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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style="BACKGROUND-COLOR: #5c585a" color=#ffffff size=3><STRONG>소리 없이, 세고비아는</STRONG></FONT>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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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정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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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기타는 <BR>오랫동안 울림통에 고여 있던 묵은 가락이 버거웠던 것일까<BR>어느 날 스스로 모가지를 버렸다 <BR>스물 몇 해의 시간을 단번에 버린 것이다<BR>그때부터 기타는 <BR>해자(該字) 같은 적막을 뒤집어쓴 채 <BR>벽에 등을 대고만 있다<BR>나는 밤마다 <BR>소리유적(遺蹟) 앞에 앉는다 <BR>도굴꾼 마냥 귀를 걸어놓고<BR>어둠 속에서 무늬로 남은 가락들을 더듬어간다 <BR> </P>
<P>어디선가 <BR>잠든 세상을 열고 나온 손가락들이 <BR>기타 줄을 퉁긴다 <BR>동면을 마친 배암처럼 고개쳐드는 노랫소리들 <BR>서서히 靜과 動의 경계를 지우며 <BR>내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BR>흐르다가 주절대다가 애무하다가 술병처럼 <BR>쓰러지다가 나를 휘감다가 <BR>눈을 떴다 <BR>더 이상 몽상을 할 수 없는 기타는 <BR>여전히 부러진 모가지를 달고 잠들어 있다<BR>어제도 내일도 캄캄하게<BR>나는<BR>마음 수첩을 펼쳐<BR>그간의 내력들을 적어내려 간다 </P>
<P><BR>시집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2007년 문학의전당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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