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예진이네가 와서 북적거리는 집입니다.
힘은 들지만 추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그랬듯이 오늘은 차례 지내는 것 없이 상주로 온 친척들이 모여 성묘합니다.
스트레스 없이 즐거움으로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지혜롭게 증거 하는 명절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진리로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본문 주해)
9절 : 성도의 마음이 새 언약의 은혜로 채워져야 하는데 다른 교훈들로 채워지는 것을 경계한다.
본문은 그 중에서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 그것은 아직도 구약의 그림자들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과 먹지 못할 부정한 음식을 구별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지금까지 아직도 그러한 규례에 매어 있다는 것이 다른 교훈에 끌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을 은혜로 채우지 못하고 율법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10~12절 : 구약의 제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비하고 있다.
구약의 제물 중에 제사장들이 먹을 수 없는 제물이 있는데, 그 제물은 속죄제나 일 년에 한 번 드리는 대속죄일의 제물이다. 이 속죄를 위하여 드린 제물은 그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까지 몽땅 제단의 재를 버리는 곳에 가져다가 불살라 태우는 것입니다(레4:11~12, 16:27).
이 속죄를 위한 제물이 예루살렘 성문 밖에 버려져서 태워지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문 밖에 나가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구약의 제사에서 구약의 여러 가지 교훈들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거룩하게 하신 이 속죄의 혜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3~14절 : 그러므로 성도로 부름 받은 자는 성문(영문)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장차 올 것을 찾도록 주님께서 조치하시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성읍에서 이 성읍이 영원한 것처럼 살자고 한다. 그 성읍 한가운데로 더욱 더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은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 라고 말씀한다. 그곳은 영구한 성읍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는 장차 나타날 영구한 도성을 바라고 찾는 자들이다. 그 영구한 도성이란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곳이다.
히브리서신을 받는 사람들은 유대주의라는 안전한 도성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구약의 규례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율법 지킴으로 인한 자기의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이 예수님이 가신 길이다.
15~16절 :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그런 삶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다.
영구한 도성을 받았기에 장차 무너질 도성의 일들로 인하여 울고불고 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찬미의 제사이다.
변화무쌍한 무너질 도성의 일들이 아니라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기에 세상의 조건과 상관없이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선을 행함과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사는 무너질 성읍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나올 수가 없다. 혹시 비슷하게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일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영구한 도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장차 망할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맺는 열매일 뿐이다.
17절 :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새번역)
‘인도하는 사람들’이란 지도자 즉 말씀을 증거 하는 자인데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지도자에게나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지도자들인가?
무너질 성이 아니라 영구한 성을 바라보게 하는 자 즉 복음을 증거 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을 위하여 자기가 회계할 자 인 것처럼 맡겨진 자들을 주의하여 살피고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게 하는 지도자,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나의 묵상)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절)
영문(성문) 밖은 어떤 곳인가?
죄악 속에 허덕이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나아가신 곳, 바로 십자가를 지신 곳이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내게 그곳으로 가자고 하신다.
영문 안은 허황된 것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로 가득한 곳, 바로 이 세상이다.
나는 원래 이 성읍에 살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성읍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자이다.
주님은 그런 내게 오셔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은혜를 주시고, 그것이 왜 은혜인지 내 죄를 보게 하신다. 그리고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주님을 향해 뜨기 시작한 실눈이 점점 크게 떠지는 것이다.
이제 ‘영문 밖으로 가자’ 하시는 그 음성에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나이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내게 십자가를 주시고,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영문 밖은 바로 ‘흔들리지 않는 아들의 나라’(나는 이 구절이 너무 좋다.)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삶은 내 힘으로 살게 되는 영문 안의 세상과는 달리, 주님과 연합됨으로 살아지는 나라인 것이다.
십자가에 연합되어 나 자신을 부인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제사, 진정한 선행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이 무조건 인내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것을 사람의 힘이 아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으면 한없이 불안하겠지만, 영문 밖의 삶에 목을 빼내게 하신 주님을 믿으니 이것도 주님께서 온전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다.
영문 안에 살던 자를 영문 밖으로 인도하셔서 매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 하시니, 다시 영문 안과 같은 세상에서, 복음과 생명으로 사는 삶을 증거 하며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영문 밖으로 가자’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전 같으면 천리만리 도망갔을 저이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께 매어있게 하시니 아무데도 도망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이 줄 수도,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임을 고백합니다.
이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
몸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종말의 승리를 기억하며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며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