비정상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결핍은 뒤에 남아 있는 화자인 나와 아버지 사이의 불편한 관계로 소통이 삐걱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는 괴테의 말처럼, 모성의 결핍과 부재, 거기에다 가난까지 덧입혀진 가족 관계는 뭔가 위태로운 풍경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위 장면은 화자인 내가 부유한 은우 집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배달 물품 취급을 잘못해 아버지의 쌀가마니가 현관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은우 어머니에게서 나무람을 듣는 굴욕적인 장면이다. 화자인 나는 철없이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억지로 받아내어 친구들에게 선심을 쓴다.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 돈은 아버지에게는 피땀과 같았지만, 내가 친구들에게 선심 쓰는 방편으로 쓰인 그 돈은 자신의 가난과 결핍을 위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화자인 나는 아버지가 당하는 굴욕을 목격하고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와, 때묻은 파스가 붙여진 아빠의 어깨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고 가족의 복원을 위해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간다.
소외와 부끄러움에 대한 온기의 눈길
「영식이와 나」는 화자인 나도 역시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지만, 자신보다 더 소외돼 있는 ’영식‘이라는 친구를 온기의 눈길로 소외를 다독이는 연대와 소통의 이야기이고, 「오렌지 팔레트」는 가난과 소외를 보듬는 선생님의 화장 도구를 훔치는 선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식이와 나」는 소외된 친구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앞의 두 작품과 주제나 소재적 측면에서 일맥상통한 작품이다. 그러나 뒤의 작품인 「오렌지 팔례트」는 앞의 세 작품과는 서사의 결이 다른 작품으로,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한 소녀의 심리적 성장을 다루고 있다.
①
철커덕! 또 체인이 풀렸다. 오늘따라 체인이 잘 걸리지 않았다. 손이 온통 기름으로 시꺼메졌다.
순간 머릿속에 번쩍! 불이 일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던 게 생각났다. 그날 아침에는 분명히 체인이 풀려 있었는데!
영식이 손이 떠올랐다. 뚝뚝 시커먼 물을 떨구던 손, 기름으로 엉망이 된 손, 영식이가 자전거 체인을 걸어 놓은 것이다.
’이런 바보.‘
영식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툭툭 바닥을 차던 영식이, 영식이가 차던 것은 바닥이 아니었다. 그건 나였다.
툭툭, 나랑 같이 갈래?
툭툭, 너랑 가고 싶어.
툭툭, 나 말이야 너.
’이런 바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고이, 앞의 작품, 「영식이와 나」, 46〜47쪽.
②
”언니......“
선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를 부른다.
”언니......!“
언니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선다. 셔터 사이로 저녁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다. 언니는 그림자처럼 까맣고 언니 주변만 환하다.
”언니, 언니 사실은 내가......“
선아는 첫마디를 내뱉고 나서야 오래전부터 모든 걸 말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였다. 오렌지 팔레트에서 나는 것인지, 보이지 않지만 웃고 있는 게 분명한 언니에게서 나는 것인지 모를 빛이 반지하 주차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한낮에도 한밤인 듯 컴컴한 주차장에 환한 오렌지빛 불이 켜졌다.
-고이, 위의 작품, 「오렌지 팔레트」, 97쪽.
위 인용문 ①은 「영식이와 나」의 결미 부분으로, 화자인 내가 학교에 며칠째 나오고 있지 않은 영식이를 떠올리는 대목이다. 아버지가 사준 고물 자전거를 팽개치고 교실로 들어왔는데, 영식이가 빗속에서 몰래 풀어진 화자의 자전거 체인을 고쳐 놓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영식이는 그걸 고치느라 까맣게 된 손으로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그 이후 영식이는 며칠째 학교에 오고 있지 않는 것이다.
빗속에서 내 고물 자전거의 체인을 고치다 몸살로 앓아누운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서 놀림을 당한 것으로 마음이 아파 안 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갈 때마다 영식이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땅바닥을 차고 있었다. 결국 영식이의 그런 행위는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둔감한 화자인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식이도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지만 화자인 나 역시 집안이 넉넉지 못해 고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소외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자전거 뒤에 그를 태우고 들길을 달렸다면 영식이는 뿌듯해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가난하고 소외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를 바라고 있다. 소외된 친구에게 보듬어 주며 온기로서의 사랑을 전해 주는 게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인용문 ②는 반지하의 가난과 외로움에 방치된 선아, 주아 두 남매의 학습을 도와주러 온 ’언니‘와 선아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두 자매의 부모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들 자매의 부모는 가난에 쪼들려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서사는 다소 평면적이고 선아의 심리 상황과 마음의 추이가 서사의 추동력이 되고 있어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준다.
선아는 언니의 핸드백에 들어있는 오렌지 팔레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구경하다가, 언니가 등장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추어 버리고 만다. 선아는 오렌지 팔레트의 갖가지 색에 눈이 팔려 입술에 찍어 바르며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 선아의 모습은 가난과 외로움에 찌든 얼굴이 아니라, 넉넉한 행복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오렌지 팔레트는 그냥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 선아에게 바깥 세계의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중요한 오브제이다. 이 작품은 언니의 물건을 몰래 감추고 있는 선아의 죄의식과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일종의 심리적 드라마에 가깝다.
수미쌍관의 서사적 기법과 감각적 문체
이 작품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미쌍관의 서사적 기법과 인물의 심리를 은유하는 감각적 문체의 표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작품의 시작 부분에 나타나 있는 표현은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통해 주제를 은유한다. 그리고 결미 부분에 있는 표현은 처음의 표현과 서로 감응되어 작품 전체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①
엄마는 푸드덕, 푸드덕, 푸드더덕, 자꾸만 날갯짓을 했다. 공기를 가르는 날갯짓 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잦아지고, 격렬해지던 어느 날, 엄마는 떠났다.
둥지에는 금이 간 달걀과 자그마한 달걀만 남았다.
-고이, 앞의 책, 「달걀이 탁!」, 10쪽
②
오늘도 어김없이 달걀이 깨진다.
채채채채챙!
은빛 스테인리스 볼에서 깨진 달걀이 신나게 섞인다. 흰자와 노른자가 젓가락 끝에서 서서히 풀려나간다. 볼은 어느새 노란 달걀 물로 출렁인다.
촤아아아아!
프라이팬에서 달걀이 익어간다.
투명한 흰자는 사라지고, 노랑만 남은 달걀.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투명한 흰자처럼 아빠도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한 번도 사라진 적 없이 그대로.
-고이, 위의 책, 「달걀이 탁!」, 27〜29쪽.
위 인용문 ①은 발단 부분의 첫머리이고, ②는 결미 부분이다. 인용문 ①에서의 ’엄마는 푸드덕, 푸드덕, 푸드더덕, 자꾸만 날갯짓을 했다.‘라는 표현은 가난과 아버지의 부상에 따른 막막한 생활에 대한 엄마의 불안과 심리적 갈등을 의미하고, ’둥지에는 금이 간 달걀과 자그마한 달걀만 남았다.‘라는 표현에서 ’금이 간 달걀‘은 아버지의 부상을, ’자그마한 달걀‘은 휑하니 남은 화자인 어린 나를 지칭한다. 이처럼 발단 부분의 첫머리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가 떠나고 아버지와 화자만 덜렁 남은 막막한 외로움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다.
인용문 ②는 이 작품의 결미 부분으로 아버지와 화자인 나의 갈등이 끝나고, 이제는 어머니가 없어도 거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발단 부분 첫머리와 결미 부분이 서로 감응되어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제시한 수미쌍관의 서사적 기법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한 은유적 상징으로 조금 난해하긴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또한 이 동화집의 각 작품에는 인물의 심리적 상태와 분위기를 위한 감각적 문체가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독자에게 강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주는데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역시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독자에게 강한 인상적 효과를 주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각 작품의 군데군데 방점처럼 찍힌 감각적인 문장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아빠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덜덜덜덜 팔을 떨었고, 그때마다 쇠젓가락끼리 부딪쳐 채쟁채쟁 소리를 냈다.
② 현관 앞에 새까맣게 때 탄 신발이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③ 발가락을 토마토 꼭지처럼 똑똑 떼 버리거나 발을 색종이처럼 접고 싶었다.
- 고이, 『달걀이 탁!』, 「달걀이 탁!」
① 햇살을 받은 자전거가 바닥에 반짝이는 그물을 만들어 놓았다.
② 아무리 기름칠을 해도 소용없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죽자고 울어 댔다.
③ 영식이는 앞으로 걷는데 자꾸만 뒤로 가는 것 같았다. 영식이가 걷는 길만 자꾸만 길어지는 것 같았다.
-고이, 위의 책, 「영식이와 나」
위 인용문에 나타난 예문처럼 작가는 은유법이나 직유법, 의인법, 상징, 또는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 등을 이미지화해서 표현하는 등 감각적 문체의 문장을 작품의 곳곳에 매설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고이의 첫 동화집 『달걀이 탁!』은 단편 동화 네 편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는 데는 비교적 적은 분량이 실려 있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서사적 기법과 감각적인 문체, 무엇보다도 소외되고 가난하고 결핍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온기로 사랑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영상문화에 길들어져 있는 어린이들에게 감각적인 문체와 수미쌍관의 서사적 기법, 그리고 다소 난해한 묘사와 서술이 얼마나 이해 공감되어 가까이 다가갈지는 미지수이다.
작가는 앞으로 보다 쉬운 서술과 묘사, 음악적 리듬과 같은 서술의 리듬과 템포를 통한 역동적 서사 전개, 무엇보다도 재미라는 쾌락적 기능과 성찰과 교훈이라는 교시적 기능이 한데 어우러진 가독성이 강한 작품을 빚어내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첫 작품치고는 무게감이 들고 기법과 문체가 신선해 앞으로의 동화적 세계의 변주가 주목된다.(2024. 2. 21)
첫댓글 김문홍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톺아봐주시고 세심하게 써주신 서평, 큰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
귀한 말씀 맘속에 꼭꼭 새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신인 작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고이체가 지닌 가치를 눈여겨 보고 김문홍 선생님이 응원을 보내주시네요~~시류에 쏠리지 않고 자신만의 보법으로 첫 동화집을 낸 고이 작가에게 큰 힘이 될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서평 잘 읽었습니다.
우와!
최고의 서평입니다.
신인이지만 묵직한 주제를 상징과 은유, 비유법을 섞어
다양한 색깔로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하셨어요.
엄마가 떠난 이야기를
달걀 하나 탁! 깨뜨리면서 풀어내는 재주.
멋진 글입니다.
모든 세상의 아버지들에 대한
위로와 존중이 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알에서 깨어나 마당을 돌아다니는
병아리도 의미있는 생이지만
가난한 식탁의 달걀말이는
생을 이어주는 음식이기에
더 의미있습니다.
고이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온기가 스민 서평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